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본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쁨이 없는 세상에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오늘이 그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이미 맞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혹시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성탄절을 맞아 다시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만민의 구원자이신 에수 그리스도의 오신 날
1) 이 세상은 평화가 없는 땅
천사들이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전한 소식을 보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목자들은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는 천군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라고 찬양을 하였습니다. 하늘에는 기쁨이 있고 땅에는 평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평화가 없는 땅입니다. 왜 평화가 없습니까 그것은 한가지 이유입니다.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2) 죄악에 매여 종노릇하는 인생들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롬3:23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없는 것은 인간들의 모든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의 대가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만이 아니고 영적인 죽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은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인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더욱 무서운 형벌의 세계가 있습니다.
3) 스스로 구원될 수 없는 죄악의 세력
인간들에게는 죄를 스스로 해결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길이나 능력이 도무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렁에 빠진 사람의 모습과 같아서 움직일수록 더욱 깊은 죄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서 결국 죄악 가운데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4) 이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마1:21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죄악된 인생의 모습은 변화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살 길은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구제불능인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나를 위해 구주가 오신 날! 할렐루야!
1) 첫 번째 기쁜 소식은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들은 직업으로 볼 때 천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들과 같이 편안하게 방에서 잠들지 못하고 양들과 함께 들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제일 첫 번째로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 그리스도의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목자들에게 전해진 첫 번째 기쁜 소식은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는데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가 구주의 표적이었습니다. 강보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보자기입니다. 왜 아기 예수가 보자기에 싸여서 사람이 사는 집도 아닌 짐승들이 사는 더러운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났을까요 세상의 만물이 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가 없이는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런 주님이 어째서 자신은 이런 천한 곳에서 태어나도록 택하셨을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목자들이 그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도 없는 마굿간은 언제든지 아무나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만나주시기 위해서 그런 곳을 택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오심
주님이 마굿간에 오신 것은 영적으로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가난하고 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곳입니다. 이런 세상의 가난에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고후8:9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를 살펴보면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없습니다. 부요하고 인간답게 사는 나라들은 모두가 기독교가 들어가 있는 나라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범사에 잘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혼도 잘되고, 육신도 잘되고, 경제적인 문제들도 잘된다는 말입니다.
4) 모든 형편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다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 구원자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아름다운 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의 동상이 열 두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열 두 개의 동상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동상들 앞에 가서 볼 때 유독 가장 끌리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목자의 모습을 한 동상 앞에서는 목자들이 특별한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나와 같이 목자였구나! 내 사정을 주님이 아시지!"라고 생각하면서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친구같은 주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또한 씨뿌리는 모습을 한 예수님의 동상 앞에는 농부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고생과 어려움을 다 아시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앞에서는 어부들이 모여서 이런 묵상들을 하고,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앞에는 의사나 간호사 같은 의료인들이 모여서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이던지 구들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구원의 기쁜 소식은 나누어야 합니다.
1)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성탄 전야에 새벽송을 도는 것도 성탄의 기쁨을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오지에서 고생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삶도 자신이 얻은 기쁨을 나누어주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쁨은 나눌 때에 더 많아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깊이 있는 원리를 보면 물질도 나누어 줄 때 더 많은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2) 목자들이 전하지 않았다면 기쁨이 없었을 것입니다.
들에 있는 목자들이 천사의 전하는 소식을 듣고서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보기 위해서 가지 않고, 믿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이 일이 그저 천사를 한 번 본 것으로 끝났을 뿐 기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 밤에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가서 보니 천사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그곳에서 천사가 자신들에게 전한 말들을 증거했습니다. 이 말을 예수의 부모와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이 소식을 전한 후에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돌아갔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증거할 때에 기쁨이 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전하지 못하는 자는 참된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이 기쁨의 소식을 듣고 받아들이고서도 남에게 전하지 못하고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참된 기쁨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참된 기쁨의 좋은 소식이 여러분에게 들려지시기를 바라고, 이 기쁨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남들에게도 전하고 나누어줌으로 얻는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들 은 제사장들의 무리가 예수를 전하지 못하게 하고 그가 구원자이신 것을 말하
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옥에 가두고 때리며 죽이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기쁜 소식을 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목자들과 같이 사도들도 자신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기쁨이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들은 옥에 갇히고 사자에게 찢기며 화형을 당하고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기쁜 소식을 나누어주기로 마음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4)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등한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기쁨의 소식을 등한히 할 때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신32:15에서는 " … 네가 살지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에 부요함을 갖데 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에 그를 거절하였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기쁨을 묻어 버린다면 기쁨을 주신 주님은 우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울려서 돌려보내는 자가 되지 마시고 함께 기뻐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우리는 큰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큰 기쁨을 받은 자들이고, 큰 축복을 받은 자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복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복은 구원입니다. 건강과 부와 명예는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러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위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영혼이 강건하여져서 맡길만 할 때 주님은 물질도 부어 주십니다. 주님께 합격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받은 영적인 많은 축복들을 이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누어주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주십니다. 성경에서는 "주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주리니 흔들고 넘치도록 채워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물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어려워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많은 선교를 해야 합니다. 기쁨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죄를 깨우쳐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아프리카 같은 해외에 나가서 전하지는 못하지만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면서 전할 수는 있습니다. 나의 집 근처에도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나누어줌으로 그들과 함께 기뻐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만민의 구원자이신 에수 그리스도의 오신 날
1) 이 세상은 평화가 없는 땅
천사들이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전한 소식을 보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목자들은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는 천군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라고 찬양을 하였습니다. 하늘에는 기쁨이 있고 땅에는 평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평화가 없는 땅입니다. 왜 평화가 없습니까 그것은 한가지 이유입니다.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2) 죄악에 매여 종노릇하는 인생들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롬3:23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없는 것은 인간들의 모든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의 대가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만이 아니고 영적인 죽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은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인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더욱 무서운 형벌의 세계가 있습니다.
