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의 시작
본문
지난주 설교말씀제목은 ‘다시 주기도문으로’였지요. 그리고 우리가 시작할 엑소더스 운동 열여섯번째를 말씀드렸지요. ‘큰 믿음’을 말씀했지요. 그리고 오늘 말씀제목은 ‘성탄의 작은 시작’입니다.
지난 주일에 주기도문에 대한 말씀을 증거했을 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가 위대한 의미를 말씀드렸었지요.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라는 사실을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기도를 생각하면 감동이 됩니다. 아, 정말 위대하시구나, 이 작은 기도 속에 그 크신 은혜, 공급, 축복을 담아놓으시다니. 오늘 그와 똑 같은 감격으로 받을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성탄, 태어나심을 작은 것에서 시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은 작게 시작됨
원자탄이 무서운 폭발력을 가진 것은 그 폭발력이 지극히 작은 원자의 세계에서 원자핵의 분열이나 융합을 이루게 하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데서 놀라운 큰 힘이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작게 시작하십니다. 위대하고 위대한 일의 시작은 작게 하십니다. 때로는 큰 것을 작게 만드셔서라도 더 위대한 시작을 하십니다. 많은 축복을 더하려고 하실 때 우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그런 상태로 인도하십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40세에 왕궁의 왕자로 있을 때보다 한없이 작게 스스로를 느끼던 80세에 위대한 구원의 운동에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선지자를 부르실 때도 같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이때 예레미야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렘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나는 아이입니다. 나는 너무나 아직 작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작게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부르심과 일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겨자씨같이 작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창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 분의 시작은 작은 것을 선택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싸이드, 변방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싸이드, 변방에서 일어남
우리는 때때로 싸이드로 밀려난 인생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변방인생, 변두리 인생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핵심에서 일했는데 이제는 주류에서 밀려나서 변두리인생같이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있을 때 민족을 위해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들어가서 피신했습니다. 목동생활을 40년했습니다. 변두리인생이 되었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그 변두리, 광야, 한 구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은 애굽의 왕궁에서가 아니라 저 변두리 광야의 한 산기슭에서 있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창조주이신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때에 베들레헴을 선택하신 것도 그렇습니다. 당시의 수도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변방의 작은 마을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위대한 왕이시고 창조주이신 분이 태어나셨습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5:2 "But you, Bethlehem Ephrathah, though you are small among the clans of Judah, out of you will come for me one who will be ruler over Israel, whose origins are from of old, from ancient times. "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렇다면 이 말씀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과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등장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왕이 나타나시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그 분께 합당한 왕의 길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 팔레스타인을 통과하는 국제로 (International Highways)는 두개의 큰 도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해변의 길" (Via Maris)이요 하나는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라고 불리우는 길입니다. 이 두 도로는 많은 군인, 사신, 상인, 여행자들이 지나 다니는 길로써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해변의 길"은 이사야 9장 1절에서 취급되고 있으며, 출애굽 사건에서 言及되고 있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the way to the land of Philistime, 출 13:17)과 일치합니다. 원래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은 해변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싸이드의 길, 즉 왕의 대로로 인도했습니다. "왕의 대로"는 요단 東便 山地 (Transjordanian highlands)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도로로써 민수기 20장 17절, 21장 22절에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도로는 세렛(Zwret, 신 2:13), 아르논 (Arnon, 신 3:8), 얍복(jabbok, 신 2:37, 3:16, 민 21:24, 창 32:22), 그리고 야르묵(Yarmuk)등의 큰 와디(Wadi)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도로를 따라 모압 山地 느보산에 이르러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신 2-3장), 이 도로는 고대의 왕들이 정복전쟁을 하면서 닦아놓은 길입니다. 창세기 14장에 이미 "왕의 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많은 도시국가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런 왕의 대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복자인 왕이 지나가기 전에 그 길을 새롭게 합니다. 골짜기는 메우고 산은 깍는 작업이 사40장을 인용하면서 세례요한의 증거에서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왕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의 길을 예비하는 일은 세례요한의 증거를 따를 때 우리의 마음의 겸비한 자세였습니다. 그 겸비한 마음을 통해서 주님이 오실 그 증거로 주님은 베들레헴 작은 마을 말구유를 선택하여 오신 것입니다. 왕의 길은 바로 싸이드의 길, 인생의 변두리 같은 곳에 나타나는 길, 우리를 한없이 낮추게 하시는 겸손한 길이었습니다.
