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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감사는 감사를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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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수감사절이 되면 물론이요, 감사절이 아니더라도 시시때때로 우리의 크신 임금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베푸신 크고도 크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시간과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들의 감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기쁨에 넘쳐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같은 사실을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2-14).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로다”(시 50:23).
여기 제사란 말은 내 기분이나 상황에 상관 없이 반드시 엄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린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왔으니 들어가 앉아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추수케 하신 것을 헤아려 보고 마음껏 찬송과 감사를 드림으로 영광과 존귀,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돌려 드립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추수했습니까 우리가 추수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추수한 것은 너무나 크고 많고 높고 깊고 긴 것이라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히려 어리석은 자가 되어 몇가지를 서론 격으로 헤아려 보십시다. 첫째, 대자연 가운데 충만한 모든 것을 추수했습니다. 햇빛과 하늘과 산들과 나무와 물 그 가운데 충만한 식물과 동물, 공중에 나는 새와 물 속에 노니는 고기,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눈이며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고 입는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자연계에는 주님의 은총이 충만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사용하는 은혜를 계속하여 누립니다. 저는 육군에 복무할 때 진부령을 넘어 다니면서 사계절의 천변만화를 만끽했습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예술은 인간의 천성이며 천성은 신의 예술”이라고 말한 것처럼 진정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시인이며 심미가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로서 시정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성도의 교제 가운데 아름다운 것들을 추수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녀와의 사랑, 친구들과의 변함없는 사랑 등 인간관계 속에서 주님은 금년에도 우리에게 계속적인 사랑의 아름다운 장면과 시간과 위로를 은총으로 베풀어 주셨습니다.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인생을 살찌우고 윤택하게 하고 살 맛을 줍니다.
아이가 “아빠”하고 안길 때, “아빠가 얼마나 좋으냐”고 물어보면 “이만큼 좋다”고 대답할 때, 나같은 죄인에게 이런 천진한 아기의 사랑을 주신 것을 감격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 가운데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은총을 추수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육체의 건강과 정신능력의 확장을 추수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육체의 생명이 되시고 온갖 질병을 치료해 주심으로 내일에 대한 희망을 보고 승기를 잡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고 배우고 일할 수 있는 지성을 계발해 주심으로 더 큰 일을 감당하게 해 주셨습니다.
넷째, 개인과 사회의 환경 가운데 베푸신 넓은 은혜를 추수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진노 속에서도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잊지 아니하시고 환난 가운데서도 너그러운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세계가 범죄 가운데도 평화와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마음껏 성내고 싸우고 욕하고 살지만 우리의 죄진 대로 갚지 아니하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존과 생활이 유지되어온 것입니다.
다섯째, 그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과 성령의 은혜로,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알의 밀알로 떨어져 죽어 구원의 씨가 되시고,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영생을 추수했습니다. 우리는 이 영생이 의미하는 바 크고 신비한 모든 것을 이 땅에서 다 체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작은 부분의 빛 속에서 경이와 감격을 조금 맛볼 뿐입니다.
성경 기자는 이 모든 추수의 즐거움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사 9:2-4)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우리가 이렇게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에 충만하여 추수를 감사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시면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전에나 이제나 어떤 복을 주시는지 다윗의 감사에 대하여 복 주신 내용을 통하여 몇 가지를 본론 격으로 알아보십시다.
 첫째로, 본문 9절을 보십시오. 감사하는 자를 존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8-9).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도 누구를 높혀줍니까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자를 높여 주고 좋은 기회를 주지 않습니까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출세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헤아려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그 마음의 사랑과 예물을 받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낮은 자리에서 드셔서 높은 자리에 앉히십니다. 거름더미에서 드셔서 부요한 자리에 세워주십니다. 답답한 위치에서 광활하고 형통한 자리로 이끌어 놓으십니다. 삼상 2:30에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고침받은 열 한센씨병 환자 중에 한 사람처럼 주님 앞에 나와서 주의 은혜를 감사하는 모습이 곧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믿음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영적으로 존귀하고 부요하고 광활한 자리에 앉아 있으며 세상에서도 존귀하고 부요하고 광활한 자리로 나아갈 기초를 다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우리를 해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여기 악한 유란 외부적 압제와 심령 속의 해독과 마귀의 역사를 다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이 모든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원을 베풀어 주셔서 평강에서 평강으로 생명에서 더 큰 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빌 4:4-7에서 사도 바울이 권고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감사할 때 기쁨이 생겨나고 여호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를 여호와 하나님이 완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시 121편에 “여호와 하나님은 졸며 주무시지도 아니하며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라”고 말씀했고, 요일 5:18에는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등한히 하면 은혜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원망이 생겨나고 미움과 근심과 다툼이 악한 유가 되어 우리를 해칩니다.
