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감사의 사람입니까?
본문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C. S루이스가 영국의 유명한 대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올 때 한 청년이 다가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찌 이 많은 지구상에 고통이 존재할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C. S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내 말을 들어보게나. 고통이 있어도 이렇게 교만한 인생인데 고통마저 없다면 인간들은 얼마나 더 교만할까 귀먹어 있는 인생들에게 들려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확성기 그것이 바로 고난일세 하면서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의 신비, 고난의 문제 늘 우리가 풀어가야할 문제입니다. 지난주 설교하면서 몇 년전 화제작인 밀양을 잠깐 소개했습니다. 영화 밀양의 여 주인공 이신애 역으로 나왔던 전도연씨가 그런말을 했습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분이 사랑이시라면 왜 죄없는 순진무구한 우리아들이 그렇게 죽을수 있습니까. 어떻게 죄없는 우리아들이 납치당해서 그렇게 죽을 수 있습니까하며 하소연하는 그런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렇습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풀지못할 숙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욥기서의 주제는 왜 죄없는 인간에게 고난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왜 죄없는 인간에게 고난이 찾아오는가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정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이 잔치를 벌이고나면 혹 부지불식간에 범죄했을까봐 그 아들 하나하나를 위해서 번제를 드릴정도로 여호와 하나님앞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욥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먼저는 소유가 다 강탈당했습니다. 스바와 갈대아 사람들이 몰려와서 양과 소와 낙타와 재물들을 모두 강탈해 갔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그 종들마저 태워버렸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들 7과 딸 3이 있는데 그 10남매가 집이무너저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그 다음에는 욥의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이 극심한 피부병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서 기왓장을 가지고 자기몸을 긁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집니다. 오죽했으면 보다못한 부인이 말하기를 화를 주신 그런 여호와 하나님 뭐하러 섬기느냐 저주하고 죽으라고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결국 욥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이 정도쯤되면 왜 죄없는 욥에게 고난이 찾아왔을까 물론 이 문제는 욥기서의 배후에 있는 사단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가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단이 욥을 시기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욥이 까닭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압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잘되게 하시고 성공하게 하시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지 그 소유물을 다 뺏아도 예배할 줄 아십니까 하면서 욥을 고소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욥은 그런사람이 아니야 네가 한번 시험해 봐라 소유만은 내가 허락하겠다 그래서 소유를 다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단이 와서 2번째로 욥을 고소합니다. 소유를 빼앗았지만 아직 그가 건강하니까 살만하니까 그런거지 그에게서 건강을 빼앗으면 그래도 욥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회할줄 아느냐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허락했습니다. 욥의 생명만은 건들이지 말아라. 그러나 네가 그의 건강은 칠수 있다. 그래서 욥이 하루아침에 건강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가지 고난의 특징을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먼저 고난에는 분량이 있고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계속 쏟아 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분량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욥의 생명만은 건들이지 말아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주셨습니다. 고난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그 고난을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도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즈음 피할길을 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감당할지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이길수 있는 힘이 이미 있는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감당치못할 시련은 주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고난은 분량이 있습니다. 고난당한다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나 혼자 고난을 당하는 것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욥기 23장 10절을 보니까 오직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내가 고통당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 고난은 나 혼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에는 반드시 유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119편 71절에 보니까 고난당한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고난은 아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배울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 이 고난이 내게 왜 왔을까 죄로 인한 것이라면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우린 그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법도와 섭리를 깨달아야 할 줄 믿습니다.
또한 고난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주어지는 의미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니까 그가 나를 단련하신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랬습니다. 정금같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이 무엇입니까 순수하고 불순물이 없는 금처럼 내가 주님앞에 설수 있을 것이다. 고난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연단시켜서 더 훌륭한 인격자로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앞에서 낙심하면 안됩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고난을 딛고 승리해야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욥이 이 고난을 어떻게 이기고 승리자가 되었을까 욥의 모습속에서 고난을 이기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욥은 고난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런 고난이 찾아오면 어디 예배할 생각이 나겠습니까. 예배 다 때려치우자 여호와 하나님 복도 안주시는데 뭐하러 예배드리러가냐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욥기 1장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어떻게 이런 고난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을까요. 옛날 성경에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스런 상황속에서 10명의 자식이 죽임을 당한 그 상황속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욥의 위대한 점입니다.
