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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성찬을 나누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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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성찬식은 고난주일이나 감사절 같은 특별한 절기에만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모이는 이유 자체가 성찬식을 위하여 모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26절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날 밤 소위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 장면에서 복음서의 기자는 네 개의 의미심장한 동사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① 가지사, ② 축복하시고, ③ 떼어, ④ 주시며 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이 네 개의 동사를 근거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① 선택받은 자 ② 축복받은 자 ③ 상처받은 자 ④ 나누어주는 자라고 선언합니다.
 성찬식은 우리의 정체성 즉 “우리가 누구인가?”을 확인하는 자리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철저하게 성찬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찬을 통해서 확인해야 할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1.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많은 떡 중에서 성찬용 떡을 선택하여 사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할 속죄의 어린양으로 선택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제자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택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선택된 사실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던 상관없이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로 그분의 기쁨과 사랑의 대상들입니다.
2.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아동 교육방법은 축복입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축복합니다. 자녀의 생일 행사의 최고 절정은 축복의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생이 마지막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 자녀들을 불러놓고 유언과 함께 축복을 남깁니다. 우리는 모두 축복 속에 태어났으며, 축복을 받고, 누리고, 살다가 축복을 남기고, 가야 할 사람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이 저주라고 느껴질 때 내 안에 사탄의 역사인줄 알고 그 사탄을 결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축복하고, 배우자를 축복하고, 자녀들을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깨어져야 할 사람입니다.
구약 사사시대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과 싸울 때 자기 군사들에게 항아리 안에 횃불을 숨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시간에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게 했습니다. 항아리가 깨어짐으로 횃불이 드러나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깨트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깨트리실 때 상처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필요한 상처인 것입니다. 아무도 깨트림의 경험을 즐거워하거나 바라지 않습니다. 깨트림은 아픔이요 고난이요 상처입니다.
그러나 깨트림은 필요한 것입니다. 깨트려져야 빛이 흘러나오고 향기가 전달됩니다. 인생의 상처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상처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이웃의 상처를 만져주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처는 필요한 것입니다.
4. 우리는 나누어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떡을 들고 축복하시고 깨트리신 떡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누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떡과 잔을 나누어주실 때 그는 단순히 떡과 잔을 나누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 곧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몸 주님의 생명을 먹은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선택받고, 축복받은 사람은 가진 것을 깨트리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은혜 받고 축복받은 사람은 시기와 질투 미움 욕심 교만을 깨트리고, 생명의 복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성찬공동체의 사명을 다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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