이 왕의 길이 열린 베들레헴을 보십시요. 유다 족속 중에서 작은 마을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변두리로7km떨어져있는 지금도 작은 마을입니다. 무슨 높은 빌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50층 100층 빌딩이 솟은 동네가 아닙니다. 같은 것 중에서 작은 것. 이것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모인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같은 친구들 중에서 못 배웠을까. 나는 같은 동기 중에서 왜 쳐질까. 왜 나는 같은 사업 하는 사람 중에서 돈이 없을까. 아니면 왜 나는 딴 것은 다 잘 되는데 믿음은 이렇게 부족할까. 이렇게 느끼는 즉 작게 느끼는 그 어느 구석이 있을 때 그 곳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나타나실 아주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합주
지난 주간 가을 부흥성회 때 우리 교우중에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특송과 대금연주를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두 사람이 모자간임을 모른 분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된 연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중국어예배가 2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주일 낮예배 때 헌금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얘기하길래 뜻있는 일이라서 좋다고 하고 순서에 넣었습니다. 원래 특송순서에 있는 여집사님께 양해를 구하도록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분은 한주 다음에 하시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다음 주에는 다른분이 순서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식으로 해서 그 여집사님은 다음 번에 또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기회를 잃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드렸더니 목사님 괜찮습니다, 라고 이해를 잘 해주셔요. 그래도 제가 다음 번에 이 일에 대해서 보상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심방을 하는 가운데 그 아들이 이번에 국악고등학교를 대
금연주로 들어가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아버지되신 분은 한국에서 대금연주의 정통맥을 잇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모자가 같이 특송을 하며 대금연주를 하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자의 특송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같이 교회에서 특송특주를 하는 기회는 귀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감사해했고 저도 마음에 좋았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싸이드로 밀려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일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중심에 서는 복을 예비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루살렘 영문 밖에서 진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3:11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히13:13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영어성경에는 13:13 Let us, then, go to him outside the camp, bearing the disgrace he bore.
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짊어지신 멸시, 무시, 부끄러움, 능욕을 짊어지고 성문 밖 아웃사이드에 계신 주님께 나아가자, 라는 말씀입니다. 아웃사이드입니다. 우리는 아웃사이드, 싸이드 인생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이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만나시는 중심센타인 곳입니다. 거기서 위대한 일, 십자가와 부활이 다 일어났습니다. 인류의 선교역사의 센터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미약한 처지, 사이드에 밀려난 인생일 때에 큰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우리가 미약한 처지에 있을 때 완전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우리의 약한 것, 저는 이런 것이 정말 약점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자랑하는 것은 그 만큼 우리에게 나타내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큼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크신 역사가 우리에게 계속 머물게 하는 비결은 늘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강조하고 나타내며 겸손으로 옷입는 일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 두절 말씀 속에 약함이란 말이 네번씩 나옵니다. 약함을 늘 경험한 바울사도. 기독교역사에 있어서 바울사도는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는 위대한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비전을 받은 후 그 계시의 말씀에 근거한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는 한없이 자기가 약하고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아니, 아주 약하게 되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계속 환난이 오고 그래서 약한 것, 능욕, 궁핍, 핍박, 곤란, 이런 것이 사탄의 가시같이 계속 따라다니며 육체에 괴로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가운데 기록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가장 많이 읽혀지는 성경말씀으로 나타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첫 선물은 약함이었습니다. 그가 그 약함으로 전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며 창조자시며 근본이시다,라는 복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떤 약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임을 깨달아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되심,
