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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즐거운 귀향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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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가는 길은 항상 즐겁습니다. 추석같은 때는 1시간을 가도, 5시간을 가도, 10시간을 가도 즐겁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이유는 그동안 자주 뵙지 못했던 부모님을 만날 수 있고, 부모님께 선물을 드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가 사회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로 부모님께 선물을 드릴 때, 자식의 마음이 뿌듯하고 부모의 마음도 기쁩니다.
여러분은 이번 추석에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본향을 향해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부터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본향이 있습니다. 그 본향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돌아가야할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 본향으로 가는 길 역시 즐거운 길입니다. 즐거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꼭 한 번 눈으로 뵙고 싶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께 드려야할 선물이 있기 때문에 즐거운 귀향길입니다.
우리가 귀향해서 주님께 꼭 드려야할 선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드려야하는 선물이면서 동시에 주님께서 꼭 원하시는 선물인데, 그것은 바로 <의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거두려면, 무엇보다도 화평으로 심어야 합니다. 약 3:18을 보십시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의의 열매>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된 <의> 그 의의 열매만 아니라, 그 의를 가진 자로서 삶 속에서 거룩한 영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즐거운 귀향길이 되려면, 의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화평으로 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 번 깊이 생각해봅시다. 지금 나는 화평으로 심고 있습니까? 바울에 의하면, 화평은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음… 이런 것들이 모두 위로부터 난 지혜인데, 이런 지혜가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까? 특히 무슨 일을 하든지 화평으로 행하고 있습니까? 화평하게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는다고 했는데, 과연 날마다 화평으로 심고 있습니까?
화평으로 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다툼을 멀리해야 합니다.
약 3:13 이후 한 구절씩 깊이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고 질문하면서,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고 하면서,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약 3:16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를,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다툼이 생기든지, 남이 잘못해서 다툼이 생기면, 그것은 분명히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고나서도, 여전히 다툼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상 누군가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다든지, 자신을 비난한다든지, 자신을 모함에 빠드린다든지,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면… 참기가 힘듭니다. 다투게 됩니다. 싸우게 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하면 그 다툼도 인정이 갈만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 다툼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툼은 분명히 세상적인 것이요 정욕적인 것이요 마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툼이란 것이, 싸움이란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가시화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에서는 본래적으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다툼이 있다면, 싸움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를 또 다른 지옥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과거에 우리 교회에서 다툼이 있었다면, 싸움이 있었다면, 우리 교회 전체가 다 재를 뒤집어쓰고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다툼이 없어야할 신성한 교회를 싸움터로 만들었으니… 그리고 앞으로는 다툼이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툼을 멀리해야 합니다. 서로 싸움을 붙여서도 안되고, 싸움할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사단은 어떻게해서든지 싸움을 붙여놓으려고 하는데, 그런 사단의 시험을 이기고 다툼을 멀리 멀리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화평을 심어서 의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2. (화평을 심으려면) 칭찬과 격려의 말을 매일 해야 합니다.
화평을 심는 가장 구체적인 실천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자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해당되는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칭찬을 잘 하십니까? 격려를 잘 하십니까?
추석때 며느리들이 가장 듣기싫은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여성 포털사이트 아줌마닷컴(www. azoomma. com)이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기혼여성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절 때 시어머니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로 10명 중 3명 이상(33. 8%)이 <더 있다 가라(벌써 가게?)>를 꼽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며느리를 격려해주려면... ? 또한 동서 지간에 비교하는 말(20. 2%), 3위는 음식 준비할 때 잔소리(12. 7%)가 각각 2, 3위로 꼽혔습니다. 반면 시어머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로는 <준비하느라 수고했다>(31. 3%)였으며 <어서 친정에가야지>(22. 1%)가 그 뒤를 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격려해주는 말 한 마디! 이것은 누구나 원합니다. 그 말 한 마디 명절 피로가 싹 풀립니다.
