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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함께 즐거워하는 추수감사절

본문

오늘 말씀은 다윗이 쓴 감사의 찬양 시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은 지휘자를 따라 성도들이 노래로 불렀던 시편입니다. 그 시편의 곡조가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편 136편을 쉬운 성경으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제가 앞 부분을 읽으면, 여러분은 뒷부분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고 한 목소리로 읽어 주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1절).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2절).
모든 주들의 주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3절).
홀로 위대한 기적들을 행하시는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4절).
자기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가게 하신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16절).
우리가 비천한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셨던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23절).
적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던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24절).
모든 피조물에게 음식을 주시는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25절).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26절).
시편 136편은 누가 지었는지 저자를 알 수 없지만, 그가 쓴 시편의 구절들이 우리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는 그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감사의 이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의 이유를 찾아 보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찬양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에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에 찬양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라는 유다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사왕의 아들로 25년 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많은 치적을 남깁니다. 그의 재임 중에 이스라엘과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 국토를 요새화 해서 나라를 견고하게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사의 본을 받아 다윗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성경학자들을 백성들에게 보내 성경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역대하 17:7-9)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치적 가운데 하나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삶의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연합군을 편성하여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소식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왔습니다. “‘이 군대가 아무리 크다 해도 너는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이다..... 너희는 이 전쟁에서 싸울 필요가 없다. 그저 너희의 장소에서 굳게 서 있기만 하여라. 그러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다. ” (역대하 20:17) 이런 응답을 받은 여호사밧은 백성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너희는 이 전쟁에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데 응답을 하면 좋을지 백성들과 의논을 한 결과 내일 전쟁에서 여호와께 노래할 사람들을 뽑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군대 앞에서 행진하면서 “여호와께 감사 드리자. 여호와의 사랑은 영원하시다(역대하 20:21)” 하고 찬양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된지 아십니까 “그들이 노래를 시작하며 주를 찬양하자, 여호와께서는 유다를 치러 온 암몬과 모압 사람을 공격할 복병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암몬과 모압 사람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그들은 또 자기들끼리 서로 죽였습니다. ” (역대하 20:22-23)
오늘 시편 65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쉬운 성경에는 이 말씀이 “오 여호와 하나님, 시온에서 우리가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전에 우리가 주께 드린 맹세를 지키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민족들이 주께 나아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 오리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특이한 말씀입니다.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찬송을 인격화 하고 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찬송은 예루살렘 성전에 거주하는 permanant resident입니다. 그런데 그 찬송은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나는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하고 맹세를 하면서 흔들어 깨울 때까지는 조용하게 성전에 거주하는 permanat resident입니다. 성경에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시편 57:8, 108:2)”라는 말씀이 있긴 합니다만 찬송을 깨운다는 말은 참 드문 말씀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찬송이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부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하고 잠자고 있는 찬송을 흔들어 깨워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소원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이 “찬송이 주를 기다립니다(Priase awaits you, O God, in Zion)” 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런 저런 이유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다윗도 그 이유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헤맬 때에 주는 우리 죄를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주께서 특별히 정하시고 주의 왕궁 안에 머물게 하신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에 있는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립니다(3-4절). ” 다른 어떤 감사의 이유와 조건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그 은혜는 큰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자녀의 특권을 누리면서 삽니다. 죄 가운데 빠져 헤맬 때라는 말은 N4 성경에 보면 “When we are overwhelmed by our sins”라고 했습니다.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제압 되었을 때”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잘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 주셨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독생자(요한복음 3:16)”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말씀을 들어도 이 말씀의 뜻을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찬송가 작가 Issac Watts는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런 제목의 찬송 시를 썼습니다. 이 찬송시의 영어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Alas! And Did My Saviour Bleed”입니다. alas라는 말이 슬픔과 아픔으로 통탄하는 감탄사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감탄사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 주신 그 은혜를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든지, 아니면 충격으로 한동안 깨어나지 못하든지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 해를 보내면서 감사할 일이 별로 없습니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리고 흔들릴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 이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 자신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감사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할 이유를 찾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주는 의로운 행동으로 우리에게 대답하십니다. 주는 땅 끝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시며, 먼 바다 끝에 사는 사람들의 소망이십니다(5절). ” 땅 끝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먼 바다 끝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단순히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조금 더 깊이 묵상해 보면, 땅 끝에 사는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말 그대로 갈 때까지 밀려 가다가 이제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더 밀려 갈 수 없는 땅 끝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다 끝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도 하나의 상징적인 시적(詩的) 표현입니다.
