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추수감사절엔 사상최대의 감사를
본문
지난 10월 19일 충북 충주시 추평리에 있는 추평교회의 담임목사인 전생수 목사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52세의 나이로 늘 해오던 대로 교회 강단에서 철야기도를 하던 중에 뇌중풍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원주기독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가 남긴 한 장의 유서 때문이었습니다. 20여년 동안 작은 농촌의 교회를 지켜오면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청빈하게 살아온 그는 평소에도 교인들에게 항상 죽음에 대비하여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자신 약속대로 그의 각막, 신장, 간 등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이식되어 7사람에게 새생명의 빛을 선물로 주고 나머지 시신은 화장되어 고향인 강원 인제군의 산과 들판에 뿌려졌습니다.
지난 해 2004년 2월 25일 사순절 첫날에 작성한 그의 유서가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아무개라는 이름을 달고 산 지 쉰 한 해 되는 봄.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에 유서를 쓰노라. 나는 스물 셋 되던 해에 예수의 도에 입문하여 늦은 나이에 학문을 접하며 좋은 스승들을 만났고 좋은 길벗들을 만나 여기까지 살게 된 것에 감사하노라.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사람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고 사람들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며, 세상의 마음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노라. 이에 남은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노니,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넷째,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 (푯말이나 비석 따위조차도) 와서 산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목회자로 살면서 목회를 위한 목회, 교회를 위한 목회를 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목회를 하였으니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확신하노라.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 봄 2004년 2월 25일 사순절 첫 날에
虛耳(만득이) 전생수 씀.
남은 가족과 교인들은 전 목사님의 유지를 받들어 이 같은 일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고 있으나 지금 교계 내에서와 사회 일각에서 그를 추모하고 유족을 도우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1.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절기가 다가왔습니다. 바로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독교의 감사 절기 가운데 가장 큰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사절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는 사람은 그래도 한 해 동안 무언가 감사할 이유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일 것이고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은 감사할 내용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사할 일이 아예 없는데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것 얼마나 부담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감사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다 감사하며 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좀 훌륭한 삶을 살았다 하는 사람들의 가르침 안에도 이 감사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이런 감사의 내용과는 다르다고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감사는 베풀어준 호의에 대한 응답을 말합니다. '나한테 이렇게 해 주셨으니..... 내게 이런 저런 것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겁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감사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의 감사는 어떤 대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이런 감사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때였습니다. 다니엘을 비롯하여 그의 세 친구들도 함께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높이가 60규빗(27미터)되는 큰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엎드려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꼿꼿이 서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그들이 쉽사리 신상에다 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불러 회유했습니다. “좋다. 지금까지의 일은 내가 모른체 해 주겠다.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베푼 것이 얼마냐 왕궁에서 호의호식 하게 해주지 않았느냐 그 은혜를 안다면 이제라도 절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다. 너희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 ”
추상같은 명령입니다. 왕으로서 권위와 위엄을 갖춘 최후통첩입니다. 그 어느 누가 이 명령을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명령을 정면에서 거절하였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 16절 말씀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 이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모습니다. 이것은 목슴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자기들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입니까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17절에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이 바로 자신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다고 왕이 우리를 풀무불에 넣어 화형시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정말로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풀무불 속으로 던져진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곧 건져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정도는 그래도 성도들 가운데 가진 분들도 적지는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의 간증스토리입니다.
서울 무교동 거리에서 토스트를 파는 노점상 김석봉 집사님 연수입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입니다. 자기 이름을 딴 ‘석봉토스트’ 체인만 100개가 넘으며, 일본 여행가이드북엔 ‘무교동 명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의 성공 신화 뒤에는 어둡고 고단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전북 정읍에서 날품팔이하던 부모 아래 6남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4살 때 공장을 다니며 하루 세 끼를 고추장을 풀어 삶은 국수만 먹었습니다. 그 이후 정비공장과 세차장, 합판공장, 컨테이너 공장 등을 전전했고, 과일 행상도 했습니다.
정말로 안 해본 것보다 해 본 것이 더 많을 정도로 많은 직업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방황’ 끝에 얻은 깨달음은 “배워야 산다”였습니다. 신앙을 갖고 있던 그가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야간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처녀와 결혼도 했지만, 가난은 좀처럼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1997년 시작한 것이 토스트 장사. 230만원을 주고 산 중고 스낵카가 유일한 사업 밑천이었습니다. 집 근처 녹번역 등을 3개월간 전전하다 큰맘을 먹고 무교동으로 진출했다.