욥의 아내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을 뭐하러믿느냐 저주하고 죽어라고 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그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셨은 즉 화도주시지 않겠느냐 욥은 과거에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의 생명의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예배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앞에 더 가까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중에 고난당하는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그랬습니다. 고난당할 때 여호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앞에 더 가까이 나오라는 것입니다. 너희속에 즐거워하는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기도와 찬송은 예배인 것입니다. 고난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질때 여호와 하나님앞에 가까이 나오셔서 예배하는 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게 고난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고난이 힘들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예배를 멀리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절망에 떨어지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올때 한번 예배드리던 사람은 두 번 예배드리고 두 번예배드리던 사람은 세 번 예배드립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회복하는 길인 것입니다. 예배를 더 견고히 붙들어야 합니다.
또 욥은 고난당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욥의 위대한 고백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주신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취한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다시 알몸으로 돌아갈지니라. 이게 무슨말입니까. 알몸이라는 것은 적신이라고 표현하는데 벌거벗은 몸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였습니다. 많은 재산이 강탈당했지만 그것은 내것 잃어버린게 아닙니다. 자녀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내 자식이 죽은게 아닙니다. 그것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게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고난당할 때 주신분도 여호와시오 가져가신분도 여호와라는 고백을 드릴때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너무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남편이 해외로 일하러 갔는데 이 아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자기 남편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너무나 답답합니다. 남편을 공항으로 맞이하러 나갔는데 남편이 묻습니다. 왜 아이는 안데리고 왔느냐고 그때 아내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
어떤 분이 우리집에 아주귀한 보석하나를 맡겨놓고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잠시 맡아 달라고 부탁한겁니다. 그런데 그 분이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 보석을 달랍니다. 여보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해요 남편이 말합니다. 그거야 주인이 달라면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그때 부인이 말합니다. 여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귀한 보석을 맡겨놓으셨다가 때가 돼서 찾아가셨어요. 그 보석이 우리 아들이에요. 그제서야 남편이 이해를하고 수긍을하고 받아드리더라하는 것입니다. 보석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자녀일지라도 그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욥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자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욥은 고난당할 때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욥의 위대한 점입니다.
1장 22절 말씀입니다. 이 모든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일 당하면 제일 범하기 쉬운죄가 뭔가요. 입술로 범죄하는 겁니다. 특히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그런데 욥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아니하였더라.
이게 욥의 위대한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쉽게 범죄하는 것 입술이거든요. 조금만 힘들면 누구탓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가데스바네아땅에서 먹을 물이 없으니까 양식도 없고 가나안땅을 향해서 왔는데 너무너무 그 성은 견고하다고 하니까 기가 죽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만드느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모세를 향해 불평했습니다. 그러다가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욥의 위대한 점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범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말로 범죄를 너무나 많이 합니다. 고난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축복을 받기도 전에 입술로 다 쏟아 버렸습니다. 다 누구탓입니다. 부인탓이고 형제탓이고 부모탓이고 남편탓이고 누구탓, 누구탓해서 원망하다가 복을 다 쏟아버립니다. 이게 참 안타까운 겁니다. 고난은 고난대로 당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을 받지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명 얼마나 안됐습니까. 힘들고 어려울때에 입술로 범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입술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문제를 이야기할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으면 구원받는 것인가 아닙니다.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말에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입술이 고난당할 때 범죄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십시오.