여러분, 찬송가 273장 “저 북방 얼음 산과” 이 찬송 아시지요 1절 가사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저 북방 얼음 산과 또 대양 산호 섬, 저 남방 모든 나라 수 많은 백성들 큰 죄악 범한 민족 다 구원 얻으려 참 빛을 받은 우리 곧 오라 부른다” 저 북방 얼음 산.... 거기에도 누군가 사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대양의 산호 섬..... 거기에도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 남방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는 찬송 아닙니까 이 찬송 부를 때마다 저는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어느 선교사가 와서 보여 주었던 슬라이드 장면들이 생각 납니다. 중앙아시아의 어느 종족을 소개하는 슬라이드였습니다. 어느 여자가 빨래 줄에 빨래를 널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옷은 해어질 대로 해어졌습니다. 그런 옷을 빨아서 널고 있는 그 여자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땅 끝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희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땅 끝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십니다. 이것이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감사의 이유입니다. 어쩌면 다윗은 이 시편을 쓰면서 그 자신이 경험했던 쓰라린 과거를 돌아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 자신이 쫓기고 쫓겨서 이스라엘 어디에도 숨을 수 없는 절망적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땅 끝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이 땅 끝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땅 끝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시는 분인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 끝의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의로운 행동”을 보십시오. N4 성경에 보니까 “의로운 행동”을 “awesome deeds of righteousness”라고 했습니다. 땅 끝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들은 awesome deeds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awesome deeds”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윗이 발견한 감사의 이유를 보십시오. “주께서는 땅을 가꾸시며 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땅을 기름지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강은 물이 넘쳐 곡식이 잘 자랍니다. 이처럼 주께서는 사람들을 풍족하게 채우십니다. 주께서 밭고랑마다 흡족한 물로 채워 주시고, 밭이랑마다 촉촉하게 적셔 주십니다. 비를 내려 주시어 밭을 부드럽게 하시고, 곡식들을 잘 여물게 하십니다. 한 해에 넉넉한 추수를 하게 하시고, 넘치는 곡식을 마차에 실어 주십니다(9-11절). ”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렇습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연을 돌보시고 축복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신다는 사인(signs)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반대로,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고, 깜부기 병이 돌아 곡식기 죽고, 우박이 떨어져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책망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해에 넉넉한 추수를 하게 하시고, 넘치는 곡식을 마차에 실어 주십니다” 이런 표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성품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면서 자기들을 너그럽게 대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올해는 어떻게 가을을 보냈는지 모르게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예년에는 사과도 따러 가고, 단풍 구경도 가고 했는데, 올해는 그럴 겨를도 없이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목사관에서 교회까지 한 10분 남짓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면서 아직도 가을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가을이 이미 지난 줄 알았는데, 여기 저기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고, 곱게 물든 나뭇잎들을 보면서 늦 가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을 아름답게 축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는구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연을 축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자신을 축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봅니다.
“주께서는 땅을 가꾸시며 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땅을 기름지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강은 물이 넘쳐 곡식이 잘 자랍니다. 이처럼 주께서는 사람들을 풍족하게 채우십니다. 주께서 밭고랑마다 흡족한 물로 채워 주시고, 밭이랑마다 촉촉하게 적셔 주십니다. 비를 내려 주시어 밭을 부드럽게 하시고, 곡식들을 잘 여물게 하십니다. 한 해에 넉넉한 추수를 하게 하시고, 넘치는 곡식을 마차에 실어 주십니다” 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오늘 우리를 그렇게 돌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야 합니다.
다윗은 이 시편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친 들판이 푸른 초장으로 옷을 갈아입었으며, 언덕들마다 기쁨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들판에는 양 떼가 가득하며 골짜기마다 곡식으로 덮여 있습니다. 기쁨의 노래가 온 하늘에 메아리 칩니다(12-13절). ” 거친 들판이 푸른 초장으로 옷을 갈아입는다고요. 언덕들의 기쁨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고요. 기쁨의 노래가 온 하늘에 메아리 친다고요. 거친 들판이, 언덕들이, 양 떼들이, 골짜기들이 기쁨의 노래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고요. 그들이 부르는 기쁨의 노래가 온 하늘에 메아리 친다고요.
다윗은 이렇게 그의 시편을 웅장한 대 자연의 교향악으로 마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뭔가 아쉬운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불러야 하는 기쁨의 노래, 우리가 그 기쁨의 노래를 불러서 온 하늘을 메아리 치게 해야 하는 그런 표현이 없는 것이 아쉽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름다운 시적인 용어를 산문으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푸른 초장으로 옷을 갈아 입어야 할 거친 들판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기쁨의 소리를 질러야 할 언덕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리고 기쁨의 노래를 불러서 온 하늘에 메아리 치게 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찬송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흔들어 깨울 때까지 잠을 자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의 찬송을 부를 때 그 찬송이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 집니다. 이 감사절에 감사의 이유를 발견하십시오. 먼저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를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땅 끝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삶을 가꾸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여러분이 부르는 감사의 찬양이 온 하늘에 기쁨의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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