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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염려 대신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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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염려하고 걱정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염려하냐고 하십니다. 우리도 다 알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쉽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안하고 불확실해서,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진과 해일과 천재지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리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마음 편하게 지내라는 이야기가 우리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언제 또 다시 그런 식의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겁니다. 1997년에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이런 위기가 밀어닥칠 지 생각이나 했습니까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지요.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쓰러지는 경우도 있고, 살려고 수혈을 받았는데, 그 피에 백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들어있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요즘 한참 입시철인데, 걱정이 안 될 수 없지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걱정되는 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왜 그래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요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야구경기를 보고 있으면,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승패가 갈라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박빙의 승부였는데, 투수가 던진 공을 포수가 받지 못해서 공이 뒤로 빠지는 경우가 있지요. 한 두 번 그런 일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투수가 조심스러워서 공을 자기 마음대로 던지지 못하게 된단 말이지요. 그래서 포수가 받기 쉬운 공을 던지려다 보면, 타자가 치기 쉬운 가운데로 몰리게 되고, 그러면 타자가 마음놓고 안타를 치게 되고, 그러면 잘 던지던 투수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투수 못지않게 포수가 중요한데요, 그런 상황에서, 아주 베테랑 포수가 등장을 합니다. 이 선수는 투수가 공을 아무렇게나 던져도 다 받아냅니다. 그러면 투수는 안심하고 마음 놓고 어려운 공을 마음껏 던지겠지요. 포수가 믿을 만하면 투수가 안심을 합니다. 자기 공을 다 받아줄 테니 말입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들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행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막아주십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안심하고, 마음 놓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단 말입니다.
우리도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하지만, 믿지를 못합니다. 알면서 믿지 못하니까 더 답답한 노릇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불안하고 걱정되고 밤에 잠도 못잡니다.
우리만 아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렇다는 걸 예수님도 아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지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예수님도 우리가 믿음이 적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도, 우리가 여전히 믿지 못하고, 그래서 여전히 걱정과 염려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믿지 못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능력이 있으신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계적인 경제 불황을 통제하실 능력이 있으실까, 또 그런 어려움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건지실 능력이 있으실까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신종플루가 휩쓸 때, 우리가 그 병에 걸리지 않고, 그 병에 걸려도 낫게 해주실 수 있다고 믿지 못하는 겁니다.
아까 야구 얘기를 했는데, 포수가 자꾸 공을 빠뜨려서, 새로운 포수로 교체했는데, 투수가 바뀐 포수를 믿지 못한다면, 바꾸나 마나지요. 저 친구도 똑같을 거야. 내가 공을 좀 어렵게 던지면 저 친구도 못 받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믿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건 아예 믿음이 없는 거니까, 우리 얘기는 아니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능력도 없으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을 아예 믿지 않는 사람일 테니 말입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능력이 있으시다고 인정은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 이야기일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주실까에 대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어려움이나 위험에서도 우리를 막아주시고 건져주시고 구해주신다는 것, 우리를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믿느냐는 겁니다.
다시 야구 얘기를 하자면, 포수가 능력이 뛰어나서 어떤 공이든지 다 받아낼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과연 저 포수가 나에게도 그렇게 해줄까, 평소에 내가 저 포수하고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내가 별로 잘해주지도 않았는데, 혹시 나를 미워해서, 일부러 공을 빠뜨리지는 않을까 최선을 다해서 실력발휘를 해줄까 의심하고 못 미더워하면, 그것도 믿음이 없는 겁니다. 믿음이 없으면 공을 제대로 던질 수가 없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은 알겠는데, 나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하실까, 나에게도 좋은 일을 해주실까 하면서 믿지 못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하고는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여전히 걱정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단 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
아신다는 게 뭡니까 그냥 알고 계신다는 건 아니지요. 아버지가 아들이 아프다는 걸 알면, 아, 아프구나. 그게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아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도록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아버지니까 그렇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알고 계신다는 것만이 아니라, 아시니까 뭔가 하신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시니까, 우리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우리가 알지만, 그걸 믿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단 말이에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여전히 우리 삶에는 고통이 있고, 우리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고, 내일은 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해야 하고,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걱정거리와 힘든 상황들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우리를 몰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 대학을 다니던 어떤 독일인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과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는 유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독일 사람으로 자라서 살고 있지만, 나치는 그래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두 사람은 사이좋은 친구였습니다. 같은 방을 쓰면서 늘 같이 밥을 먹고, 물론 공부도 늘 같이 했는데, 이 유대인 친구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두어 시간 지나 지칠 때 쯤 되면 늘 이상한 시 같은 것을 큰 소리로 외우는 것입니다. 물어보니 히브리어로 시편 23편을 암송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그 교수는 마치 음악같이 리듬을 타는 그 시가 무척 신기했습니다. 친구는 그것을 외우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져서 공부가 더 잘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독일인 친구도 배워서 같이 히브리어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치가 유대인들을 본격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친구는 학교를 그만 두고 은신처에 숨어 있었는데, 어느 날 독일인 친구에게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나치의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쳐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인 친구는 급히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인사 한 마디 나눌 틈도 없이 유대인 친구와 그 가족들은 마치 짐승처럼 나치의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독일인 친구는 친구의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려고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 트럭을 따라갔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채 따라가는 모습을 보았는지, 유대인 친구가 트럭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눈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친구의 얼굴은 뜻밖에도 싱긋이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갑자기 소리 높여 무언가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
그 친구가 미소 지으며 외우고 있는 것은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아직 학교에서 같이 공부할 때, 공부 말고는 다른 아무런 걱정도 없던 그 때와 같은 평온한 얼굴로 친구는 시편을 히브리어로 소리쳐 외우고 있었습니다. 독일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그 시편을 같이 따라 외우면서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습니다.
