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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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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리지 아니하겠습니까만 이 처럼 1년에 한번 한 주일을 정해서 일년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퍽 의미가 깊다고 생각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 개인에게 주신 은 혜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더구나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기 관과 단체가 평안한 가운데 각자의 책임을 잘 감당하게 된 것을 감사드 립니다. 본 교회에서 후원하는 여러 나라 선교사들과 농어촌 교회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것을 감 사드립니다. 더구나 우리 교회의 새 성전건축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금 공정이 약 80퍼센트 진전 이 되었고 이제 내부공사와 조경공 사만 되면 정말 아름다운 예배당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 2000년 봄에 입당하게 될 것인데 생각만 해 도 감격스럽습니다. 그 동안 10여 년 동안 불편한 장소에서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제 서너 달만 더 고생하 면 되겠습니다.
사실 우리 나라가 한국동란 이래 처음으로 IMF라는 국난을 겪게 되 어 우리 국민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 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IMF 2년의 터널을 지나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배우고 깨달은 바도 많습 니다. 아직도 여러 가지 문제가 많 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어려운 경제 가 다소 회복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 데 대하여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일년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계교회와 온 세계 나라 위에 축복 을 더하여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 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 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 야 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그리스 도인은 평소의 생활이 감사의 생활 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과 일생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 혜를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면 그 는 언제든지 제일 먼저 성도들을 향 해 문안을 한 다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 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편지 를 읽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권 면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
"범사에 감사하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항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 라. "
이와 같은 글을 쓴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만 감사하라고 한 것 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의 생활 자체가 감사의 생활 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격이 사무쳐 있었 고 따라서 그의 하루 하루의 생활, 한 달 한 달의 생활, 아니 일생의 생활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사도 바울은 감사 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 의 감사 생활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 습니까 우리는 보통 '모든 것이 다 평안하고, 환경이 좋아야 감사한 생 활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경우는 좋은 환 경이나 평안한 생활 때문에 감사한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1장 하반부를 보세 요. 거기에 보면 사도 바울의 일생 을 기록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를 몇 번 맞고, 감옥에 몇 번 들어 갔 고, 몇 번 파선을 당하고, 길의 위험 과 산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도시 의 위험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도 핍박을 받았고, 이방 사람에게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다 메섹에서도, 에베소에서도, 고린도에 서도 예루살렘에서도 핍박을 받았습 니다.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은 거의 핍 박과 환난과 곤고의 생활로 점철되 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감 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 을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의 몸이 건강하 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지 않 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병들고 몸이 괴로운데 무슨 감사를 할 수 있습니 까"라고 말합니다.
"사업이 잘 되 어서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되었으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 많은 손해를 보았는데 무슨 감사를 할 수 있습니 까"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몸이 건강해 서 혹은 사업이 잘 되어서 감사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 서 12장에 보면 자세히는 알 수 없 지만 그의 육체 가운데 찌르는 가시 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가 분명히 심한 고통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 히 기도했지만 그냥 두었다고 했습 니다. 그러니까 찌르는 가시를 그냥 가슴에 안고 지냈습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 한 내용 중에도 그가 병이 나서 다 른 곳에 가지 못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전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이 건강한 사람 은 아니었습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그가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 몸이 건강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 니다.
또한 우리 가정이 다 평안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 이 가정에 베푸신 축복입니다. 우리 가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 나님의 은혜가 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의 경우 는 이 가정에서 오는 기쁨도 없었습 니다. 바울은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 습니다. 종일 일하고도 평안히 들어 와 쉴만한 집 일정한 가정이 없이 평생을 살았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 리 둘 곳이 없다"
고 주님께서 말씀 하신 대로 바울은 일생동안 나그네 로서 이곳 저곳을 방랑하며 육신적 으로도 평안히 쉴 곳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가끔 전도집회 때문 에 지방이나 외국에 가면 평안한 숙 소를 마련해 주고 좋은 것으로 대접 을 해 줍니다. 그러나 내 집, 내 가 정만큼 평안하지는 못합니다. 여행 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평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일평생을 가정이 없이 살았으니 그 불편함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이 사도 바울의 감사한 생각과 생활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그것은 밖이 아니라 그 속에 있었습 니다. 그의 처한 환경이나, 그의 건 강이나, 그의 가정이나, 그의 재산이 나, 그의 명예나, 그의 지위나, 그의 성공이나 그런 데 있었던 것이 아닙 니다. 그의 감사생활은 그 속 깊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여기 서 말씀하는 대로 말할 수 없는 그 의 은사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 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말 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 니다.
