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절에 행하여야 할 일
본문
예수님의 탄생은 정확한 날짜를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12월 25일을 정해 놓고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고 있지만 정확한 날짜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안 오셨느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아기 예수가 탄생하셨다고 하는 것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것을 우리는 믿고, 또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탄생 년도와 날짜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1세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으로 당시에 생일보다는 사망일을 더 기념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2세기에도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쫓기던 사도들이 순교하여 체계적인 정립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당시 만연되어 있던 마니교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님의 생일을 성대히 경축하게 되었는데 4세기에 들어와서 알렉산드리아에 크레멘트가 탄생일의 중요성을 언급하여서 354년 로마의 주교 리베리우스가 정복 못한 태양의 생일이라 하여 로마의 동짓날인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는데 이날은 낮에
길이가 가장 짧다가 차츰차츰 길어지는 날이요 이는 생명의 상징이라 하여 그날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5세기초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최대의 축일로 선언했고, 로마의 유스트니아우스 황제는 주님의 탄생 일자에 관하여 여러설을 다 폐하고 칙령으로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확정을 지어서 공포한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성탄절이 된것입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앞자와 미사라고 하는 두 글자를 합쳐서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용어를 만들어 냈고, 다시 말씀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에 그분을 위해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온 세계에서 축하하고 있고 주님의 나심을 기원으로 하는 서기 달력을 온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으니 주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 탄생의 날자는 정확하게 모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하고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우리가 정확하게 모른다고 하여 성탄절을 지키지 아니한든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느냐,안 오셨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 논의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셨으니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첫째로, 성탄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입니다.
즉 성육신 되신 날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곧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서, 즉 여호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인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초인간적인 탄생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4절에는 "때가 차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기록되었고, 디모데전서 3장16절에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는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기록되었으며, 로마서 8장3절에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 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기록되
어 있고, 이사야 9장6절에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기록되었고,이사야 7장14절에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든지 예수님의 탄생은 초인간적인 탄생인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탄생입니다. 마태복음 8장27절에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기록되어 있고, 골로새서 1장 16절에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
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기록되어 있으며, 사도행전 10장3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하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탄생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성탄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이기 때문에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셨습니다.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셨다는 것은 여러분과 내가 체험하고 있는 그 모든 체험을 예수님도 친히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슬픔을 체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7절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 하사"라고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2)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그는 아기로 태어나 우리처럼 성장하는 과정을 밟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40절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말씀하셨습니다
3)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때로는 배가 고프셨던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2절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어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4)때로는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신지라 수면이 필요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23절에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깊이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배 밑에서 깊이 잠드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가난도 체험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5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6)그는 피곤도 느끼셨습니다. 요한복음 43장6절에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요한복음 1장1절에 있는 말씀 즉 로고스는 소위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어떤 비인격적인 우주 원리나 세계 법칙이나 이성을 말함이 아니요, 인격화 한 영원한 로고스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를 지적해서 말한 것입니다. 요한은 말씀의 의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습니다.
1)영원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니 - 말씀의 영원성을 강조했고
2)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니 - 말씀의 인격성을 강조했고
3)곧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이라 했으니 - 말씀의 신성을 의미했고
4)만물의 창조주로서의 말씀 곧 - 말씀의 창조성을 강조했고
5)생명과 빛으로의 말씀 곧 - 말씀의 광명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성탄절이 과연 무슨 날이냐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날이 성탄절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성탄절은 속죄하는 날입니다.
속죄하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10절에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말씀하였고 마가복음 10장45절에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속죄의 필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탄절이라고 하는 그날에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의보다는 죄가 더 많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로마서 3장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화가 심슨 박사는 "자기 전 생애를 통하여 내가 죄인 된 것과 예수가 나의 구주이심을 발견한 것이 최대의 발견이라"고 자부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1장15절에 고백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속죄는 30년간의 예수님의 고행만 가지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까닭에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들은 살려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어나신 목적이 죽으려고 태어나셨습니다.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속죄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여호와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 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시편 53편 5절의 말씀입니
다. 또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런 까닭에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는 우리의 죄악이 속죄함 받을 수가 없는 까닭에 성탄절 만큼은 우리들이 속죄함 받는 날로 지켜야 될 줄믿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원리는 4중 복음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는 중생의 복음입니다
성결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함을 좇으라! 바로 성결의 복음입니다. 재림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
온 재림의 약속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신유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그래서 4중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번째로, 성탄절은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은 주는 계절입니다. 아이들은 받기를 원하지만 어른들은 주기를 원합니다. 줄 대상이 없는 사람,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풍성히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들은 풍성히 받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여러번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인류는 계속 죄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만 갔습니다. 인류의 멸망이 임박했으나 인간들은 육신의 안위와 쾌락을 추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가 인간이 되셔서 인간들과 대화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들에게 살길과 죽음의 길을 똑똑히 제시해 주셨고, 인
