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어떤 사람이 감사를 드립니까?
본문
저는 목회생활 동안 여호와 하나님 앞에 특별히 감사하는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조건을 지난 5월 중국 쓰촨 성 대 지진 때 일어난 하나의 이야기를 들어 저의 표현으로 하고자 합니다.
중국 쓰촨 성 대지진 발생 8일째를(08-05-19) 맞아 백일 가량 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한 젊은 부인의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두장옌(都江堰) 시의 한 무너진 주택에서 무릎과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웅크려 공간을 만든 채 숨을 거둔 20대 여성의 시신을 구조대가 발견하였습니다.
시신을 들어내자 놀랍게도 아기는 별 상처 없이 엄마가 온 몸으로 만든 공간 아래서 젖꼭지를 물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는데 이는 무너지는 건물더미를 엄마의 몸이 보호막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엄마는 쏟아지는 콘크리트 더미와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윗옷을 머리 위로 벗어 덮고 온 몸으로 막으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척추가 으스러져 죽어간 것입니다.
의료진이 서둘러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던 중 포대기 안에서 휴대전화를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보배야, 만일 네가 살아남으면 꼭 기억해 다오. 엄마가 너를 사랑했다는 걸 절대 잊지 말기를 바라. 라는 문자입니다.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엄마가 남긴 유언입니다.
저는 김해삼일교회를 사랑하고 이 교회에 속한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되 한 아이를 목숨 다하여 사랑하였던 그 여인과 같은 마음이 제게도 있음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행여나 목사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 라는 말 보다는 나의 등 위에서 위하여 기도하는 목사님이 계시니 든든하다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성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삶 속에 넘치는 깊은 은혜와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까 만일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감사가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남들처럼 부요하지 못하며 세상적으로 형통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까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들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진정한 행복과 은혜와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는 약한 믿음을 회복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약화되거나 파선하면 무엇보다도 현실의 환경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부터 먼저 쏟아내는 사람들을 더러 보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감사의 싹을 잘라 버리는 대단히 위험스러운 장애물의 요소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을 내가 만나게 될 때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좋은 귀감이 되는 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구약시대의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그의 행적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부패되어 가는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였는데 그것이 자기의 뜻대로 잘되지 않자 여호와 하나님께 불평을 좀 하였습니다.
합 01:0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0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그 후 또 앗수르 왕조를 무너뜨린 갈대아(바벨론)인이 조국 이스라엘을 침략해옴으로 인해 한 해의 모든 농작물과 소유 재산인 가축들까지도 다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환상을 보고는 대단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었습니다.
합 0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그러나 생존권의 문제를 놓고 한동안 괴로워하는 장면이 지나고 난 후 이내 하박국 선지자는 마음의 평정을 찾기 시작하고 이어서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합 0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신앙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 아닐까요 그러므로 감사는 약한 믿음을 회복하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신앙인들 가운데서도 원망과 불평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하기보다는 매사에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깨어져서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앞세워 나아갈 때 비로소 그 마음에 소망이 있고 넉넉함이 있고 감사함이 넘쳐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C. F 버틀러라(1898)는 사람은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 495/03) 라고 노래했습니다.
미국의 한 청년이 청년답지 않게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대개의 청년들은 꿈이 크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늘 미흡하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날 이 청년이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없는 다리 한 쪽만 생각하다 보니 많은 고민과 절망 속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지점이 인간의 한계점이죠. 하지만 이 청년은 신앙의 눈이 뜨이면서 아직도 자신에게 다리 하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리 하나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면서 고무다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청년은 이 남은 다리 하나를 가지고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침내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그 다리 하나에 의지해서 아프리카로 건너갔는데 이내 식인종들이 덤벼들기 시작하자 이 선교사는 고무다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 다리를 씹어보지만 씹히지 않자 이번에는 이 선교사를 신적 존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이 선교사는 자신의 다리가 절단케 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2.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나타납니다.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다윗은 대단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목동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았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면서 골리앗을 물리치게 되었고 이후 이스라엘 나라의 유력한 인물로 부상(浮上)하면서 견제도 동시에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다윗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되지만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자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이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로 돌렸습니다.
