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추수감사절을 지키려면
본문
오늘은 우리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아니 우리 교회 뿐 아닙니다. 우리 화리현 제단이 오늘 지키는 추수감사절을 계기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제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거 우리 여호와 하나님인 줄 너희는 알찌어다. 우리는 그의 지으신 자시오, 우 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 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 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이것은 시편 100편입니다. 이 찬송이 1620년 미국 폴리마우스 해변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감격의 눈물과 진실한 감사로 가득찬 찬송이었습니다.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찬송을 부르는 이들, 바위를 끌어 안고 큰소리로 흐느끼는 이들. 그러나 그것은 모두에게는 너무나 벅찬 기 쁨의 찬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46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평균 2마일의 시속으로(이 속도는 걷는 속도 보다 느린 속도입니다) 117일간 세달이 넘는 동안을 극심한 파도와 싸우며 항해한 끝에 다달은 땅이었습니다.
항해 도중 2명이 죽고, 한 아이가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뱃멀미와 싸우면서 돌아가자 고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음을 감사했습니다. 폭풍우 중에 돛이 잘려 나가고, 여자들이 파도 에 휩쓸려 바다 속에 곤두박질 했는데도 모두 구조 되었음을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도달한 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강건너 바 다인 것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메리카 미국 땅에 도달해서 저들을 기다린 것은 굶주림과 질병뿐이었습니다. 한해 겨울을 넘기기 전에 60명이 배고픔과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하지 만 저들은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봄 이 오고 씨앗을뿌렸습니다. 하지만 각박한 땅에 소산이 많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추수한 것은 인디안들이 노략질 해갔습니다. 남은 것은 곡식을 지키느라고 희생된 시체와 몇 안되 는 곡식 뿐이었습니다. 이태가 지나자 반절도 안되는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배와 찬송, 감사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얻은 곡식으로 가난한 추수감사 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첫번 추수감사이고, 미국의 출발이었습니다.
그 끊이지 않는 감사가 지금의 미국을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스펄죤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 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춰 주신다 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귀한 것은 보상을 받기 마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를 더 하십니다. 은혜를 더하십니다. 능력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루는 천사에게 감사 바구니를 만들어서 감사를 담아 오라고 그랬더니 이 천 사가 하루 종일을 돌아다녔는데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불평의 바구니를 내려 보냈더니 한시간도 못되어서 가득 채워 가지고 왔더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시대입니다.
옛날에 감사촌과 불평촌이 있었습니다. 감사촌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다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불평촌 사람들은 무슨일이든지 불만을 품고, 매사에 분노하고, 불평을 털어 놓으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불평촌의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갓다가 감사하는 소리에 놀 라서 나도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감사를 하다가 자기 마을로 돌아와 이렇게 말 했다는 것입니다. “에이 감사촌에 놀러갔다가 먹은 것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우리가 교회에서는 감사하면서 살아야지 하지만 금방 세상에 오면 불평이 나오는 것이 인 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10이나 고쳤는데 감사는 1명이 와서 했다는 것입니 다. 그 자리에서 감사지 쉽게 있는 것이 우리네 감사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1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 1년 동안 은혜주신 것, 1년 동안 돌봐주신 것, 1년 동안 축복주신 것, 감사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로 영광 돌리는 날입니다.
우리 성도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내 잘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성도 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이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성도가 항상 부를 찬 송인 것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아주 귀히 여겼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든지 이날을 지켰습니다. 이방 땅이든, 전쟁 중이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방의 끝임없는 침략을 받을 때에도, 이방인의 압 제하에 있을 때에도 바벨론에 포로로 있을 때에도, 파사의 통차하에서도, 로마의 통치하에서 도, 저들은 이 날을 지켰습니다. 감사할 것이 없을 것 같은 때에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서 하 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찬양을 드렸던 것입니다.