그는 서울의 한복판인 만큼 고급화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우선 세련된 유니폼을 차려 입고 화장지도 최고급을 내놓았다. 달걀도 비싼 영양란으로 바꾸고 조미료와 설탕은 넣지 않았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겨냥해 메뉴판을 영어, 중국어, 일어 등 4개 국어로 만들었습니다. 토스트 가격은 9년째 동결하였지만 그래도 한 달 순수입이 800만원을 웃돌 만큼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그에게 3년 전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병원에서 위의 3분의 2를 잘라냈습니다. 위암의 고통을 기도의 힘으로 딛고 선 그는‘체인점 사업’이라는 새 모험에 나섰습니다. 전국적으로 체인점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수없이 쇄도하였습니다. 그는 단 한번의 보증금이나 로열티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주말이면 체인점 사람들과 함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토스트를 구워줍니다. 복지시설과 고아원에 매달 약간의 돈과 달걀을 전달하는 일도 거르지 않습니다.
그의 가족은 아직 5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삽니다. 방이 3개지만 한 개를 창고 겸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들 넷을 포함한 여섯 식구가 살기엔 비좁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냥 행복합니다. 3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살아있어 '기뻐’, 일이 많아 ‘바뻐’, 하나밖에 없는 나는 ‘예뻐’”라는 ‘3뻐의 감사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자신의 불우한 삶을 원망 불평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실한 믿음, 그리고 그렇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리라는 확신, 이것이 이 집사님으로 하여금 성공할 수 있도록 인도한 비결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삶과 감사는 어느 정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이런 수준의 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다니엘의 세친구의 믿음은 이런 수준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18절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 건져주시리라 우리는 확신합니다만 만의 하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해도 우리는 왕이 만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고백을 다른 성경에서도 들어보았습니다. 하박국입니다. 장과 절도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이 단 3:16-18입니다. 그 유명한 하박국의 감사기도도 합3장이고 또 16-18에 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의 고백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풀무불과도 같은 고난에서 어려움에서 건져주시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소유가 없을지라도 일이 잘 안되고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실감이 잘 안나시는 모양인데 요즘 버전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쌀독에는 쌀이 떨어지고, 가스와 전기도 끊겼습니다. 공과금은 몇 달 연체중이고 회사는 부도가 났습니다. 사방에서 빚쟁이들은 밤낮으로 빚을 재촉합니다. 아이들의 학교 성적은 꼴등이고 몸도 아픕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뭔가 소망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방이 꽉꽉 막혔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원망 불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런 믿음 지닐 수 있으십니까 이런 감사 생활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런 감사를 저는 사상최대의 감사라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사상최대의 감사.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런 감사의 고백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한 번 지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사상최대의 감사가 필요한 이유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왜 이런 어려운 가운데 우리에게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우리 입술로는 얼마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복주심에 대해 인정합니다. 감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래도 무언가 내게 유익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할 내용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감사할 꺼리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남는 게 없습니다. 나는 모든 게 잘 안도고 안 풀리는 데 남들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과연 감사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세밀하게 살피십니다. '네가 이런 경우에도 내게 불평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느냐' 시험해 보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경우, 우리가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수할 것이 없게도 하십니다. 갑자기 우리를 약하게도 하십니다.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도 하십니다. 그래도 배신하지 않고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로버트 설베트 목사님은 1922년에 소아마비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단지 며칠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하였지만 그는 36세까지 살았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다리가 꼬여 있기 때문에 걸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식물인간으로 살 게 될 것이라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설베트 목사님은 이런 내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의사들은 내가 다리가 꼬여서 걸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식물인간처럼 살 게 될 것이라 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내가 꼭 걸어야 한다는 믿음과 그렇게 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나의 신체를 운동시키셨다. 나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겨우 18개월 된 아이처럼 몸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덟 살 때 나를 학교에 입학시키셨고 수많은 조롱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굳세게 견디어 주셨다. 나는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자주 좌절과 고통 속에 빠지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방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비춰보며 매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속에서 뚜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슬퍼하지 말라!' 