삼하 0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데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윗의 이러한 고백을 생각해 볼 때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라고 깨닫는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①지나간 시절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좀 초라했든지 화려했든지 간에 누구나 과거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난 일들 가운데 가슴 아팠던 일, 억울했던 일, 서운했던 일, 그리고 배은망덕했던 일을 두고두고 생각합니다. 즉 사람들은 지난날 속에서 행복했던 일, 기뻐하였던 일들이 더 많이 있음에도 각자 뼈아픈 일들, 원망과 불행했던 일들만 기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습성 때문에 과거를 정리하지 못하고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명기 16:09~17절에서 유월절(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을 감사제로 지키라 했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애굽에서 430년을 종살이를 하면서 압박과 고난의 삶을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으니 애굽의 종살이나 광야생활 40년을 돌아보면 정말 꿈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첫 수확을 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지고 나와서 감사를 하며 은혜와 축복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과거의 쓰라림의 세월이 있었지만 그 고난 가운데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십시오. 지난 삶의 순간순간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혹 우리 가운데 잘못 지내왔다고 생각하기라도 합니까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아무래도 자신의 무능함 때문 아닐까요 이만큼 지내온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②현재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낸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삼하 0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데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윗 왕은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왕의 신분이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적 같은 일 아닙니까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즉 구원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내가 주님 안에서 살고 있는 이것이 축복이요 감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 오늘의 내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이만큼이라도 되어진 일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만이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
③미래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나이가 조금 드신 분들 대부분은 시골에서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그때의 환경이나 삶이 어떠했습니까.
낙후 된 환경에다 가난, 무지, 초라함이 전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는 오늘의 삶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의 지난날을 이렇게 지내왔듯이 장차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활이며 장차 주어질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그 나라를 생각하는 생활입니다. 만일 그러한 소망이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도무지 신앙인의 삶이라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칼빈은 임종 시 고통 속에서도 생각 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08:18). 라는 구절을 계속 암송하였다고 합니다.
3. 감사의 예물은 은혜 받은 자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신앙인은 은혜를 받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빚진 자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시는 입장에서는 긍휼이요 받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드림에 있어서는 즐거움으로 드려야하고, 신앙생활은 즐겁게 하여야 하며, 예배 역시도 즐거운 심령으로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부부일 것 같습니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인가 좋은 것을 주려고 그 일을 찾아 노력하는 부부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자기의 마음을 바치면서 헌신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무척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직장생활이 결코 즐겁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갈 것인데 기왕에 우리가 천국에 갈 것이라면 어떻게 가야 하겠습니까 즐겁게 가야 합니다.
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나그네라는 고백을 하게 되고 은혜를 받고 보면 인생살이의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것인 줄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물질에 사로 잡혀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은혜를 받으면 인생살이 자체가 잠시 빌려 살다가 때가 되면 비워주고 옮겨가는 전세 집처럼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깊이 묵상해 보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내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서 얼마동안 위탁받은 것을 가지고 살 뿐입니다.
집을 몇 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내 집이 아니고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 역시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용한 것만 내 것이 되었을 뿐입니다.
한 사람이 IMF 시절 많은 것을 깨닫고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사업이 무너지면서 공장도 문 닫고, 별장도 넘어가고, 빌딩도 넘어가서 없어지자 그가 깨달은 것은,
아! 다 넘어가는 것이구나. 결국은 다 가는 것이구나.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던 것만 남아있는 것을 깨닫고는 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것만이 남는 것이구나. 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7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 왕의 과거사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현장이 많았습니까 사울 왕으로부터의 추격을 받고 광야로 도망을 다녀야만 했던 처량한 신세가 있었습니다.
생명의 안전을 위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다가 오히려 위험인물로 견제를 받자 생명을 보존키 위해 미친 채 하며 수염에 침을 흘리며 그적 거려야만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삼하 21:10~15).
이러한 일들을 회고해 본 다윗 왕은 지금의 위치에서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은혜를 회복하여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보면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 마음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찌무라 간조(內村鑑)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①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②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③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즉 저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없고, 은혜가 없고,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는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월등한 감사의 조건을 부여하신다는 뜻으로 받으시면 됩니다.
