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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감사하는 자에게 행복이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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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새로운 해가 한 달 앞으로 다가 오고 마지막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용히 묵상하는 마음으로 지나온 한 해의 삶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른 들판과도 같았던 우리의 마음에 주님은 은혜의 단비를 부어주셨습니다. 늘 마음에 인간적인 불가능만 생각하며 계산에 빠르던 인생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고 기쁜 나날을 선사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은혜로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영육을 지켜주시어서 감사의 달 11월을 맞게 해주셨습니다.
언제는 세상 바람에 휩싸여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삶의 목표를 잃은 듯하였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믿음의 돛을 달아 주셔서 은혜의 바다에 이르도록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언제나 나의 뜻대로 살고자, 나의 합리적인 이성으로 살고자 하였던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주님의 자녀로 봐주시어 우리의 믿음 생활을 지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알지 못하던 인생에게, 교회는 바로 `주님의 몸'이라는 확신을 불어 일으켜 주셨고, `예수님'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인생에게 `예수님은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이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추수 감사절의 유래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였을 때에, 영국에서도 헨리 8세는 영국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 된다는 이른바 ‘수장령’(首長令)을 발하여 영국교회를 로마 교회와 관계를 끊게 하고 영국 민족 교회인 성공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국왕 제임스 1세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새로운 곳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처음엔 네덜란드로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만족스러운 자유를 누릴 수 없어 미국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준비를 위해 3년의 기간을 보내고 배를 구입하기 위해 런던의 버지니아 회사의 사원들이 되어 7년 동안 일하여 메이 플라워 호라는 배를 구입하였습니다. 청교도란 의미는 깨끗한 마음과 몸으로 양심의 자유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무리들이란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1620년 9월 16일에 180톤의 작은 배에 102명이 타고 117일간 항해한 끝에 12월 26일 푸리무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래를 날리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 180톤에 불과한 작은 배였지만 평균 시속 3, 5Km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했음을 감사했고, 둘째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하였으며, 셋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하였고, 넷째 큰 파도에 밀려 여자들이 바다에 빠진 사건이 두 번 있었으나 모두 구출됐음을 감사하였으며, 다섯째 신대륙 접근뒤 일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 못하다 한달 만에 플리머스에 안착하게 됨을 감사하였고, 여섯째 3개월 항해 중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들을 맞이해 준 것은 살을 에는 매서운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해 겨울을 지내는 동안 미 대륙의 혹독한 추위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이역의 풍토병, 인디언들의 습격, 야수의 공격들로 말미암아 일행 102명 중 약 반수인 44명이 생명을 잃고 겨우 58명만이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또 인디언에게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도 제대로 장례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박척한 땅을 개간하고 목재를 벌목하여서 교회를 먼저 짓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인디언과 화친을 맺으면서 옥수수를 심는 법을 배웠고 가지고 온 씨를 가지고 이듬해 가을 즉 1621년 10월에 거두어 들인 곡식을 바치며 감사제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축제를 벌였습니다. 인디언들이 초청된 이날에 총을 들고 새를 잡으려던 사냥꾼이 부근에서 칠면조를 잡게 되어 이 고기를 먹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칠면조 고기를 먹는 연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운동 경주를 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교회 절기로 지키는 감사 예배의 효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감사 드리는 태도는 관습이 되었으며 해마다 지켜졌습니다.
