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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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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굶거나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 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추수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감사절이지만 우리는 한 해 한 해 돌아보면서 항상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실천을 다짐하며 감사의 삶을 살았는지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본문인 역대상 16장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온 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써 헌신과 감사를 나타내는 자가 누리는 기쁨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현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기 위해 다윗은 찬양대를 조직했다는 기록이 4-6절입니다. 7-36절까지가 다윗의 감사 찬양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그 날에”라고 하는 그 날은 바로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찬양대를 조직하여 제사를 드리고 찬양대가 찬양을 하던 그 날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감사의 삶을 살도록 강요했습니다.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감사를 하게 할 때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삽과 그의 형제들로 하여금 무엇을 감사하게 하였습니까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를 여호와 하나님의 전에 안치하신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모셔서 예루살렘에 준비한 장막에 모신 것에 대해 너무 감격하면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성전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법궤가 안치된 성막은 오늘의 예배당입니다. 예배당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는 항상 법궤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성도 여러분이 이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을 감사하십시오. 특히 금년에 등록하여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좋은 성도를 만나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찬양하고 감사하도록 했습니다.
8-9절에 보면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리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적과 기사란 출애굽 이전의 10가지 재앙을 통한 구원, 출애굽하여 홍해에 길을 낸 사건, 광야생활에서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사건, 반석에서 물을 낸 사건,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꾼 사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사건, 법궤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아온 이 모든 기사를 말합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본문에서 감사하며 찬양한다는 문자적 의미가 ‘기억을 되살리다’ ‘고백하다’입니다. 전에 베풀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고백하며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찬양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행하신 위대한 일들에 대하여 믿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날마다 고백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베푸신 모든 기사를 행하신 분에게 감사와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시고 나와 함께하시면서 베푸신 이적과 기사에 대해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이 민족을 단일로 지금까지 구성하여 오게 하시고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침략을 받았지만 패하지 않고 아직도 지탱시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근대사에서 일제시대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6. 25라는 동란을 겪었지만 그래도 절반이라도 복음의 역사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하신 은혜와 이 민족에게 120년전에 복음을 전해주시고 수많은 순교자를 내어 한반도를 복음화 시킬 수 있도록 인도하신 은혜와 단기간에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가져오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대형교회 50개중 23개가 한국에 있도록 해주신 여호와 하나님, 자본이 없고 6. 25동족상잔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를 오늘의 경제대국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세계 200여 국가 중에서 경제규모로는 12번째 교역국이 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핵개발로 인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한국을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며 독일처럼 반드시 통일시켜 주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때 구하기만 하고 힘든다는 한숨만 지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했을 때 오늘의 미국으로 만들어 주셨다면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작금의 남북의 관계를 보면 우려가 될만한 위험이 있지만 지금까지 이 민족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 하셔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때 이 나라는 든든히 서가게 될 줄 믿습니다.
불안할 때 오히려 찬송하고 감사하면 마음에 즐거움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10절 말씀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자랑하는 것은 드러내는 일입니다. 거룩한 여호와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그분의 존재와 권능과 주권을 시인하고 홀로 기뻐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분의 성호를 자랑함으로써 불신자들에게 그 이름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심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즐겁고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안되는 일도 안된다고 하면 더 안되고 힘든다고 하면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삶에 있어서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임하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바울이 바로 역경 중에도 감사하는 깊은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내도 없고, 자녀도 없고, 집 한 칸 없는 신세였지만 늘 감사에 넘친 생활을 했습니다. 심지어 빌립보에서 전도 하다가 점치는 귀신에게 붙잡혀 점치는 사람을 고쳐 주니까 그 사람의 주인격이 되는 사람이 점칠 수가 없어 돈을 못 벌게 되니까 관가에 고소까지 하여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감사와 기쁨에 넘쳐서 찬송을 했습니다. 여기서 옥문이 열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바울은 간수를 전도하게 되었고 풀려 나왔습니다. 역경 중에도 감사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여호와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성경학자 메튜헨리는 어느 날 골목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물건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조용히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물건을 빼앗겼어도 생명이 살았으니 감사 하고,
 둘째는 강도를 만날 사람이 될지언정 강도가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셋째는 이제 강도를 만나 보니 12년 동안 이 길을 지나다니는 동안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지 못했던 것
등을 깨닫고 감사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감사입니다.
당신에게도 난관에 부딪친 일이 있습니까 남을 원망하고 싶거나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만 보고 안타깝게 생각만 하지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신 분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감사의 기도를 말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느 자매 꽃망울 같은 꿈을 안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첫날부터 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보려고 해도 더 이상 살수가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와 대화를 하다가 사연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었던 동료가 조언을 했습니다.
