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먼저 해야할 일
본문
서울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한 사업가가 사업을 하다 실패했습니다. 너무나 낙심이 된 이 사람이 죽어 버리려고 한강변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다리 밑에 있는 작은 텐트 안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그래서 텐트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까 거지 가족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예배가 끝났는데 그때 마침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그러자 거지 가장이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너는 감사해라. 아버지 잘 만나서 집에 불날 염려도 없지 않나”
그 말에 아들이 맞장구치며 응수했습니다. “맞아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집은 불이 날 염려가 없네요”
그 말이 끝나니까 이번에는 거지 가장이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당신도 남편 잘 만난 것을 감사하시오”
그러자 웃음보가 터지면서 그 거지 가족들이 눈물이 나오도록 웃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 사람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 거지라도 예수 믿으면 저렇게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사는구나”
그래서 이 사업가도 예수 믿고 재기했다고 합니다.
하박국3:17-18절 말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집에서 출발하실 때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셨습니까 예배당에 들어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오늘 준비한 헌금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셨습니까
권필희 집사님의 10. 4. 25일 감사헌금봉투에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참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올립니다. 우리 어머님 99세에도 뼈를 다 고쳐주신 기적을 일으키신 아버지 너무 감사합니다. 식물환자 엄마의 말문도 열어주시고 이젠 정상으로 돌려놓아 주신 아버지, 2년이 다되도록 병간호가 싫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자리에 누워 아프다 소리하지 않고 웃음을 지을 때 너무 고마워요. 제가 울며 기도할 때 주님 말씀하신 말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건너가지 말고 참고 주님 섬기듯 엄마에게 하란 말씀, 그리하여 너의 아들 반듯이 바로 세워 큰 믿음 주리라고 주님 말씀 믿고 열심히 예배 잘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월18일 50명에 전해준 복음의 메시지, 주님 꼭 책임져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오늘 성전에 들어오실 때 이런 감사의 마음이 있었습니까
오늘 읽은 시편 100편을 쓴 사람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분 앞에 나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곧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요, 우리를 지어셨고, 우리를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통치자가 되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길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나아오기 전에 먼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하시든지 감사가 먼저여야 합니다.
성문으로 들어간 후에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성전 문 안에 들어오기 전에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합격을 믿고 시험장에 들어갈 때 먼저 감사하십시오. 취직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취직의 문을 두드립시오.
사업을 시작한다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감사하십시오. 사업의 문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예배드리러 오실 때도 먼저 감사의 마음부터 가지십시오.
기도하러 나오실 때도 감사부터 하십시오. 봉사하러 나오실 때도 감사부터 하십시오. 전도하러 나아오실 때도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찬양대 연습하러 나아오실 때도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 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감사를 잘 하는 사람은 여명을 감사하며 남보다 일찍 일어나 남보다 일찍 감사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내려가는 태양을 보고도 감사합니다. 강대국 임금에게 아부성 발언을 했습니다. ‘당신의 나라는 보름달과 같습니다.
저 나라는 초승달과 같습니다. ’ 그러니까 강대국의 임금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면에 다른 나라 임금이 듣고 있다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언짢아 하는 임금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귀에데 대고 속삭였습니다. ‘보름달은 곧 작아지지만 초승달은 점점 커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초승달보도고 감사할 줄 알고 보름달 보고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 할 줄 모르면 빛을 잃고, 감사를 할 줄 모르면 이웃을 잃고, 감사를 할 줄 모르는 지도자는 부하를 잃고, 감사 할 줄 모르는 대통령은 국민을 잃고, 감사할 줄 모르는 국민은 나라를 잃고 맙니다.
성경에 보면, 감사를 모르는 아담과 하와는 낙원을 잃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을 했던 가인은 아우를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함께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가룟 유다가 감사할 줄 몰라서 스승인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늘이 지붕 되고, 반석위에 집을 짓습니다.
감사 할 줄 알면 나의 부족함이 보입니다.
감사 할 줄 알면 모든 일에서 미룰 것이 없고, 빚을 질 이유도 없고 행복을 쫒아 다닐 수고와 피곤도 없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잠자는 중에도 복을 주십니다.