우리 예닮골 시어머니들은 모든 분들이 다 이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며느리들은 받기만 해서는 되겠습니다. 시어머니 칭찬 한 마디! <저는 어머니가 하는 음식, 죽어도 못따라갈 것 같아요>, <어머니, 하루 더 같이 있고 싶은데요>...
이런 말들은 모두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화평으로 심는 일입니다. 서로를 칭찬하는 말, 격려하는 말 한 마디로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귀향길은 즐거운 길이요 동시에 고난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본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실족하지 않고 즐겁게 가려면, 믿음의 가족들 간에 서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더더욱 칭찬의 말, 격려의 말 한 마디가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다같이 한 배를 탔기 때문입니다. <서울중앙호>, <예닮골호>라는 한 배를 탔기에, 서로를 칭찬해주면서, 격려해주면서 가야 본향까지 더 잘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한 배 안에서 서로 원망하면서, 서로 불평하면서, 서로 깎아내리면서 간다고 생각해봅시다. 얼마 가지 않아서 좌초하게 될 것입니다. 공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회 홈피에 몇 개월 전부터 <예. 전. 칭. 한. > 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예닮골 전목장원 칭찬 한마디>... 요람에 있는 사랑목장부터 순서대로 한 사람씩 칭찬 한 마디씩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어떤 분이 <목사님, 왜 아무개부터 칭찬합니까? 편애하시는거 아닙니까?>...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편애하는거 아니라고... 순서대로 하는거라고... 그말을 듣고 제 마음이 좀 언짢아서 <에이, 그만 둘까>하다가, 그래도 우리 교회에 화평으로 심는 일을 위해서는 그만 두면 안되지 생각하고 계속 했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끝나면 <예. 전. 격. 한. > 시리즈를 하려고 합니다. <예닮골 전목장원 격려 한마디>... 이번에 희락목장원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니 편애아니지요?
저는 매일 우리 교우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한 사람 한 사람 칭찬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대한민국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서로를 칭찬해주는 교회는 서울중앙교회가 유일합니다. 더많이 칭찬해주고 더많이 격려해주어서, 용량오버가 되어서, 우리 교회 홈피가 감당이 안되어서 다운이 될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스니까? 이렇게 화평으로 심어서 의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어야만 후에 주님 앞에 기쁨으로 선물을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과 격려로 거두게 된 의의 열매 대신 남을 정죄한 열매, 남을 비난한 열매만 잔뜩 맺어서 그 분 앞에 선다면, 주님께서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나는 너를 다 용서했는데... 나는 배반자도 용서했는데... 나는 강도도 용서했는데... 너는 어째서 남을 정죄만 하다 왔느냐?> 주님께서 과연 나를 용서해주실까요? 만약 한 사람이라도 용서하지 않고 정죄의 열매를 맺었다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의의 열매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용서의 열매>입니다. 남을 용서한 자만이 진정으로 <의의 열매>을 맺은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칭찬 한 마디, 격려 한 마디를 가지고 화평으로 심은 자가 <의의 열매>을 맺은 사람입니다.
지금쯤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고향만 그리워해서는 안됩니다. 육신의 고향은 잠깐이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바라보아야할 곳은 진정한 본향, 천국입니다. 여러분 안에 그 천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까?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한 친구가 영국 런던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런던의 한 거리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백파이프로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친구는 그 사람에게 고향이 스코틀랜드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뇨, 나의 고향은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선 나그네일 뿐이죠. >
그리스도인은 현재적으로 천국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요, 미래적으로 영생의 고향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입니다. 그 순례의 길을 걸어갈 때 순례자로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오늘 말씀드린 것처럼 삶의 순간순간 화평을 심어서 의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서 본향에 계신 주님께 선물로 드릴 때,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시가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나그네 인생 장막을 접고 주님 앞에 섰을 때, 거기서 <아름다왔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삶 속에서 화평을 심어서 의의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데, 오늘 우리의 삶이 그 열매를 풍성히 거두는 삶이 되어서 후에 주님 앞에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그런 즐거운 귀향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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