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탕자의 귀환
본문
이번주일은 추석 명절로 예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에도 3대 절기가 있듯 우리나라에도 고유 명절들이 있습니다. 그중 추석은 누구나 좋아하는 명절중 하나입니다. 과거 어린시절 추석은 보름 전부터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맛있는 먹거리와 추석 빔을 입을 생각에 밤잠 못자면서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추석엔 각종 민속놀이와 온가족이 접할 수 있는 문화가 있기에 최고의 명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가정이라면 세상이 주는 기쁨보다는 주님 안에서 평안을 사모 하는 것이 더 복된 줄 압니다.
성경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온 가족이 행복하고 자녀들이 축복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시 128:1-4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말씀합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늘 감사로 제사 드리는 것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기쁨으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 다시피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온몸에 전신 화상을 입고 손가락마저 불에타서 녹아버린 이지선 자매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어느 간증내용입니다. “주님의 손은 이미 나의 허물과 죄로 인해 상처투성이 가 되어 계셨어요. 나의 처절한 고통과 절망으로 인해 그렇게 아프고 또 아프셨는데, 또 다시 나를 위해 그 손을 제게 내밀어 주셨어요. 지금 내가 조금 힘들었다고 투정했던 것들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해요. 그냥 그 상처 난 주님의 손을 잡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주님의 그 온전한 사랑에 제가 가지고 있던 지친 마음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그런데도 주님은 그 작은 나의 상한 마음에도 함께 울어주시며 손을 내밀어 위로해주시고 계셨어요. 내게 얼마나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주님이신지를 적당히가 아닌, 완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아주 조금은 알게 해주신 것 같아요”라고 고백합니다. 절망가운데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감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내용입니다. 아마 엄청난 고통 뒤에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 주신 엄청난 권능과 능력일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인들을 향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면서 살전 5:18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선포합니다. 시편의 중심 내용 또한 감사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시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 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
시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말씀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감사할 줄아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것 입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감사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감사하는 반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가 오면 비가 온다 불평하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불평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부모님의 은혜요.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하지 못하며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어느 부잣집의 작은 아들이 등장 합니다. 그는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하다가 끝내는 자기 재산을 달라고 아버지께 조르게됩니다.
눅15:12-14 보면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즉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하지 못하고 분수를 지키지 못하면 패가 망신 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처주고 있습니다. 가정은 신앙중심, 예배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아무리 물질로 풍요함을 자랑한다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결여되어 있으면 복된 가정이라 할수 없습니다.
잠17;1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오히려 풍성한 물질이 화가 될수 있음을 의미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입니다. 내게 가진 것이 없다하여 불평 불만 갖지 말고 비록 마른 떡 한 조각 일 지라도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사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도를 좆는 것이 복된 가정 입니다.
용혜원 목사님의 시 ‘고향가는 길’보면 “ 나의 삶에서 너를 만남이 행복하다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가는 길이다. 그리움으로 수놓은 길 이 길은 내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쉴때도 내가 사랑해야할 길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행복한 길은 늘 가고 싶은 길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 라고 합니다. 아주 오랜 세월 지나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가슴이 설레이는지 모릅니다. 그 길은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길이며, 어머니의 품이 그립고, 어머니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고 싶은 곳, 그렇게 그리워하며 찾아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내가 사랑해야할 길임을 시인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 탕자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아울러 먼 타향살이에 지치고 힘든 상황 속에서 엎친데 덥친 격으로 흉년까지 겹처 먹을 것 하나 없어서 남의 집 돼지를 치면서 쥐염 열매조차 없어 배를 골을 때 어렴풋이 고향을 생각 하게 됩니다.
눅15:15-19 보면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결국 자신이 빈 털털이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풍성함과 자신의 궁핍함이 기억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진정으로 고난 받아야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그립니다.
다윗 역시 고백하길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라고 절규합니다. 탕자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부딪치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이어서 자신의 패역함을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결심하게된 것입니다. 이 결심은 단지 임시 방편 으로 굶주림과 어려움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단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한가닥 남은 자존심도 허세도 다 버리고 아버지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상거가 먼데도 그 아들을 알아보고 맨발로 뛰어가서 그를 얼사않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고 반겨줍니다. 제멋대로 살고 십어서 집나간 아들이지만 눈물로 기다렸던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즉, 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린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마도 자식이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처럼 살아서 돌아오니 얼마나 기뻣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역시 죄 많은 인간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는 이보다 더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눅15:7 에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르쳐 주시면서 죄인과 세리들을 욕하고 배척하는 바리세인들의 외식을 지적하고 이어서 그들의 비난의 소리을 잠잠께 하십니다. 오늘 추석 명절 한 가족이 다 모였습니다. 혹 불평불만이나 형제간에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서로 화해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귀한 가족들이 다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눅15장 전체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기뻐하는 내용입니다.
눅15:1-7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 눅15:8-10“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 눅15“11-32 ”일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사랑의 비유”를 봅니다.