인생에 보잘 것 없는 끝자락일 지라도 감사하줄 아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영원한 안식에 주인이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먼저 감사해야 하는지 아세요 감사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능력이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봅시다.
첫째, 감사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말씀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도 곧바로 오지 못했습니다. 죽은 나흘째 되던 날에 도착했습니다. 그럴 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하는 말이,
‘예수가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그런데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이 예수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친구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던가’
말은 맞습니다. 장님도 보게 하신 예수님이 친구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죽지 않게 하시는 것보다는 죽은 후에 살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궁시렁 거리는 이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있는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굴이었고 그 문에는 이미 큰 돌로 입구를 막아놓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39절상반절).
그때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기를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수님께서 “내 말을 네가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셨고, 마르다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즉시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마르다가 사람을 시켜서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옮겨놓은 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1절).
그리고 42절에 보면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예수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했기에 자기의 말을 들은 것을 감사한다고 했습니까 아직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앞에 마르다가 돌을 옮긴 것을 두고 한 기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예수님의 말을 들은 것에 해당되며 충분히 감사할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문장 전체를 보면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고 한 ‘내 말’에 해당되는 말은 뒤에 나옵니다. 그 말은 곧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친 말입니다.
예수님이 외치는 ‘나사로야 나오라’는 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한다고 한 것입니다. 나오라고 할 때 나사로가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미리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사로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44절에 보면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나사로가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까 나흘이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냄새가 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예수님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왔습니다.
누가 들은 것입니까 죽은 나사로가 들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들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이 하시는 간구의 기도의 소리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을 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미리 감사하며 사는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예측해서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사함으로 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각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나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아 아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평강이 지켜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염려와 걱정을 없애 주신다는 것입니다.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응답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구하든지 감사함으로 구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감사의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합니다.
교우들 가운데는 매주, 또는 월초에 한 달 동안 가족들을 지켜주실 것을 미리 감사하며 헌금을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리 감사하는 삶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 매주일 마다 감사가 좋은가 하면 감사헌금을 하면 헌금을 하는 사이에 온갖 감사가 다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내용을 같이 나누면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같은 감사의 내용이 검색되어서 같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의 검색기능은 난관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육군 장교 시절 문서위조죄로 시베리아 정치 수용소에 11년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강제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화병으로 쓰러질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감사의 검색기능으로 밝게 살았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수용소 군도’라는 대작을 저술했습니다. 그 책으로 인해서 1970년 노밸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서 솔제니친의 첫마디가 “Thank you Prison"(고마워요 감옥)이었습니다. 감사의 검색은 사막에서도 꽃이 피게 만듭니다.
둘째, 감사는 치유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서울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님,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도 10년을 거뜬히 목회하고 계십니다. 박종순 목사님께서 쓴 신앙고백적인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파하는 양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절망과 싸우며 투병하는 이들을 건성으로 찾곤 했습니다.
힘들겠거니 아프겠거니 고통스럽겠거니 라며 돌아서곤 했습니다. 욥을 생각하시오, 주님을 바라보시오라며 그들 곁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 고통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시간 다퉈 수술해야 된다는 의사가 야속했습니다. 발병 원인이 스트레스라는데 원인 제공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입원하기 전날 책상 위에 쌓인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픈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덩그런 병실 거긴 존폐와 생사의 싸움터. 고독과 갈등의 교차로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했습니다. 죽고 삶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마음 바꿈이 문제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주님 감사합니다!” 대문자로 썼습니다. 무려 서른 가지 넘는 감사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나하나 써 내려가며 흐느꼈습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자 기도가 터지고 찬송이 열렸습니다.
그날부터 병실은 감사와 감격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생명을 건 수술 참말로 아팠습니다. 꿰맨 수술자리 움직일 때마다 소스라치게 쓰렸습니다. 그 때마다 입으로만 읋조리던 십자가의 아픔 그 곁에로 곁으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내 아픔은 주님 고난의 억천만분의 하나에도 비길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은혜로 살고 외치고 일하는 지금 그때 그 감동을 잃을까봐 순간마다 자신을 두들겨 팹니다.
주님, 우리 모두가 무화과 열매가 없어도, 포도가 없어도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주님을 인하여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삶이 가파르고 힘겹더라도 크신 구원과 섭리를 인하여 감격하게 하소서.
