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닫고 감사하는 날이 되자
본문
예수님이 성탄일에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뻐 지키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죄악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는 축복을 가져다주신 날이기 때문에 성탄절은 진정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닫고 감사하는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신학적 의미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함은 바로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천국이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아무리 낙원 같아도 거기 여호와 하나님이 안 계시면 거기는 천국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옥 같아도 거기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거기는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그럼으로 늘 여호와 하나님이 함게 계시면 힘들고 어려워도 그 곳은 천국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이 아무리 집이 크고 돈이 많아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그 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11절 처음에 마지막으로(Finally) 라고 한 말씀은결론
적으로 말씀과도 같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여 할 때에 목사님들은 마지막으로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눈빛이 생기를 냅니다
어떤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해 놓고는 한 5분 말하고, 또결론적으로 말해서 라고 해 놓고는
또 2, 3분 말하고, 또 끝으로 해 놓고는 몇 분 끌다가 설교를 맺습니다.
그럴 때 설교를 듣는 것은 고역일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을 남기고 끝을 맺습니다.
첫째는, 너희는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이 명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뻐하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명령합니다. 기뻐하라고요.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여러분, 얼마나 기뻐하며 사십니까
예수 믿으면서 기쁨보다는 슬픔과 고통과 짜증이 더 느신 분은 안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장 오늘 말씀 듣고 회개하고 기쁨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끔 회개 합니다
하나는 얼굴에 기쁨이 없이 단상에 오를 때입니다.
이유는 졸려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지방에 집회 갔다 올때는 운전하고 2시에 도착해서 금방 일어나면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때는 차마 할말은 아니지만 새벽 목회라는게 참 힘들구나 그렇습니다.
솔직한 마음입니다.
성도로서 돈내고 예수 믿으면 졸릴 때는 편하게 그냥 자버리면 되는데….
두번째 회개하는 것은 찬양을 못해서 박자 음정이 틀릴 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에서 너희는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억지로라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기뻐하며 사십시오, 감사하며 사십시오,
우리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충분히 그럴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보면 여러 가지 명령을 내리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무엇입니까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여호와 하나님,
사랑과 평화의 여호와 하나님 너희와 함께 하시니까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는데 70%가 봉사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답이 아닙니다.
히11: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것과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과 사람, 인격과 인격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전적으로 믿어주는 믿음입니다.
둘째는 너희는 온전케 되라고 명령합니다.
온전한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선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절대 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온전한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온전케 된다는 것의 의미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연초보다 얼마큼 예수님 쪽으로 더 나아간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새해에는 온전하게 예수님을 닮을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때로 시험을 통하여 온전해 지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역경에 부딪칠 때 믿음이 온전한지 아니한지 측정됩니다.
어느 성도가 교회에 나온 사이 자기 집에 도둑이 들어 낡은 TV 한 대를 도적 맞았습니다. 다음부터 교회 안나왔다고 합니다.
그 성도는 믿음의 시험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합격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시험을 통하여 온전한 신앙을 회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간증)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성에서 복음을 전하다 매맞고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일 어찌될지 모르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은 쇠를 시험하고 역경은 강자를 시험한다. '
우리가 일제 36년의 고통스러운 수난의 때가 있었기에 안중근 의사나 이 준 열사 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위기와 역경에서 영웅호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벧전 4 : 12 - 13 상).
겨울에 추워야 땅에 있는 해충들이 얼어 죽어 다음해 농사가 잘 될 수 있습니다.
바다에 때로 풍랑이 일어야 아래 위가 뒤집어져 속에까지 산소가 공급되어 각종 해초와 어패류가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믿음이 좋은지 나쁜지는 환난을 당해봐야 압니다.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지나야 옥동자를 얻듯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 : 3 - 4)
장사가 안된다고 예수 안 믿겠다든지 교인에게 돈 뜯겼다고 교회 안나간다고 한다면
그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딤음이야 말로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너희는 위로를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다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신앙 생활 자체가 좁은 길이었고, 핍박과 손해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세상 적으로 보면 신앙생활을 선택한다는 것은 손해 보는 선택이요,
어리석은 선택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길로 나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는 영생의 길이 있기 때문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은혜의 길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손해를 받았지만 우리는 결코 후회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생의 복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넷째는 너희는 마음을 같이 하라고 명령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혜와 은사가 넘치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이 있는데. 서로 파당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 자기가 더 정답이라는 것 가지고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처럼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한국 교회도 자칫 걸려들 수도 있고
어던 교회는 한지붕 교회에서 싸우는 교회도 있습니다.
