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주님의 은혜를 받는 자세
본문
오늘 본문에는 시므온이 주님을 오래 기다리다가 탄생하신 주님을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시므온의 모습은 오늘날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와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의 은혜를 기다릴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의 자세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받는 4가지 자세를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내로 기다리는 자세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시므온이 왜 기다림에 탁월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성령이 그 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속성 중의 하나는 기다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해도 믿어주시고 항상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고, 교회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인내심보다 한 번 더 참으면 하나의 열매가 더 맺힐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기다림을 결코 헛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보면 다음과 같은 5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1) 주님을 따르는 단계
이 단계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 때에는 주님의 뜻과 사명보다는 주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입니다.
2) 주님과 동행하는 단계
이 단계는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보다 조금 더 능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동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반대로 가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이란 바로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입니다.
3) 주님을 꼭 붙잡는 단계
인간이기에 신앙생활을 할 때 한결같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에 권태기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보다 권태가 더 위험한 때입니다. 한 번 그 틀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4) 주님에게 붙잡히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까지 되면 신앙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신앙생활을 비교적 쉬워집니다. 어린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가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빠가 어린아이를 잡아 주셔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꼭 붙잡히는 생활입니다. 이쯤 되면 나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라 주님의 삶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해도 주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잡아 줍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생활에는 힘과 탄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끝나면 안 됩니다. 마지막 한 단계가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거하는 단계입니다.
5) 주님 안에 거하는 단계
삶의 중심이 완전히 주님 중심적인 삶이 됩니다. 정말 주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만 향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런 단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단계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항상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똑똑한 사람들이 다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높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내입니다.
특히 교회 생활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똑똑한 사람이 오히려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대개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필수적인 것이 인내입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인내하면 주님께서는 지금보다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2. 주님을 사모하는 자세
본문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시므온은 “나는 주님을 뵙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고 했습니다. 우리의 주님을 사모하는 자세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커야 합니다. 시므온은 구약의 희미한 불빛을 받아서고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뚜렷한 빛을 받은 신약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더욱 사모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죽기 전에 꼭 주님을 보리라! 주님을 체험하리라!” 그런데 주님의 얼굴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주님의 축복을 얻고 주님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고 그 넓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큰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축복만 구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 계산이 없는 자세를 가진 사람에게 더 신속히 찾아와서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서 승리하려면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세
본문 27절에는 ‘전례’라는 말이 나오는데 당시 유대에는 아기를 낳은 후 행하는 3가지 율법의 전례가 있었습니다.
1) 할례 - 난지 8일 만에 양피를 베는 의식
2) 결례 - 출산 후 정결하게 하는 의식(레위기 12장)
3) 헌신례 - 아이를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
요셉과 마리아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에 왔는데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합니다. 그 찬송의 내용을 보면 감격적인 내용입니다. 본문 29-32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좋은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
기다리는 자세도 소중하고, 사모하는 자세도 소중하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바로 찬송하는 자세입니다. 이 찬송에는 예배가 들어 있고, 감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입시철이 되면 부모의 자식 사랑은 참 애틋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가장 애절하게 기도합니다.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축복을 달라고 하지만 그것을 보고 기복주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욕심을 부리는 마음이 아니라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시고, 입시뿐만이 아니라 입시 이후의 자녀의 삶까지 생각하시고 가장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입시철에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 저것이 “바로 저 모습이 부모의 진면목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은 그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잘 모릅니다. 부모가 짜증만 내는 줄 알고, 부모의 부족한 모습만 잘 보입니다. 자녀에게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부모는 자녀를 최고로 사랑합니다.
때로 부모의 입에서 욕과 짜증과 신경질이 나와도 그것은 삶이 힘들고 그 힘든 삶을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 때문이지 그때에도 부모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진면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면목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어떤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최선의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이해할 때 우리의 삶에서는 항상 찬송과 감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시고 더욱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4. 이웃을 축복하는 자세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하기를 마치고 시므온은 모친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
그런데 축복의 말에는 아픔도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4절 하반부 말씀을 보면 시므온은 모친 마리아에게 “이 아기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서 세움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35절에서는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축복된 삶의 과정에는 아픔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 시므온의 축복의 말을 보면 삶의 과정에 주어지는 아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복된 삶을 위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자산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훌륭한 자산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연단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쉽게 말하면 돈을 주고라도 십자가의 고난을 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연단의 과정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런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지고 성숙해집니다.
2) 희망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음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그런대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희망이 있다는 것은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분명히 길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과정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면 반드시 축복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성탄절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신년은 내 생애 최고의 희망의 해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누가 청년입니까 비전을 가지고 희망을 가진 사람이 청년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청년입니다. 우린 다 청년이 되어야 합니다. 몸은 늙어도 비전과 희망이 늙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희망의 심지를 새롭게 다듬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몸은 청년이지만 희망과 비전이 없는 늙은 청년들이 너무 많습니다. 청년들이 너무 책을 보지 않아서 학교 앞에 서점을 열면 거의 망한다는 얘기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듭니다.