그날의 그 기도들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박종순 목사님은 감사를 회복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 치유되어 오늘도 목회를 하며 한국교회를 위하여 앞장서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불평과 원망은 오히려 나의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더 심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셋째, 감사는 슬픔과 아픔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슬픔의 씨를 뿌릴 수 없다”는 노르웨이의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이 나온 노르웨이 민화가 있습니다. 사탄이 하필 노르웨이에 창고를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미움, 슬픔, 눈물의 씨들이 저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놀란 것은 한 동네만은 어떤 씨를 뿌려도 효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동네는 “감사의 마을”이었기 때문입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어떤 슬픈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기 때문에 눈물의 씨앗이 효력을 발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뉴욕타임즈는 '두 친구'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아주 가까운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미국인 유학생이고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 한 친구는 자살로서 끝났습니다.
두 친구의 차이점은 단순히 한 사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다른 사람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클린턴의 친구는 프랭크 알렌이었는데 두뇌와 경제적 배경이 클린턴보다 나았으나, 늘 불평이 많아 투덜거리며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은 가난한 집에서 두 이복 동생을 돌보며 언제나 사회를 낙관적으로 보고 늘 어머니께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넷째, 감사함은 복수심을 극복하고 사랑할 수 능력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무조건 불평하거나 남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대통령이 나와도 미워하고 욕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욕하고 교회에서는 목사를 미워하고 욕합니다. 회사에서는 사장을 미워합니다.
그러면서도 따라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권위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권위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상처를 받은 것을 표출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그리고 다른 권위들 앞에서 상처를 또 드러냅니다. 그런 사람은 회사에서도 문제요, 학교에서도 어려운 사람이고 교회에서도 신앙의 깊은 단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37장부터 마지막 50장까지는 요셉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팔려서 애굽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구덩이에 묻어서 생매당을 당할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로 만들어 놓으시고 기근이 왔을 때 부모님과 형님들과 형수들, 그리고 조카들을 애굽으로 모시고 와서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요셉의 형님들은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동생을 팔아먹습니까 그런 형을 어찌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그 아픔과 고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형들을 만나기 전부터 요셉은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돌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감사할 것밖에 없었습니다. 팔려와서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종살이한 것도 감사하고 청지기가 된 것도 감사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미움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한 것도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 바로의 신하들을 만난 것도 감사하고 감옥안에서 꿈을 해석해 주게 된 것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고백한 내용의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나를 넘어뜨리는 사람이 나를 성공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 감사가 됩니다. 형들이 나를 팔았으므로 내가 애굽에 갔고 애굽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을 했기 때문에 감옥에 갔고 그래서 총리가 된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나를 세우고 키워주기 위한 감사한 사람들입니다. 만약 요셉에게 감사가 없었다면 요셉이 총리가 된 다음에는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찾아온 형님들도 보디발의 아내도, 모두가 복수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상황을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민족을 가장 살기 좋은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이루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는 복수를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막아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성장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이땅에 보이는 현상과 사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습니까 아프면 어떻습니까 얼마나 오래갑니까. 그 스트레스가 천국까지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로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열매 맺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감사는 흑암의 권세를 몰아내고 밝은 빛을 비추는 능력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했던 미국인 선교사 헨리 프로스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다가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했지만 고향에서는 슬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내 영혼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흑암의 그림자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선교본부에 들렸다가 본부 벽에 쓰여 있는 “Try Thanks giving” 즉 ‘감사를 시도해보라. ' 라는 글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그 시각부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흑암은 물러가고 내 영혼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
감사는 마귀를 몰아내고 우리 인생의 흑암을 거두고 햇빛을 비춰주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들의 삶 가운데로 모셔드리는 통로입니다. 감사는 패배의 인생을 승리의 인생으로 바꿉니다. 우리는 지난 반년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은혜를 헤아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흠뻑 젖어봅시다.
오늘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때 생명을 살리고 아픔도 슬픔도 치유됩니다. 복수심도 치유됩니다. 사랑할 능력이 생깁니다.