그래서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내 입에 파숫꾼을 세워 주셔서 입수로 범죄하는 그런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욥은 고난당할 때 가장중요한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1장 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욥이 어떻게 이런상황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적어도 그의 마음에 감사가 넘치지 않고서는 찬양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진정한 찬양은 그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가 가득찰 때 진정한 찬양입니다. 우리 성가대가 오늘도 귀한 찬양을 불렀지만 우리가 찬양을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지 않으면 그것은 노래일뿐이지 찬양은 아닙니다. 진정 내 마음속에 구원의 감사, 보호하심에 감사, 은혜의 감사가 넘칠때 진정한 찬양이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이 내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노래부르는 것이지 찬양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찬양을 받으실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가대원들은 찬양하기전에 기도많이 해야합니다. 내 마음을 비워야합니다. 회개해야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로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욥의 마음에는 감사가 가득차있었다하는 겁니다. 이 고난속에서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최고의 단계는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좋을때도 감사하지만 어렵고 힘들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기자의 신앙을 최고의 신앙으로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외양간에 소가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을지라도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찬양하리이다. 가진것이 없어도 복을받지 못해도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찬양할수 있는 신앙, 이게 참된 신앙입니다.
감사는 또한 놀라운 기적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욥이 이 고난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의 욥의 노년, 욥의 노년에 여호와 하나님은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다 지나가고 환경과 인생이 다 회복됩니다. 갑절의 복을 받습니다. 감사에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사역속에도 늘 감사가 선명했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 예수님은 물고기2마리와 떡5개를 높이드시고 하늘을 향해 축사하셨다 축사라는 말은 원어로 감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시고 떡을 떼어줄 때 5천명의 무리가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의 무덤앞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시고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할때 나사로가 걸어나올수가 있었습니다. 기적의 현장에는 늘 감사가 선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 만찬을 나누면서 떡과 잔을 드시고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부활하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와서 치료받았지만 9명은 돌아가버리고 한명만 돌아와서 무릎꿇고 예수님께 사례할 때 그만이 진정한 구원 영원한 구원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감사가 기적의 출발이 되었다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부르는 감사가 여러분의 삶에 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오늘도 기적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늘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타락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기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속성이 더 빠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건들을 달아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말씀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늘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늘 감사하지 못하니까 감사의 복을 뽀너스로 주셨습니다. 감사할 때 복이오고 감사할 때 행복의 문이 열리고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감사의 뽀너스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모든 매를 맞고도 여호와 하나님앞에 찬양하며 기도할 때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간수장의 가족까지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간에 마석기도원에가서 이틀정도 있었는데 권사님이 아주 맛있게 점심을 차려 주시면서 점심먹고나서 토마토를 썰어서 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집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토마토를 아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커서는 토마토를 별로 안먹었습니다. 토마토라는게 별로 맛이 없잖습니까.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손이 잘 안갔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토마토를 짤라서 오셨는데 한쪽 접시에 흑설탕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래서 토마토를 설탕에 찍어먹으면 어떨까해서 한번 찍어먹어봤더니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습니다. 토마토가 그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 먹으면 무슨맛이 있습니까. 흑설탕 찍어 먹으니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습니다.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에와서 토마토를 주길래 흑설탕 달라고 해서 찍어먹었더니 그렇게 맛있더라구요. 역시 토마토는 흑설탕 맛에 먹는 겁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인데 감사할 줄 모르니까 거기에 뽀너스를 덧붙여 주셨습니다. 흑설탕같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감사하는자에게 행복의 문이 열려지게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뇔르 넬슨의 소망을 이루는 감사의 힘이라는 책을 소개한적이 있습니다. 2001년 8월 한 7명이 모여서 감사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감사훈련을 하고 감사를 점검하고 감사에 대한 간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지 꼭 2달 후에 그들이 놀라운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딸하고 관계가 안좋았습니다. 말도 안하고 얼굴도 안봅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딸과의 관계가 극적으로 화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근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 나가면 재미도 없고 인정도 못받고 직장에 가기도 싫습니다. 그는 직장에 갈때마다 감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게 일할 수 있는 직장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로 시작을 했더니 직장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능률적으로 일하게 되고 그는 2달만에 진급이 되어져서 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친구도 없고 너무나 외톨이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감사하면서 살았더니 친구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삶이 활력이 있고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참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이런 감사의 간증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0번씩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과학의 원리를 발견해 낸 선배과학자들을 생각하면서 늘 감사했습니다. 그는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상대성이론을 발견해 낼 수 있었습니다.