아까 우리가 부른 찬송대로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합니다. 이구난설(以口難說)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이필난기 (以筆難記)입니다. 얼마나 크고 귀한 지 말로다 할 수 없는 큰 은사를 마 음속에 받았습니다.
그 은사가 무슨 은사였을까요
그 은사는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신앙은 말하자면 그의 삶의 뿌리요, 그의 감사는 거기서 자란 나무에 맺는 열 매였습니다.
로마서 7장을 읽어보면 사도 바 울의 그야말로 세기적인 고민이 기 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심각한 도덕적인 고민을 느꼈습니다. 그는 양심적인 인물이 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구약 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는 옳은 사 람이 되기를 힘썼습니다. 사람 앞에 서뿐만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도 부 끄러울 것이 없이 살아 꼭 옳은 사 람 되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의를 얻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구약은 우리에게
"네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의인이 되려고 하면 계명을 지켜 라. 율법 따라 살아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는 양심대로 계명을 지키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사 도 바울이 이와 같이 양심적으로 계 명을 지키기를 힘써도 자기 육체 속 에 다른 힘이 있어서 그대로 살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는 또한 죄의 세력이 있 었습니다. 육신을 기초로 하는 죄의 세력이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 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 에서 나를 구원하랴"고 긴 탄식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스도 의 십자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십 자가의 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새 생명의 복을 깨닫게 되고, 성령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망극하신 은혜를 받은 다음에 바울은 외쳤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다시 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인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 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죄에서 해방을 받았기 때문입 니다.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 습니다. 이 구속과 해방의 기쁨은 언제든지 그로 하여금 이 은혜를 감 사하여 보답하려는 감사의 생활로 변하게 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 은 그리스도를 만난 때부터 예수 그 리스도는 옛날 승천하신 그리스도만 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 나 자기 자신과 함께 계신 것을 깨 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육에 속한 자기는 죽었습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살 아 계신 것을 항상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서 변명할 때 내 친구들은 다 나를 떠났습니다. 한 사람도 나를 도와주 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께 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강한 힘을 주고 주께서 언제든지 나와 같이 계 셨습니다. "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그곳에 죄가 너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도할 기회가 너무 컸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유 대 사람들은 벌떼와 같이 일어납니다. 그때 주님께서 특별히 사도 바 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고 했습 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으니 입을 닫지 말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하라. "
살아 계신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사도 바 울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중해에서 큰 풍랑 을 만났었습니다. 사실 그 배에는 바울뿐만이 아니라 로마 군인들과 뱃사람 그리고 로마로 호송되어 가 는 많은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이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은 276명이나 되었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은 그 대로 있어서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 진 절망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 풍랑의 와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 중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 했습니다.