옛날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현대에 와서도 그랬습니다. 그 유명한 유대인을 6백만이나 죽였다는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혹독한 강제 노동이 하루도 끊이지 않 았습니다. 먹는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극한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짐승 이하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추수감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었지만 저들은 배급하는 마른 빵, 딱딱하고 보잘 것 없는 빵이었지만 십분의 일을 떼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다 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병약한 사람들이 수백명씩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습니다. 발가 벗겨져서 가스 실에 들어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손끝에 피를 내서 화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유대민족은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향하신 큰 뜻이 있다고 믿었 습니다. 유대민족은 어려울 때마다 하늘을 바라 보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 랬듯이 믿음을 구부리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그랬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하막국이 그랬듯이 하나나님의 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그랬듯이 주 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깜깜한 밤중에도 저들에게는 하늘에는 달이 떠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또 다른 태양이 솟아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 나님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힘이 들때마다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 네”이 수용소 벽마다 손톱으로 벽을 긁어 쓴 피묻은 글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 다.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찬송가 404장을 다같이 불러 보십시다.
고리텐 붐 여사는 수용소에 벼룩이 많은 것을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수용소에 벼룩이 많으 니까 독일군들이 벼룩이 옮지 않으려고 가까이 하지 않아 그래도 조금은 편한 것이었습니 다.
무엇이든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입니다. 감사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눈에 있는 것이 아닙니 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건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주시면 많이 주시는 대 로, 적게 주시면 적게 주시는 대로, 불속에 있으면 불속에 있는대로, 물속에 있으면 물속에 있는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유대인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날을 지켜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날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날에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첫번째 수확을 여호와 하나님께 정성으로 드렸습니다. 이말은 제일
첫번째 것을 영적으로는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처음 것을 떼 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십일조를 해도 다 쓰고 남은 것을 하는 것은 십일조가 아닙니다. 감 사도 좋은 것은 다 떼어먹고 찌거기로 하는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저 어렸을 때에 세배돈을 주면 아버지가 싹 새돈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많지 않은 돈이 라도 새돈으로 주시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느 언제나 헌금할 돈은 다리미로 다리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많고 적음을 따지 시는 분이 아시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십니다. 얼마만큼 최선을 드렸는가 를 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첫것을 드린다는 다른 의미는 나는 가진 것이 없어도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거두었겠습니까 유대인은 원래 유목민입니다. 양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와서 농사를 지으니 어련 했겠습니까
무엇이든 첫해에는 잘 안됩니다. 부족합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습니다. 잘 안되는 법입니다.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가진 것 중에 십분의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드렸습니다. 없는 중에도 구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 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들의 마음 속에는 소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것을 거두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께 미리 담보를 내 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을 잘 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농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재물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없는 중에 감사가 더 감사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정성을 받으십니다. 마음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첫 목회지에서 사이다를 끓여서 대접했던 할머니를 잊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 심방을 갔는데 요만한 종지에 뭘 담아 오셨습니다. 이게 뭐요 했더니 사이다라는 것입니다. 추운데 오시느라고 고생을 했다고 펄펄 끓여서 가져왔습니다. 정성이 귀한 것입니다. 지금도 사이다 를 보면 그 맹물이 생각납니다. 그 할머니 새신자의 사랑이 생각이 납니다.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만드는 법입니다. 작은 정성이큰 축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첫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첫것을 분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네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하면 제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포도즙이 넘치리라”
여러분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첫 것을 철저하게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은혜 와 축복을 우리의 삶에 가정에, 직장에, 일터에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지은 죄를 회개하는 날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속죄제물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가지고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성결입니다. 그래야 풀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먼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열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 은혜,축복 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맥추절을 지나면서 먼저 회개를 해 야 하겠습니다. 감사제물을 드리기 전에 이교회가 부흥의 물결이 있기전에 먼저 화리현 제 단에 미스바의 회개운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7절 말씀도 보면 우리 가“어찌할꼬”하였을때 성령의 은사가 내려온 것입니다.
“주여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감사절에 성령충만함의 역사가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 느냐”회개하고 믿으면 성령이 오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날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생각하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매인 것뿐 아니 라 땅에 매인 것도 다 풀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사람들은 그동안에 진 빚을 다 갚았습니다. 안식년과 같이 면제일로 지켰습 니다. 종을 놓아주었습니다. 매였던 사람들을 다 풀어 주었습니다. 꾸인 것을 갚았습니다. 갚 을 수 없는 것은 면제해 주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벗는 날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 아주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없는 사람도 배불리 먹는 날이었습니다.