한없이 울면서 악을 쓰듯이 시편을 외우며 트럭을 따라가다가 길모퉁이에서 그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트럭에 실린 친구의 마지막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친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은 독일에 불리하게 전개되었고, 이 독일인 교수도 군대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연합군인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총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죽음의 대열에 끼어 걸어가면서 젊은 포로들은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사형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갑자기 가스실로 끌려가던 유대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죽음의 길을 웃으며 떠난 그 친구처럼 나도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자. ”
동료들이 하나 둘씩 총알에 맞아 쓰러지고 드디어 자기의 차례가 와서 자리에 섰을 때, 이 분은 총을 겨눈 군인에게 마지막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이분은 잠시 눈을 감고는 사랑하는 친구가 죽음의 길을 떠나며 외우던 시편 23편을 조용히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알 수 없는 힘과 용기 그리고 담담한 평안이 그를 에워쌌습니다. 자신을 겨눈 총구 앞에서 이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소련군 장교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같이 시편 23편을 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연합군 장교는 유태인이었던 것입니다. 그 장교는 곧바로 이 사람을 풀어주라고 명령했고, 사형 중지 서류에 사인을 했습니다. 놀라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장교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비록 악마의 제복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
믿음은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믿어지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물론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그냥 믿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믿음은 내가 힘써 노력해야 자라나고, 힘써 노력해야 지킬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불신과 의심과 의혹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할 이유보다 믿지 못할 이유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일을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기로 결단하고, 믿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겁니다.
이 독일인 교수처럼, 그리고 그보다 앞서 유태인 친구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고, 평안할 수 없는 상황, 죽음의 문턱에서,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순간에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기로 결정하고,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받아 누리고, 지키고, 더 크게 키워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믿으면,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가 염려하고 근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나에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믿어야 할 이유보다 믿지 못할 이유가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면, 그 모든 이유가 근거없는 것이었음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음을 말입니다.
모든 상황이 좋아서, 모든 일이 잘 돼서 믿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어렵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라도,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면, 감사할 이유들이 줄줄이 떠오르고,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아끼시고 위해주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것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착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갔는데,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남보다 깨끗이 살려고 노력했고 경건하게 살아왔는데, 왜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리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원망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감사의 기도만 들으신다”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감사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까지 건강한 것, 오늘까지 농사지은 것, 그가 죄를 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참아주신 것, 그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 그의 자녀들을 건강하게 지켜주신 것 등에 대해서 계속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자 그의 마음속에는 감사할 일이 계속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원망과 근심과 염려를 다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가 그렇게 계속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의 온몸과 마음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더니 결국 암세포가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두렵고 위험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온통 걱정스럽고 속상하게 하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이런 가운데 염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내 손에 잡히는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두려움과 염려를 이겨낼 수 있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염려를 몰아내주셔서 감사한 게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모든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내가 두려울 것도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됩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믿음은 노력입니다.
 믿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끊임없이 의심을 이겨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믿음을 지켜줍니다. 감사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더욱 강해집니다. 감사는 믿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면서, 믿음의 원동력입니다. 믿는 사람은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는 사람은 믿게 됩니다.
근심과 걱정, 염려 대신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임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
믿어야 합니다. 믿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입니다. 믿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리며,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에 대해 한없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하시는 것은, 감사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힘써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매일 모든 일에 감사하기 위해 힘쓰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이 훨씬 풍성해지고 담대해지며 실제로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 대신 감사하고, 두려움 대신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놀라운 은총을 발견하고 깨닫고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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