3) 스스로 구원될 수 없는 죄악의 세력
인간들에게는 죄를 스스로 해결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길이나 능력이 도무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렁에 빠진 사람의 모습과 같아서 움직일수록 더욱 깊은 죄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서 결국 죄악 가운데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4) 이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마1:21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죄악된 인생의 모습은 변화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살 길은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구제불능인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나를 위해 구주가 오신 날! 할렐루야!
1) 첫 번째 기쁜 소식은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들은 직업으로 볼 때 천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들과 같이 편안하게 방에서 잠들지 못하고 양들과 함께 들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제일 첫 번째로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 그리스도의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목자들에게 전해진 첫 번째 기쁜 소식은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는데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가 구주의 표적이었습니다. 강보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보자기입니다. 왜 아기 예수가 보자기에 싸여서 사람이 사는 집도 아닌 짐승들이 사는 더러운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났을까요 세상의 만물이 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가 없이는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런 주님이 어째서 자신은 이런 천한 곳에서 태어나도록 택하셨을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목자들이 그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도 없는 마굿간은 언제든지 아무나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만나주시기 위해서 그런 곳을 택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오심
주님이 마굿간에 오신 것은 영적으로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가난하고 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곳입니다. 이런 세상의 가난에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고후8:9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를 살펴보면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없습니다. 부요하고 인간답게 사는 나라들은 모두가 기독교가 들어가 있는 나라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범사에 잘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혼도 잘되고, 육신도 잘되고, 경제적인 문제들도 잘된다는 말입니다.
4) 모든 형편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다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 구원자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아름다운 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의 동상이 열 두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열 두 개의 동상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동상들 앞에 가서 볼 때 유독 가장 끌리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목자의 모습을 한 동상 앞에서는 목자들이 특별한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나와 같이 목자였구나! 내 사정을 주님이 아시지!"라고 생각하면서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친구같은 주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또한 씨뿌리는 모습을 한 예수님의 동상 앞에는 농부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고생과 어려움을 다 아시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앞에서는 어부들이 모여서 이런 묵상들을 하고,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앞에는 의사나 간호사 같은 의료인들이 모여서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이던지 구들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구원의 기쁜 소식은 나누어야 합니다.
1)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성탄 전야에 새벽송을 도는 것도 성탄의 기쁨을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오지에서 고생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삶도 자신이 얻은 기쁨을 나누어주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쁨은 나눌 때에 더 많아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깊이 있는 원리를 보면 물질도 나누어 줄 때 더 많은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2) 목자들이 전하지 않았다면 기쁨이 없었을 것입니다.
들에 있는 목자들이 천사의 전하는 소식을 듣고서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보기 위해서 가지 않고, 믿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이 일이 그저 천사를 한 번 본 것으로 끝났을 뿐 기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 밤에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가서 보니 천사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그곳에서 천사가 자신들에게 전한 말들을 증거했습니다. 이 말을 예수의 부모와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이 소식을 전한 후에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돌아갔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증거할 때에 기쁨이 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전하지 못하는 자는 참된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이 기쁨의 소식을 듣고 받아들이고서도 남에게 전하지 못하고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참된 기쁨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참된 기쁨의 좋은 소식이 여러분에게 들려지시기를 바라고, 이 기쁨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남들에게도 전하고 나누어줌으로 얻는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들 은 제사장들의 무리가 예수를 전하지 못하게 하고 그가 구원자이신 것을 말하
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옥에 가두고 때리며 죽이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기쁜 소식을 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목자들과 같이 사도들도 자신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기쁨이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들은 옥에 갇히고 사자에게 찢기며 화형을 당하고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기쁜 소식을 나누어주기로 마음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4)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등한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기쁨의 소식을 등한히 할 때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신32:15에서는 " … 네가 살지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에 부요함을 갖데 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에 그를 거절하였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기쁨을 묻어 버린다면 기쁨을 주신 주님은 우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울려서 돌려보내는 자가 되지 마시고 함께 기뻐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우리는 큰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큰 기쁨을 받은 자들이고, 큰 축복을 받은 자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복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복은 구원입니다. 건강과 부와 명예는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러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위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영혼이 강건하여져서 맡길만 할 때 주님은 물질도 부어 주십니다. 주님께 합격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받은 영적인 많은 축복들을 이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누어주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주십니다. 성경에서는 "주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주리니 흔들고 넘치도록 채워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물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어려워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많은 선교를 해야 합니다. 기쁨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죄를 깨우쳐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아프리카 같은 해외에 나가서 전하지는 못하지만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면서 전할 수는 있습니다. 나의 집 근처에도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나누어줌으로 그들과 함께 기뻐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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