살다가 서로 흠이 졌던 것, 풀었습니다. 살다가 원수 맺었던 것, 용서 했습니다. 섭섭했던 것, 편안하게 털어 놓앗습니다. 눈살 찌푸렸던 것, 께름칙했던 것, 다 푸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에는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다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저들의 입에서는 원망대신 용서가 나왔습니다. 불평 대신 사랑을 내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형제자매의 사랑을 다짐하였던 것 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다가 너희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생각 나거든 먼저 형 제와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우리는 언제나 두가지 관계를 중요시 여깁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이 것이 다 풀리는 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신명기 11절을 보면“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 와 과부가 다 함께 나아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즐거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드려진 헌금의 십분의 일은 연기군의 사랑의 마을에 헌금으로 보내지겠습니다. 무의 탁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이 마지막 여생을 맡기는 곳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부유한 것 이 아닙니다. 아직은 빚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제가 화리현 교회를 담임하는한 계속 될 것입니다. 언제나 기회가 있다면,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계속될 것입니다.
있을 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많다고 감사가 아닙 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가 귀한 것입니다. 찬송할 수 없을 때, 찬송이 진짜 찬송입니 다.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가 진짜 기도이듯이 가난할 때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는 것입니 다.
오늘 우리가 푸는 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다가 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묵은 감정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섭섭한 것을 풀어야 하 겠습니다.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섭섭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십시오”할렐루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의 박수를 돌려 보내십시다
이시간 남편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화 되 기를 축원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이웃과 지역사회와 관계가 정상화 되기를 축원 합니다.
이 감사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지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하며 살아야지, 기도하며 살아야지, 믿음으로 살아야지, 감사하며 살아야지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 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옛사람의 성품에 가라지를 뽑아내고, 새사람의 성품에 성령나무를 심어야 하겠습니 다. 세상의 가시나무는 뽑아내고 천국의 생명나무를 심어야 하겠습니다. 세속의 열매를 바라 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바라야 하겠습니다.
근심,걱정은 뽑아내고, 기쁨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눈물, 한숨은 뽑아내고, 영의 즐거움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절망과 포기는 뽑아내고 희망과 비젼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죽음의 예사람은 뽑아내고 새로운 형상의 얼굴을 힘입어야 할 것입니다.
새롭게 주님 앞에 나와서 새롭게 출발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거 우리 여호와 하나님인 줄 너희는 알찌어다. 우리는 그의 지으신 자시오, 우 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 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 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이것은 시편 100편입니다. 이 찬송이 1620년 미국 폴리마우스 해변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감격의 눈물과 진실한 감사로 가득찬 찬송이었습니다.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찬송을 부르는 이들, 바위를 끌어 안고 큰소리로 흐느끼는 이들. 그러나 그것은 모두에게는 너무나 벅찬 기 쁨의 찬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46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평균 2마일의 시속으로(이 속도는 걷는 속도 보다 느린 속도입니다) 117일간 세달이 넘는 동안을 극심한 파도와 싸우며 항해한 끝에 다달은 땅이었습니다.
항해 도중 2명이 죽고, 한 아이가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뱃멀미와 싸우면서 돌아가자 고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음을 감사했습니다. 폭풍우 중에 돛이 잘려 나가고, 여자들이 파도 에 휩쓸려 바다 속에 곤두박질 했는데도 모두 구조 되었음을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도달한 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강건너 바 다인 것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메리카 미국 땅에 도달해서 저들을 기다린 것은 굶주림과 질병뿐이었습니다. 한해 겨울을 넘기기 전에 60명이 배고픔과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하지 만 저들은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봄 이 오고 씨앗을뿌렸습니다. 하지만 각박한 땅에 소산이 많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추수한 것은 인디안들이 노략질 해갔습니다. 남은 것은 곡식을 지키느라고 희생된 시체와 몇 안되 는 곡식 뿐이었습니다. 이태가 지나자 반절도 안되는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배와 찬송, 감사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얻은 곡식으로 가난한 추수감사 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첫번 추수감사이고, 미국의 출발이었습니다.
그 끊이지 않는 감사가 지금의 미국을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스펄죤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 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춰 주신다 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귀한 것은 보상을 받기 마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를 더 하십니다. 은혜를 더하십니다. 능력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루는 천사에게 감사 바구니를 만들어서 감사를 담아 오라고 그랬더니 이 천 사가 하루 종일을 돌아다녔는데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불평의 바구니를 내려 보냈더니 한시간도 못되어서 가득 채워 가지고 왔더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시대입니다.
