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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함께 즐거워하는 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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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타크 영웅전에 보면 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임종시에 자기의 운명에 감사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에 대하여 특별히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남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야만인이나 짐승으로가 아니라 헬라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얼핏 보면 감사한 플라톤으로 여길지 몰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플라톤의 감사는 문제가 많습니다.
남자로 태어났음을 감사한다면 여자로 태어났다면 감사할 수 없겠다는 점, 헬라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면 다른 인종이나 민족으로 태어났다면 감사치 않았을 것이라는 점,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태어났음을 감사한다면 다른 시대에 살았다면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이란 점입니다. 그러므로 조건부 감사는 참된 감사가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물론 조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도 보면 잘못된 감사의 경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교만한 마음으로 하는 감사입니다.
감사란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주신 분에게 드리는 감정의 표현이며 도덕적 예의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자는 언제나 은혜를 입은 자의 위치에서 겸손의 손으로 존경하는 표시라야 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18장9절 이하에 보면 바리세인의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한 내용으로서,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그러면서 12절에 보면 자신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자신만만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둘째, 이웃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감사입니다.
형제와 이웃의 작은 은혜에 둔감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민감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드릴 감사를 외면하고 부모님에게 “고르반 되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을 예수님이 책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이나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는 위선이고 신앙적으로는 외식입니다.
 셋째, 인색한 마음의 감사입니다.
마음에 정한 감사의 양보다 적게 하는 것이 인색한 감사입니다. 이웃에게는 인색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나 여호와 하나님께 앞에 인색하다는 판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돕는 손길을 펼 때도 여호와 하나님은 아까운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사와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시리라”(신15:10)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갖고 인색함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억지로 하는 감사입니다.
감사한 마음은 없는데 감사하는 것으로 인색한 감사의 반대 개념의 소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고린도후서9:7말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여호와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감사는 주어진 환경과 사건에 대한 인격에 표현이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해야 하며, 이는 믿음의 실상을 보이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감사는 오직 즐거운 마음과 자원함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꽃이요, 열매가 되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시편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신학자 하비 콕스는 “현대인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감사와 기쁨의 마음은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갈수록 감사의 마음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풍성해야 삶이 풍성합니다. 그런데 삶은 풍요로워진다고 하는데 감사의 마음은 인색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의 절기를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에 지켜야 할 규례입니다. 그 내용인즉 가나안에 들어가서 식물을 심어서 거두었을 때 맏물, 즉 첫 번째로 얻은 열매는 광주리에 담아 제사장에게로 가지고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하면 제사장들은 그 소산물을 여호와의 단에게 올려놓고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레위인들과 나그네들과 함께 그것을 즐겁게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감사절의 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의의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속의 내용의 말씀의 절기가 교회사적으로는 어떤 유래를 거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유럽교회들은 추수감사절을 오래전부터 지켰는데 스위스 개력파 교회에서는 9월에 지켰고, 독일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 미사엘의 날이라 하여 9월29일이 지난 직후 주일날에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또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1621년 가을에 첫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는데 후에 링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을 연례적인 절기로 공포하였습니다. 1941년에는 미국 의회가 11월 넷째주 토요일을 감사절로 정하여 휴일로 공포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904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감사절을 정하여 지키기로 하고, 11월10일을 추수 감사절로 선정하여 장로교 단독으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1914년에는 각 교하의 선교부의 회의를 거쳐 11월 셋째 주일이 지난 직후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했으나 이날은 미국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에 근거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에 수요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여 매년 세 번째 주일을 추구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맏물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생명의 소유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항상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출34:22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고대 근동에서는 동, 식물의 첫 열매, 첫새끼, 그리고 한 가정의 맏아들은 신의 소유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려고 했을 때 바로가 듣지 않아 결국 10번째 재앙을 내렸는데 맨 마지막에 내린 재앙이 초태생을 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의 초태생에 대한 소유권이 애굽의 우상 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공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장자들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장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맏물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모든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동식물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셨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도록 해 주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가장 먼저 맺힌 열매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경우를 봅시다. 