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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받은 복과 받을 복을 인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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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한국 교회는 1년에 두 번 감사 절기를 지내왔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농경문화와도 잘 조화가 되어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민'이었습니다.
떠돌아다니며 소와 양을 치던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고, 거기서 농사를 짓고 안정된 곡식을 스스로 수확할 수 있게 된 것은 놀랍고 신비하게까지 느껴질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몇 군데 이스라엘 민족이 농사지어 첫추수를 한때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
유목민이었던 그들이 봉사하여 첫 수확을 거둔 기쁨을 누릴 때, 여호와 하나님은 명하시길 '맥추절로 이 날을 구별하여 지켜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쁨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한 "감사"로 바꾸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절기는 추수가 시작된 날로부터 7주가 지난 다음 지키는 절기였기에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16장 9-12절을 읽어 보면 "맥추절"의 의미가 상세하게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지난날을 돌아보고 감사하라, 너와 네 가족과 주변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감사하라, 받은 복을 감사하라. "는 말씀입니다.
이 맥추절은 우리 민족에게 잘 적용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춘궁기를 지나 보리 수확을 하는 6-7절이 맥추절과 일치하였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파 본 사람이 "먹을 것"에 대하여 감사함을 압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배고픔이 무언지 뼈저리게 경험한 민족입니다.
저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 때문에 고심하던 중 '만나'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하였고, 마실 것 때문에 염려하던 중 '샘물'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마름과 배고픔을 겪어 본 사람에게는 한 잔의 냉수와 한 움큼의 곡식이 얼마나 소중한 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일 6월 25일 이지만, 6. 25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인지라 그와 관련된 메시지를 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이 예배의 자라에 6. 25 동란을 겪은 분들이 1/3을 조금 넘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주일, 우리 원로장로이신 '이성판'장로님께서 자신이 겪은 6. 25 수기 '벌써 비극을 잊었는가'라는 책을 교회 내에 돌리셔서 그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이 참혹하였는지 너무 잘 묘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 장로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으로 무장되어서 고난을 극복하고 여기 수원에 자리 잡고 수성교회 장로가 되기까지 '그 세월 속에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역사'를 순간순간 고백하며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를 연발하시는 것을 읽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의 역사"가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의 성공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많이 배웠다고, 높은 지위를 얻어 누리고 있다고 성공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 얼마나 충만한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 그리고 과연 감사로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느냐를 통하여 그 인생의 성공여부를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가 체면 문화인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비하하여 표현하는 것이 미덕이요, 겸손인줄 알았고, 누가 먼저 '감사하다'거나 '죄송하다'고 말을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격을 낮추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입 밖으로 표현해선 안 되고, '그건 말 안하여도 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에선 '사랑한다',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을 '팔출부'취급을 품고 있는 사람도 결코 꺼낼 줄을 모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유교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민족의 심성과 생활문화에 "감사표현이 없고 감사를 모르는 체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좀처럼 ‘감사’하다는 말을 할 줄을 모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 믿지 않는 여러분의 친구, 친척, 이웃의 입에서 수시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까
다행인 것은 지금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 분들에게서 “감사해요”, “참 감사한 일이예요” 하는 말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작고 큰일들에 감사가 충만하게 되 시길 바랍니다.
보통사람들은 감사할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감사’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감사를 말하면서 인격이 성숙하여지고 겸손하여 집니다.
감사 때문에 겸손해지고 자유로워지고 감사 때문에 미래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유대인 어머니가 배운 것이 많은 분이 아님에도 자식을 아주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의 자녀교육 비결은 세 가지였습니다.
“ 첫째는 모든 일에 감사해라. ”
큰 일 작은 일 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 거라
“ 둘째는 원망하고 투덜대는 사람하고 결코 어울리지 말아라”
원망하고 투덜대는 사람하고는 결코 어울리지 말아라.
원망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
“ 셋째는 어디서나 감사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이고 예수님 닮은 인격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제가 어디선가 잃은 기억이 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저녁에 집회설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온 몸은 피곤하고 지쳐있는데 얼른 가서 좀 쉬고 싶다는 생각뿐 이 버스에 덩치가 큰 여인이 아이를 다섯 명 데리고 탔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극성인지 한 녀석도 가만히 있지 않고 차 안에서 이리저리 뛰고 소리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의 엄마였습니다.
인상도 험악하게 생긴 여인이 아이들에게 마구 욕설과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조용하라’고 더욱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피곤에 지친 목사님은 짜증나고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 여자는 이런 날 왜 애들은 끌고 다니면서 차 안을 소란하게 만드는 거야 아이들 떠는 소리보다 ‘조용하라’는 저 여자소리가 날 너무 피곤하게 만드는구나 여호와 하나님 제가 타고 가는 차에 왜 하필이면 저런 아이들과 저 여자가 올라탄 것이지요
“여호와 하나님 : ‘감사해라’”
“뭐가 감사하다고요”
“저 여자가 네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해라”
우스개 소리로 만든 말이겠지만 역시 감사는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옛날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말하길..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노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 때 바울은 재판도 못 받아보고 억울하게 2년 동안이나 로마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고난의 세월이 자신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지만 “복음”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진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이 형편에서도 ‘감사’할 것뿐이로구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6개월간 삶은 어떠하였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업도 안 되고,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왔습니까
바울이 고난 중에도 “내가 당한 일이 결국은 진보였다고 한 것처럼 여러분이 당한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실 때에는 결국은 더 잘되게 하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오히려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신명기 16장에는 ‘맥추감사’의 진정한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복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복 받을 것에 대한 감사”이비다
본문10절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신대로 감사예물 드리라”고 하였고 본문 15절을 보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띤 일에 북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맥추절은 1년 중 중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지난 6개월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6개월간도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 베푸실 것을 기대하고 확신하고 감사하는 것에 맥추감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감사의 정신은 ~10 "지원하여 드리는 것" 이고 ~11에 "각 사람이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예물은 각자 자기에게 주신 은혜 분량만큼 별도로 드리는 것입니다.
남편의 감사 아내의 감사가 다르고 자녀의 감사가 각자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맥추감사의 정신은 "자기가 섬기는 자기 제단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다 하나니까 하면서 임의로 고향교회에 십일조 보내고 감사한 것을 자기 생각대로 구제에 쓰거나 하는 것은 감사정신에 위배됩니다.
내가 적을 두고 은혜 받는 곳이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맥추감사의 정신은 "내가 이것 보다 더 어려웠었던 때를 생각하고 감사" 하라는 것입니다.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
지금 점점 살기에 좋아진 형편에서 보면 여전히 아쉽고 불만스런 부분이 있겠지만 지난날 정말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을 생각하면 '이만한 것도 감사'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이 마음이 자리하는 법입니다.
기독교인은 삶의 장부에 흑자에 감사하고 적자에 실망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것 되신다는 믿음 때문에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어느 형편에서나 감사와 믿음으로 다시 생각하면 은혜와 축복이 따라오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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