성탄절을 주님이 없는 성탄절이 되게 하지 말고, 다시 한번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희망을 도전하고 주 안에서 서로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요새 치매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 치매가 생길까요 꿈과 환상이 없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과거에 집착하면 치매 기운이 생깁니다. 그 치매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꿈을 꾸게 되고, 꿈을 꾸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치매가 걱정되면 부모님이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나 자신의 치매가 걱정되면 성령 충만하고 계속 주 안에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그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이웃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희망의 원천이 되어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인내로 기다리는 자세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시므온이 왜 기다림에 탁월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성령이 그 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속성 중의 하나는 기다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해도 믿어주시고 항상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고, 교회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인내심보다 한 번 더 참으면 하나의 열매가 더 맺힐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기다림을 결코 헛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보면 다음과 같은 5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1) 주님을 따르는 단계
이 단계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 때에는 주님의 뜻과 사명보다는 주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입니다.
2) 주님과 동행하는 단계
이 단계는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보다 조금 더 능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동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반대로 가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이란 바로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입니다.
3) 주님을 꼭 붙잡는 단계
인간이기에 신앙생활을 할 때 한결같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에 권태기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보다 권태가 더 위험한 때입니다. 한 번 그 틀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4) 주님에게 붙잡히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까지 되면 신앙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신앙생활을 비교적 쉬워집니다. 어린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가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빠가 어린아이를 잡아 주셔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꼭 붙잡히는 생활입니다. 이쯤 되면 나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라 주님의 삶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해도 주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잡아 줍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생활에는 힘과 탄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끝나면 안 됩니다. 마지막 한 단계가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거하는 단계입니다.
5) 주님 안에 거하는 단계
삶의 중심이 완전히 주님 중심적인 삶이 됩니다. 정말 주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만 향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런 단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단계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항상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똑똑한 사람들이 다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높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내입니다.
특히 교회 생활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똑똑한 사람이 오히려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대개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필수적인 것이 인내입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인내하면 주님께서는 지금보다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2. 주님을 사모하는 자세
본문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시므온은 “나는 주님을 뵙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고 했습니다. 우리의 주님을 사모하는 자세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커야 합니다. 시므온은 구약의 희미한 불빛을 받아서고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뚜렷한 빛을 받은 신약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더욱 사모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죽기 전에 꼭 주님을 보리라! 주님을 체험하리라!” 그런데 주님의 얼굴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주님의 축복을 얻고 주님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고 그 넓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큰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축복만 구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 계산이 없는 자세를 가진 사람에게 더 신속히 찾아와서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서 승리하려면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세
본문 27절에는 ‘전례’라는 말이 나오는데 당시 유대에는 아기를 낳은 후 행하는 3가지 율법의 전례가 있었습니다.
1) 할례 - 난지 8일 만에 양피를 베는 의식
2) 결례 - 출산 후 정결하게 하는 의식(레위기 12장)
3) 헌신례 - 아이를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
요셉과 마리아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에 왔는데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합니다. 그 찬송의 내용을 보면 감격적인 내용입니다. 본문 29-32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좋은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
기다리는 자세도 소중하고, 사모하는 자세도 소중하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바로 찬송하는 자세입니다. 이 찬송에는 예배가 들어 있고, 감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입시철이 되면 부모의 자식 사랑은 참 애틋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가장 애절하게 기도합니다.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축복을 달라고 하지만 그것을 보고 기복주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욕심을 부리는 마음이 아니라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시고, 입시뿐만이 아니라 입시 이후의 자녀의 삶까지 생각하시고 가장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입시철에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 저것이 “바로 저 모습이 부모의 진면목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은 그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잘 모릅니다. 부모가 짜증만 내는 줄 알고, 부모의 부족한 모습만 잘 보입니다. 자녀에게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부모는 자녀를 최고로 사랑합니다.
때로 부모의 입에서 욕과 짜증과 신경질이 나와도 그것은 삶이 힘들고 그 힘든 삶을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 때문이지 그때에도 부모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진면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면목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어떤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최선의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이해할 때 우리의 삶에서는 항상 찬송과 감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시고 더욱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4. 이웃을 축복하는 자세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하기를 마치고 시므온은 모친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
그런데 축복의 말에는 아픔도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4절 하반부 말씀을 보면 시므온은 모친 마리아에게 “이 아기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서 세움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35절에서는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축복된 삶의 과정에는 아픔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 시므온의 축복의 말을 보면 삶의 과정에 주어지는 아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복된 삶을 위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자산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훌륭한 자산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연단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쉽게 말하면 돈을 주고라도 십자가의 고난을 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연단의 과정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런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지고 성숙해집니다.
2) 희망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음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그런대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희망이 있다는 것은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분명히 길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과정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면 반드시 축복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성탄절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신년은 내 생애 최고의 희망의 해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누가 청년입니까 비전을 가지고 희망을 가진 사람이 청년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청년입니다. 우린 다 청년이 되어야 합니다. 몸은 늙어도 비전과 희망이 늙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희망의 심지를 새롭게 다듬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몸은 청년이지만 희망과 비전이 없는 늙은 청년들이 너무 많습니다. 청년들이 너무 책을 보지 않아서 학교 앞에 서점을 열면 거의 망한다는 얘기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듭니다.
성탄절을 주님이 없는 성탄절이 되게 하지 말고, 다시 한번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희망을 도전하고 주 안에서 서로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요새 치매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 치매가 생길까요 꿈과 환상이 없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과거에 집착하면 치매 기운이 생깁니다. 그 치매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꿈을 꾸게 되고, 꿈을 꾸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치매가 걱정되면 부모님이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나 자신의 치매가 걱정되면 성령 충만하고 계속 주 안에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그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이웃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희망의 원천이 되어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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