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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기독교인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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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추석은 민족의 가장 큰 명절로 시기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서늘하며 들녘엔 오곡백과가 넘실댑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은 고향이나 식구들을 찾아가 이날을 즐깁니다. 올해도 수천 만 명의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추석연휴가 주일을 끼고 있는 데다가 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직장이 많아서 벌써부터 고향을 향해 떠난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습니다.
예부터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하고 중추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추석은 유교에서 시작된 것인데 햅쌀로 송편을 빚고 새로 나온 과일과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곧 추석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날을 맞으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1. 이 날은 부모 형제와 친척들과 기쁨을 나누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추석이 되면 모든 이들은 고향을 찾고 싶어합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고향을 더 가고 싶은 것은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멀리 고향을 떠나 살면서 아무리 전화 한 통, 일자 편지조차 안 하던 불효 자식이라도 이 날이 되면 고향을 찾고 싶어합니다.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차마 가지 못하는 자라도 추석날 둥근 달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요일마다 KBS에서 ‘가족 찾기’ 방송을 하는데 혼자된 분들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날이라고 합니다. 남들은 다 선물이네 음식이네 싸 가지고 고향을 찾아가는 데 그들은 찾아갈 곳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즐거운 날이 아니라 고통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식구들이 있다는 것과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분들은 승용차로 4-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두고도 가지 못한 채 벌써 50년이 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문인지 그렇게 차가 밀려 한번 다녀오면 완전히 녹초가 됨에도 너나 없이 고향을 향해 떠나는가 봅니다.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가족과 친지, 친구 사이의 유대감입니다. 다소 무뚝뚝한 한국인들은 유대감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나 이런 명절을 핑계 삼아 선물을 주고받으며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앤드루 브램스톤이라는 외국인은 ‘한국에서 살아보니’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한국에 온 뒤 두 번째 맞는 추석이다. 추석은 2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내가 가장 즐겁게 보낸 명절이다. 내 고향 영국에도 추수감사절이 있으나 간소하게 보내는 것과 달리 한국인들은 사나흘 동안 연휴를 즐기며 고향을 찾는다. 고향 길에 가족과 친지에게 나눠줄 선물을 양손 가득 챙겨 가는 모습은 훈훈하기만 하다. 한국인들의 추석 나기를 보면서 나는 한국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흔히 우리 기독교가 불신자들에게 가장 나쁜 말을 듣는 것 중의 하나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 불효의 종교라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처럼 철저한 효도를 강조하며 가정의 화평을 강조하는 종교도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효도를 강조했는지, 10계명 중 제5계명, 그것도 인간에 대한 계명 중 첫째에 넣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아버지 요셉이 일찍 돌아가므로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 자매 다섯 등 거의 6-7명의 식구들 위해서 목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목수 일은 일 중에 가장 고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힘든 것인데, 17-18세부터 30세까지 가정만을 위해서 그 직에 종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도 최후순간까지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할 정도로 효도하신 분이십니다.
공생애의 사역은 3년이시라면 가정을 위해서 일하신 날들은 거의 12년 정도였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 등 신앙의 열조들도 모두 효성이 지극한 분들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효를 인간 윤리의 기본적인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안에서 효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그 영혼에게 예배하고 절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효도에 게을리 하는 교인들은 아주 잘못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효도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잘못된 효도의 모습은 살아 생전에는 별로 돌봐 드리지 않다가 돌아가신 후에 묘지를 크게 꾸미고 제사상을 크게 차리면 효자라는 칭찬을 들어왔습니다.
