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예수님은 생일이 없습니다
본문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생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어난 날짜를 모르니 생일이 없습니다. 또 예수님은 무덤도 빈 무덤입니다. 초상화도 없습니다. 남기신 글이나 필적이 없습니다. 도무지 예수님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서를 쓴 마태나 누가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생년월일은 밝히지 아니하고, 다만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만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마리아를 찾아와서 “네가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얻어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니,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가브리엘 천사의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는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순종합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1;38) 얼마나 아름다운 순종입니까 자기가 낳을 자식이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정녀의 잉태 사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세상의 사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초점은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탄생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 아기 예수는 누구이며, 왜 와야 했습니까
1. 아기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형성)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창조된 타락한 세상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신 것이지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먼저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생물학적 생명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생명이 아닙니다. 이 세상 자연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입니다. 창세전에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생명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생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과는 구별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한 생명이기에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예수의 참 생명이 증거 되지 않아서 아쉽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큰 선교사가 몇 분 계십니다. 세계 선교의 현장을 기독교 TV를 통해서 모니터를 해 봅니다. 누구나 은혜를 받을 만합니다. 하나같이 병이 낫는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예수의 기적이라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병 나은 것이 예수 믿는 믿음의 다 인 것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나 여호와 하나님나라에 대한 안내가 없습니다. 이 타락한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병 낫고 사업이 잘 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예수를 믿는 것으로 여기며 영생천국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영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이 너무도 희귀합니다. 영생은 머리나 가슴으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웃을 해하거나 상하게 하거나 짓밟거나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도와주고 살려서 함께 사는 삶이 영생을 얻은 자의 삶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왜 낮고 비천한 여인의 몸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겠습니까 천국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2. 아기 예수는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임마누엘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여호와 하나님(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아기 예수를 보낸 것입니다.
본문 21~23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려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임마누엘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홀로 있는 것은 죄 가운데 갇혀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써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고백한 시편 139편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홀로 있을 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도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가 없어져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죄를 사할 수가 없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을 이 세상에 아기 예수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우리는 지금도 잘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부부가 베들레헴 다윗의 고향에 왔으나 빈방을 구하지 못해서 남의 마구간을 빌려서 아기 예수를 낳고 말구유에 아기를 뉘였습니다. 그 아기를 우리는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겠습니까 이 아기 예수가 나중에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짐으로 우리는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 것입니다.
3. 아기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이 성육신 사건은 전에 한 번 설교를 하였습니다. 요1;1~18에서 사도 요한이 설명을 하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1절) 이 말씀은 세상천지를 짓기 전에 말씀이 먼저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즉 세상을 짓기 전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본래 여호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아들)이 나타내셨느니라. ”고 마리아가 낳은 아들 예수가 누구인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세상천지에 육신의 몸을 가진 신(神)은 없습니다. 그래서 신이 있다 혹은 없다고 끊임없는 논쟁을 합니다. 신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2천년 전에 33년 반 동안을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육신으로 오신분이 예수님이십니다(요일1;1~2).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본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께 가셔서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곧 그리스도가 되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제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도 말씀이 육신이 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6;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 분명히 하였습니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으니 우리도 몸을 가진 영이 된 것입니다. 성경 약1;18과 벧전 1;23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요3;5절은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이 곧 그리스도인 때문입니다. 성경에 없는 어떤 가르침도 들을 가치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월이 갈수록 바른 성경 교사가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서의 집이 세워지기를 주님께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맺는 말
아기 예수는 생일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것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생일이 있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기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창세 전의 말씀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 죄가 없어져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왕 성탄절을 기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기 예수를 보내어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 표적이 아기 예수의 탄생입니다. 우리 함께 찬송가 404장을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시다.
복음서를 쓴 마태나 누가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생년월일은 밝히지 아니하고, 다만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만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마리아를 찾아와서 “네가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얻어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니,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가브리엘 천사의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는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순종합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1;38) 얼마나 아름다운 순종입니까 자기가 낳을 자식이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정녀의 잉태 사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세상의 사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초점은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탄생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 아기 예수는 누구이며, 왜 와야 했습니까
1. 아기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형성)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창조된 타락한 세상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신 것이지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먼저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생물학적 생명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생명이 아닙니다. 이 세상 자연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입니다. 창세전에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생명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생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과는 구별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한 생명이기에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예수의 참 생명이 증거 되지 않아서 아쉽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큰 선교사가 몇 분 계십니다. 세계 선교의 현장을 기독교 TV를 통해서 모니터를 해 봅니다. 누구나 은혜를 받을 만합니다. 하나같이 병이 낫는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예수의 기적이라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병 나은 것이 예수 믿는 믿음의 다 인 것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나 여호와 하나님나라에 대한 안내가 없습니다. 이 타락한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병 낫고 사업이 잘 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예수를 믿는 것으로 여기며 영생천국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영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이 너무도 희귀합니다. 영생은 머리나 가슴으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웃을 해하거나 상하게 하거나 짓밟거나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도와주고 살려서 함께 사는 삶이 영생을 얻은 자의 삶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왜 낮고 비천한 여인의 몸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겠습니까 천국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2. 아기 예수는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임마누엘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여호와 하나님(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아기 예수를 보낸 것입니다.
본문 21~23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려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임마누엘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홀로 있는 것은 죄 가운데 갇혀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써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고백한 시편 139편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홀로 있을 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도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가 없어져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죄를 사할 수가 없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을 이 세상에 아기 예수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우리는 지금도 잘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부부가 베들레헴 다윗의 고향에 왔으나 빈방을 구하지 못해서 남의 마구간을 빌려서 아기 예수를 낳고 말구유에 아기를 뉘였습니다. 그 아기를 우리는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겠습니까 이 아기 예수가 나중에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짐으로 우리는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 것입니다.
3. 아기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이 성육신 사건은 전에 한 번 설교를 하였습니다. 요1;1~18에서 사도 요한이 설명을 하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1절) 이 말씀은 세상천지를 짓기 전에 말씀이 먼저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즉 세상을 짓기 전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본래 여호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아들)이 나타내셨느니라. ”고 마리아가 낳은 아들 예수가 누구인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세상천지에 육신의 몸을 가진 신(神)은 없습니다. 그래서 신이 있다 혹은 없다고 끊임없는 논쟁을 합니다. 신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2천년 전에 33년 반 동안을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육신으로 오신분이 예수님이십니다(요일1;1~2).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본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께 가셔서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곧 그리스도가 되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제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도 말씀이 육신이 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6;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 분명히 하였습니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으니 우리도 몸을 가진 영이 된 것입니다. 성경 약1;18과 벧전 1;23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요3;5절은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이 곧 그리스도인 때문입니다. 성경에 없는 어떤 가르침도 들을 가치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월이 갈수록 바른 성경 교사가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서의 집이 세워지기를 주님께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맺는 말
아기 예수는 생일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것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생일이 있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기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창세 전의 말씀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 죄가 없어져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왕 성탄절을 기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기 예수를 보내어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 표적이 아기 예수의 탄생입니다. 우리 함께 찬송가 404장을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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