 셋째로,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감사하는 자의 집을 세우고 수한이 차서 죽는 은혜를 주십니다. 다음 대화를 들어보세요.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사람이 기한 전에 죽는 법이 있습니까” “별 말씀 다 하시네. 어떻게 사람이 기한 전에 죽어요 기한이 차야 죽지요” “아닙니다. 오늘 새벽에 읽었는데 전 7:1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 하느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어찌 없다고 그럽니까” “그 말씀은 사람의 측면에서 본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 심하게 악하고 필요 없게 되면 기한 전에 불러가요.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형벌입니다(겔 33:11)” 어떻습니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되지만 우리는 종종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고자 한 수명까지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봅니다. 죄짓다가 죽는 것, 악해서 심판받아 죽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는 성이나서 죽는 법도 없고, 열심히 선을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이므로 평안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끝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시 116:15에 “여호와께서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시는도다”고 말씀했고, 예수님은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고종명의 복을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본문 14-15절을 보십시오. “네 자손이 내 아들이 되며 죄를 범할 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 은총은 결단코 빼앗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크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멀리 내어다 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는 그 당대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드린 기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 그 자손에까지 대대로 미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자손들이 죄를 범할 때 무조건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다시 말하면 질병과 가난과 낮춤 등으로 징계하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일방 회개하면 그들도 사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게 감사하고 내가 베푼 은혜를 잊지 않는 자는 그 자손까지 귀하게 보이고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출 20:5-6에 “나 여호와 너의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는 여호와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했고,
시 37:25에는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가슴 앞에서 감사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의 평생과 여러분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자자손손까지 가슴에 안고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영생의 복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영생은 모든 축복의 완결입니다. 시 133편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고 말씀했고, 또 딤전 6:11-12에는 “오직 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다윗이 감사하자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선언하셨고, 다시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종의 감사는 당연한 감사인데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까지 말씀하시나이까 주께서 말씀하심이 꼭 인간의 규례대로 하심같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규례가 무엇입니까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Give and Take가 인간의 규례입니다. 주면 받고 또 주면 되받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주시고 난 다음 우리가 감사로 응답하면 그 감사를 받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꼭 친구처럼 또 축복으로 대접을 해야만 마음이 시원하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감사에 빚지고는 못 견디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사랑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그와 같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없이 귀여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마음과 몸짓, 찬송과 기도, 예배와 봉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기쁨과 감격으로 스스로 어리석은 분이 되셔서 현재뿐 아니라 우리 죽을 때까지, 우리 당대뿐 아니라 우리 자녀손까지 강복의 손길을 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고백합니다. 야곱이 응답합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며”(창 32:10). 다윗도 응답합니다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영구히 될 일을 말씀하시나이까”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광대하신 은총을 찬미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시 34:1~3). 다윗은 다음과 같은 기도로 그의 감사제를 끝냅니다.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오며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그의 기도의 종결은 다른 축복을 구한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만 되기를 원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언제나 머물러 살기를 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당대만 아니라 자녀손까지 책임지며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을진대 더 이상 구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보이는 그 어떤 것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한없이 은혜롭고 자비하신 당신의 얼굴의 광채가 더욱 좋사오니 당신 앞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면 주고 받기 때문이 아니라 은밀한 곳에서 그 사람과만 함께 있고 싶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심정을 시편 기자가 표현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여호와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10-12).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이 오늘 설교의 함축성 있는 결론을 내려줍니다.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촛불을 주신다. 또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전깃불을 주신다. 전깃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달빛도 촛불도 전깃불도 필요없는 하늘나라를 주신다” 그렇지 않습니까 감사가 감사를 낳습니다. 2005년 맥추감사절은 더 크게 감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감사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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