아주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죽은 자의 종교가 아니라 산 자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죽는 것을 ‘안식한다’ ‘잔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하면 몸은 죽어 썩어지나 그 영혼은 천국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부활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해 제사 지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들이여, 돌아가신 후에 울고불고 수백 만원 돈을 들여 산소를 꾸미고 뻑적찌근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지 마시고 살아 생전에 잘 해드리시고 용돈이 궁하지 않도록 해드리십시오. 제가 이런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어느 유교 집안에 많은 형제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이 믿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더니 제사를 지낼 때는 절을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대단히 화를 내면서 절하지 않으려면 제사 드리러 오지 말라고 야단쳤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핍박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과 며느리가 제삿날이면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다가 돌아가고는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느 아들이고 그 병든 아버지를 모시려고 하지 않으므로 셋째네 집에 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 부부가 지성으로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드는지 아버지가 감동을 받고 결국 “그 동안 내가 너희를 너무 오해했구나. 너희가 믿는 종교를 나도 믿고 싶다. ”면서 세례를 받게 되고 시골에 있던 논과 밭도 그 아들에게 대부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과 형제들, 친척들과 화목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이 날은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예로부터 추석날에는 이웃간에 깊은 정을 나누는 날이었습니다. 서로 송편이나 부침개를 만들어 이웃집이나 동네 어려운 노인이나 병든 집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집이라도 추석이면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6․25 사변 후라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나가서 학교 마당에 있는 펌푸물로 배를 채우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때라도 추석 때가 되면 집집이 다니면서 먹고 또 먹어서 나중에는 목구멍까지 음식이 차 올라 고생하기도 했었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만큼 인정이 많은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아마 백 배나 잘 살게 되었음에도 점점 인정이 메말라 추석날에도 옆집에 음식을 나누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번 대심방 때 아파트에 갔더니 어느 집사님이 옆집 분이 얼마나 쌀쌀한지 인사도 못하고 산다고 합니다. 아마 교회를 나가는 줄 알고 전도 못하게 하려는 심산인지 모르지요. 여하튼 점점 세상 인심이 각박해 갑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날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 불우한 이웃, 고독한 이들에게 떡 한 그릇, 과일 몇 알, 양말 한 켤레라도 나누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교육관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 있습니다. 나그네들된 그들에게 무엇인가 작은 음식, 작은 선물이라도 전해 준다면 얼마나 고마워할까요? 주님도 자기가 받으신 것처럼 기뻐하실 것입니다. 마25:35-36에서 보면 예수님은 심판날에 의인 편에 선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의인들이 의아해 하면서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라고 묻자,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빛입니다. 빛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 기독교인은 생명이 없는 기독교인과 같습니다.
금년도 「월간목회」10월호에는, 미국 캘리포니어주 오시언시티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일어난 감동적인 이야기가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들 17명이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등교했습니다. 이런 머리는 폭력 조직 회원들에게나 가끔 있는 일이어서 교사들이 매우 놀랐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그 학생들의 행동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같은 반에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머리가 빠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보기 싫은 머리를 벙거지 모자로 가리고 다녔습니다. 이에 17명의 학우들은 이 친구를 위해 다 함께 머리를 깎은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함께 나누자는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그 학생들이 기독교인지 모르나 너무나 기독교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느 교회 목사님의 말을 들어보니까. 자기 교회는 소위 대학 물을 먹었다는 자들, 좀 돈푼이나 있다는 사람들끼리만 따로 뭉치는 그룹이 있다고 합니다.
쩍하면 자기들끼리만 좋은 음식점이나 관광을 가기 때문에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교우들이 많은 상처를 받음으로 교회 안에 골칫거리라고 합니다. 이들의 행동은 너무나 비기독교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들은 주님 앞에 갈 때에 책망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이들이 똘똘 뭉쳐서 불우한 이웃기관들을 물질로 도와주고 봉사로 도와준다면 주님 앞에 갈 때에 얼마나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 후손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까?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번 추석명절을 맞아서 가난한 이웃,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불우한 기관들, 나그네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이 날은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일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날이 바로 추석날입니다. 알맞은 기후, 맑은 공기, 오곡이 무르익은 들판, 단풍으로 채색되어 가는 산야 등,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아름다운 자연과 숲, 맑은 공기와 풍부한 곡식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온 자연에게 “온 만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1)1-12절에 보면 여호와께 찬양할 자들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자들, 모든 군대들, 해와 달, 별들, 하늘 위에 있는 물들, 용과 바다, 불과 우박, 눈과 안개, 산과 과목, 백향목들, 짐승과 모든 가축들, 기는 것과 나는 새들, 특히 세상의 왕들과 백성들,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들, 청년들과 남녀노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온 만물들, 온 인간들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름다운 계절에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자연과 생물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찬양한다면 대 합창단, 대 교향악단이 될 것입니다. 