상고에 태초에 계신 그 분을 나타내는 일에 우리의 약함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많은 것을 갖고 많은 능력이 나타날 때에 늘 아,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가, 를 찾아서 그 부족함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 쉽게 포기하는 마음
저의 약함은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약한 약점의 하나는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만났을 때 포기하는 마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아, 나는 어느 것 하나도 잘 할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 포기하려는 것. 이것이 저의 약점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일을 마음에서부터 감당을 못하는 미약함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화요일 오후에 총회 대부흥위원회 전체 위원 웍샵이 있었을 때입니다. 총회 대부흥운동의 전체 그동안 진행되어온 학술 세미나를 정리해서 총신교수님이 발표를 하고
두번째 제가 그동안의 대부흥운동과 내년의 진행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휴식시간에 총회장님이 저를 만나시더니 오목사님 한번같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고 하셔요. 그래서 목요일 오후에 만나뵈었습니다. 그 때 총회장님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대부흥운동이 그동안 잘 진행되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1월달 대부흥기념행사를 비롯하여 이제 남은 일들입니다. 그동안 잘 되어오다가 막상 가장 중요한 그 사역들이 눈 앞에 왔을 때 그것이 푹꺼지면 안됩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꼭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요, 라고 하십니다. 저를 격려하시는 것이지요. 사실 저는 제 앞에 당면한 여러가지 일들 때문에 마음에서 한구석 미약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총회가 전부다 동원되고 교단들이 연합하여 움직이는 일을 내가 어떻게 기획하며 어떻게 동원하나, 라는 걱정이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아주 미약함을 느끼고 있으며 차일 피일 눈 앞에 다가오는 목회의 일들에 먼저 신경을 쓰고 있었던 때입니다. 이 때 총회장님이 저를 격려하시는 말씀인데 저에게는 하나의 채찍이 되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자신도 총회장으로 나올 때 아, 내가 광역목회로 부르심을 받았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함께 둘이서 차를 마시면서 한참을 얘기하는 가운데 저는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총회장님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일 오전11시에 우리 교단의 모든 노회들의 노회장이 전국에서 모입니다. 그 때 총회장께서 저에게 그 분들을 향한 시간을 줄 터이니 내년 1월14일 주일과 17일-19일의 대부흥기념 대회에 모든 노회와 교회들이 총동원하여서 대부흥기념의 예배와 민족의 출애굽운동을 추진할 것을 이야기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미약함을 깊이 느낄 때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그 분의 큰 일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미약함을 깊이 느끼는 저와 여러분이 될 때 그 약함이 강함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약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정말 부족합니다, 정말 미약합니다, 라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가 정말 부족합니다 제가 정말 아무 것도 할 줄 모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 보다 아니 제가 저 분들보다 정말 부족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주님의 놀라운 성탄이 우리 속에서 체험됩니다. 우리가 지난 주간 가을 부흥성회를 가졌습니다. 강사 목사님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강사목사님이 신학교에서 함께 수업을 한 동기이지만 설교를 들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고 그 분을 강사로 청했습니다.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통해서 감사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교우들도 은혜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금요일 저녁에 집회 끝날 때 잘 가시라고 인사를 우리 교우들과 같이 하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집회 시작 전에 강사목사님께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원래 우리 교회가 심야기도회를 갖는 때인데 성도님들이 통성기도할 시간을 좀 더 갖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설교가 끝나고 통성기도할 때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강사목사님이 안계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나. 앞자리에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허전하지만 통성기도하고 치유와 축복의 기도를 하고 마쳤습니다. 교우들은 강사목사님을 왜 소개안하시는가, 하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알고 보니 강사님은 설교 마치시고 바로 숙소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숙소로 찾아가는데 그 때 생각에 내가 좀 작아 보였습니다. 친구사이인데 그 분을 찾아서 숙소로 가는 데 좀 자존심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가서 인사를 해야하겠다고 갔습니다. 알고 보니 강사목사님이 심야기도회를 계속하는 줄 알고 먼저 가신 것이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기도하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그 때 제 자신이 다시 느꼈습니다. 주님은 낮아지게 하시고 그리고 쓰신다는 것을. 주님은 우리를 미약한 자리에 무릎꿇게 하시고 그리고 큰 은혜를 주십니다. 미약함을 통해서 말입니다.