그렇다면 추수 감사절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의 축복이 임합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장 1절). 아브라함은 주어진 재물을 뒤로 하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갔습니다. 말씀을 좇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는 곳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광야요 험난한 대적들뿐이었습니다. 그가 살던 세상은 거짓을 일삼아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세상이었습니다. 이런 땅을 주님이 떠나라 하시자 그나마 정들던 땅을 떠났던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장 2절). 아브라함에게 감사하는 순종의 마음이 있었기에, 그의 삶은 축복의 삶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에게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만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이 세상의 신을 따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떠남의 삶'을 통하여 축복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자의 삶은 세상 욕망을 떠나고 자신의 육적인 세상을 끊어야 주님의 복이 임할 자리가 마련됩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복을 받을 준비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욥은 어처구니없게도 하루사이에 최악의 불행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는 ‘고난의 전형적인 인물'이습니다. 욥은 단지 사단의 시험 때문에 그 어려운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네가 잘못이 없었다면 주님이 이렇게 너를 벌하지 않으셨을 텐데'라고 말하며 윽박지르던 친구들을 향해서 욥은 주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더욱 확증할 수 있었습니다. 욥은 시험이 오면 금방 무너지고마는 연약한 인생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시험이 올 때, 자신의 참된 존재를 깨달았고 무릎 꿇어야 할 분에게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회개와 감사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감사 없는 회개가 없고 회개 없는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하나이다”(욥 42장 2절-6절). 욥은 죄된 삶을 살지 않았기에 `동방의 의인'이라 불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주님 앞에서는 죄인이었습니다. 욥은 바로 `신자의 삶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는 믿음생활의 진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과 더불어 자신을 고발하던 친구들을 위하여 주님께 빌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욥의 고난을 통하여 감사의 삶 자체를 보게 됩니다. 감사하는 자의 마음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장 44절).
2. 범사에 감사를 시인하는 사람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박해하다가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의 위해 여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복음 전하는 삶은 힘든 여정이었고 박해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전 5장 16절-18절). 바울의 믿음은 `만유 포괄적인 감사의 믿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지으신 만물이 선하듯이, 바울은 주님의 선한 피조물을 마음으로 흠뻑 받아들이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던 사도였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감사함에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데전 5장 18절의 말씀 중 주어인 `이는'은 바로 `범사에 감사하라'에만 연결되는 문장입니다. 즉 감사하는 생활을 사는 신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지름길은 감사하는 길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감사 생활은 `만유 포괄적인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어서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처럼 보이나,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변함없듯이, 우리의 감사하는 자세도 흔들거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만유 포괄적인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바다에서 은혜 한 방울 먹었다고 교만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수준있는 그리스도인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는 고백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 내가 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 삶이 변화되었도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은 다 정죄하나, 참된 신자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중보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 감사하는 생활은 우리의 찌들고 주름살 잡힌 마음을 펴주며 모든 불행을 극복할 힘을 선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쁨이 와도 감사, 슬픔이 와도 감사, 주님 때문에 욕을 먹는 수모를 겪어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고비를 겪을 때에도 주님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3. 주님께 감사하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자 밤이 늦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이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저으기 걱정이 되었습니다. 장정만 5000명이 모였으니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 14장 16절).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17절). 여기서 우리는 걱정과 계산에 앞섰던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계산해보니 2-3 사람 먹으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오병이어를 놓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시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족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만이 행하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연약한 사람들도 감사하는 생활을 살게 되면 이와 같은 이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감사에서 참 감사의 비결을 발견합니다. 우리 인생은 모든 외적인 조건이 나의 마음과 맞을 때에 감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내가 노력했기 때문에 나의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자녀가 풍성한 집은 자칫하면 자녀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한 자는 건강함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풍성한 자는 부요에 대한 감사를 갖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한 자는 자칫 이 행복을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이 가난의 감사를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이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고 따라가시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어려울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더니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에, 그의 말씀을 의지하고 감사하면 우리의 삶이 기적으로 풍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개역 성경역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통계를 내릴 수 있습니다. 감사란 말 177회(불평 4), 사랑이란 말 518(미움 23), 소망이란 말 97(낙망 혹은 절망 6), 부지런함 40(게으름 12). 어려움이 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성경의 메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세상의 많은 우상에서 방황할 뻔 하던 우리를 불러 주시어 주님의 일꾼으로 택해 주셨습니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신 이게게 그리고 나의 삶을 존재하게끔 하신 이에게 감사를 드립시다. 내게 어려운 상황이 있다 할지라도,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 분에게 우리의 온 감사를 전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욱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실 때에 여러분의 삶이 놀라운 일로 가득찬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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