미국 신학자 하비 콕스는 “현대인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감사와 기쁨의 마음은 잊어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셔서 감사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능력 있는 삶을 싶으면 지금부터 감사하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나의 모든 삶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라 내영혼아 감사하라 내영혼아 내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그래서 텐트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까 거지 가족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예배가 끝났는데 그때 마침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그러자 거지 가장이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너는 감사해라. 아버지 잘 만나서 집에 불날 염려도 없지 않나”
그 말에 아들이 맞장구치며 응수했습니다. “맞아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집은 불이 날 염려가 없네요”
그 말이 끝나니까 이번에는 거지 가장이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당신도 남편 잘 만난 것을 감사하시오”
그러자 웃음보가 터지면서 그 거지 가족들이 눈물이 나오도록 웃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 사람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 거지라도 예수 믿으면 저렇게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사는구나”
그래서 이 사업가도 예수 믿고 재기했다고 합니다.
하박국3:17-18절 말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집에서 출발하실 때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셨습니까 예배당에 들어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오늘 준비한 헌금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셨습니까
권필희 집사님의 10. 4. 25일 감사헌금봉투에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참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올립니다. 우리 어머님 99세에도 뼈를 다 고쳐주신 기적을 일으키신 아버지 너무 감사합니다. 식물환자 엄마의 말문도 열어주시고 이젠 정상으로 돌려놓아 주신 아버지, 2년이 다되도록 병간호가 싫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자리에 누워 아프다 소리하지 않고 웃음을 지을 때 너무 고마워요. 제가 울며 기도할 때 주님 말씀하신 말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건너가지 말고 참고 주님 섬기듯 엄마에게 하란 말씀, 그리하여 너의 아들 반듯이 바로 세워 큰 믿음 주리라고 주님 말씀 믿고 열심히 예배 잘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월18일 50명에 전해준 복음의 메시지, 주님 꼭 책임져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오늘 성전에 들어오실 때 이런 감사의 마음이 있었습니까
오늘 읽은 시편 100편을 쓴 사람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분 앞에 나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곧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요, 우리를 지어셨고, 우리를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통치자가 되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길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나아오기 전에 먼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하시든지 감사가 먼저여야 합니다.
성문으로 들어간 후에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성전 문 안에 들어오기 전에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합격을 믿고 시험장에 들어갈 때 먼저 감사하십시오. 취직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취직의 문을 두드립시오.
사업을 시작한다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감사하십시오. 사업의 문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예배드리러 오실 때도 먼저 감사의 마음부터 가지십시오.
기도하러 나오실 때도 감사부터 하십시오. 봉사하러 나오실 때도 감사부터 하십시오. 전도하러 나아오실 때도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찬양대 연습하러 나아오실 때도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 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감사를 잘 하는 사람은 여명을 감사하며 남보다 일찍 일어나 남보다 일찍 감사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내려가는 태양을 보고도 감사합니다. 강대국 임금에게 아부성 발언을 했습니다. ‘당신의 나라는 보름달과 같습니다.
저 나라는 초승달과 같습니다. ’ 그러니까 강대국의 임금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면에 다른 나라 임금이 듣고 있다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언짢아 하는 임금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귀에데 대고 속삭였습니다. ‘보름달은 곧 작아지지만 초승달은 점점 커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초승달보도고 감사할 줄 알고 보름달 보고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 할 줄 모르면 빛을 잃고, 감사를 할 줄 모르면 이웃을 잃고, 감사를 할 줄 모르는 지도자는 부하를 잃고, 감사 할 줄 모르는 대통령은 국민을 잃고, 감사할 줄 모르는 국민은 나라를 잃고 맙니다.
성경에 보면, 감사를 모르는 아담과 하와는 낙원을 잃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을 했던 가인은 아우를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함께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가룟 유다가 감사할 줄 몰라서 스승인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늘이 지붕 되고, 반석위에 집을 짓습니다.
감사 할 줄 알면 나의 부족함이 보입니다.
감사 할 줄 알면 모든 일에서 미룰 것이 없고, 빚을 질 이유도 없고 행복을 쫒아 다닐 수고와 피곤도 없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잠자는 중에도 복을 주십니다.
인생에 보잘 것 없는 끝자락일 지라도 감사하줄 아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영원한 안식에 주인이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먼저 감사해야 하는지 아세요 감사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능력이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봅시다.