꿈을 잉태한 미약함의 인내
주님의 성탄이 매년 이 때 돌아오는 것 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미약함을 통해서 주님의 그 창조주되심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미약함을 느끼는 그 때에 주님의 위대한 꿈과 능력이 그 미약함 속에 잉태됩니다. 그리고 출산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5: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5:3 Therefore Israel will be abandoned until the time when she who is in labor gives birth and the rest of his brothers return to join the Israelites.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능력, 그리스도의 꿈이 우리 속에 잉태되고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실 때 우리는 잉태된 고난을 겪습니다. 꿈을 잉태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세상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비웃음도 당합니다. 유산의 위기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는 우리에게 한없는 기도와 믿음이 자라나는 때입니다. 열달동안 아기가 자라나듯이 우리 속에서 꿈이 자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때가되면 성탄의 출산같이 주님의 그 놀라운 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미약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자라납니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실 때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인류의 꿈을 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애굽으로 피신하셨고 애굽에서 다시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오셨습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새출애굽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마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꿈을 가지면 그 꿈이 꺾이는 시련을 겪습니다. 이 때 꿈을 가진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미약함의 인내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미약함 속에서 애굽을 두번 경험합니다. 하나는 죄의 애굽입니다. 죄의 애굽에서 고난을 겪으며 그 곳에서 떠나는 길을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떠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애굽이 있습니다. 피난처 애굽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 피난처 애굽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죄의 세상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계신 세상에 교회가 서고 교회는 피난처가 됩니다. 애굽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피난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우리는 죄에서 출애굽하고 아울러서 피난처인 여호와 하나님의 목장, 교회의 창대함도 경험합니다. 주님의 출애굽운동은 죄는 떠나고 피난처는 창대하게 하여서 결국 그 모든 백성들과 함께 천국으로 떠날 날을 준비하게 하시는 구원운동입니다. 선교운동입니다. 대부흥운동입니다. 예수님의 새출애굽은 이제 그 미약함에서 시작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며 그 분의 이름의 위엄을 나타내시며 목양자로서 창대해지고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는 목자로서 창대해지는 은혜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4 He will stand and shepherd his flock in the strength of the LORD, in the majesty of the name of the LORD his God. And they will live securely, for then his greatness will reach to the ends of the earth.
여호와 하나님의 작은 시작은 창대해집니다
이제 성탄의 참된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게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왕의 길이 우리의 미약함 속에 놓여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겸손 속에 왕의 길이 닦여지고 베들레헴 같이 위대한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놀라운 성탄을 준비합니다. 이 번 성탄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대한 길, 왕의 길을 우리의 작은 시작, 겸손한 시작에서 열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 총회가 채택하여서 추진되는 일이 새출애굽의 운동입니다. 민족의 출애굽 national exodus입니다. 이 일이 지금 아주 미약한 우리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함께 같이 이 예수님이 출애굽 경건운동을 추진한다면 주님의 큰 일은 우리의 미약함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미약할 때 주님은 그 미약함 속에 태어나십니다. 우리는 꿈을 가진 미약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약함을 아는 그런 꿈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내년 2007년에 교단적으로 한국교회적으로 대부흥의 꿈을 가집니다. 그 대
부흥의 시작의 꿈이지요. 아울러 우리 교회로는 새성전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꿈을 갖습니다. 우리가 미약하니 저는 우리 성도들이 힘들여짓는 예배당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지는 예배당을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고층화되는 곳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큰 선물로 예배당을 지을 때 우리 성도들의 미약함이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탄은 말구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작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삼인의 교회들이 새성전의 꿈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새성전건설과 삼인의 교회로 전도운동하는 일이 꿈입니다. ‘외우고 나누고 전하자’라는 구호로 말씀의 교회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약함이 큰 길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연약하십니까. 부족하십니까. 베들레헴입니다. 바로 그곳입니다. 주님의 위대한 성탄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스스로를 작게 보는 일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를 작게 여기게 만드는 많은 역경 속에서 감사하시면서 성탄의 작은 시작들이 이번에 우리 겸손 속에서 시작되는 은혜가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지난 주일에 주기도문에 대한 말씀을 증거했을 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가 위대한 의미를 말씀드렸었지요.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라는 사실을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기도를 생각하면 감동이 됩니다. 아, 정말 위대하시구나, 이 작은 기도 속에 그 크신 은혜, 공급, 축복을 담아놓으시다니. 오늘 그와 똑 같은 감격으로 받을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성탄, 태어나심을 작은 것에서 시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은 작게 시작됨