아마, 어느 날 우리가 천국에 가보면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어서 그러한 놀라운 모습과 합창을 듣게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추석날 조상의 묘에 가서 예배 드리면서 오늘 본문을 읽어보시면서 온 만물이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모습을 상상하신다면 큰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2)13-마지막 절까지 보면 찬양할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찬양할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만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온 천지에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날에 가장 아름다운 찬양과 감사를 받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왜냐하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온 천지에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과 찬양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만물의 영장으로 가장 지혜가 뛰어나다는 인간들이 이 날에 조상에 묘지에 가서 제사 지내면서 “조상님들, 올해도 지켜주시고 풍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내내 우리 후손들을 지켜 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있고, 심지어 아무 힘도 없어서 태양 빛을 받아 비취는 보름달을 보고 복을 빌고 있으니 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심하게 모독하는 행위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멀쩡하게 살아 있고 지금까지 자녀들을 위해서 갖은 수고를 다했음에도 이번 추석에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른 사람이나 무슨 조각상 앞에게 가서 선물을 드리면서 “아버지 어머니 지금까지 키워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한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다시는 그런 놈을 보지 않을 것이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제1계명을 주시면서 “나 외에 다른 신께 절하지 말라”고 명하셨고, 제2계명에서는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여호와 하나님인즉 우상 숭배하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로 알아서 3-4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그 죗값을 갚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조상 묘에게 가서 절하고 복을 비는 것은 복을 받는 행위가 아니라 벌을 자초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조상 묘에 가서 절하는 것은 우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효의 발로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전10:20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대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불교나 유교에서는 음식을 차려 놓고 그 앞에서 경배를 하면 조상의 혼이 와서 그 정성을 받는 줄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미신적인 행위입니다.
사람은 한번 죽으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서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와 반대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음부로 가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묘 앞에 가서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할 때에 조상의 영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탈을 쓴 귀신이 와서 대신 경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제사행위는 조상을 오히려 귀신을 만드는 형국이 됨으로 큰 불효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우상 숭배하는 자의 마음에 귀신이 들어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저는 요즈음 연속극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밤8시 20분에 MBC에서 방영하는 “왕꽃 선녀님”이라는 드라마입니다. 무당의 딸로 태어나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에 남의 집에서 자란 초원이라는 처녀 아이가 어느 날부터 신기(神氣)가 나타나 자꾸 귀신의 장난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처녀에게 남자 귀신이 들어가니까, 그 곱던 목소리가 갑자가 우렁우렁한 남자 목소리로 변하고 노래도 남자 목소리가 나옵니다. 어느 날은 아이 귀신이 들어가자 아기처럼 천진난만하게 행동합니다. 금요일날인가, 이번에는 노인 귀신이 들어가니까 20대 초반의 처녀가 “아이구 삭신이 쑤신다. ”면서 허리를 꾸부리고 지팡이를 잡고 다니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귀신의 종류에 따라 몸뚱이는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노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 연속극을 보다 보면 어느 때는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은 지체요, 병기에 불과합니다. 누가 우리 영을 점령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붙잡으시면 성령의 도구, 성령의 지체가 되지만, 악령에 붙잡히면 우리는 악령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자가 됩니다.
왜 멀쩡하던 사람이 악한 일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저지릅니까? 왜 어떤 부부는 별 문제도 아닌데도 감정에 휘말리어 지독하게 싸우다가 이혼합니까? 왜 어느 사람은 죽을 일도 아닌데 아파트에서 떨어저 자살을 합니까? 순간적으로 악령에 사로잡힌 결과인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문제가 있는 교회 임시당회장이나 서울노회 재판국장을 맡으면서 시험에 든 교회의 앞장 선 교인들을 보았습니다. 다 눈이 정상이 아닙니다. 말로는 성경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마음은 전혀 성경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해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나 부부 싸움이나 심지어 교회 안에서의 다툼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악령의 역사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만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가 됨으로 성령에 붙잡힌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코 우상 숭배함으로 악령이 잡혀서 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 뿐 아니라 후손들까지 벌을 받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추석 명절날에 온 자연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날로 삼을 뿐 아니라 부모형제와 친척들과 화목의 교제를 나누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날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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