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감사절] 믿음은 감사가 성장시킨다

본문

기독교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행위는 예배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를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 43:7)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기독교의 신앙 목표는 예배에 있습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예배가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이다”(The proper adoration of God is the prime purpose of Christianity)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예배(worship)는 무엇입니까 예배의 3대 정신요소는 ① 항상 기뻐하라 ② 쉬지 말고 기도하라 ③ 범사에 감사하라 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신앙인은 늘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야 합니다. 두려움과 죄책감과 불안에 떨게 하는 교회는 이단입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외적 표현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배는 곧 감사요, 감사는 곧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궁극적 목표가 예배라면 그 예배는 “감사”의 외적 표현이니 신앙은 감사를 통해서 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하느냐에 의해서 신앙의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절 예배”를 큰 절기로 지킬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의 큰 절기 가운데 하나인 맥추감사절입니다. 성경은 이를 맥추절(출34:22), 초실절 또는 칠칠절(출24:1-18)이라고도 하고, 신약에 와서는 오순절(행2:1)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른 봄에 뿌린 씨앗 중 제일 먼저 거두어 드리는 밀이나 보리, 그리고 채소 등을 제단에 올려놓고 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큰 절기는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맥추감사절(오순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감사절 절기가 많은 것은 결국 예배의 모든 순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짜여져야 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장 아름답고 부드럽게 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는 예배요, 감사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역시 감사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작은 친절, 작은 사랑, 작은 관심에 큰 감사를 하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돋보입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해도 성공을 잘 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하고 메마르게 할 뿐 아니라 결국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맙니다.
텍사스의 성공한 한 실업가가 출판사를 찾아가서 책을 출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책 제목이 ‘백만 번의 감사’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고백하기 위해 책을 펴내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을 보니 백만 번의 감사내용을 적어 놓은 책인 줄 알았더니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백만 번 써 놓은 원고였습니다. 백만 번을 감사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다 감사드리지 못한다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결국 아무 출판사도 그 책을 출판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그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축복과 성공의 비결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 있었음을 알리고 싶어 했던 마음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본래 술과 여자에 빠진 채 폐인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주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마침내 사업가로 성공했습니다. 구원과 함께 풍성한 삶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감격을 한권의 책에 담고 싶어 했던 마음을 저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절에 시편 136편의 말씀을 봉독했습니다. 시편 136편에는 26절까지 있는데 26번이나 ‘감사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처음 구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매 문장마다 “감사하라”라는 말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명상하면서 이 시편기자는 얼마나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기에 이렇게 입만 열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외쳤을까가 궁금해서 몇 번 읽어 보았습니다. 읽는 중에 제가 발견한 것은 이 시편기자보다 제가 받은 은혜와 축복이 훨씬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136편의 기자가 26번이나 감사하라고 했다면 나는 26,000번, 아니 백만 번 이상 감사해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분만큼 감사하지 못할까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느냐 아니면 못 깨닫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하는 사람은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게 마련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아도 그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삭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주일 청년 대학생들에게도 말씀 드렸지만 미국의 토크쇼(talk show) 계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여 토크쇼의 여왕이 된 사람이 오프라 윈프리 여사입니다. 지금 132개국 1억4천만 명의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오프라 윈프리 쇼’는 에미상을 30회나 수상했으며 TV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연예인 가운데 최고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그녀의 재산은 약 10억 달러(약 1조원)가 넘는답니다.
그녀는 토크쇼뿐만 아니라 여성전용 케이블 TV ‘옥시전’의 동업자이자 연출가이기도 하고, TV 프로그램 제작과 출판 및 인터넷 사업 등을 총 망라하는 하포그룹 회장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인종을 초월하여 성공한 대 스타가 되었지만 그녀의 과거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어둡고 소외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독히 가난한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그녀는 엄마의 품이 아닌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거기서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14세에 출산과 동시에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었고 그 충격으로 그녀는 가출해서 마약 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지옥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몸무게는 무려 107kg이나 되는 뚱뚱보에 불행한 흑인 미혼모, 그녀에게 붙은 불행의 딱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삶에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생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그녀의 친 아버지는 거듭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딸 오프라를 신앙인으로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훈련과 함께 매주 많은 책을 읽게 했습니다. 19세 된 오프라는 네쉬빌 TV 방송국에 취직하여 여성 앵커가 되었고 3년 뒤 22세 때 그녀는 볼티모어 TV의 오후 6시 앵커로 발탁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감정적인 뉴스를 전달한다고 아침방송으로 좌천을 당했답니다.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는 아침프로를 맡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대박이 된 셈이었습니다. 그때의 소감을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방송이 끝난 순간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드디어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둔 오프라 윈프리는 마침내 토크쇼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현재 오프라 윈프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일과를 보내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매일 빼놓지 않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일기’를 쓰는 일입니다.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 가운데 다섯 가지 감사목록을 찾아서 기록하는 일입니다. 거창한 감사만 적는 것이 아니고 아주 작은 일상에서 찾는 감사의 내용을 일기로 적었습니다. 예를 들면 ① 오늘도 거뜬히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②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③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④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등입니다. 윈프리는 ‘감사목록 일기’를 매일같이 쓰면서 인생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를 배우며 인생을 성공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는 삶의 활력소이자 힘의 원천이며 신앙을 성장시켜 인생의 방향을 잡아줍니다.