첫째, 감사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말씀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도 곧바로 오지 못했습니다. 죽은 나흘째 되던 날에 도착했습니다. 그럴 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하는 말이,
‘예수가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그런데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이 예수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친구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던가’
말은 맞습니다. 장님도 보게 하신 예수님이 친구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죽지 않게 하시는 것보다는 죽은 후에 살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궁시렁 거리는 이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있는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굴이었고 그 문에는 이미 큰 돌로 입구를 막아놓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39절상반절).
그때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기를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수님께서 “내 말을 네가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셨고, 마르다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즉시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마르다가 사람을 시켜서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옮겨놓은 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1절).
그리고 42절에 보면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예수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했기에 자기의 말을 들은 것을 감사한다고 했습니까 아직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앞에 마르다가 돌을 옮긴 것을 두고 한 기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예수님의 말을 들은 것에 해당되며 충분히 감사할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문장 전체를 보면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고 한 ‘내 말’에 해당되는 말은 뒤에 나옵니다. 그 말은 곧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친 말입니다.
예수님이 외치는 ‘나사로야 나오라’는 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한다고 한 것입니다. 나오라고 할 때 나사로가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미리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사로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44절에 보면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나사로가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까 나흘이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냄새가 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예수님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왔습니다.
누가 들은 것입니까 죽은 나사로가 들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들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이 하시는 간구의 기도의 소리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을 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미리 감사하며 사는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예측해서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사함으로 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각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나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아 아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평강이 지켜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염려와 걱정을 없애 주신다는 것입니다.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응답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구하든지 감사함으로 구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감사의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합니다.
교우들 가운데는 매주, 또는 월초에 한 달 동안 가족들을 지켜주실 것을 미리 감사하며 헌금을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리 감사하는 삶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 매주일 마다 감사가 좋은가 하면 감사헌금을 하면 헌금을 하는 사이에 온갖 감사가 다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내용을 같이 나누면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같은 감사의 내용이 검색되어서 같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의 검색기능은 난관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육군 장교 시절 문서위조죄로 시베리아 정치 수용소에 11년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강제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화병으로 쓰러질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감사의 검색기능으로 밝게 살았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수용소 군도’라는 대작을 저술했습니다. 그 책으로 인해서 1970년 노밸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서 솔제니친의 첫마디가 “Thank you Prison"(고마워요 감옥)이었습니다. 감사의 검색은 사막에서도 꽃이 피게 만듭니다.
둘째, 감사는 치유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서울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님,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도 10년을 거뜬히 목회하고 계십니다. 박종순 목사님께서 쓴 신앙고백적인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파하는 양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절망과 싸우며 투병하는 이들을 건성으로 찾곤 했습니다.
힘들겠거니 아프겠거니 고통스럽겠거니 라며 돌아서곤 했습니다. 욥을 생각하시오, 주님을 바라보시오라며 그들 곁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 고통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시간 다퉈 수술해야 된다는 의사가 야속했습니다. 발병 원인이 스트레스라는데 원인 제공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입원하기 전날 책상 위에 쌓인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픈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덩그런 병실 거긴 존폐와 생사의 싸움터. 고독과 갈등의 교차로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했습니다. 죽고 삶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마음 바꿈이 문제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주님 감사합니다!” 대문자로 썼습니다. 무려 서른 가지 넘는 감사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나하나 써 내려가며 흐느꼈습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자 기도가 터지고 찬송이 열렸습니다.
그날부터 병실은 감사와 감격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생명을 건 수술 참말로 아팠습니다. 꿰맨 수술자리 움직일 때마다 소스라치게 쓰렸습니다. 그 때마다 입으로만 읋조리던 십자가의 아픔 그 곁에로 곁으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내 아픔은 주님 고난의 억천만분의 하나에도 비길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은혜로 살고 외치고 일하는 지금 그때 그 감동을 잃을까봐 순간마다 자신을 두들겨 팹니다.
주님, 우리 모두가 무화과 열매가 없어도, 포도가 없어도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주님을 인하여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삶이 가파르고 힘겹더라도 크신 구원과 섭리를 인하여 감격하게 하소서.