너무도 놀라운 말씀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말씀을 받아드리고 그 이후로는 나의 신체에 대하여 좌절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넘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드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40명이 경쟁하는 웅변대회에서 당당히 2등을 하였고 학급 내에서 10%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그는 대학에 입학하였고 그 후 양쪽 집안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뇌성마비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결혼 후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조롱 속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우드이스턴 성서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인도 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지역의 여러 신문들과 교단지에 신앙의 글을 썼고 버밍햄교회에 담임목사로 안수를 받아 시무하였고 버밍햄 장로회 의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은 3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고매한 성품과 절망을 모르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본 버밍햄시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그의 삶은 오늘도 수많은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로버트 설베트 목사님이 절망과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깨달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바로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항변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셨다는데 어느 누가 감히 이유를 달 수있겠습니까 결국 목사님은 이 깨달음으로 인해 승리의 삶을 살 수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약해도 가난해도 못나고 부족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그냥 단순하게 늘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기뻐할 일이 전혀 없는데도 기뻐하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감사는 커녕 죽지못해 살아가는 인생일지라도 불평과 원망없이는 살 수 없는 환경일지라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집니다. 도저히 기도할 수 없는 처지임에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내용이 없어서 못하든지, 게을러서 못하든지, 믿음이 없어 못하든지 사탄의 방해로 못하든지 절대로 기도를 할 수 없는 환경일지라도 이기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다니엘이 세 친구와도 같이 하박국과도 같은 감사의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는 자동차를 탄 것이요 불평은 흔들의자에 앉은 것과 같다' 이런 뜻입니다. 몸이 흔들리는 것은 자동차나 흔들의자나 매 한가지인데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흔들의자는 계속 그 자리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신앙이 자랍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은 맨날 그 자리입니다. 영적으로는 퇴보를 합니다. 불평은 우리의 환경을 지옥으로 만들지만 감사는 천국으로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평범한 것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어떤 것도 당연히 주어진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고 선물입니다. 병이 들었다가 나으면 감사한 줄 알지만, 항상 건강하면 감사할 줄 모릅니다. 암병을 치료해 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병에 걸리지 않게 하신 것은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게 하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것보다 평범한 삶이 더 큰 은혜임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따라서 없어도 감사합시다. 병이 들어도 감사합시다. 시험에 떨어져도 감사합시다. 기도응답이 더뎌도 감사합시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박국이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감사의 조건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큰 고난 가운데서도 욥은 말했습니다.
욥1:21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라”
다음 주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엔 색다른 감사를 한 번 하시기 바랍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려 하지 말고 주시지 않은 것에 감사해 봅시다.
성공한 것에 감사치 말고 실패한 것으로 감사해 봅시다. 강하게 해 주신 것에 감사치 말고 약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 봅시다. 기도 응답에 감사치 말고 아직 응답해 주지 않으신 것에 감사해 봅시다. 장미꽃을 주신 것보다 장미 꽃 가시를 주신 것에 감사해 봅시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부러 이렇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평강과 안식을 누리고 계신 전 목사님의 감사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엔 여러분의 감사가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상최대의 감사가 되길 축원합니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가 남긴 한 장의 유서 때문이었습니다. 20여년 동안 작은 농촌의 교회를 지켜오면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청빈하게 살아온 그는 평소에도 교인들에게 항상 죽음에 대비하여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자신 약속대로 그의 각막, 신장, 간 등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이식되어 7사람에게 새생명의 빛을 선물로 주고 나머지 시신은 화장되어 고향인 강원 인제군의 산과 들판에 뿌려졌습니다.
지난 해 2004년 2월 25일 사순절 첫날에 작성한 그의 유서가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아무개라는 이름을 달고 산 지 쉰 한 해 되는 봄.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에 유서를 쓰노라. 나는 스물 셋 되던 해에 예수의 도에 입문하여 늦은 나이에 학문을 접하며 좋은 스승들을 만났고 좋은 길벗들을 만나 여기까지 살게 된 것에 감사하노라.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사람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고 사람들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며, 세상의 마음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노라. 이에 남은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노니,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넷째,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 (푯말이나 비석 따위조차도) 와서 산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목회자로 살면서 목회를 위한 목회, 교회를 위한 목회를 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목회를 하였으니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확신하노라.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 봄 2004년 2월 25일 사순절 첫 날에
虛耳(만득이) 전생수 씀.