옛날에 감사촌과 불평촌이 있었습니다. 감사촌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다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불평촌 사람들은 무슨일이든지 불만을 품고, 매사에 분노하고, 불평을 털어 놓으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불평촌의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갓다가 감사하는 소리에 놀 라서 나도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감사를 하다가 자기 마을로 돌아와 이렇게 말 했다는 것입니다. “에이 감사촌에 놀러갔다가 먹은 것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우리가 교회에서는 감사하면서 살아야지 하지만 금방 세상에 오면 불평이 나오는 것이 인 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10이나 고쳤는데 감사는 1명이 와서 했다는 것입니 다. 그 자리에서 감사지 쉽게 있는 것이 우리네 감사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1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 1년 동안 은혜주신 것, 1년 동안 돌봐주신 것, 1년 동안 축복주신 것, 감사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로 영광 돌리는 날입니다.
우리 성도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내 잘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성도 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이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성도가 항상 부를 찬 송인 것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아주 귀히 여겼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든지 이날을 지켰습니다. 이방 땅이든, 전쟁 중이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방의 끝임없는 침략을 받을 때에도, 이방인의 압 제하에 있을 때에도 바벨론에 포로로 있을 때에도, 파사의 통차하에서도, 로마의 통치하에서 도, 저들은 이 날을 지켰습니다. 감사할 것이 없을 것 같은 때에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서 하 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찬양을 드렸던 것입니다.
옛날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현대에 와서도 그랬습니다. 그 유명한 유대인을 6백만이나 죽였다는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혹독한 강제 노동이 하루도 끊이지 않 았습니다. 먹는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극한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짐승 이하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추수감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었지만 저들은 배급하는 마른 빵, 딱딱하고 보잘 것 없는 빵이었지만 십분의 일을 떼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다 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병약한 사람들이 수백명씩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습니다. 발가 벗겨져서 가스 실에 들어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손끝에 피를 내서 화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유대민족은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향하신 큰 뜻이 있다고 믿었 습니다. 유대민족은 어려울 때마다 하늘을 바라 보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 랬듯이 믿음을 구부리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그랬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하막국이 그랬듯이 하나나님의 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그랬듯이 주 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깜깜한 밤중에도 저들에게는 하늘에는 달이 떠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또 다른 태양이 솟아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 나님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힘이 들때마다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 네”이 수용소 벽마다 손톱으로 벽을 긁어 쓴 피묻은 글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 다.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찬송가 404장을 다같이 불러 보십시다.
고리텐 붐 여사는 수용소에 벼룩이 많은 것을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수용소에 벼룩이 많으 니까 독일군들이 벼룩이 옮지 않으려고 가까이 하지 않아 그래도 조금은 편한 것이었습니 다.
무엇이든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입니다. 감사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눈에 있는 것이 아닙니 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건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주시면 많이 주시는 대 로, 적게 주시면 적게 주시는 대로, 불속에 있으면 불속에 있는대로, 물속에 있으면 물속에 있는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유대인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날을 지켜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날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날에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첫번째 수확을 여호와 하나님께 정성으로 드렸습니다. 이말은 제일
첫번째 것을 영적으로는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처음 것을 떼 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십일조를 해도 다 쓰고 남은 것을 하는 것은 십일조가 아닙니다. 감 사도 좋은 것은 다 떼어먹고 찌거기로 하는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저 어렸을 때에 세배돈을 주면 아버지가 싹 새돈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많지 않은 돈이 라도 새돈으로 주시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느 언제나 헌금할 돈은 다리미로 다리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많고 적음을 따지 시는 분이 아시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십니다. 얼마만큼 최선을 드렸는가 를 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첫것을 드린다는 다른 의미는 나는 가진 것이 없어도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거두었겠습니까 유대인은 원래 유목민입니다. 양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와서 농사를 지으니 어련 했겠습니까