중국 쓰촨 성 대지진 발생 8일째를(08-05-19) 맞아 백일 가량 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한 젊은 부인의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두장옌(都江堰) 시의 한 무너진 주택에서 무릎과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웅크려 공간을 만든 채 숨을 거둔 20대 여성의 시신을 구조대가 발견하였습니다.
시신을 들어내자 놀랍게도 아기는 별 상처 없이 엄마가 온 몸으로 만든 공간 아래서 젖꼭지를 물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는데 이는 무너지는 건물더미를 엄마의 몸이 보호막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엄마는 쏟아지는 콘크리트 더미와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윗옷을 머리 위로 벗어 덮고 온 몸으로 막으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척추가 으스러져 죽어간 것입니다.
의료진이 서둘러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던 중 포대기 안에서 휴대전화를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보배야, 만일 네가 살아남으면 꼭 기억해 다오. 엄마가 너를 사랑했다는 걸 절대 잊지 말기를 바라. 라는 문자입니다.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엄마가 남긴 유언입니다.
저는 김해삼일교회를 사랑하고 이 교회에 속한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되 한 아이를 목숨 다하여 사랑하였던 그 여인과 같은 마음이 제게도 있음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행여나 목사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 라는 말 보다는 나의 등 위에서 위하여 기도하는 목사님이 계시니 든든하다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성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삶 속에 넘치는 깊은 은혜와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까 만일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감사가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남들처럼 부요하지 못하며 세상적으로 형통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까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들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진정한 행복과 은혜와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는 약한 믿음을 회복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약화되거나 파선하면 무엇보다도 현실의 환경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부터 먼저 쏟아내는 사람들을 더러 보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감사의 싹을 잘라 버리는 대단히 위험스러운 장애물의 요소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을 내가 만나게 될 때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좋은 귀감이 되는 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구약시대의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그의 행적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부패되어 가는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였는데 그것이 자기의 뜻대로 잘되지 않자 여호와 하나님께 불평을 좀 하였습니다.
합 01:0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0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그 후 또 앗수르 왕조를 무너뜨린 갈대아(바벨론)인이 조국 이스라엘을 침략해옴으로 인해 한 해의 모든 농작물과 소유 재산인 가축들까지도 다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환상을 보고는 대단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었습니다.
합 0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그러나 생존권의 문제를 놓고 한동안 괴로워하는 장면이 지나고 난 후 이내 하박국 선지자는 마음의 평정을 찾기 시작하고 이어서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합 0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신앙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 아닐까요 그러므로 감사는 약한 믿음을 회복하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신앙인들 가운데서도 원망과 불평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하기보다는 매사에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깨어져서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앞세워 나아갈 때 비로소 그 마음에 소망이 있고 넉넉함이 있고 감사함이 넘쳐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C. F 버틀러라(1898)는 사람은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 495/03) 라고 노래했습니다.
미국의 한 청년이 청년답지 않게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대개의 청년들은 꿈이 크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늘 미흡하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날 이 청년이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없는 다리 한 쪽만 생각하다 보니 많은 고민과 절망 속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지점이 인간의 한계점이죠. 하지만 이 청년은 신앙의 눈이 뜨이면서 아직도 자신에게 다리 하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리 하나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면서 고무다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청년은 이 남은 다리 하나를 가지고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침내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그 다리 하나에 의지해서 아프리카로 건너갔는데 이내 식인종들이 덤벼들기 시작하자 이 선교사는 고무다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 다리를 씹어보지만 씹히지 않자 이번에는 이 선교사를 신적 존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이 선교사는 자신의 다리가 절단케 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2.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나타납니다.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다윗은 대단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목동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았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면서 골리앗을 물리치게 되었고 이후 이스라엘 나라의 유력한 인물로 부상(浮上)하면서 견제도 동시에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다윗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되지만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자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이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로 돌렸습니다.