화성에서온 남자 금성에서온 여자라는 위대한 책을 낸 존 그레이박사는 말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감사하면 놀라운 행복의 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가정에 행복의 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좀 변화시키고 싶으십니까 오늘부터 감사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감사는 기적의 열쇠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부르는 에너지다라는 겁니다.
어떤 분이 삶이 재미도 없고 일도 잘 안풀립니다. 그래서 이제는 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자꾸 잊습니다. 전에 제가 고무밴드 나눠드린적도 있었는데 하다보니까 잊고 풀어버리고 그렇습니다. 이분은 길을 가다보니까 길가에 차돌 돌맹이가 좋은게 있는데 그것을 잘 씻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내가 이 차돌을 만질 때마다 감사해야지 생각했습니다. 차돌을 만질때 아 감사해야지 하면서 늘 감사했습니다. 옷을 입을 때 벗고 살지않고 옷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식먹을 때 굶지않고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걸어갈 때 다리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평범한 삶인데 감사하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생명주심을 감사합니다. 지난밤 잘 자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이 변화가 온겁니다. 어려웠던 사업이 풀려지기 시작하고 가정에 행복이 오기 시작하고 너무너무 좋아서 열심히 돌을 만질때마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것을 땅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누군가 보더니 그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자초지정을 이야기해줬습니다. 나는 이 조약돌을 만질때마다 감사한다고 하루에 수백번씩 감사하게 된다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 그분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우리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는데 나한테 그 감사의 조약돌 3개만 보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돌을 주워서 잘 씻어서 보내줬습니다. 그랬더니 한달후에 편지가 왔는데 그 감사의 조약돌을 받은 후부터 감사하기 시작했더니 우리 아들의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소식은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자기한테도 감사의 돌을 달라고 해서 1000개 이상을 10불씩 받고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모았는데 이것으로 자선기금으로 쓸려고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감사의 기적,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에 대한 책만 나온것도 수십권이 넘습니다. 사람들의 실험의 결과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한번 실천해보지 않겠습니까. 오늘부터 감사를 실천하십시오. 하루에 100번씩만 감사를 외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먹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입맛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감사가 날마다 넘치고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의 신비, 고난의 문제 늘 우리가 풀어가야할 문제입니다. 지난주 설교하면서 몇 년전 화제작인 밀양을 잠깐 소개했습니다. 영화 밀양의 여 주인공 이신애 역으로 나왔던 전도연씨가 그런말을 했습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분이 사랑이시라면 왜 죄없는 순진무구한 우리아들이 그렇게 죽을수 있습니까. 어떻게 죄없는 우리아들이 납치당해서 그렇게 죽을 수 있습니까하며 하소연하는 그런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렇습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풀지못할 숙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욥기서의 주제는 왜 죄없는 인간에게 고난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왜 죄없는 인간에게 고난이 찾아오는가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정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이 잔치를 벌이고나면 혹 부지불식간에 범죄했을까봐 그 아들 하나하나를 위해서 번제를 드릴정도로 여호와 하나님앞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욥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먼저는 소유가 다 강탈당했습니다. 스바와 갈대아 사람들이 몰려와서 양과 소와 낙타와 재물들을 모두 강탈해 갔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그 종들마저 태워버렸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들 7과 딸 3이 있는데 그 10남매가 집이무너저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그 다음에는 욥의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이 극심한 피부병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서 기왓장을 가지고 자기몸을 긁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집니다. 오죽했으면 보다못한 부인이 말하기를 화를 주신 그런 여호와 하나님 뭐하러 섬기느냐 저주하고 죽으라고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결국 욥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이 정도쯤되면 왜 죄없는 욥에게 고난이 찾아왔을까 물론 이 문제는 욥기서의 배후에 있는 사단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가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단이 욥을 시기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욥이 까닭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압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잘되게 하시고 성공하게 하시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지 그 소유물을 다 뺏아도 예배할 줄 아십니까 하면서 욥을 고소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욥은 그런사람이 아니야 네가 한번 시험해 봐라 소유만은 내가 허락하겠다 그래서 소유를 다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단이 와서 2번째로 욥을 고소합니다. 소유를 빼앗았지만 아직 그가 건강하니까 살만하니까 그런거지 그에게서 건강을 빼앗으면 그래도 욥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회할줄 아느냐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허락했습니다. 욥의 생명만은 건들이지 말아라. 그러나 네가 그의 건강은 칠수 있다. 그래서 욥이 하루아침에 건강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가지 고난의 특징을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먼저 고난에는 분량이 있고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계속 쏟아 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분량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욥의 생명만은 건들이지 말아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주셨습니다. 