남은 가족과 교인들은 전 목사님의 유지를 받들어 이 같은 일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고 있으나 지금 교계 내에서와 사회 일각에서 그를 추모하고 유족을 도우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1.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절기가 다가왔습니다. 바로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독교의 감사 절기 가운데 가장 큰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사절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는 사람은 그래도 한 해 동안 무언가 감사할 이유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일 것이고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은 감사할 내용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사할 일이 아예 없는데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것 얼마나 부담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감사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다 감사하며 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좀 훌륭한 삶을 살았다 하는 사람들의 가르침 안에도 이 감사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이런 감사의 내용과는 다르다고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감사는 베풀어준 호의에 대한 응답을 말합니다. '나한테 이렇게 해 주셨으니..... 내게 이런 저런 것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겁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감사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의 감사는 어떤 대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이런 감사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때였습니다. 다니엘을 비롯하여 그의 세 친구들도 함께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높이가 60규빗(27미터)되는 큰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엎드려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꼿꼿이 서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그들이 쉽사리 신상에다 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불러 회유했습니다. “좋다. 지금까지의 일은 내가 모른체 해 주겠다.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베푼 것이 얼마냐 왕궁에서 호의호식 하게 해주지 않았느냐 그 은혜를 안다면 이제라도 절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다. 너희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 ”
추상같은 명령입니다. 왕으로서 권위와 위엄을 갖춘 최후통첩입니다. 그 어느 누가 이 명령을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명령을 정면에서 거절하였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 16절 말씀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 이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모습니다. 이것은 목슴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자기들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입니까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17절에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이 바로 자신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다고 왕이 우리를 풀무불에 넣어 화형시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정말로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풀무불 속으로 던져진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곧 건져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정도는 그래도 성도들 가운데 가진 분들도 적지는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의 간증스토리입니다.
서울 무교동 거리에서 토스트를 파는 노점상 김석봉 집사님 연수입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입니다. 자기 이름을 딴 ‘석봉토스트’ 체인만 100개가 넘으며, 일본 여행가이드북엔 ‘무교동 명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의 성공 신화 뒤에는 어둡고 고단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전북 정읍에서 날품팔이하던 부모 아래 6남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4살 때 공장을 다니며 하루 세 끼를 고추장을 풀어 삶은 국수만 먹었습니다. 그 이후 정비공장과 세차장, 합판공장, 컨테이너 공장 등을 전전했고, 과일 행상도 했습니다.
정말로 안 해본 것보다 해 본 것이 더 많을 정도로 많은 직업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방황’ 끝에 얻은 깨달음은 “배워야 산다”였습니다. 신앙을 갖고 있던 그가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야간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처녀와 결혼도 했지만, 가난은 좀처럼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1997년 시작한 것이 토스트 장사. 230만원을 주고 산 중고 스낵카가 유일한 사업 밑천이었습니다. 집 근처 녹번역 등을 3개월간 전전하다 큰맘을 먹고 무교동으로 진출했다.
그는 서울의 한복판인 만큼 고급화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우선 세련된 유니폼을 차려 입고 화장지도 최고급을 내놓았다. 달걀도 비싼 영양란으로 바꾸고 조미료와 설탕은 넣지 않았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겨냥해 메뉴판을 영어, 중국어, 일어 등 4개 국어로 만들었습니다. 토스트 가격은 9년째 동결하였지만 그래도 한 달 순수입이 800만원을 웃돌 만큼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그에게 3년 전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병원에서 위의 3분의 2를 잘라냈습니다. 위암의 고통을 기도의 힘으로 딛고 선 그는‘체인점 사업’이라는 새 모험에 나섰습니다. 전국적으로 체인점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수없이 쇄도하였습니다. 그는 단 한번의 보증금이나 로열티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주말이면 체인점 사람들과 함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토스트를 구워줍니다. 복지시설과 고아원에 매달 약간의 돈과 달걀을 전달하는 일도 거르지 않습니다.
그의 가족은 아직 5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삽니다. 방이 3개지만 한 개를 창고 겸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들 넷을 포함한 여섯 식구가 살기엔 비좁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냥 행복합니다. 3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살아있어 '기뻐’, 일이 많아 ‘바뻐’, 하나밖에 없는 나는 ‘예뻐’”라는 ‘3뻐의 감사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자신의 불우한 삶을 원망 불평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실한 믿음, 그리고 그렇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리라는 확신, 이것이 이 집사님으로 하여금 성공할 수 있도록 인도한 비결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삶과 감사는 어느 정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이런 수준의 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다니엘의 세친구의 믿음은 이런 수준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18절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 건져주시리라 우리는 확신합니다만 만의 하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해도 우리는 왕이 만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고백을 다른 성경에서도 들어보았습니다. 하박국입니다. 장과 절도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이 단 3:16-18입니다. 그 유명한 하박국의 감사기도도 합3장이고 또 16-18에 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의 고백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풀무불과도 같은 고난에서 어려움에서 건져주시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소유가 없을지라도 일이 잘 안되고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실감이 잘 안나시는 모양인데 요즘 버전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쌀독에는 쌀이 떨어지고, 가스와 전기도 끊겼습니다. 공과금은 몇 달 연체중이고 회사는 부도가 났습니다. 사방에서 빚쟁이들은 밤낮으로 빚을 재촉합니다. 아이들의 학교 성적은 꼴등이고 몸도 아픕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뭔가 소망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방이 꽉꽉 막혔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원망 불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런 믿음 지닐 수 있으십니까 이런 감사 생활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런 감사를 저는 사상최대의 감사라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사상최대의 감사.