본장의 핵심은 잃은 것을 다시 찾고, 그 기쁨을 자신만이 아닌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을 봅니다. 사랑이란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꼭 지켜야 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원의 손길이 있어야 만 가능한 것을 오늘 말씀은 교훈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탕자의 모습을 통하여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중추절 기쁘고 감사한 날에 우리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면서 아직 예수님을 영접 하지 않은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가 있다면 이번 기회로 구원의 문이 열려 모두 천국백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엡5:16-17 보면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 불순종으로 죄짓지 말고 세월을 아껴 성령 충만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며 즐거운 한가위 추석 명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온 가족이 행복하고 자녀들이 축복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시 128:1-4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말씀합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늘 감사로 제사 드리는 것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기쁨으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 다시피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온몸에 전신 화상을 입고 손가락마저 불에타서 녹아버린 이지선 자매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어느 간증내용입니다. “주님의 손은 이미 나의 허물과 죄로 인해 상처투성이 가 되어 계셨어요. 나의 처절한 고통과 절망으로 인해 그렇게 아프고 또 아프셨는데, 또 다시 나를 위해 그 손을 제게 내밀어 주셨어요. 지금 내가 조금 힘들었다고 투정했던 것들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해요. 그냥 그 상처 난 주님의 손을 잡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주님의 그 온전한 사랑에 제가 가지고 있던 지친 마음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그런데도 주님은 그 작은 나의 상한 마음에도 함께 울어주시며 손을 내밀어 위로해주시고 계셨어요. 내게 얼마나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주님이신지를 적당히가 아닌, 완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아주 조금은 알게 해주신 것 같아요”라고 고백합니다. 절망가운데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감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내용입니다. 아마 엄청난 고통 뒤에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 주신 엄청난 권능과 능력일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인들을 향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면서 살전 5:18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선포합니다. 시편의 중심 내용 또한 감사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시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 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
시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말씀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감사할 줄아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것 입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감사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감사하는 반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가 오면 비가 온다 불평하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불평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부모님의 은혜요.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하지 못하며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어느 부잣집의 작은 아들이 등장 합니다. 그는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하다가 끝내는 자기 재산을 달라고 아버지께 조르게됩니다.
눅15:12-14 보면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즉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하지 못하고 분수를 지키지 못하면 패가 망신 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처주고 있습니다. 가정은 신앙중심, 예배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아무리 물질로 풍요함을 자랑한다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결여되어 있으면 복된 가정이라 할수 없습니다.
잠17;1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오히려 풍성한 물질이 화가 될수 있음을 의미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입니다. 내게 가진 것이 없다하여 불평 불만 갖지 말고 비록 마른 떡 한 조각 일 지라도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사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도를 좆는 것이 복된 가정 입니다.
용혜원 목사님의 시 ‘고향가는 길’보면 “ 나의 삶에서 너를 만남이 행복하다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가는 길이다. 그리움으로 수놓은 길 이 길은 내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쉴때도 내가 사랑해야할 길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행복한 길은 늘 가고 싶은 길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 라고 합니다. 아주 오랜 세월 지나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가슴이 설레이는지 모릅니다. 그 길은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길이며, 어머니의 품이 그립고, 어머니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고 싶은 곳, 그렇게 그리워하며 찾아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내가 사랑해야할 길임을 시인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 탕자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아울러 먼 타향살이에 지치고 힘든 상황 속에서 엎친데 덥친 격으로 흉년까지 겹처 먹을 것 하나 없어서 남의 집 돼지를 치면서 쥐염 열매조차 없어 배를 골을 때 어렴풋이 고향을 생각 하게 됩니다.
눅15:15-19 보면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결국 자신이 빈 털털이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풍성함과 자신의 궁핍함이 기억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진정으로 고난 받아야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그립니다.
다윗 역시 고백하길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라고 절규합니다. 탕자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부딪치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이어서 자신의 패역함을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결심하게된 것입니다. 이 결심은 단지 임시 방편 으로 굶주림과 어려움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단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한가닥 남은 자존심도 허세도 다 버리고 아버지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상거가 먼데도 그 아들을 알아보고 맨발로 뛰어가서 그를 얼사않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고 반겨줍니다. 제멋대로 살고 십어서 집나간 아들이지만 눈물로 기다렸던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즉, 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린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마도 자식이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처럼 살아서 돌아오니 얼마나 기뻣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역시 죄 많은 인간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는 이보다 더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눅15:7 에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르쳐 주시면서 죄인과 세리들을 욕하고 배척하는 바리세인들의 외식을 지적하고 이어서 그들의 비난의 소리을 잠잠께 하십니다. 오늘 추석 명절 한 가족이 다 모였습니다. 혹 불평불만이나 형제간에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서로 화해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귀한 가족들이 다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눅15장 전체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기뻐하는 내용입니다.
눅15:1-7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 눅15:8-10“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 눅15“11-32 ”일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사랑의 비유”를 봅니다.
본장의 핵심은 잃은 것을 다시 찾고, 그 기쁨을 자신만이 아닌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을 봅니다. 사랑이란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꼭 지켜야 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원의 손길이 있어야 만 가능한 것을 오늘 말씀은 교훈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탕자의 모습을 통하여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중추절 기쁘고 감사한 날에 우리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면서 아직 예수님을 영접 하지 않은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가 있다면 이번 기회로 구원의 문이 열려 모두 천국백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엡5:16-17 보면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 불순종으로 죄짓지 말고 세월을 아껴 성령 충만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며 즐거운 한가위 추석 명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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