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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성탄절에 뿌릴 씨앗

본문

마커스 코넬리의 ‘푸른 목장’이라는 드라마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건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든 인간들이 죄악으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쓸어버리시고 사람이 아닌 동물로 다시 시작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로 인해 큰 충격과 실망, 후회를 했지만 나는 사랑하는 내 아들을 그 세상으로 보내기로 했단다. ”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흐르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독생자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성탄절에 구체화된 것입니다. 이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진정한 자녀 노릇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성탄입니다. 본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세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코스모스’의 세상과 ‘아이언’의 세상입니다. 코스모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구를 비롯한 온 우주를 일컫는 세상이고, 아이언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코스모스 세상 속에서 성탄절날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긍휼과 사랑의 씨를 뿌리자.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신 것입니다. 그 긍휼로 주홍 같이 붉은 우리 죄를 눈과 같이 희게 씻고 영원한 천국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관계를 새롭게 만듭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가족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를 화목케 합니다. 우리가 화해와 사랑의 손을 내밀고 사람을 살리는 가슴을 열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긍휼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여호와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긍휼을 느껴야 합니다. 비록 불신자라도 자식을 향한 긍휼의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긍휼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볼 때, 우리는 하늘의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사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긍휼의 마음으로 돌아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언론, 교육의 모든 분야와 가정생활, 사회생활의 현장에 임해야 합니다. 거기에 회복의 길이 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아버지의 마음, 즉 긍휼이 필요합니다. 긍휼은 곧 사랑의 마음입니다.
어느 저명한 소아과 전문의는 체중 미달의 연약한 어린이를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회진할 때 아이의 진료기록표에다 다음과 같은 처방을 써놓습니다. “이 아기는 세 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함. ”
애정이 필요한 것은 갓 태어난 아기뿐만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신체적 질병이 대부분 불안이나 고독, 그리고 버림받는다는 느낌에 기인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합니다.
우리의 영적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힘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방법으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은 최선의 양약입니다. 사랑보다 좋은 약은 없습니다. 사랑합시다. 무조건 사랑합시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합시다.
사랑의 씨를 뿌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랑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때문에 죽습니다.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사랑 때문에 슬퍼합니다.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사랑 때문에 흐느낍니다. 사랑 때문에 만나고, 사랑 때문에 헤어집니다. 사랑 때문에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낙심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면 우리의 전 존재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감정이 살아나고, 온몸의 감각이 살아납니다. 사랑하면 온몸으로 듣고,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온몸으로 말하고, 온몸으로 반응합니다. 사랑하면 감춰진 사랑의 언어가 살아납니다. 플라톤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사랑하면 약한 자가 강해집니다. 또한 사랑하면 강한 자는 약해집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에게 언제나 지게 됩니다. 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지는 것입니다. 져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이기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약해짐으로 사랑하고, 약해짐으로 친밀해집니다. 그래서 사랑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면 참습니다. 사랑하기에 참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참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벼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벼루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용서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살린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소망을 줍니다. 힘을 심어 줍니다. 삶의 의미를 줍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산소와 같습니다. 산소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랑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잘 심고 가꾸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사랑은 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씨앗처럼 늘 심고 가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작은 사랑의 씨앗을 잘 가꾸는 것이 영성관리입니다. 사랑의 씨앗이 작다고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 씨앗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 씨앗을 잘 가꾸어 외로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합시다. 사랑의 씨앗으로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도록 합시다.
감사의 씨를 뿌리자.
19세기 초에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마티는 재상의 직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적인 사상이 있다는 혐의 때문에 정계에서 쫓겨났습니다. 격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던 그는 심지어 신발이 없어 맨발로 외출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두 다리를 잃은 불구자가 예배당 문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감격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얼마나 감사한가. 비록 신발은 신지 못했지만 이렇게 튼튼한 두 다리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감당하기 벅찬 짐들, 어려운 경제 때문에 많은 불평을 합니다. 이들은 상황이 어렵기만 한데 어찌 감사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삶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가족, 신앙의 공동체, 나를 돕고 지켜준 주위의 사람들…. 무수히 많은 감사의 조건을 다시 한 번 손꼽아 보아야 합니다. 감사의 생활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떠올리면 감사의 조건이 더 많아집니다.
남자든 여자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태양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얘깁니다. 하지만 억지로 일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감사하며 일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답게 일할 수도 있고 기계처럼 일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하찮은 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시시한 일이란 없습니다.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은 없습니다. 때론 나의 삶을 세상의 기준에 비춰보게 됩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와 별다를 것이 없는 일상은 우리의 마음을 실망케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볼 때 결코 반복되는 하루도, 별다를 것이 없는 일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새로워지기를 기대하며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로 변화된 삶의 기쁨이 우리에게 있길 소망합니다.
작은 일의 가치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우리에게 지금 행복한지를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먼저 행복의 조건들을 찾을 것입니다. 넓은 집과 좋은 차, 미래가 보장된 직업과 통장의 잔고, 자녀의 높은 등수와 건강 등이 행복의 조건으로 선택된 후 머릿속에서 매겨진 행복지수가 우리의 대답을 결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삶의 만족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감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지금 감사할 수 없다면 더 높은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우리는 소유와 상관없이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씨앗을 뿌리자
강남교회 이 집사님은 간암을 앓았던 분입니다. 간암 3기가 되어서 암이 여러 군데로 전이되는 바람에 의사들도 수술을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생을 포기하지 않고 맨발로 청계산을 등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청계산 정상에 도착하면 힘들어도 크게 웃었습니다. 꾸준히 맨발로 청계산을 등산하고, 매일 교회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하다가 암이 전부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인간은 안 된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좌절할 수 있는 상황에도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버려두지 않으시고 전능의 손을 펴서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기도의 씨앗을 뿌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끊임없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배와 기도는 주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주님과의 만남 없이는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 백성들의 특권이며 복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없으면 내일과 미래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가장 쉬운 일은 숨쉬기입니다.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것이 숨쉬기입니다. 그러나 임종 직전에 있는 사람이나 중환자가 가장 하기 힘든 일도 숨쉬기입니다. 의사들은 이 숨쉬기를 돕기 위해 갖가지 기구를 동원합니다.
우리는 영적 호흡을 점검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자연스럽고도 쉬운 일이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영적 능력의 원천입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살아 있는 교인은 기도하는 교인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하는 가정과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잘못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도하려 합니다. 기도는 비상 낙하산이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와 예배는 하늘과 땅의 기본을 움직이는 열쇠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일꾼을 통해 위대한 미래가 열립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이 가장 위대한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쓰십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을 통해 미래가 열립니다. 성탄의 기쁨으로 사랑과 긍휼의 씨를 뿌립시다. 감사와 기도의 씨를 뿌립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뿌린 작은 씨앗 가운데 머무시며, 사소한 행동을 통해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비범한 삶을 선물로 주시고 특별한 은사를 공급하심으로써 평범하고 진부한 사람을 치료하십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가능한 모든 곳에서, 가능한 모든 순간을 놓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의 씨앗을 뿌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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