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범사를 '감사'로 바꾸는 비결
본문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성경 안에는 '감사하라'는 말씀이 수 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감사생활'은 크리스천의 삶의 기본원리라는 말입니다.
시편 5:2절에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라고 하였고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 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민족이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명령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방법도 자세히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먼저 '입으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4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감사는 마음속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입을 열어 '감사합니다. '하고 적극적으로 표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감사"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 라고 한 다음 자신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내용을 남김없이 생각해 내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즉 무엇이 필요하니 무엇을 주세요 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감사의 방식은 '물질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15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길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사람은 입으로만 마음으로만 감사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로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아낌없이 주신 것을 생각해 보라. 지난주일 오후에 오신 강사님은 "여호와 하나님은 제일 비싼 것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셨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자연 만물을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거저 누리도록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그 여호와 하나님께 얼마나 인색하게 '계산'하면서 드려왔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싶으신 것은 과연 얼마를 드리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드리느냐"하는 점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내 몸을 주었다.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 내어 놓을 수 있느냐' 하십니다.
잠3:9~10"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고 하셨습니다.
다음 감사의 방식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으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시 50:14 " 감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하였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감사를 표현하도록 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감사 입으로 감사 기도로 감사 물질로 감사 예배로 감사가 되어 질 때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심령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높은 보좌위에 계시고 땅에서는 감사하는 심령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불만 가득한 마음은 사람이 거하는 마음입니다.
감사가 가득한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거긴 거하십니다.
감사 가득한 마음은 '좋은 밭(옥토)'입니다.
무슨 말씀이 떨어져도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편리한 것이 지금 너무나 많습니다.
산에 나무하러다니고 장작패서 땔감 마련하던 시절에서 연탄 때고 연탄보일러 도리는 세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감사했습니다.
연탄 때다가 깨끗한 기름보일러 쓰면서 감사했습니다.
기름 쓰다가 가스가 연결 되고나니 돈도 적게 들고 편리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더 바랄 것도 없는 만족과 감사로 살아가고 있는가. 땔감 구하러 다닐 때 생각하면 감사하여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은 불평과 불만이 더 많습니다.
결국 감사는 생활여건의 개선에 달린 문제가 아니고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불만은 육체의 본능 물질적 소유욕이 해결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만족은 잠깐이고 또 다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인간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은혜를 은혜인줄 알게 되는 순간'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한 장본인입니다.
그가 빌립 감옥에서도 감사하고 풍랑 속에서도 감사하고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베섹"을 잊지 않고 살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일이고 내가 해야만 할 일인 줄 알고 살다가 예수님 만나서 비로소 내가 아니던가. 이렇게 부르심을 입고 택정함을 입은 내가 무슨 원망을 하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다베섹만 생각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다베섹만 생각하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 나름대로의 원망을 감사로 바꾸며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원망 불평을 감사로 바꾸는 비결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내가 누구인가 영 망나니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지금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의 복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지금 무엇을 불평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신만의 감사로 가는 길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시편에서 다윗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회고하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읊은 찬송시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값싼 감사' '감상적인 감사'가 아니라 깊은 감사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체험적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하면서 다윗은 자기 영혼으로 그리고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지성"감성"의지'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깊은 감사에는 "죄악을 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을 살면서 원망 서운함 불평거리가 생겨도 즉시 '내가 누구인가 나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죄악을 용서받은 자가 아니던가'하면서 모든 것을 감사로 바꾸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죄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 이것이 감사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젯거리들의 근본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러한 죄악의 문제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자의 부요함은 축복이 아닙니다.
죄 문제로 양심의 고통이 있는 자가 경험하는 칭찬은 결코 칭찬으로 들릴 수가 없습니다.
죄 사함 받고나서 누리는 부, 건강, 명예, 칭찬이 비로소 진정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런 탄식을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그리고는 곧바로 25절에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탄식이후에 감사가 이어 집니다.
그는 자신을 만나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감사 할 줄 압니다.
다윗의 감사는 어디에서 출발합니까
마가복음 1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거기에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가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윗이 다윗의 아내에게서 다윗의 아들을 얻은 게 아닙니다. 남의 아내에게서 얻은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성경은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질 않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가 그대로 기술되고 있는 것은 다윗의 진실한 회개의 눈물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이 깨끗이 용서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윗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고 살아가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참 회개에 참 감사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 다윗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는 건강주심에 감사'였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요즘은 우리가 일 상중에 쉽게 접하는 먹을거리 가운데 속히 양을 줄이거나 멀리하거나 아예 입에 대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르고 그동안 먹고 살아왔는데도 아직 아무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이순간도 여기까지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건강 주셨음에 감사할 줄 아는 믿음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오래전 장로님 두 분과 중국 장춘선교지 방문을 하였을 때, 장춘에서 하얼빈 가는 도로중간에서 승합차가 몇 바퀴 길가로 굴러 몇 미터 웅덩이에 거꾸로 박힌 일이 생생합니다.
그때 거기서 살아 나와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로 지금도 매일 차타고 다니지만 그런 사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사히 차타고 다니면서는 감격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모르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것에 감사할 줄 아시길 바랍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기 소원을 만족케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의 형편을 아시고 벌써 좋은 것으로 예비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준비하시는 분이시고 내 계획보다도 앞서 계시고 내가 은혜를 모르고 살아도 여전히 은혜를 주시고 내 작은 수고보다 더 큰 것을 주시는 너무나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찬양하고 믿음 중 소망을 가질 때, 여호와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감사하라'는 말씀이 수 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감사생활'은 크리스천의 삶의 기본원리라는 말입니다.