여기 한국교회에 바로 우리들에게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용납하는 마음입니다.
로마서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렇다면 더욱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서로 위로를 해야 합니다.
자꾸 남의 단점을 약점을 교회의 약점과 단점을 꼬집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교회 목사님은 설교가 어떻고 찬양이 어떻고
벌써 마귀의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세요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사랑 오직 감사로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너희는 평안하라고 명령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거나 염려 근심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가 함께 하십니까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13절 축복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돈을 주시지 않고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복과 사람이 요구하는 복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세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주신 후 그 복을 잘 누리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복을 주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민수기 6 : 24 - 26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는 말씀을 주시면서 가장 큰 축복은 여호와께서 지키시고, 그 얼굴을 비추시고,
그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여 드시고 평강 주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사도들이 교회를 향하여 복을 빌 때는
오늘 본문인 고린도 후서 13:13의 말씀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축도는 복을 기원하는 단순한 기도만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을 선언하는 목회자만의 고유한 축복의 기도입니다.
예배드리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한 축복의 선언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축도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나이다' 하지 않고 본문의 말씀을 따라 통상적으로 '있을지어다'라고 기도합니다.
특별히 미국인 들은 축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미국 성도들은 축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게 계심을 깨닫고 더욱 감사합니다.
미국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미국 사람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배에서 내리자 마자 그리고는 무릎꿇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부터 시작하고 성전건축부터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학교와 경찰서, 감옥을 짓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을 먼저 건축한 것입니다. 대통령 선서에서 또한 모든 생활에서 기독교적인 삶이 베어 있습니다.
즉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늘 함게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이기에
가능한 다섯 가지 명령을 잘 기억하고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기뻐하며 사십시오, 2) 예수님을 닮아 온전케 되십시오,
3) 위로를 받으십시오, 4) 마음을 같이 하십시오,
5) 평안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뻐 지키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죄악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는 축복을 가져다주신 날이기 때문에 성탄절은 진정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닫고 감사하는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신학적 의미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함은 바로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천국이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아무리 낙원 같아도 거기 여호와 하나님이 안 계시면 거기는 천국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옥 같아도 거기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거기는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그럼으로 늘 여호와 하나님이 함게 계시면 힘들고 어려워도 그 곳은 천국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이 아무리 집이 크고 돈이 많아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그 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11절 처음에 마지막으로(Finally) 라고 한 말씀은결론
적으로 말씀과도 같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여 할 때에 목사님들은 마지막으로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눈빛이 생기를 냅니다
어떤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해 놓고는 한 5분 말하고, 또결론적으로 말해서 라고 해 놓고는
또 2, 3분 말하고, 또 끝으로 해 놓고는 몇 분 끌다가 설교를 맺습니다.
그럴 때 설교를 듣는 것은 고역일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을 남기고 끝을 맺습니다.
첫째는, 너희는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이 명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뻐하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명령합니다. 기뻐하라고요.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여러분, 얼마나 기뻐하며 사십니까
예수 믿으면서 기쁨보다는 슬픔과 고통과 짜증이 더 느신 분은 안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장 오늘 말씀 듣고 회개하고 기쁨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끔 회개 합니다
하나는 얼굴에 기쁨이 없이 단상에 오를 때입니다.
이유는 졸려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지방에 집회 갔다 올때는 운전하고 2시에 도착해서 금방 일어나면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때는 차마 할말은 아니지만 새벽 목회라는게 참 힘들구나 그렇습니다.
솔직한 마음입니다.
성도로서 돈내고 예수 믿으면 졸릴 때는 편하게 그냥 자버리면 되는데….
두번째 회개하는 것은 찬양을 못해서 박자 음정이 틀릴 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에서 너희는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억지로라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기뻐하며 사십시오, 감사하며 사십시오,
우리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충분히 그럴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보면 여러 가지 명령을 내리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무엇입니까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여호와 하나님,
사랑과 평화의 여호와 하나님 너희와 함께 하시니까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는데 70%가 봉사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답이 아닙니다.