그날의 그 기도들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박종순 목사님은 감사를 회복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 치유되어 오늘도 목회를 하며 한국교회를 위하여 앞장서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먼저 감사부터 하십시오. 불평과 원망은 오히려 나의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더 심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셋째, 감사는 슬픔과 아픔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슬픔의 씨를 뿌릴 수 없다”는 노르웨이의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이 나온 노르웨이 민화가 있습니다. 사탄이 하필 노르웨이에 창고를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미움, 슬픔, 눈물의 씨들이 저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놀란 것은 한 동네만은 어떤 씨를 뿌려도 효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동네는 “감사의 마을”이었기 때문입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어떤 슬픈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기 때문에 눈물의 씨앗이 효력을 발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뉴욕타임즈는 '두 친구'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아주 가까운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미국인 유학생이고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 한 친구는 자살로서 끝났습니다.
두 친구의 차이점은 단순히 한 사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다른 사람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클린턴의 친구는 프랭크 알렌이었는데 두뇌와 경제적 배경이 클린턴보다 나았으나, 늘 불평이 많아 투덜거리며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은 가난한 집에서 두 이복 동생을 돌보며 언제나 사회를 낙관적으로 보고 늘 어머니께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넷째, 감사함은 복수심을 극복하고 사랑할 수 능력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무조건 불평하거나 남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대통령이 나와도 미워하고 욕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욕하고 교회에서는 목사를 미워하고 욕합니다. 회사에서는 사장을 미워합니다.
그러면서도 따라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권위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권위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상처를 받은 것을 표출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그리고 다른 권위들 앞에서 상처를 또 드러냅니다. 그런 사람은 회사에서도 문제요, 학교에서도 어려운 사람이고 교회에서도 신앙의 깊은 단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37장부터 마지막 50장까지는 요셉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팔려서 애굽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구덩이에 묻어서 생매당을 당할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로 만들어 놓으시고 기근이 왔을 때 부모님과 형님들과 형수들, 그리고 조카들을 애굽으로 모시고 와서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요셉의 형님들은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동생을 팔아먹습니까 그런 형을 어찌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그 아픔과 고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형들을 만나기 전부터 요셉은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돌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감사할 것밖에 없었습니다. 팔려와서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종살이한 것도 감사하고 청지기가 된 것도 감사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미움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한 것도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 바로의 신하들을 만난 것도 감사하고 감옥안에서 꿈을 해석해 주게 된 것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고백한 내용의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나를 넘어뜨리는 사람이 나를 성공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 감사가 됩니다. 형들이 나를 팔았으므로 내가 애굽에 갔고 애굽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을 했기 때문에 감옥에 갔고 그래서 총리가 된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나를 세우고 키워주기 위한 감사한 사람들입니다. 만약 요셉에게 감사가 없었다면 요셉이 총리가 된 다음에는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찾아온 형님들도 보디발의 아내도, 모두가 복수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상황을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민족을 가장 살기 좋은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이루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는 복수를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막아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성장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이땅에 보이는 현상과 사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습니까 아프면 어떻습니까 얼마나 오래갑니까. 그 스트레스가 천국까지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로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열매 맺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감사는 흑암의 권세를 몰아내고 밝은 빛을 비추는 능력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했던 미국인 선교사 헨리 프로스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다가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했지만 고향에서는 슬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내 영혼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흑암의 그림자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선교본부에 들렸다가 본부 벽에 쓰여 있는 “Try Thanks giving” 즉 ‘감사를 시도해보라. ' 라는 글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그 시각부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흑암은 물러가고 내 영혼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
감사는 마귀를 몰아내고 우리 인생의 흑암을 거두고 햇빛을 비춰주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들의 삶 가운데로 모셔드리는 통로입니다. 감사는 패배의 인생을 승리의 인생으로 바꿉니다. 우리는 지난 반년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은혜를 헤아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흠뻑 젖어봅시다.
오늘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때 생명을 살리고 아픔도 슬픔도 치유됩니다. 복수심도 치유됩니다. 사랑할 능력이 생깁니다.
미국 신학자 하비 콕스는 “현대인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감사와 기쁨의 마음은 잊어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셔서 감사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능력 있는 삶을 싶으면 지금부터 감사하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나의 모든 삶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라 내영혼아 감사하라 내영혼아 내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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