고난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그 고난을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도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즈음 피할길을 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감당할지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이길수 있는 힘이 이미 있는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감당치못할 시련은 주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고난은 분량이 있습니다. 고난당한다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나 혼자 고난을 당하는 것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욥기 23장 10절을 보니까 오직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내가 고통당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 고난은 나 혼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에는 반드시 유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119편 71절에 보니까 고난당한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고난은 아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배울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 이 고난이 내게 왜 왔을까 죄로 인한 것이라면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우린 그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법도와 섭리를 깨달아야 할 줄 믿습니다.
또한 고난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주어지는 의미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니까 그가 나를 단련하신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랬습니다. 정금같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이 무엇입니까 순수하고 불순물이 없는 금처럼 내가 주님앞에 설수 있을 것이다. 고난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연단시켜서 더 훌륭한 인격자로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앞에서 낙심하면 안됩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고난을 딛고 승리해야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욥이 이 고난을 어떻게 이기고 승리자가 되었을까 욥의 모습속에서 고난을 이기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욥은 고난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런 고난이 찾아오면 어디 예배할 생각이 나겠습니까. 예배 다 때려치우자 여호와 하나님 복도 안주시는데 뭐하러 예배드리러가냐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욥기 1장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어떻게 이런 고난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을까요. 옛날 성경에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스런 상황속에서 10명의 자식이 죽임을 당한 그 상황속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욥의 위대한 점입니다.
욥의 아내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을 뭐하러믿느냐 저주하고 죽어라고 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그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셨은 즉 화도주시지 않겠느냐 욥은 과거에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의 생명의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예배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앞에 더 가까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중에 고난당하는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그랬습니다. 고난당할 때 여호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앞에 더 가까이 나오라는 것입니다. 너희속에 즐거워하는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기도와 찬송은 예배인 것입니다. 고난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질때 여호와 하나님앞에 가까이 나오셔서 예배하는 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게 고난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고난이 힘들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예배를 멀리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절망에 떨어지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올때 한번 예배드리던 사람은 두 번 예배드리고 두 번예배드리던 사람은 세 번 예배드립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회복하는 길인 것입니다. 예배를 더 견고히 붙들어야 합니다.
또 욥은 고난당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욥의 위대한 고백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주신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취한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다시 알몸으로 돌아갈지니라. 이게 무슨말입니까. 알몸이라는 것은 적신이라고 표현하는데 벌거벗은 몸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였습니다. 많은 재산이 강탈당했지만 그것은 내것 잃어버린게 아닙니다. 자녀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내 자식이 죽은게 아닙니다. 그것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게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고난당할 때 주신분도 여호와시오 가져가신분도 여호와라는 고백을 드릴때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너무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남편이 해외로 일하러 갔는데 이 아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자기 남편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너무나 답답합니다. 남편을 공항으로 맞이하러 나갔는데 남편이 묻습니다. 왜 아이는 안데리고 왔느냐고 그때 아내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
어떤 분이 우리집에 아주귀한 보석하나를 맡겨놓고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잠시 맡아 달라고 부탁한겁니다. 그런데 그 분이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 보석을 달랍니다. 여보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해요 남편이 말합니다. 그거야 주인이 달라면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그때 부인이 말합니다. 여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귀한 보석을 맡겨놓으셨다가 때가 돼서 찾아가셨어요. 그 보석이 우리 아들이에요. 그제서야 남편이 이해를하고 수긍을하고 받아드리더라하는 것입니다. 보석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자녀일지라도 그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욥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자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욥은 고난당할 때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욥의 위대한 점입니다.