우리는 지금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대속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갖고 표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 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감사를 드림은 더욱 풍성함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맏물을 드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드리면 아깝고 이것을 아끼면 더 많은 수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크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맏물의 봉헌은 나머지 열매를 안전하고도 풍요한 수확을 하도록 해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잠언3:9-10절 말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런 의의를 가지고 있는 감사절 절기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첫째, 첫 번째는 감사의 절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로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드려야 합니다. 10 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우리가 감사의 헌물을 드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시편50편14-15절 말씀에 보면 “감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골로새서3장 16하반절에서 17절 말씀에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가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선행되어야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있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여호와 앞에서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런 후에 예배의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눔이 있는 감사절이 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11절 말씀을 봅시다.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우선 말씀을 생각할 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여기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이스라엘 공동체적으로나 그 땅에서 농사지은 모든 좋은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통해서, 짐승을 통해서 얻은 모든 것이 모든 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것을 가지고 추수할 때부터 이미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함께 나누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객과 고아와 과부’어려운 세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지칭한 구절은 성경전체에 열한 번 나오는 데 시편146편 외에는 10번 모두가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차지해서 살 때는 나누며 살아야 함을 강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 언급은 없고 ‘고아와 과부’ 두 부류만 언급한 구절도 20구절이나 됩니다. 고아와 과부만 언급한 곳은 출애굽기와 욥기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 등에 나옵니다. 신약에서는 야고보서 한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4장29절 말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6장14-15절 말씀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24장19-22절 말씀에는 밭의 작물을 추수할 때나 과일 나무의 과일을 거둘 때에 지켜야 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6장 오늘 본문 바로 뒤에 나오는 12-13절 말씀도 보면 3년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레위기23장22 절 말씀에도 보면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 부류를 억욱할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출애굽기22장21-22절 말씀에 보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4장17절 말씀에는 이 세 부류의 어려운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신명기 27장 19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약에 있는 말씀을 보면 야고보1장27절 말씀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경건한 삶을 이야기 할 때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 경건생활 중의 하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어려운 이웃의 대표적인 사람들인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최대한 보살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훑어보면 욕심을 내지 말고,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겁니다. 특히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더라도 가난한 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사는데 왜 당신들은 가난하게 사느냐'고 몰아 부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돌보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최대한 배려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그 최부자가 혹시라도 예수를 믿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적인 가훈삼아 내려오는 지침을 보면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이런 내용입니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이것은 인정을 베풀어 적을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한 것은 상부상조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감사절은 섬김과 나눔이 있는 축제여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감사절 축제를 제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서울 명성교회가 가장 잘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우리 교단지 기독공보에 보니까 지난 주 토요일과 주일에 걸쳐서 진행된 명성교회의 추수감사절 행사한 것이 소개되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교회 앞마당에서 27일 토요일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열린음악회형식으로 개그맨과 대중가요 가수 인순이, 현철씨, VOS 서인영 박기영, 배슬기 씨등과 국내최정상급 성악가 임정근 김요한 허미경 김수정 씨 등이 출연했습니다.
한우 13마리, 쌀55가마니로 8만명의 교우와 지역주민들에게 국밥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 농어촌에서 생산된 토산물 판매하는 장터를 마련하여 함께 어우러지도록 했고, 두 주간에 걸쳐서 헌혈, 장기기증 등 다양한 행사, 그리고 명성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강동구 지역 전체 경로당, 고아원 양로원 환경미화원등을 방문해서 함께 나누는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감사절 축제 행사가 되어 조상들을 섬기는 제사상 차리는데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감사절축제가 교회마다 시행해서 감사절의 절기의 의미를 바꾸어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감사의 절기의 의미를 찾아야 하며 감사절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말씀가운데서 찾아 진정한 감사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말씀으로 돌아가는 감사절이 되도록 합시다.
감사는 영혼의 보약입니다. 감사는 병든 자를 소생시킵니다.
감사는 가난한 자를 부하게 만들며 절망조차도 희망으로 바꾸어 줍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는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불평과 원망과 비난의 말들을 우리의 입술에서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의 영혼은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항상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시편50:23절 말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예배가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감사의 삶을 바르게 사는 자들에게 온전한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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