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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하늘 본향을 향한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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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원래 갈대아 우르에 살던 사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을 향해 나아갔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왜 살기 좋은 고대의 대표적인 도시 우르를 떠났을까? 그들 가족은 왜 도중 기착지요 살기 좋은 도시였던 하란을 떠나야만 했을까?
갈대아 우르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전쟁이 많이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에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곳을 찾아서 떠난 것일까? 그곳이 우상숭배와 음란한 문화로 타락되어 갔으므로 보다 윤리 도덕적으로 깨끗한 환경을 찾아 떠난 것일까? 아니면 고대 바벨론의 종교문서인 `길가메쉬 서사시' 같은데서 보여지는 인생의 덧없는 죽음과 허무를 깨닫고 영생을 찾아 출발한 것일까?
길가메쉬는 고대 우르의 영웅이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거인으로서 그를 상대할 자가 없었는데, 어느 날 숲속의 신들이 보낸 거인 엔키두가 나타나서 격투를 벌이는데 이 둘의 싸움은 도무지 승부가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는데, 숲속 신들의 질투로 엔키두가 죽임을 당한다. 길가메쉬는 친한 친구의 덧없는 죽음을 허무해 하면서 `불로초'를 구하러 먼 길을 떠난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먼 나라에 가서 깊은 바닷물 밑에 자라는 불로초를 구해오다가 피곤하여 어느 연못가에서 잠시 쉬며 몸을 씻고 있는데, 큰 뱀이 나타나서 길가메쉬가 구해 온 불로초를 먹고 사라져버린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아브라함의 가족이 거주지를 옮긴 이유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의 믿음이 여호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허무한 이 세상을 등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영원한 나라를 동경하며 나아갔던 것이다.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 섬머셋 모옴이 지은 `달과 6펜스'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한 주식 거래소의 직원이었고 아들 둘과 현숙하고 사교적인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아내에게 짧은 편지 하나를 남겨두고 멀리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자기 내면의 노스탤지어가 이끄는 대로 나아간 것이다. 이 소설은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이 문명과 도시를 떠나서 가난과 병과 고난으로 점철된 화가의 인생을 살았으나 마침내는 남태평양의 타이티 섬에서 자연과 원시적인 삶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어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것을 소설화 시킨 것이다.
섬머셋 모옴은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의 제목을 통하여 사람들이 추구하는 두 가지의 동그라미를 대비시킨다.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욕구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6펜스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꿈을 가지며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얻으려고 나아가는 사람이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 여호와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5-16).
옛날에 먼 나라를 향해 하늘 높이 공중을 날아가던 기러기 떼 중의 몇 마리가 피곤하여 민가 근처에 날아 앉았는데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주어먹으며 하루하루 지내다가 그만 비만이 되어 다시 날아오르지 못해서 집오리가 되었다 한다.
그리스도인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영적 순례를 포기하고 세상의 떡 부스러기와 고기 덩어리에 마음이 빼앗겨서 세속의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는 비둔한 오리가 될 위험성이 많이 있다. 우둔하고 비둔하여 더 이상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게 되고, 이따금씩 하늘에 기러기가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한때는 저렇게 날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지만 다시금 시궁창에 주둥이를 틀어박고 음식 찌꺼기를 찾고 있는 오리신세로 전락되고 있지 않은가?
사실상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날지 못하는 오리처럼 되어가고 있다. 우리 조상이 추구하며 순례하던 더 나은 하늘의 본향을 이제는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변종 교인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순례자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속한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장차 올 더 좋은 나라의 시민으로서 사랑의 마음과 고상한 윤리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죽을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처럼 우리도 함께 하늘 본향을 향해 순례하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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