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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본문

오늘도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각가지 은혜와 은사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최대 민속 명절인 추석(秋夕)입니다.
옛 말에 중추가절(仲秋佳節)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추석 명절이 가장 좋은 절기(節氣)라는 뜻입니다. 추석 명절은 우리나라의 민속 명절로서 참으로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먹을 것이 풍성하며 인심 또한 풍성한 계절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말도 있습니다. 금년에는 6월 달에 윤달이 들어서 계절이 조금 늦습니다. 그래서 올 추석에는 모든 햇곡식들을 풍성하게 먹을 수가 있고 햇과실들이 풍성한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절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향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 광야에 왔을 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출18:1-12) 그 후에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노쇠한 상태로써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자기의 고향 미디안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모세의 장인은 자기의 아들 호밥을 모세와 함께 있도록 하여 모세에게 힘이 되어 주도록 했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처남이 되는 호밥은 광야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모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갈 때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이를 좋게 여겨 약속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모세의 처남 호밥은 모세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모세가 아무리 좋은 조건의 약속을 하여도 막무가내로 말하기를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고 합니다. 모세는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본문 31-32절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라고 하였지만 호밥은 결국 자기의 친족들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에 기록된 말씀대로 “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는 말씀을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고향이 무엇이기에 이와 같이 가려고 합니까?

1. 고향에 대한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고향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다만 그 고향에 대한 이미지(Image)와 그 느낌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고향을 동경하고 또 고향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가들이 고향을 예찬하였고 또 많은 가수들이 고향을 노래하였습니다.

(2) 우리들에게는 여러 곳의 고향이 있습니다.
① 나를 낳아서 길러 주신 육신의 고향인 어머니가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야말로 진정한 우리들의 고향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모두 다 용서하시고 따뜻하게 품어 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② 마음의 고향은 내가 자라난 곳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고향이 화려하든 초라하든 자기가 어릴 때 자란 곳은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강원도 남대천에서 부화된 연어들은 태평양 드넓은 바다에서 몇 년이고 살다가 죽을 때는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고향 남대천을 찾아와 산란을 하고 죽습니다.

③ 믿음의 고향은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고향은 바로 교회입니다.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저 예배당의 찬송가 스피커 소리만 들어도 달려가던 그 북실 예배당이 바로 믿음의 고향입니다. 그 믿음의 고향 교회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④ 영혼의 고향은 하늘나라입니다.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궁극적인 고향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예비해 주신 그곳을 사모해야 합니다.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 고향이란 무엇인가?
(1) 고향은 마치 모태와 같은 곳입니다.
고향은 마치 어머니의 모태와도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합니다. 모든 동물들은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굴에 와서 죽는 다는 말도 있고 비둘기는 수백 km를 가서 풀어놓아도 자기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철새들은 수천 km를 날아서 정확히 자기가 살던 곳을 찾아갑니다. 또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가 팔려 갔다가 700리 길을 달려서 옛 주인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 사건도 있습니다.

(2) 고향은 소중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고향이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고향의 환경과 전통이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3) 고향은 타향에 간 사람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데는 몇 가지 필수적인 환경과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① 우선은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서 지극한 정성과 극진한 사랑으로 사람 되게 길러 내는 분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② 다음으로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을 시켜서 건전한 국민으로 성장되게 하는 것이 바로 국가요 나라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있고 나라가 있다고 해서 모두는 아닙니다.
③ 또 하나, 고향이 있어야 합니다.
고향은 졸졸대며 흐르는 시냇물이나 바람에 나부끼는 뒷동산의 풀 한 포기, 그리고 팔베개하고 드러눕던 양지바른 언덕과, 친구들과 뛰놀던 보리밭, 그리고 정다운 이웃 사람들, 이런 것들이 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자기를 성숙시켜 준 나라에는 충성을 하면서, 자기를 만들어 준 고향에 대해서는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4) 고향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창세기 33장의 말씀을 보면 야곱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의 집으로 피난을 가서 살아 온지가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야곱은 이제 고향을 찾아옵니다. 야곱은 대 가족을 거느렸습니다. 재산의 상징인 수많은 오마 육축(5馬六畜)을 거느렸습니다. 한 말로 말해서 금의환향 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형 에서는 여전히 동생 야곱에 대한 증오가 변함이 없고 어떻게든지 복수하겠다는 복수심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워 기도함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에 새 힘을 얻고 형을 만났을 때에,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던 에서도 어느 순간에 그의 증오심이 사랑의 마음으로 변하였습니다. 불타던 복수심은 사랑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20년 전의 해묵은 미움과 증오에 대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고향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3. 성경에는 고향을 찾아간 사람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1)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가나안을 찾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조상 야곱이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7년 대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이제는 모세를 영도자로 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 만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고향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습니다.

(2) 야곱은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 이삭까지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창30:25-26)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 나오미와 룻이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기근을 피하여 그의 남편 엘리멜렉과 아들 말룐과 기룐과 함께 이웃나라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자부를 얻고 잘 살아보려고 하였으나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온역으로 죽고 뒤를 이어서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할 수 없어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금의환향이 아니고 실패하고 망하여서 돌아온 나오미를 고향 사람들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고향을 버리고 혼자만이 잘살아 보겠다고 모압으로 갔다가 망해서 거지가 되어 돌아왔다고 조롱이나 멸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동행한 룻은 날마다 들에 나가서 이삭을 주어다가 시모 공경을 극진히 하여 축복을 받은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사실입니다.

(4)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고향을 찾아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지 어언 70년이 지났습니다. 7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그들은 다시 고향 예루살렘을 향하여 돌아옵니다. 돌아오면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시126:1-6)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눅15:11절 이하의 말씀에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허랑 방탕하여 다 없이 한 후에 그 나라에 흉년이 들고 먹을 것이 없어 죽기 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는 과거의 모든 허물과 죄는 모두 불문에 붙이고 그 아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4. 오늘의 우리들은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1) 오늘의 성도가 찾아갈 고향은 어디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상이 결코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비단 그리스도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불신자들도 자신들의 생명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이 언제 종말이 올 것인가에 대하여는 아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는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와 같은 세상이요(벧전2:11)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세상(약4:14)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영생의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 영생의 세계에 갈 준비를 하는 단계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요14: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다 하늘나라의 고향을 찾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 공명, 영화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고향에 집착하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는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상상도 못할 하늘나라의 축제가 있을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들에게는 더 좋은 고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계22:1-5)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여호와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도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에서는 3천만 명이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가용차로 가고, 어떤 사람은 고속버스로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기차로 가고, 또 어떤 사람은 비행기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가 찾아가야 할 진정한 고향은 이 땅에 있는 고향이 아닙니다. 자동차 타고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빌3:20) 믿고 날마다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천성을 향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합니다.
절대로 낙심하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좌절하지도 말고, 우리의 영원한 고향, 우리 주님이 예비해 주신 천국을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전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시장 거리에서는 명절 준비를 하느라고 바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고 싶어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북에다 고향을 둔 실향민입니다. 그래도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찾아뵈올 수 있는 부모님이 게신 분도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살아생전에 극진한 효성으로 효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명절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들뜨고 흥청망청 할 때 우리들의 생활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설에서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찾아오는 이 없이 쓸쓸하게 이 명절을 지내는 사람도 있고 또한 소년 소녀 가장들도 기억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나눔을 함께 할 수 있는 이 명절이 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명절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25:34-36)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절 말씀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절 말씀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추석을 가족들과 함께 한자리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기쁨의 만남이 있는 귀한 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리는 북실 교회 온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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