"여러분,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 밤에 내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말 씀하고 있는 한, 내 삶에 대한 하나 님의 인도가 계속되고 있는 한 풍랑 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 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여호와 하나님께 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 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풍랑 속에서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 지 발견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 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 의 이유와 자기들에게 주어진 사명 이 무엇임을 각성하고 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사 명을 알고 있습니까 왜 우리가 이 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 입니까 우리의 존재 이유를 아는 한 절망은 없습니다. 풍랑 속에서도 노래 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 으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풍랑 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 을 듣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풍랑 만나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 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안 심하십시오. 우리는 마침내 이 풍랑 을 극복할 것입니다. "
오늘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의 사명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MF의 거센 풍랑 때문에 절망 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부통계에 의하면 IMF체제 2년 동 안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해 졌다고 합니다. 20퍼센트는 전보다 오히려 나아졌는데 나머지 80퍼센트 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합니다. 국민 한 사람의 최 저 수입이 월 23만원인데 이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 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 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편에 서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 기 때문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 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 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풍랑 만나 어쩔 줄 몰라하며 두려워하는 제자 들에게 주님이 다가오십니다. 그리 고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 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 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하지 못하고 당황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은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그들이 조금 만 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그 리고 조금만 더 주님을 신뢰할 수 있었다면, 풍랑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풍랑 속에서 배의 갑판에 사람을 모으고 축사를 했습니다.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 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 서 여호와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먹기를 시작하매"(행 27:34-35).
상상해 보세요. 지금 큰 풍랑이 일고 있습니다. 배는 미친 듯이 흔 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의 벼랑 끝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 우성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들을 잠잠하게 한 자리에 모아놓고 떡을 떼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 를 올리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생각 해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
여러분, 우리는 풍랑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 습니까 하늘을 바라보시겠습니까 찬양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바울 처럼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 백할 수 있습니까
"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 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 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 라. "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 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께 감사 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4장 13절 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 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 씀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 그리스도만이 아 니었습니다. 현재에 자기와 같이 계 셔서 간단없이 능력을 주시는 그리 스도였습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 날 때도, 핍박을 받을 때도, 돌에 맞 을 때도, 파선을 당할 때도,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었습니다. 언제든 지 주님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을 당할 때 사 도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 는 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다 이와 같 은 믿음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십 자가로 죄에서 구속을 받으셨습니 까 우리가 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께서 우리와 같이 하시는 것을 아는 이 새로운 믿음, 참 믿음, 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도 순 경이나, 역경이나, 괴로울 때나 평안 할 때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감사로 충만한 생활 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되니까 자연히 그의 생활에는 많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우선 마음 속에 성령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사 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 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가는 곳마다 죽은 심령을 구원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습 니다. 가는 곳마다 주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게 되 니 자연히 마음속에서부터 감사함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주를 위해서 무슨 열매를 맺든지 열매를 맺는 사람일수록 감사한 마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서 한 사 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 다면 그 사람은 감사한 마음이 더 많습니다. 주를 위해서 다른 사람에 게 옷 한 벌이라도 줄 수 있고, 목 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줄 수 있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감사한 마음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많 지는 않지만 선교비를 매달 꼭 내 고, 착한 사마리아인 주일에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일에 손을 펼 수 있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더 기쁨이 있을 것이고 감사한 마음이 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사도바울은 항상 빛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우리를 위하여 지극히 크고 영 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서 내가 조금 환난을 당하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지만, 이 모든 것은 하늘나라의 큰 영광을 더하게 하는 것이니 얼마 나 감사합니까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언제나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 러니 감사한 마음이 자연히 북받쳐 올랐습니다.
사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 니다. 우리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마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모 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의 말처럼 고기가 많이 잡히면 그물에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점점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평안하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괴로우면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건강할 때는 감사해도 병 이 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이 나 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점점 자 라나면 평안할 때도 괴로울 때도, 건강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성공해 도 실패해도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는 우리 "믿음의 척도"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신앙 에 들어가게 될 때는 문자 그대로 성경말씀처럼 모든 일에, 범사에 감 사하게 됩니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는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만 모였 기 때문에 불평이라고는 없습니다. 불만도 없습니다. 하늘나라에는 기 도도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는 목사 의 설교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도 찬송과 감사만 있습니다.
이 세상 교회에서는 기도가 필요 합니다. 왜요 기도를 통해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 상 교회에서는 예배 드릴 때 목사의 설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늘 나 라에서는 예배할 때 찬송과 감사밖 에는 없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이 오직 찬송과 감사로 충만하다면 이 자리가 곧 하 늘나라의 그림자가 될 것입니다. 하 늘 나라의 축복을 미리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은혜를 받아서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환경 과 처지에서도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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