히11: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것과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과 사람, 인격과 인격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전적으로 믿어주는 믿음입니다.
둘째는 너희는 온전케 되라고 명령합니다.
온전한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선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절대 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온전한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온전케 된다는 것의 의미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연초보다 얼마큼 예수님 쪽으로 더 나아간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새해에는 온전하게 예수님을 닮을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때로 시험을 통하여 온전해 지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역경에 부딪칠 때 믿음이 온전한지 아니한지 측정됩니다.
어느 성도가 교회에 나온 사이 자기 집에 도둑이 들어 낡은 TV 한 대를 도적 맞았습니다. 다음부터 교회 안나왔다고 합니다.
그 성도는 믿음의 시험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합격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시험을 통하여 온전한 신앙을 회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간증)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성에서 복음을 전하다 매맞고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일 어찌될지 모르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은 쇠를 시험하고 역경은 강자를 시험한다. '
우리가 일제 36년의 고통스러운 수난의 때가 있었기에 안중근 의사나 이 준 열사 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위기와 역경에서 영웅호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벧전 4 : 12 - 13 상).
겨울에 추워야 땅에 있는 해충들이 얼어 죽어 다음해 농사가 잘 될 수 있습니다.
바다에 때로 풍랑이 일어야 아래 위가 뒤집어져 속에까지 산소가 공급되어 각종 해초와 어패류가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믿음이 좋은지 나쁜지는 환난을 당해봐야 압니다.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지나야 옥동자를 얻듯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 : 3 - 4)
장사가 안된다고 예수 안 믿겠다든지 교인에게 돈 뜯겼다고 교회 안나간다고 한다면
그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딤음이야 말로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너희는 위로를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다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신앙 생활 자체가 좁은 길이었고, 핍박과 손해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세상 적으로 보면 신앙생활을 선택한다는 것은 손해 보는 선택이요,
어리석은 선택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길로 나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는 영생의 길이 있기 때문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은혜의 길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손해를 받았지만 우리는 결코 후회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생의 복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넷째는 너희는 마음을 같이 하라고 명령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혜와 은사가 넘치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이 있는데. 서로 파당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 자기가 더 정답이라는 것 가지고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처럼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한국 교회도 자칫 걸려들 수도 있고
어던 교회는 한지붕 교회에서 싸우는 교회도 있습니다.
여기 한국교회에 바로 우리들에게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용납하는 마음입니다.
로마서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렇다면 더욱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서로 위로를 해야 합니다.
자꾸 남의 단점을 약점을 교회의 약점과 단점을 꼬집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교회 목사님은 설교가 어떻고 찬양이 어떻고
벌써 마귀의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세요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사랑 오직 감사로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너희는 평안하라고 명령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거나 염려 근심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가 함께 하십니까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13절 축복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돈을 주시지 않고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복과 사람이 요구하는 복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세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주신 후 그 복을 잘 누리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복을 주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민수기 6 : 24 - 26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는 말씀을 주시면서 가장 큰 축복은 여호와께서 지키시고, 그 얼굴을 비추시고,
그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여 드시고 평강 주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사도들이 교회를 향하여 복을 빌 때는
오늘 본문인 고린도 후서 13:13의 말씀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축도는 복을 기원하는 단순한 기도만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을 선언하는 목회자만의 고유한 축복의 기도입니다.
예배드리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한 축복의 선언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축도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나이다' 하지 않고 본문의 말씀을 따라 통상적으로 '있을지어다'라고 기도합니다.
특별히 미국인 들은 축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미국 성도들은 축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게 계심을 깨닫고 더욱 감사합니다.
미국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미국 사람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배에서 내리자 마자 그리고는 무릎꿇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부터 시작하고 성전건축부터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학교와 경찰서, 감옥을 짓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을 먼저 건축한 것입니다. 대통령 선서에서 또한 모든 생활에서 기독교적인 삶이 베어 있습니다.
즉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늘 함게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과 평강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이기에
가능한 다섯 가지 명령을 잘 기억하고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기뻐하며 사십시오, 2) 예수님을 닮아 온전케 되십시오,
3) 위로를 받으십시오, 4) 마음을 같이 하십시오,
5) 평안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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