1장 22절 말씀입니다. 이 모든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일 당하면 제일 범하기 쉬운죄가 뭔가요. 입술로 범죄하는 겁니다. 특히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그런데 욥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아니하였더라.
이게 욥의 위대한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쉽게 범죄하는 것 입술이거든요. 조금만 힘들면 누구탓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가데스바네아땅에서 먹을 물이 없으니까 양식도 없고 가나안땅을 향해서 왔는데 너무너무 그 성은 견고하다고 하니까 기가 죽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만드느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모세를 향해 불평했습니다. 그러다가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욥의 위대한 점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범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말로 범죄를 너무나 많이 합니다. 고난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축복을 받기도 전에 입술로 다 쏟아 버렸습니다. 다 누구탓입니다. 부인탓이고 형제탓이고 부모탓이고 남편탓이고 누구탓, 누구탓해서 원망하다가 복을 다 쏟아버립니다. 이게 참 안타까운 겁니다. 고난은 고난대로 당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을 받지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명 얼마나 안됐습니까. 힘들고 어려울때에 입술로 범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입술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문제를 이야기할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으면 구원받는 것인가 아닙니다.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말에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입술이 고난당할 때 범죄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십시오.
그래서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내 입에 파숫꾼을 세워 주셔서 입수로 범죄하는 그런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욥은 고난당할 때 가장중요한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1장 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욥이 어떻게 이런상황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적어도 그의 마음에 감사가 넘치지 않고서는 찬양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진정한 찬양은 그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가 가득찰 때 진정한 찬양입니다. 우리 성가대가 오늘도 귀한 찬양을 불렀지만 우리가 찬양을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지 않으면 그것은 노래일뿐이지 찬양은 아닙니다. 진정 내 마음속에 구원의 감사, 보호하심에 감사, 은혜의 감사가 넘칠때 진정한 찬양이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이 내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노래부르는 것이지 찬양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찬양을 받으실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가대원들은 찬양하기전에 기도많이 해야합니다. 내 마음을 비워야합니다. 회개해야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로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욥의 마음에는 감사가 가득차있었다하는 겁니다. 이 고난속에서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최고의 단계는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좋을때도 감사하지만 어렵고 힘들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기자의 신앙을 최고의 신앙으로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외양간에 소가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을지라도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찬양하리이다. 가진것이 없어도 복을받지 못해도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찬양할수 있는 신앙, 이게 참된 신앙입니다.
감사는 또한 놀라운 기적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욥이 이 고난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의 욥의 노년, 욥의 노년에 여호와 하나님은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다 지나가고 환경과 인생이 다 회복됩니다. 갑절의 복을 받습니다. 감사에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사역속에도 늘 감사가 선명했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 예수님은 물고기2마리와 떡5개를 높이드시고 하늘을 향해 축사하셨다 축사라는 말은 원어로 감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시고 떡을 떼어줄 때 5천명의 무리가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의 무덤앞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시고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할때 나사로가 걸어나올수가 있었습니다. 기적의 현장에는 늘 감사가 선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 만찬을 나누면서 떡과 잔을 드시고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부활하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와서 치료받았지만 9명은 돌아가버리고 한명만 돌아와서 무릎꿇고 예수님께 사례할 때 그만이 진정한 구원 영원한 구원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감사가 기적의 출발이 되었다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부르는 감사가 여러분의 삶에 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오늘도 기적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늘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타락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기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속성이 더 빠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건들을 달아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말씀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늘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늘 감사하지 못하니까 감사의 복을 뽀너스로 주셨습니다. 