‘이혼을 생각하지 말고 점심시간에 우리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교회 목사님이 무슨 일이나 감사를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사드린 대로 되게 하신다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편, 술주정뱅이인 것을 감사합니다. 그래도 남편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래도 돈벌어주니 감사합니다…. ” 그러고 집에 돌아가니 그렇게도 밉던 남편이 밉지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주일 아침에 교회를 가기위해 옷을 갈아 입는데 남편이 “당신 어디 가오” “몰라서 물어요”하고 쏘았습니다.
“글쎄 어디가느냐고” “어디는 어디요 교회가지요”
“나도 따라갈까” “이양반이 누구 약올려요”
“약올리긴 나도 가면 될까” “정말이세요”
“그래. ” 남편이 그날 교회 가서 통회 자복을 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불신 남편을 위해서도 원망섞인 투의 말로 간청만 할 것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감사를 찾아서 해보십시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셋째,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34-35절 말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우리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도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2:13절 말씀에도 보면 바울은 고백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진리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감사한 것은 영생입니다. 구원입니다. 이것은 내가 행한 행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주일날 한 성도님이 예배 후 목사님을 찾아가, “목사님 생일 선물입니다. ”하면서 포장된 조그마한 물건을 내어놓습니다. 목사님은 당황하며, “성도님 내 생일은 아직 멀었는데요. ” 하니까, 그 성도님은, “제 생일입니다. ” 하는 것입니다.
“아니, 성도님 생일이면, 제가 선물을 드려야지 어떻게 선물을 받습니까”
“목사님, 오늘이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은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동안 저에게 귀한 말씀으로 먹여 주시고 신앙을 자라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받아주십시오. ”
따라서 우리는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구원의 소식을 날마다 전파하여야 합니다. 역대상16:23절 말씀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내가 구원받은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장 감사한 고백을 하며 살 수 있도록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따라서 새생명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감사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미국 어느 기차간에서 백인과 흑인이 싸움을 벌였는데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한 목사가 그 칼을 막으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칼은 목사의 손에 꽂히고 피가 흘렀습니다. 흑인은 일생동안 그 목사님을 섬기게 되었는데 그 흑인은 종종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목사는 칼맞은 손을 보여 주었습니다. 흑인은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는데, 그 손은 바로 자기의 생명을 구원한 손 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罪)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엡1:7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서1:8절 말씀입니다. 나의 성숙한 믿음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적어도 목회자의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회의 걸림돌이 되거나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목사가 목회를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당신의 목회에 도움을 주시는 저분을 붙여주시고 목회를 잘할 수 있도록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는 대상이 되십시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면 편지를 쓸 때 감사함을 먼저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로마서6:17-18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자기가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된 자들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감사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로마서16:4에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따라 살면서 가장 소중한 일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가장 감사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보다 가장 감사한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것이요. 전도한 그분을 통하여 구원받은 것을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도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랑 안에 우리가 살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를 드림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 생명구원의 일에 우리 모두 헌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무슨 큰 일을 이룬 것만으로 감사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할 원인을 찾는 것이, 그의 삶을 꽃피게 해주고 기름지게 하며 풍성하게 해 줍니다. 아울러 이제 우리가 감사의 삶을 위해서는 감사의 조건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입에서 나오는 말부터 고쳐야 합니다. 우선은 감사의 말부터 해봅시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5:4말씀입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골로새서3:15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한 마디 하더라도 감사의 말을 합시다. 그것이 내 인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명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족은 감사를 낳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메마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큰일에만 감사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쌀 한 톨을 만들려면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뜻의 일미칠근(1米七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흘리고 또 전혀 아까워하지도 않는 쌀 한 톨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 쌀을 위해 땀흘린 수많은 손길들을 기억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행복은 감사 속에 있고 감사는 만족 속에 있으며, 만족의 나무에는 감사의 꽃이 피고 감사의 꽃에서 행복의 열매가 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감사하며 지내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리면 어떨까요
“주님, 저희로 감사에 예민한 사람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치 않고는 하 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
그러면 우리가 입술로만 감사하고 찬양하면 되는가
역대상16:28-29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반드시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제물을 들고 오셨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헌금이어야 합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라고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믿음으로 드리며 최선을 다한 것일 때를 말합니다.
절기 감사는 거룩해야 합니다. 일반 감사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좌정하시며 복을 주시는 예배당이 있음과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과 역사, 그리고 나를 구원하심과 나를 통하여 다른 생명들이 구원받게 하신 은혜 때문입니다. 이 감사가 평생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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