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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오병이어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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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 현재 가진 것이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찌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바쳐질 때 여호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최대의 축복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영적교제이다. 영적 교제는 감사함에서 이루어진다. 찬송과 기도와 물질과 몸과 마음을 드릴때 감사함으로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적은 것으로 감사할 때 기적이 나타남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는 지극히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적은 것에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현실이 보잘것없는 처지라 절망될 때도 감사함으로 드리면 기적이 일어나며 적은 것을 감사할 때 큰 것을 주시나 감사치 않을 때, 있는 것까지도 뺏긴다. 감사의 조건을 찾는 사람은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현대인의 정신적 질병은 불평, 불만이다. 여기서 불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감사로 나누고 부스러기는 거두게 하심
예수님은 감사한 후에 나누어 주셨다. 나눌 수 없는 것은 감사가 아니다. 받은 은혜는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나눌 때 기쁨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눔의 축제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다. 감사는 이웃과 나눔이 있을 때 고아와 과부와 나눌 때 커지는 것이다. 주님께서 부스러기를 거두라고 하셨다. 보잘것없는 것을 거둘 때 기적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가을이 되면 한때 무성했던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그러나 가을 나무에는 탐스러운 열매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우리 인생의 나무엔 무엇이 달려있습니까 어떤 열매가 달렸습니까
우리의 삶에 가장 귀한 열매는 감사의 열매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열매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 생활입니다. 감사는 은혜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신앙이 뿌리라면 감사는 열매입니다. 이기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사는 사람은 감사가 메마른 사람입니다. 나는 모든 이에게 빚진 자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갈 때 매사에 감사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故 김활란 박사는 그의 유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평생을 빚진 자로 살다가 간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졌다고 생각할 때 감사하는 자가 되며 그 감사 속에서 인격과 영혼이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그의 삶 속에 무한한 감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나 병자를 고치실 때나 기적을 행하실 때 하늘을 우러러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신 것은 감사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늘 감사하는 생활이 되라고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볼 때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현재 손안에 있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될 때 여호와 하나님과 신령한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현재 가진 것만으로 우리가 감사할 수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주님과 깊은 사귐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최대의 축복이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사귐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도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찬송함으로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을 드림으로 교제가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감사가 빠지면 안됩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는 자기 독백이며, 감사가 없는 찬송은 자기 감정의 표현이며, 감사가 없는 헌금은 흥정의 도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있고, 감사함으로 드리는 찬송일 때 하늘 문이 열리고, 감사로 충만한 헌금일 때 주님이 열납하시는 하늘의 보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감사가 많은 기도를 드립시다. 예수님의 기도는 언제나 감사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일방적인 요구이거나 강권적인 요청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알때 감사하게 되고 감사 속에서 더 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을 얻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께서 적은 것을 가지고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극히 적은 것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때 5천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는 적은 小子, 어린 아이 하나의 한끼 식사입니다. 그것 가지고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떡과 고기를 바친 소년은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는 이름 없는 아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거나 이름 없는 어린아이의 손에 있던 것이라도 감사할 때는 기적이 일어남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2백 데나리온의 떡을 생각했지만 우리 주님은 소년의 적은 도시락으로도 만족했습니다. 큰 것만 감사하고 적은 것에는 무관심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적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고 적은 것에 감사함으로 크고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26절에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고 하셨습니다.
인생 광야를 지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진 것이 보잘것없습니까 건강치 못하고 연약하여 괴로워하십니까 그 약한 것 가지고 감사하십시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몇일 전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때는 눈이 나빠서 글이 잘 보이지 않고 글자를 쓸 수가 없었는데 교회서, 목사님이 쓰다 보면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해서 약한 시력이지만 성경을 다문 얼마라도 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썼더니 말씀을 기록하시면서 은혜를 받고 이제는 눈이 밝아져 하루에 성경 10장도 더 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유명한 스펄죤 목사님의 감사 기도 가운데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비취는 생명의 빛을 주실 것이다"고 했습니다. 적은 일, 적은 소유, 보잘것없는 것, 좌절되고 낙망되는 일에도 감사할 때 기적을 베푸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목요일 목요선교회에 어떤 할머님이 자원하여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할머님은 다른 교회 권사님이신데 은퇴를 하고 집에 있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은퇴를 하고 보니 답답하고 심심해서 우연히 우리 교회 목요선교회에 나오시게 됐다고 합니다. 이 권사님은 피아노 반주도 하시는 권사님이신데 백내장으로 눈이 아파서 피아노 반주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요일, 목사님께서 몸이 아픈 사람은 아픈 곳에 손을 대라고 하시면서 기도해 주셨는데 백내장이 깨끗이 나아 감사한다"고 간증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기적을 봅니다. 적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더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조건에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큰 것으로만 감사한다면 1년가도 한 두번의 감사밖에 못할 것이지만 적은 것에, 약한 것에, 가진 것이 없는데도 감사한다면 날마다 순간마다 감사할 것입니다. 적은 것에 감사하는 자는 반드시 기적을 본다고 가르치셨으니 기적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유태인들의 명절중 가장 기쁜 마음으로, 큰 절기로 지키는 명절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430년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해방절기요,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열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에서 건짐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축제 때 무교병을 먹습니다. 누룩을 넣지 않아 부풀지 않은 딱딱한 빵입니다. 그들은 축제이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양고기, 쓴나물, 무교병을 먹으면서 감사하며 축제를 보냅니다. 그들은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의 감사를 잃지 않으려고 그런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수두룩해도 감사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사람에게로 원망스럽고 괴로움은 더할지라도 기적을 기대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열악한 조건에서도 감사할 때 그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의 기적을 볼 것입니다.
감사만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마음을 넉넉하고 윤택하게 해 줍니다. 감사만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감사만이 적은 데서 큰 축복을 받는 산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을 바라십니까 감사하십시요. 병고침을 원하십니까 감사하는 믿음이 되십시요. 병에서 놓임받는 기적을 볼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감사함으로 나누시고 적은 부스러기라도 거두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신 후 오병이어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11절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나누는 것입니다. 나눌 수 없는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서 나누지 않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합으로 나눕니다. 주님은 굶주린 무리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배불리 먹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베세다 광야는 나눔 속에서 축제와 기쁨의 들녘이 되었습니다. 나눔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한국선명회에서는 소말리아의 기아 난민을 위해 '사랑의 빵' 운동을 벌였고 이제는 '훼민 24'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훼민이라는 말은 금식, 굵기라는 뜻으로 한끼 굶으므로 소말리아의 난민을 살리자는 뜻입니다. 한끼 금식한 2,000원의 금액을 갖고 빵을 나누어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독점하려는 사람은 욕망의 노예가 되지만 나누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평안을 얻습니다. 기쁨을 누립니다. 사랑을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만 나누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받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살이니" 하셨습니다. 식후에 잔을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니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생은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을 나누면 갑절로 늘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나눔은 신비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스러기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오병이어는 5천명 먹은 것도 큰 기적이지만 더 의미있는 기적은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바구니에 찬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로 사신 예수님은 부스러기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감사함으로 기적을 보이신 주님은 부스러기를 거두게 하시므로 더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하셨고 작은 부스러기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더 큰 기적을 알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얼마 전에는 지구 대청소의 날을 정하여 쓰레기를 줍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2천년 전에 환경보존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얼마 전 프로야구가 끝난 관중석을 TV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엄청난 쓰레기장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연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창조질서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적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보잘 것 없는 것에도 감사함으로 기적을 보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성도, 감사가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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