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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맥추감사절을 지키라

본문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합시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신 것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성경의 모든 비밀들을 보면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살아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이 은혜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시키는 절기를 크게 셋으로 주셨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오는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칠칠절 즉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열매를 거둡니다. 그래서 처음 열매를 거둔다고 해서 초실절, 유월절 후 칠주가 지났다고 해서 칠칠절로 표현합니다.
또 가을이 오면 농사를 지어서 모든 곡식을 거두어 저장하고 장막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수장절, 장막절이 있습니다.
이 절기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며 즐거워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는 아무나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만 지켰습니다. 똑같이 출애굽을 했지만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생각해 볼 때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은혜받지 못한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절기의 축제를 맛볼 수 없습니다. 축제는 공동체의 기쁨을 말하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만이 이 절기를 맛보게 됩니다. 예수를 믿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제의 깊은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그냥 탄식하다가 인생을 끝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종류로 구별합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똑같은 이스라엘 백성인데 애굽에 있을 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 채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왔을 때는 광야라는 세계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앞세우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은 광야에서 배회하다가 다 죽고 여호수아, 갈렙과, 제2세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와, 절기를 지키는 행복을 얻게 됩니다.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첫째 애굽 신자입니다. 세상 속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택함을 입었지만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세상과 짝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광야 신자입니다. 광야 신자는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와서 광야에 있듯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여전히 은혜를 받지 못한채 의심과 믿음을 오가며 힘들게 예수 믿으면서 세상 사람도 아니고 교인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가나안 신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신령한 신자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감격하며 지내는 신자입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세상 속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이끌어내어 교회로, 교회에 온 광야 신자들을 인도하여 천국의 맛을 볼 수 있는 신령한 신자로 변화시킵니다.
광야 신자는 교회에 오기는 왔는데 세상 것으로 만족하려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나안 신자가 되어 광야를 빨리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령한 꼴로 심령을 채우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맥추절을 맞이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맥추절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맥추절을 지키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요
1. 맥추절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11절하)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11절하)
은혜받은 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내가 은혜받고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애굽의 세계, 세상의 세계를 못잊어서 거기에 매여있는가 한번 돌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행복하게 살려고 사는 것입니다. 어디에 행복이 있나 어디에서 즐거움을 얻나 인간은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즐거움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얻기까지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나는 안식이 없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기까지 이 세상의 즐거움은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있고 세상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있는데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했고 솔로몬은 세상에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누렸던 다윗은 그의 즐거움이 영원한 것이요, 하늘의 즐거움이요, 환난이나 곤고나 어떤 역경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낙으로 즐거움을 누렸던 솔로몬은 일시적인 것이요, 공허한 것이요, 결국 후회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모든 낙을 누리려고 했지만 모든 것이 다 헛되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같은 즐거움을 찾으려고 합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으로 인생의 어떤 낙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교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즐거움은 없습니다. 기왕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라면 빨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광야에서 배회한 만큼 자기 생을 불쌍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1절에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라고 했습니다.
포도주와 젖이 뭡니까 포도주는 즐거움이고 젖은 만족입니다. 사람들은 목마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즐거움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만족을 얻을까, 즐거움을 얻을까' 해서 참 양식도 아닌 것에 돈을 쓰고 만족할 수 없는 것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성전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인생을 즐겁게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즐거움을 여기에서 얻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얻기 위해서 돈을 뿌리지만 만족을 얻지 못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돈을 쓰지만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돈이 없이도 얼마든지 만족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헤매고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즐거움을 얻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함을 얻으십시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즐겁게 믿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결코 즐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 즐거움을 주님안에서 맛보았기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라고 부르짖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축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제를 벌이며 즐거워하라고 이 절기를 주셨습니다. 즐거움이 넘치게 하려고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참 즐거움을 맛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함으로 더 행복해지기 바랍니다.