시편 5:2절에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라고 하였고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 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민족이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명령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방법도 자세히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먼저 '입으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4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감사는 마음속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입을 열어 '감사합니다. '하고 적극적으로 표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감사"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 라고 한 다음 자신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내용을 남김없이 생각해 내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즉 무엇이 필요하니 무엇을 주세요 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감사의 방식은 '물질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15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길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사람은 입으로만 마음으로만 감사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로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아낌없이 주신 것을 생각해 보라. 지난주일 오후에 오신 강사님은 "여호와 하나님은 제일 비싼 것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셨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자연 만물을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거저 누리도록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그 여호와 하나님께 얼마나 인색하게 '계산'하면서 드려왔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보고 싶으신 것은 과연 얼마를 드리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드리느냐"하는 점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내 몸을 주었다.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 내어 놓을 수 있느냐' 하십니다.
잠3:9~10"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고 하셨습니다.
다음 감사의 방식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으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시 50:14 " 감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하였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감사를 표현하도록 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감사 입으로 감사 기도로 감사 물질로 감사 예배로 감사가 되어 질 때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심령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높은 보좌위에 계시고 땅에서는 감사하는 심령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불만 가득한 마음은 사람이 거하는 마음입니다.
감사가 가득한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거긴 거하십니다.
감사 가득한 마음은 '좋은 밭(옥토)'입니다.
무슨 말씀이 떨어져도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편리한 것이 지금 너무나 많습니다.
산에 나무하러다니고 장작패서 땔감 마련하던 시절에서 연탄 때고 연탄보일러 도리는 세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감사했습니다.
연탄 때다가 깨끗한 기름보일러 쓰면서 감사했습니다.
기름 쓰다가 가스가 연결 되고나니 돈도 적게 들고 편리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더 바랄 것도 없는 만족과 감사로 살아가고 있는가. 땔감 구하러 다닐 때 생각하면 감사하여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은 불평과 불만이 더 많습니다.
결국 감사는 생활여건의 개선에 달린 문제가 아니고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불만은 육체의 본능 물질적 소유욕이 해결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만족은 잠깐이고 또 다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인간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은혜를 은혜인줄 알게 되는 순간'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한 장본인입니다.
그가 빌립 감옥에서도 감사하고 풍랑 속에서도 감사하고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베섹"을 잊지 않고 살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일이고 내가 해야만 할 일인 줄 알고 살다가 예수님 만나서 비로소 내가 아니던가. 이렇게 부르심을 입고 택정함을 입은 내가 무슨 원망을 하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다베섹만 생각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다베섹만 생각하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 나름대로의 원망을 감사로 바꾸며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원망 불평을 감사로 바꾸는 비결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내가 누구인가 영 망나니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지금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의 복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지금 무엇을 불평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신만의 감사로 가는 길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시편에서 다윗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회고하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읊은 찬송시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값싼 감사' '감상적인 감사'가 아니라 깊은 감사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체험적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하면서 다윗은 자기 영혼으로 그리고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지성"감성"의지'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깊은 감사에는 "죄악을 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을 살면서 원망 서운함 불평거리가 생겨도 즉시 '내가 누구인가 나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죄악을 용서받은 자가 아니던가'하면서 모든 것을 감사로 바꾸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죄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 이것이 감사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젯거리들의 근본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러한 죄악의 문제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자의 부요함은 축복이 아닙니다.
죄 문제로 양심의 고통이 있는 자가 경험하는 칭찬은 결코 칭찬으로 들릴 수가 없습니다.
죄 사함 받고나서 누리는 부, 건강, 명예, 칭찬이 비로소 진정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런 탄식을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그리고는 곧바로 25절에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탄식이후에 감사가 이어 집니다.
그는 자신을 만나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감사 할 줄 압니다.
다윗의 감사는 어디에서 출발합니까
마가복음 1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거기에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가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윗이 다윗의 아내에게서 다윗의 아들을 얻은 게 아닙니다. 남의 아내에게서 얻은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성경은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질 않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가 그대로 기술되고 있는 것은 다윗의 진실한 회개의 눈물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이 깨끗이 용서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윗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고 살아가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참 회개에 참 감사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 다윗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는 건강주심에 감사'였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요즘은 우리가 일 상중에 쉽게 접하는 먹을거리 가운데 속히 양을 줄이거나 멀리하거나 아예 입에 대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르고 그동안 먹고 살아왔는데도 아직 아무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이순간도 여기까지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건강 주셨음에 감사할 줄 아는 믿음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오래전 장로님 두 분과 중국 장춘선교지 방문을 하였을 때, 장춘에서 하얼빈 가는 도로중간에서 승합차가 몇 바퀴 길가로 굴러 몇 미터 웅덩이에 거꾸로 박힌 일이 생생합니다.
그때 거기서 살아 나와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로 지금도 매일 차타고 다니지만 그런 사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사히 차타고 다니면서는 감격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모르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것에 감사할 줄 아시길 바랍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기 소원을 만족케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의 형편을 아시고 벌써 좋은 것으로 예비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준비하시는 분이시고 내 계획보다도 앞서 계시고 내가 은혜를 모르고 살아도 여전히 은혜를 주시고 내 작은 수고보다 더 큰 것을 주시는 너무나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찬양하고 믿음 중 소망을 가질 때, 여호와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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