시편 136편의 감사내용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대한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인간에게 주신 은혜와 비전이 인생을 승리롭게 하심을 깨닫고 감사하라는 것이요, 셋째는 위기 가운데 건져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대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몇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한 분입니다(God is so good and His love endures forever).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적 속성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시다’(God is so good)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는 것’(God's love endures forever)입니다. 이때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쎄드’라고 하는데 이는 ‘언약에 기초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헤쎄드(인자하심)의 역사라고 말 할 만큼 명백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헤쎄드의 은총은 다양한 증거들로 성경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그 언약의 사랑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끝까지 찬란한 역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그 한결같은 사랑(헤쎄드)이 출애굽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고, 가나안의 큰 왕들을 치게 하시고 가나안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은혜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헤쎄드)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이스라엘의 힘이나 행위로 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인자하심이 영원한(헤쎄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외칩니다.
 셋째로 언약된 백성에게 주시는 이 한결같은 사랑은 결국 “비천에 처한 나를” 기억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까지 받게 하셨으니 그 은총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개역성경에는 “우리를 비천한데서 권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23절)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권념’이란 말은 기억을 말합니다. 잊지 않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 놓고 지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비천한데에 있을 때에 버리시거나, 외면하시거나, 무시하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는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즉 여호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때문입니다. 여기 ‘비천함’은 영어로 ‘low condition’ 즉 고통스런 상황을 말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인생의 밑바닥에 있을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심을 이 시편기자는 깨닫고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축복문이 활짝 열린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천(low condition)하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앞서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비천함에서 감사의 대상을 찾는 사람이 마침내 웃음이 가득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여름이면 땀이 너무 많아 늘 불평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여름의 삼복에도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저씨, 이렇게 더운데도 전혀 땀을 흘리지 않는구려” “네, 저는 아무리 더워도 땀이 나지 않습니다. ” “아, 그렇습니까 나는 땀이 너무 많이 나서 귀찮아 죽겠습니다. 땀이 없는 당신이 부럽구려. ” 그러자 땀 안 나는 사람이 쏘아 보면서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런 소리 마쇼. 난 어렸을 때 쥐약을 잘 못 먹어 내분비계통에 큰 문제가 생겨 땀을 못 냅니다. 여름만 오면 체온이 조절되지 않아서 아무데도 못갑니다. 땀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 불평을 한단 말이요!” 우리는 받은 것, 이미 내게 있는 축복마저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을 찾기 보다는 감사를 찾아야 합니다. 감사를 찾는 긍정적 마음이 행복한 미래의 문을 열어갑니다.
일본의 아오모리 지방은 사과 산지로 유명하답니다. 어느 해 가을 사과 추수기에 태풍이 불어왔습니다. 풍작을 눈앞에 두고 가슴 설레던 농부들에게 재앙이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사과들이 익기 전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주민들이 하늘을 원망하며 낙망하고 있을 때 한 농부는 매달려 있는 사과를 바라보며 감사기도를 했답니다. 아직도 매달려 있는 사과들이 있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떨어진 사과보고 불평과 원망을 한다 해도 그 사과들이 다시 나무에 붙어 익은 사과가 될 리는 만무하니 떨어진 사과보고 불평하지 말고 매달린 사과를 보고 감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달린 사과를 보고 감사하는 순간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대학 입시경쟁이 치열한데 매달린 사과에 가치를 부여해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사과”의 상표를 붙였습니다.
온갖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이 사과를 입시생이 먹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미신이 많은 일본 사람들이 비싼 값을 주고 이 사과를 사서 입시생들에게 선물하는 바람에 이 농부는 대박을 터뜨려 큰 부자가 되었답니다. 아무리 비천한 상황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문이 열려집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한결같은 언약의 사랑을 갖고 비천한데서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에 UN경제개발 연구팀에서 조사해서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미화 61,000달러(우리나라 화폐로 5,700만원)의 재산만 있으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 10% 내에 든다는 것입니다. 50만 달라(약 4억 7,000만원)만 갖고 있으면 전 세계에서 1% 안에 들어가는 부자랍니다. 지난 주 유니세프의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어린이들이 1분에 10명씩 굶어 죽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아생존율은 전 세계에서 1위 일만큼 유아 사망률이 적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감사한 조건들이 너무 많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백만 번 이상 감사해도 부족할 만큼 큰 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며 감사하는 사람은 하늘의 복의 문이 열릴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성숙하여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