원자탄이 무서운 폭발력을 가진 것은 그 폭발력이 지극히 작은 원자의 세계에서 원자핵의 분열이나 융합을 이루게 하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데서 놀라운 큰 힘이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작게 시작하십니다. 위대하고 위대한 일의 시작은 작게 하십니다. 때로는 큰 것을 작게 만드셔서라도 더 위대한 시작을 하십니다. 많은 축복을 더하려고 하실 때 우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그런 상태로 인도하십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40세에 왕궁의 왕자로 있을 때보다 한없이 작게 스스로를 느끼던 80세에 위대한 구원의 운동에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선지자를 부르실 때도 같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이때 예레미야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렘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나는 아이입니다. 나는 너무나 아직 작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작게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부르심과 일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겨자씨같이 작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창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 분의 시작은 작은 것을 선택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싸이드, 변방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싸이드, 변방에서 일어남
우리는 때때로 싸이드로 밀려난 인생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변방인생, 변두리 인생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핵심에서 일했는데 이제는 주류에서 밀려나서 변두리인생같이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있을 때 민족을 위해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들어가서 피신했습니다. 목동생활을 40년했습니다. 변두리인생이 되었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그 변두리, 광야, 한 구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은 애굽의 왕궁에서가 아니라 저 변두리 광야의 한 산기슭에서 있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창조주이신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때에 베들레헴을 선택하신 것도 그렇습니다. 당시의 수도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변방의 작은 마을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위대한 왕이시고 창조주이신 분이 태어나셨습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5:2 "But you, Bethlehem Ephrathah, though you are small among the clans of Judah, out of you will come for me one who will be ruler over Israel, whose origins are from of old, from ancient times. "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렇다면 이 말씀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과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등장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왕이 나타나시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그 분께 합당한 왕의 길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 팔레스타인을 통과하는 국제로 (International Highways)는 두개의 큰 도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해변의 길" (Via Maris)이요 하나는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라고 불리우는 길입니다. 이 두 도로는 많은 군인, 사신, 상인, 여행자들이 지나 다니는 길로써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해변의 길"은 이사야 9장 1절에서 취급되고 있으며, 출애굽 사건에서 言及되고 있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the way to the land of Philistime, 출 13:17)과 일치합니다. 원래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은 해변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싸이드의 길, 즉 왕의 대로로 인도했습니다. "왕의 대로"는 요단 東便 山地 (Transjordanian highlands)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도로로써 민수기 20장 17절, 21장 22절에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도로는 세렛(Zwret, 신 2:13), 아르논 (Arnon, 신 3:8), 얍복(jabbok, 신 2:37, 3:16, 민 21:24, 창 32:22), 그리고 야르묵(Yarmuk)등의 큰 와디(Wadi)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도로를 따라 모압 山地 느보산에 이르러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신 2-3장), 이 도로는 고대의 왕들이 정복전쟁을 하면서 닦아놓은 길입니다. 창세기 14장에 이미 "왕의 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많은 도시국가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런 왕의 대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복자인 왕이 지나가기 전에 그 길을 새롭게 합니다. 골짜기는 메우고 산은 깍는 작업이 사40장을 인용하면서 세례요한의 증거에서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왕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의 길을 예비하는 일은 세례요한의 증거를 따를 때 우리의 마음의 겸비한 자세였습니다. 그 겸비한 마음을 통해서 주님이 오실 그 증거로 주님은 베들레헴 작은 마을 말구유를 선택하여 오신 것입니다. 왕의 길은 바로 싸이드의 길, 인생의 변두리 같은 곳에 나타나는 길, 우리를 한없이 낮추게 하시는 겸손한 길이었습니다.