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런 감사의 고백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한 번 지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사상최대의 감사가 필요한 이유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왜 이런 어려운 가운데 우리에게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우리 입술로는 얼마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복주심에 대해 인정합니다. 감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래도 무언가 내게 유익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할 내용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감사할 꺼리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남는 게 없습니다. 나는 모든 게 잘 안도고 안 풀리는 데 남들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과연 감사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세밀하게 살피십니다. '네가 이런 경우에도 내게 불평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느냐' 시험해 보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경우, 우리가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수할 것이 없게도 하십니다. 갑자기 우리를 약하게도 하십니다.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도 하십니다. 그래도 배신하지 않고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로버트 설베트 목사님은 1922년에 소아마비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단지 며칠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하였지만 그는 36세까지 살았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다리가 꼬여 있기 때문에 걸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식물인간으로 살 게 될 것이라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설베트 목사님은 이런 내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의사들은 내가 다리가 꼬여서 걸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식물인간처럼 살 게 될 것이라 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내가 꼭 걸어야 한다는 믿음과 그렇게 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나의 신체를 운동시키셨다. 나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겨우 18개월 된 아이처럼 몸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덟 살 때 나를 학교에 입학시키셨고 수많은 조롱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굳세게 견디어 주셨다. 나는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자주 좌절과 고통 속에 빠지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방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비춰보며 매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속에서 뚜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슬퍼하지 말라!' 너무도 놀라운 말씀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말씀을 받아드리고 그 이후로는 나의 신체에 대하여 좌절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넘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드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40명이 경쟁하는 웅변대회에서 당당히 2등을 하였고 학급 내에서 10%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그는 대학에 입학하였고 그 후 양쪽 집안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뇌성마비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결혼 후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조롱 속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우드이스턴 성서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인도 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지역의 여러 신문들과 교단지에 신앙의 글을 썼고 버밍햄교회에 담임목사로 안수를 받아 시무하였고 버밍햄 장로회 의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은 3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고매한 성품과 절망을 모르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본 버밍햄시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그의 삶은 오늘도 수많은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로버트 설베트 목사님이 절망과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깨달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바로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항변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셨다는데 어느 누가 감히 이유를 달 수있겠습니까 결국 목사님은 이 깨달음으로 인해 승리의 삶을 살 수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약해도 가난해도 못나고 부족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그냥 단순하게 늘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기뻐할 일이 전혀 없는데도 기뻐하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감사는 커녕 죽지못해 살아가는 인생일지라도 불평과 원망없이는 살 수 없는 환경일지라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집니다. 도저히 기도할 수 없는 처지임에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내용이 없어서 못하든지, 게을러서 못하든지, 믿음이 없어 못하든지 사탄의 방해로 못하든지 절대로 기도를 할 수 없는 환경일지라도 이기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다니엘이 세 친구와도 같이 하박국과도 같은 감사의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는 자동차를 탄 것이요 불평은 흔들의자에 앉은 것과 같다' 이런 뜻입니다. 몸이 흔들리는 것은 자동차나 흔들의자나 매 한가지인데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흔들의자는 계속 그 자리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신앙이 자랍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은 맨날 그 자리입니다. 영적으로는 퇴보를 합니다. 불평은 우리의 환경을 지옥으로 만들지만 감사는 천국으로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평범한 것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어떤 것도 당연히 주어진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고 선물입니다. 병이 들었다가 나으면 감사한 줄 알지만, 항상 건강하면 감사할 줄 모릅니다. 암병을 치료해 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병에 걸리지 않게 하신 것은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게 하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것보다 평범한 삶이 더 큰 은혜임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따라서 없어도 감사합시다. 병이 들어도 감사합시다. 시험에 떨어져도 감사합시다. 기도응답이 더뎌도 감사합시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박국이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감사의 조건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큰 고난 가운데서도 욥은 말했습니다.
욥1:21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라”
다음 주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엔 색다른 감사를 한 번 하시기 바랍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려 하지 말고 주시지 않은 것에 감사해 봅시다.
성공한 것에 감사치 말고 실패한 것으로 감사해 봅시다. 강하게 해 주신 것에 감사치 말고 약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 봅시다. 기도 응답에 감사치 말고 아직 응답해 주지 않으신 것에 감사해 봅시다. 장미꽃을 주신 것보다 장미 꽃 가시를 주신 것에 감사해 봅시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부러 이렇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평강과 안식을 누리고 계신 전 목사님의 감사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엔 여러분의 감사가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상최대의 감사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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