감사할 때 복이오고 감사할 때 행복의 문이 열리고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감사의 뽀너스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모든 매를 맞고도 여호와 하나님앞에 찬양하며 기도할 때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간수장의 가족까지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간에 마석기도원에가서 이틀정도 있었는데 권사님이 아주 맛있게 점심을 차려 주시면서 점심먹고나서 토마토를 썰어서 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집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토마토를 아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커서는 토마토를 별로 안먹었습니다. 토마토라는게 별로 맛이 없잖습니까.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손이 잘 안갔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토마토를 짤라서 오셨는데 한쪽 접시에 흑설탕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래서 토마토를 설탕에 찍어먹으면 어떨까해서 한번 찍어먹어봤더니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습니다. 토마토가 그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 먹으면 무슨맛이 있습니까. 흑설탕 찍어 먹으니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습니다.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에와서 토마토를 주길래 흑설탕 달라고 해서 찍어먹었더니 그렇게 맛있더라구요. 역시 토마토는 흑설탕 맛에 먹는 겁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인데 감사할 줄 모르니까 거기에 뽀너스를 덧붙여 주셨습니다. 흑설탕같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감사하는자에게 행복의 문이 열려지게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뇔르 넬슨의 소망을 이루는 감사의 힘이라는 책을 소개한적이 있습니다. 2001년 8월 한 7명이 모여서 감사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감사훈련을 하고 감사를 점검하고 감사에 대한 간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지 꼭 2달 후에 그들이 놀라운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딸하고 관계가 안좋았습니다. 말도 안하고 얼굴도 안봅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딸과의 관계가 극적으로 화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근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 나가면 재미도 없고 인정도 못받고 직장에 가기도 싫습니다. 그는 직장에 갈때마다 감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게 일할 수 있는 직장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로 시작을 했더니 직장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능률적으로 일하게 되고 그는 2달만에 진급이 되어져서 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친구도 없고 너무나 외톨이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감사하면서 살았더니 친구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삶이 활력이 있고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참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이런 감사의 간증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0번씩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과학의 원리를 발견해 낸 선배과학자들을 생각하면서 늘 감사했습니다. 그는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상대성이론을 발견해 낼 수 있었습니다.
화성에서온 남자 금성에서온 여자라는 위대한 책을 낸 존 그레이박사는 말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감사하면 놀라운 행복의 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가정에 행복의 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좀 변화시키고 싶으십니까 오늘부터 감사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감사는 기적의 열쇠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부르는 에너지다라는 겁니다.
어떤 분이 삶이 재미도 없고 일도 잘 안풀립니다. 그래서 이제는 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자꾸 잊습니다. 전에 제가 고무밴드 나눠드린적도 있었는데 하다보니까 잊고 풀어버리고 그렇습니다. 이분은 길을 가다보니까 길가에 차돌 돌맹이가 좋은게 있는데 그것을 잘 씻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내가 이 차돌을 만질 때마다 감사해야지 생각했습니다. 차돌을 만질때 아 감사해야지 하면서 늘 감사했습니다. 옷을 입을 때 벗고 살지않고 옷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식먹을 때 굶지않고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걸어갈 때 다리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평범한 삶인데 감사하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생명주심을 감사합니다. 지난밤 잘 자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이 변화가 온겁니다. 어려웠던 사업이 풀려지기 시작하고 가정에 행복이 오기 시작하고 너무너무 좋아서 열심히 돌을 만질때마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것을 땅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누군가 보더니 그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자초지정을 이야기해줬습니다. 나는 이 조약돌을 만질때마다 감사한다고 하루에 수백번씩 감사하게 된다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 그분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우리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는데 나한테 그 감사의 조약돌 3개만 보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돌을 주워서 잘 씻어서 보내줬습니다. 그랬더니 한달후에 편지가 왔는데 그 감사의 조약돌을 받은 후부터 감사하기 시작했더니 우리 아들의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소식은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자기한테도 감사의 돌을 달라고 해서 1000개 이상을 10불씩 받고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모았는데 이것으로 자선기금으로 쓸려고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감사의 기적,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에 대한 책만 나온것도 수십권이 넘습니다. 사람들의 실험의 결과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한번 실천해보지 않겠습니까. 오늘부터 감사를 실천하십시오. 하루에 100번씩만 감사를 외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먹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입맛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감사가 날마다 넘치고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