이 왕의 길이 열린 베들레헴을 보십시요. 유다 족속 중에서 작은 마을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변두리로7km떨어져있는 지금도 작은 마을입니다. 무슨 높은 빌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50층 100층 빌딩이 솟은 동네가 아닙니다. 같은 것 중에서 작은 것. 이것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모인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같은 친구들 중에서 못 배웠을까. 나는 같은 동기 중에서 왜 쳐질까. 왜 나는 같은 사업 하는 사람 중에서 돈이 없을까. 아니면 왜 나는 딴 것은 다 잘 되는데 믿음은 이렇게 부족할까. 이렇게 느끼는 즉 작게 느끼는 그 어느 구석이 있을 때 그 곳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나타나실 아주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합주
지난 주간 가을 부흥성회 때 우리 교우중에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특송과 대금연주를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두 사람이 모자간임을 모른 분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된 연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중국어예배가 2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주일 낮예배 때 헌금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얘기하길래 뜻있는 일이라서 좋다고 하고 순서에 넣었습니다. 원래 특송순서에 있는 여집사님께 양해를 구하도록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분은 한주 다음에 하시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다음 주에는 다른분이 순서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식으로 해서 그 여집사님은 다음 번에 또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기회를 잃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드렸더니 목사님 괜찮습니다, 라고 이해를 잘 해주셔요. 그래도 제가 다음 번에 이 일에 대해서 보상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심방을 하는 가운데 그 아들이 이번에 국악고등학교를 대
금연주로 들어가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아버지되신 분은 한국에서 대금연주의 정통맥을 잇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모자가 같이 특송을 하며 대금연주를 하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자의 특송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같이 교회에서 특송특주를 하는 기회는 귀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감사해했고 저도 마음에 좋았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싸이드로 밀려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일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중심에 서는 복을 예비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루살렘 영문 밖에서 진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3:11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히13:13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영어성경에는 13:13 Let us, then, go to him outside the camp, bearing the disgrace he bore.
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짊어지신 멸시, 무시, 부끄러움, 능욕을 짊어지고 성문 밖 아웃사이드에 계신 주님께 나아가자, 라는 말씀입니다. 아웃사이드입니다. 우리는 아웃사이드, 싸이드 인생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이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만나시는 중심센타인 곳입니다. 거기서 위대한 일, 십자가와 부활이 다 일어났습니다. 인류의 선교역사의 센터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미약한 처지, 사이드에 밀려난 인생일 때에 큰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우리가 미약한 처지에 있을 때 완전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우리의 약한 것, 저는 이런 것이 정말 약점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자랑하는 것은 그 만큼 우리에게 나타내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큼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크신 역사가 우리에게 계속 머물게 하는 비결은 늘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강조하고 나타내며 겸손으로 옷입는 일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 두절 말씀 속에 약함이란 말이 네번씩 나옵니다. 약함을 늘 경험한 바울사도. 기독교역사에 있어서 바울사도는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는 위대한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비전을 받은 후 그 계시의 말씀에 근거한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는 한없이 자기가 약하고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아니, 아주 약하게 되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계속 환난이 오고 그래서 약한 것, 능욕, 궁핍, 핍박, 곤란, 이런 것이 사탄의 가시같이 계속 따라다니며 육체에 괴로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가운데 기록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가장 많이 읽혀지는 성경말씀으로 나타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첫 선물은 약함이었습니다. 그가 그 약함으로 전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며 창조자시며 근본이시다,라는 복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떤 약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임을 깨달아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되심,
