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감사신앙과 축복
본문
우리 교회는 매년 11월 첫째 주일을 추수 감사 및 총동원 전도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 가운데 특별한 사람 6P를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지난 1년간의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광풍과 비바람으로 인해 농사를 짓는 분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아픔과 고통속에서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은 항상 원망과 불평거리를 찾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복과 번영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 할 일을 찾아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것을 찾아 감사합니다. 이것이 축복을 받는 사람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감사할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일입니다. 사실 어려울 때 감사해야 진짜 감사입니다. 사람은 실패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람이 실패 속에서 자기 연약함을 인정할수록 여호와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저자 레나 마리아가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양손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쪽 발도 짧았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발로 글을 쓰고, 발로 밥을 먹고,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십자수도 놓았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수영과 운전도 하게 되었고 장애인 올림픽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특히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지 아름다운 찬양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다르게 사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천사의 표정을 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1인생의 풍랑
이 세상에 살면서 인생의 풍랑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난과 폭풍우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입니다. 우리는 평안하면 신앙 생활 잘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정 반대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보십시오. 대개 망하는 사람을 보면 환난 때문에 망하기보다 잘 되는 것 때문에 더 망합니다. 잘된다고 더 크게 투자하다가 망합니다. 잘 된다고 흥청망청 살고, 음란하고, 안일하게 사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어려운 풍랑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풍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건강, 내 생명, 내 가는 길을 지켜 주셔야 우리는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를 기도하게 만듭니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없으면 자기만 압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고난의 연속입니다. 예수 믿어도 고난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믿음으로 잘 이기면 큰 축복을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져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지 저울에 달아보고 축복을 주십니다.
2영광을 돌리는 삶
오늘 읽은 말씀은 10명의 문둥병자 이야기를 통해서 감사의 원리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대로 당시 문둥병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있었겠습니까 절망적입니다. 그들은 평생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위해 가다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세요!"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문둥병에 대하여 판정을 내리는 것은 제사장들이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은 자기가 당한 불행에 빠져 자신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행을 불러들이는 사람입니다. 그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일을 당해도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일어서는 자는 다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믿음의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면 그 분께서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마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러 갔습니다. 그들은 잘못하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돌로 맞아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이이 일어났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그들 모두가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빨리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고 잡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날 꿈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려고 갔습니다. 감사하며 기뻐하면서 가족들 만날 꿈을 안고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한 명은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다가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그런 행동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린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인지를 잘 모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잘 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로서 실패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3감사하면 더 큰 감사를 주십니다.
열 명 가운데 한 살만이 예수님께 감사하려고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못했느냐고 물어보십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 있느냐" 주님은 감사하러 온 자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아홉 명은 몸의 치료는 받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바로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병들었을 때는 "이 병만 고쳐주시면 제일 잘 믿을게요. "라고 누구든지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병이 낫고 조금 시간이 흐르게 되면 다시 자기 욕망대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말고, 감사할 일이 있으면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께 요구하는 모습은 많아 보여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은 적습니다. 육체가 무감각해지는 문둥병보다 은혜에 무감각해지는 영적 문둥병이 더 문제입니다. 은혜에 무감각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행복이 끝장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지만 불평하는 마음속에는 마귀가 거하게 됩니다. 루터는 말했습니다.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 항상 '있는 것'을 생각하는 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많이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적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복된 존재입니까 '많이 가진 삶'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많이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조엘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얻었을 때는 더욱 조심하라. 살찌는 돼지는 운이 나쁜 돼지이다. " 그런데 감사할 때, 말로만 감사하기보다 시간으로도, 몸으로도, 물질로도 감사하십시오. 그러한 사람이 복 있는 자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 가슴에 품고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요 향기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 중에서도 주님은 우리의 진실한 감사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 뜻이니라. 우리의 이웃을 도우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더 큰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인생의 풍랑
이 세상에 살면서 인생의 풍랑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난과 폭풍우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입니다. 우리는 평안하면 신앙 생활 잘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정 반대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보십시오. 대개 망하는 사람을 보면 환난 때문에 망하기보다 잘 되는 것 때문에 더 망합니다. 잘된다고 더 크게 투자하다가 망합니다. 잘 된다고 흥청망청 살고, 음란하고, 안일하게 사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어려운 풍랑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풍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건강, 내 생명, 내 가는 길을 지켜 주셔야 우리는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를 기도하게 만듭니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없으면 자기만 압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고난의 연속입니다. 예수 믿어도 고난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믿음으로 잘 이기면 큰 축복을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져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지 저울에 달아보고 축복을 주십니다.
2영광을 돌리는 삶
오늘 읽은 말씀은 10명의 문둥병자 이야기를 통해서 감사의 원리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대로 당시 문둥병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있었겠습니까 절망적입니다. 그들은 평생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위해 가다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세요!"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문둥병에 대하여 판정을 내리는 것은 제사장들이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은 자기가 당한 불행에 빠져 자신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행을 불러들이는 사람입니다. 그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일을 당해도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일어서는 자는 다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믿음의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면 그 분께서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마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러 갔습니다. 그들은 잘못하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돌로 맞아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이이 일어났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그들 모두가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빨리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고 잡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날 꿈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려고 갔습니다. 감사하며 기뻐하면서 가족들 만날 꿈을 안고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한 명은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다가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그런 행동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린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인지를 잘 모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잘 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로서 실패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3감사하면 더 큰 감사를 주십니다.
열 명 가운데 한 살만이 예수님께 감사하려고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못했느냐고 물어보십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 있느냐" 주님은 감사하러 온 자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아홉 명은 몸의 치료는 받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바로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병들었을 때는 "이 병만 고쳐주시면 제일 잘 믿을게요. "라고 누구든지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병이 낫고 조금 시간이 흐르게 되면 다시 자기 욕망대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말고, 감사할 일이 있으면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께 요구하는 모습은 많아 보여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은 적습니다. 육체가 무감각해지는 문둥병보다 은혜에 무감각해지는 영적 문둥병이 더 문제입니다. 은혜에 무감각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행복이 끝장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지만 불평하는 마음속에는 마귀가 거하게 됩니다. 루터는 말했습니다.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 항상 '있는 것'을 생각하는 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많이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적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복된 존재입니까 '많이 가진 삶'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많이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조엘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얻었을 때는 더욱 조심하라. 살찌는 돼지는 운이 나쁜 돼지이다. " 그런데 감사할 때, 말로만 감사하기보다 시간으로도, 몸으로도, 물질로도 감사하십시오. 그러한 사람이 복 있는 자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 가슴에 품고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요 향기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 중에서도 주님은 우리의 진실한 감사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 뜻이니라. 우리의 이웃을 도우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더 큰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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