2, 맥추절에는 이웃과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11절)
이 즐거움은 사랑의 즐거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내 이웃과 나눔으로 맛보는 즐거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즐거움은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먼저 즐거움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은 가족들입니다. 가족들과 웃고 살아야 합니다.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 하라(잠언5:18)" 그리고 노비는 오늘로 치면 종업원 또는 직장 동료를 의미합니다. 또 레위인은 목회자를 의미합니다. 당시에 레위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살았습니다. 따라서 추수할 밭도 과수원도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자기 가족과만 잔치를 하고 즐기면 레위인은 다른 백성들과는 달리 아주 우울한 절기를 보내야 합니다.
교인들은 주의 종과 즐거움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거나 가족을 잃고 가난하게 사는 이들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누군가 돌보아 주지 않으면 절기가 고통스런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위에 외로운 사람, 불행한 사람을 찾아 돌아보고 함께 즐거움을 나눌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서로 이웃과 나눔으로 확신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독점해서는 안됩니다. 하늘은 모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누어야 합니다. 나의 즐거움이 다른 사람의 슬픔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즐거움이 모두의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 즐거움만이 나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의 은혜가 됩니다. 천국은 공동체의 즐거움을 나누는 세계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즐거워 하는 곳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즐거움을 공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절기는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공동체의 즐거움이요, 축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움에 취하여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 가족만을 챙기기 쉽습니다. 우리가 서로 돌아보며 적극적으로 주는 삶, 베푸는 삶을 실천할 때 받는 것을 통해 누리는 기쁨보다 열 배나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혼자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돌아보아 한 사람이라도 함께 즐거움을 나누며 맥추절을 복되게 보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맥추절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10)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11절)
이것은 소망의 즐거움인데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즐거움입니다. 16절을 보면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릴지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시험드는 사람이 있고 은혜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빈손으로 여호와께 오지 말라 야 복받을 기회다. ' 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올 때마다 빈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들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와 외가에 갔는데 우리집이 너무 너무 가난하니까 가지고 갈 것이 없는데 어쩌다가 저희 어머님이 무언가를 싸가지고 갑니다. 그러면 외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그냥 오지 뭐 이런걸 가지고 왔냐 가난하게 사는 것을 다 아는데... "
'그냥 와도 되는데 뭘 가지고 왔느냐'하시지만 어려운중에 드리는 선물이 부모님의 마음을 더 감동하게 합니다. 자녀의 것을 탐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가난한 자녀라도, 어린 자녀라도 진심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적은 것으로도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감동받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즐거움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즐거움입니다. 부모에게 드리는 자녀의 즐거움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때마다 바치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을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심령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즐거움을 얻으시고 내 가정에서 가족의 즐거움을 얻으시고, 내 이웃들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생애가 온통 즐거움으로, 축제로, 잔치하는 삶으로 이어지기 바랍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옛날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어키 노병들을 취재한 내용입니다. 그중에 한 노인이 한국말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리랑을 비롯하여 한국의 노래를 많이 알고 정확하게 불렀습니다.
리포터가 "할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과 노래를 잘 아세요" 하자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말과 노래를 배우게 됩니다. "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50년이나 지났지만 우리 대신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들은 지금도 한국을 사랑하여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벌써 그들의 희생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한국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형제의 나라로 여깁니다. 한국 사람을 아주 반가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신을 내어 주며 사랑을 하였고 우리는 저들에게 아무것도 준적이 없습니다. 목숨까지 희생하며 싸워준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준 것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금방 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복주심을 너무 빨리 잊고 살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는 증거로 독생자 예수까지 주셨건만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빨리 잊는 것입니까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감사하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아무리 구원받은지 오래 되었어도 주신 복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아들까지 희생하셔서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사랑을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의 소중한 것까지 드린 사람은 쉽게 사랑이 식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받은 은혜를 깨닫고 진정으로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행복해질 것입니다. 맥추절을 맞아 주님안에서 즐거워하고,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며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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