상고에 태초에 계신 그 분을 나타내는 일에 우리의 약함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많은 것을 갖고 많은 능력이 나타날 때에 늘 아,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가, 를 찾아서 그 부족함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 쉽게 포기하는 마음
저의 약함은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약한 약점의 하나는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만났을 때 포기하는 마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아, 나는 어느 것 하나도 잘 할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 포기하려는 것. 이것이 저의 약점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일을 마음에서부터 감당을 못하는 미약함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화요일 오후에 총회 대부흥위원회 전체 위원 웍샵이 있었을 때입니다. 총회 대부흥운동의 전체 그동안 진행되어온 학술 세미나를 정리해서 총신교수님이 발표를 하고
두번째 제가 그동안의 대부흥운동과 내년의 진행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휴식시간에 총회장님이 저를 만나시더니 오목사님 한번같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고 하셔요. 그래서 목요일 오후에 만나뵈었습니다. 그 때 총회장님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대부흥운동이 그동안 잘 진행되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1월달 대부흥기념행사를 비롯하여 이제 남은 일들입니다. 그동안 잘 되어오다가 막상 가장 중요한 그 사역들이 눈 앞에 왔을 때 그것이 푹꺼지면 안됩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꼭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요, 라고 하십니다. 저를 격려하시는 것이지요. 사실 저는 제 앞에 당면한 여러가지 일들 때문에 마음에서 한구석 미약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총회가 전부다 동원되고 교단들이 연합하여 움직이는 일을 내가 어떻게 기획하며 어떻게 동원하나, 라는 걱정이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아주 미약함을 느끼고 있으며 차일 피일 눈 앞에 다가오는 목회의 일들에 먼저 신경을 쓰고 있었던 때입니다. 이 때 총회장님이 저를 격려하시는 말씀인데 저에게는 하나의 채찍이 되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자신도 총회장으로 나올 때 아, 내가 광역목회로 부르심을 받았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함께 둘이서 차를 마시면서 한참을 얘기하는 가운데 저는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총회장님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일 오전11시에 우리 교단의 모든 노회들의 노회장이 전국에서 모입니다. 그 때 총회장께서 저에게 그 분들을 향한 시간을 줄 터이니 내년 1월14일 주일과 17일-19일의 대부흥기념 대회에 모든 노회와 교회들이 총동원하여서 대부흥기념의 예배와 민족의 출애굽운동을 추진할 것을 이야기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미약함을 깊이 느낄 때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그 분의 큰 일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미약함을 깊이 느끼는 저와 여러분이 될 때 그 약함이 강함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약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정말 부족합니다, 정말 미약합니다, 라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가 정말 부족합니다 제가 정말 아무 것도 할 줄 모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 보다 아니 제가 저 분들보다 정말 부족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주님의 놀라운 성탄이 우리 속에서 체험됩니다. 우리가 지난 주간 가을 부흥성회를 가졌습니다. 강사 목사님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강사목사님이 신학교에서 함께 수업을 한 동기이지만 설교를 들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고 그 분을 강사로 청했습니다.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통해서 감사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교우들도 은혜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금요일 저녁에 집회 끝날 때 잘 가시라고 인사를 우리 교우들과 같이 하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집회 시작 전에 강사목사님께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원래 우리 교회가 심야기도회를 갖는 때인데 성도님들이 통성기도할 시간을 좀 더 갖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설교가 끝나고 통성기도할 때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강사목사님이 안계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나. 앞자리에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허전하지만 통성기도하고 치유와 축복의 기도를 하고 마쳤습니다. 교우들은 강사목사님을 왜 소개안하시는가, 하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알고 보니 강사님은 설교 마치시고 바로 숙소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숙소로 찾아가는데 그 때 생각에 내가 좀 작아 보였습니다. 친구사이인데 그 분을 찾아서 숙소로 가는 데 좀 자존심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가서 인사를 해야하겠다고 갔습니다. 알고 보니 강사목사님이 심야기도회를 계속하는 줄 알고 먼저 가신 것이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기도하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그 때 제 자신이 다시 느꼈습니다. 주님은 낮아지게 하시고 그리고 쓰신다는 것을. 주님은 우리를 미약한 자리에 무릎꿇게 하시고 그리고 큰 은혜를 주십니다. 미약함을 통해서 말입니다.