삼하 0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데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윗의 이러한 고백을 생각해 볼 때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라고 깨닫는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①지나간 시절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좀 초라했든지 화려했든지 간에 누구나 과거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난 일들 가운데 가슴 아팠던 일, 억울했던 일, 서운했던 일, 그리고 배은망덕했던 일을 두고두고 생각합니다. 즉 사람들은 지난날 속에서 행복했던 일, 기뻐하였던 일들이 더 많이 있음에도 각자 뼈아픈 일들, 원망과 불행했던 일들만 기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습성 때문에 과거를 정리하지 못하고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명기 16:09~17절에서 유월절(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을 감사제로 지키라 했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애굽에서 430년을 종살이를 하면서 압박과 고난의 삶을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으니 애굽의 종살이나 광야생활 40년을 돌아보면 정말 꿈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첫 수확을 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지고 나와서 감사를 하며 은혜와 축복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과거의 쓰라림의 세월이 있었지만 그 고난 가운데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십시오. 지난 삶의 순간순간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혹 우리 가운데 잘못 지내왔다고 생각하기라도 합니까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아무래도 자신의 무능함 때문 아닐까요 이만큼 지내온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②현재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낸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삼하 0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데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윗 왕은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왕의 신분이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적 같은 일 아닙니까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즉 구원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내가 주님 안에서 살고 있는 이것이 축복이요 감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 오늘의 내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이만큼이라도 되어진 일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만이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
③미래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나이가 조금 드신 분들 대부분은 시골에서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그때의 환경이나 삶이 어떠했습니까.
낙후 된 환경에다 가난, 무지, 초라함이 전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는 오늘의 삶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의 지난날을 이렇게 지내왔듯이 장차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활이며 장차 주어질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그 나라를 생각하는 생활입니다. 만일 그러한 소망이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도무지 신앙인의 삶이라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칼빈은 임종 시 고통 속에서도 생각 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08:18). 라는 구절을 계속 암송하였다고 합니다.
3. 감사의 예물은 은혜 받은 자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신앙인은 은혜를 받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빚진 자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시는 입장에서는 긍휼이요 받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드림에 있어서는 즐거움으로 드려야하고, 신앙생활은 즐겁게 하여야 하며, 예배 역시도 즐거운 심령으로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부부일 것 같습니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인가 좋은 것을 주려고 그 일을 찾아 노력하는 부부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자기의 마음을 바치면서 헌신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무척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직장생활이 결코 즐겁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갈 것인데 기왕에 우리가 천국에 갈 것이라면 어떻게 가야 하겠습니까 즐겁게 가야 합니다.
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나그네라는 고백을 하게 되고 은혜를 받고 보면 인생살이의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것인 줄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물질에 사로 잡혀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은혜를 받으면 인생살이 자체가 잠시 빌려 살다가 때가 되면 비워주고 옮겨가는 전세 집처럼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깊이 묵상해 보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내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서 얼마동안 위탁받은 것을 가지고 살 뿐입니다.
집을 몇 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내 집이 아니고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 역시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용한 것만 내 것이 되었을 뿐입니다.
한 사람이 IMF 시절 많은 것을 깨닫고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사업이 무너지면서 공장도 문 닫고, 별장도 넘어가고, 빌딩도 넘어가서 없어지자 그가 깨달은 것은,
아! 다 넘어가는 것이구나. 결국은 다 가는 것이구나.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던 것만 남아있는 것을 깨닫고는 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것만이 남는 것이구나. 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7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 왕의 과거사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현장이 많았습니까 사울 왕으로부터의 추격을 받고 광야로 도망을 다녀야만 했던 처량한 신세가 있었습니다.
생명의 안전을 위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다가 오히려 위험인물로 견제를 받자 생명을 보존키 위해 미친 채 하며 수염에 침을 흘리며 그적 거려야만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삼하 21:10~15).
이러한 일들을 회고해 본 다윗 왕은 지금의 위치에서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은혜를 회복하여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보면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 마음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찌무라 간조(內村鑑)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①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②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③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즉 저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없고, 은혜가 없고,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는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월등한 감사의 조건을 부여하신다는 뜻으로 받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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