무엇이든 첫해에는 잘 안됩니다. 부족합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습니다. 잘 안되는 법입니다.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가진 것 중에 십분의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드렸습니다. 없는 중에도 구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 린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들의 마음 속에는 소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것을 거두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께 미리 담보를 내 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을 잘 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농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재물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없는 중에 감사가 더 감사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정성을 받으십니다. 마음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첫 목회지에서 사이다를 끓여서 대접했던 할머니를 잊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 심방을 갔는데 요만한 종지에 뭘 담아 오셨습니다. 이게 뭐요 했더니 사이다라는 것입니다. 추운데 오시느라고 고생을 했다고 펄펄 끓여서 가져왔습니다. 정성이 귀한 것입니다. 지금도 사이다 를 보면 그 맹물이 생각납니다. 그 할머니 새신자의 사랑이 생각이 납니다.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만드는 법입니다. 작은 정성이큰 축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첫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첫것을 분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네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하면 제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포도즙이 넘치리라”
여러분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첫 것을 철저하게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은혜 와 축복을 우리의 삶에 가정에, 직장에, 일터에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지은 죄를 회개하는 날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속죄제물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가지고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성결입니다. 그래야 풀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먼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열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 은혜,축복 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맥추절을 지나면서 먼저 회개를 해 야 하겠습니다. 감사제물을 드리기 전에 이교회가 부흥의 물결이 있기전에 먼저 화리현 제 단에 미스바의 회개운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7절 말씀도 보면 우리 가“어찌할꼬”하였을때 성령의 은사가 내려온 것입니다.
“주여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감사절에 성령충만함의 역사가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 느냐”회개하고 믿으면 성령이 오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날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생각하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매인 것뿐 아니 라 땅에 매인 것도 다 풀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사람들은 그동안에 진 빚을 다 갚았습니다. 안식년과 같이 면제일로 지켰습 니다. 종을 놓아주었습니다. 매였던 사람들을 다 풀어 주었습니다. 꾸인 것을 갚았습니다. 갚 을 수 없는 것은 면제해 주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벗는 날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 아주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없는 사람도 배불리 먹는 날이었습니다.
살다가 서로 흠이 졌던 것, 풀었습니다. 살다가 원수 맺었던 것, 용서 했습니다. 섭섭했던 것, 편안하게 털어 놓앗습니다. 눈살 찌푸렸던 것, 께름칙했던 것, 다 푸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에는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다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저들의 입에서는 원망대신 용서가 나왔습니다. 불평 대신 사랑을 내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형제자매의 사랑을 다짐하였던 것 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다가 너희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생각 나거든 먼저 형 제와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우리는 언제나 두가지 관계를 중요시 여깁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이 것이 다 풀리는 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신명기 11절을 보면“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 와 과부가 다 함께 나아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즐거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드려진 헌금의 십분의 일은 연기군의 사랑의 마을에 헌금으로 보내지겠습니다. 무의 탁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이 마지막 여생을 맡기는 곳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부유한 것 이 아닙니다. 아직은 빚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제가 화리현 교회를 담임하는한 계속 될 것입니다. 언제나 기회가 있다면,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계속될 것입니다.
있을 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많다고 감사가 아닙 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가 귀한 것입니다. 찬송할 수 없을 때, 찬송이 진짜 찬송입니 다.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가 진짜 기도이듯이 가난할 때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는 것입니 다.
오늘 우리가 푸는 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다가 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묵은 감정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섭섭한 것을 풀어야 하 겠습니다.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섭섭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십시오”할렐루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의 박수를 돌려 보내십시다
이시간 남편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화 되 기를 축원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이웃과 지역사회와 관계가 정상화 되기를 축원 합니다.
이 감사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지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하며 살아야지, 기도하며 살아야지, 믿음으로 살아야지, 감사하며 살아야지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 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옛사람의 성품에 가라지를 뽑아내고, 새사람의 성품에 성령나무를 심어야 하겠습니 다. 세상의 가시나무는 뽑아내고 천국의 생명나무를 심어야 하겠습니다. 세속의 열매를 바라 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바라야 하겠습니다.
근심,걱정은 뽑아내고, 기쁨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눈물, 한숨은 뽑아내고, 영의 즐거움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절망과 포기는 뽑아내고 희망과 비젼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죽음의 예사람은 뽑아내고 새로운 형상의 얼굴을 힘입어야 할 것입니다.
새롭게 주님 앞에 나와서 새롭게 출발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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