꿈을 잉태한 미약함의 인내
주님의 성탄이 매년 이 때 돌아오는 것 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미약함을 통해서 주님의 그 창조주되심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미약함을 느끼는 그 때에 주님의 위대한 꿈과 능력이 그 미약함 속에 잉태됩니다. 그리고 출산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5: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5:3 Therefore Israel will be abandoned until the time when she who is in labor gives birth and the rest of his brothers return to join the Israelites.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능력, 그리스도의 꿈이 우리 속에 잉태되고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실 때 우리는 잉태된 고난을 겪습니다. 꿈을 잉태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세상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비웃음도 당합니다. 유산의 위기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는 우리에게 한없는 기도와 믿음이 자라나는 때입니다. 열달동안 아기가 자라나듯이 우리 속에서 꿈이 자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때가되면 성탄의 출산같이 주님의 그 놀라운 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미약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자라납니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실 때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인류의 꿈을 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애굽으로 피신하셨고 애굽에서 다시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오셨습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새출애굽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마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꿈을 가지면 그 꿈이 꺾이는 시련을 겪습니다. 이 때 꿈을 가진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미약함의 인내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미약함 속에서 애굽을 두번 경험합니다. 하나는 죄의 애굽입니다. 죄의 애굽에서 고난을 겪으며 그 곳에서 떠나는 길을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떠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애굽이 있습니다. 피난처 애굽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 피난처 애굽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죄의 세상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계신 세상에 교회가 서고 교회는 피난처가 됩니다. 애굽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피난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우리는 죄에서 출애굽하고 아울러서 피난처인 여호와 하나님의 목장, 교회의 창대함도 경험합니다. 주님의 출애굽운동은 죄는 떠나고 피난처는 창대하게 하여서 결국 그 모든 백성들과 함께 천국으로 떠날 날을 준비하게 하시는 구원운동입니다. 선교운동입니다. 대부흥운동입니다. 예수님의 새출애굽은 이제 그 미약함에서 시작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며 그 분의 이름의 위엄을 나타내시며 목양자로서 창대해지고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는 목자로서 창대해지는 은혜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4 He will stand and shepherd his flock in the strength of the LORD, in the majesty of the name of the LORD his God. And they will live securely, for then his greatness will reach to the ends of the earth.
여호와 하나님의 작은 시작은 창대해집니다
이제 성탄의 참된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게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왕의 길이 우리의 미약함 속에 놓여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겸손 속에 왕의 길이 닦여지고 베들레헴 같이 위대한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놀라운 성탄을 준비합니다. 이 번 성탄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대한 길, 왕의 길을 우리의 작은 시작, 겸손한 시작에서 열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 총회가 채택하여서 추진되는 일이 새출애굽의 운동입니다. 민족의 출애굽 national exodus입니다. 이 일이 지금 아주 미약한 우리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함께 같이 이 예수님이 출애굽 경건운동을 추진한다면 주님의 큰 일은 우리의 미약함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미약할 때 주님은 그 미약함 속에 태어나십니다. 우리는 꿈을 가진 미약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약함을 아는 그런 꿈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내년 2007년에 교단적으로 한국교회적으로 대부흥의 꿈을 가집니다. 그 대
부흥의 시작의 꿈이지요. 아울러 우리 교회로는 새성전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꿈을 갖습니다. 우리가 미약하니 저는 우리 성도들이 힘들여짓는 예배당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지는 예배당을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고층화되는 곳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큰 선물로 예배당을 지을 때 우리 성도들의 미약함이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탄은 말구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작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삼인의 교회들이 새성전의 꿈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새성전건설과 삼인의 교회로 전도운동하는 일이 꿈입니다. ‘외우고 나누고 전하자’라는 구호로 말씀의 교회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약함이 큰 길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연약하십니까. 부족하십니까. 베들레헴입니다. 바로 그곳입니다. 주님의 위대한 성탄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스스로를 작게 보는 일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를 작게 여기게 만드는 많은 역경 속에서 감사하시면서 성탄의 작은 시작들이 이번에 우리 겸손 속에서 시작되는 은혜가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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