류가 영원히 죽지 않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곧 스스로가 죄값을 치르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공로를 믿는 믿음만 가지면 영원히 죽지 않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안식을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29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네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안식은 우리들에게 더 풍부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또한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돈이 있어도 평안이 없는 집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서울대학을 나오고 연세대학을 나오고 고려대학을 나오고 하바드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그 가정에 파란 우여곡절이 많은 가정들이 있습니다. 또한 생명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영생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10-12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유는 여러분과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참다운 행복은 물건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주님의 탄생 년도와 날짜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1세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으로 당시에 생일보다는 사망일을 더 기념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2세기에도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쫓기던 사도들이 순교하여 체계적인 정립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당시 만연되어 있던 마니교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님의 생일을 성대히 경축하게 되었는데 4세기에 들어와서 알렉산드리아에 크레멘트가 탄생일의 중요성을 언급하여서 354년 로마의 주교 리베리우스가 정복 못한 태양의 생일이라 하여 로마의 동짓날인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는데 이날은 낮에
길이가 가장 짧다가 차츰차츰 길어지는 날이요 이는 생명의 상징이라 하여 그날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5세기초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최대의 축일로 선언했고, 로마의 유스트니아우스 황제는 주님의 탄생 일자에 관하여 여러설을 다 폐하고 칙령으로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확정을 지어서 공포한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성탄절이 된것입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앞자와 미사라고 하는 두 글자를 합쳐서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용어를 만들어 냈고, 다시 말씀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에 그분을 위해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온 세계에서 축하하고 있고 주님의 나심을 기원으로 하는 서기 달력을 온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으니 주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 탄생의 날자는 정확하게 모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하고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우리가 정확하게 모른다고 하여 성탄절을 지키지 아니한든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느냐,안 오셨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 논의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셨으니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첫째로, 성탄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입니다.
즉 성육신 되신 날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곧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서, 즉 여호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인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초인간적인 탄생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4절에는 "때가 차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기록되었고, 디모데전서 3장16절에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는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기록되었으며, 로마서 8장3절에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 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기록되
어 있고, 이사야 9장6절에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기록되었고,이사야 7장14절에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든지 예수님의 탄생은 초인간적인 탄생인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탄생입니다. 마태복음 8장27절에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기록되어 있고, 골로새서 1장 16절에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
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기록되어 있으며, 사도행전 10장3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하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탄생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성탄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이기 때문에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셨습니다.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셨다는 것은 여러분과 내가 체험하고 있는 그 모든 체험을 예수님도 친히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슬픔을 체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7절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 하사"라고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2)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그는 아기로 태어나 우리처럼 성장하는 과정을 밟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40절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말씀하셨습니다
3)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때로는 배가 고프셨던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2절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어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4)때로는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신지라 수면이 필요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23절에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깊이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배 밑에서 깊이 잠드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가난도 체험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5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6)그는 피곤도 느끼셨습니다. 요한복음 43장6절에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요한복음 1장1절에 있는 말씀 즉 로고스는 소위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어떤 비인격적인 우주 원리나 세계 법칙이나 이성을 말함이 아니요, 인격화 한 영원한 로고스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를 지적해서 말한 것입니다. 요한은 말씀의 의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습니다.
1)영원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니 - 말씀의 영원성을 강조했고
2)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니 - 말씀의 인격성을 강조했고
3)곧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이라 했으니 - 말씀의 신성을 의미했고
4)만물의 창조주로서의 말씀 곧 - 말씀의 창조성을 강조했고
5)생명과 빛으로의 말씀 곧 - 말씀의 광명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성탄절이 과연 무슨 날이냐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날이 성탄절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성탄절은 속죄하는 날입니다.
속죄하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10절에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말씀하였고 마가복음 10장45절에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속죄의 필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탄절이라고 하는 그날에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의보다는 죄가 더 많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로마서 3장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화가 심슨 박사는 "자기 전 생애를 통하여 내가 죄인 된 것과 예수가 나의 구주이심을 발견한 것이 최대의 발견이라"고 자부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1장15절에 고백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속죄는 30년간의 예수님의 고행만 가지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까닭에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들은 살려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어나신 목적이 죽으려고 태어나셨습니다.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속죄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여호와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 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시편 53편 5절의 말씀입니
다. 또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런 까닭에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는 우리의 죄악이 속죄함 받을 수가 없는 까닭에 성탄절 만큼은 우리들이 속죄함 받는 날로 지켜야 될 줄믿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원리는 4중 복음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는 중생의 복음입니다
성결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함을 좇으라! 바로 성결의 복음입니다. 재림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
온 재림의 약속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신유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그래서 4중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번째로, 성탄절은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은 주는 계절입니다. 아이들은 받기를 원하지만 어른들은 주기를 원합니다. 줄 대상이 없는 사람,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풍성히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들은 풍성히 받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여러번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인류는 계속 죄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만 갔습니다. 인류의 멸망이 임박했으나 인간들은 육신의 안위와 쾌락을 추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가 인간이 되셔서 인간들과 대화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들에게 살길과 죽음의 길을 똑똑히 제시해 주셨고, 인
류가 영원히 죽지 않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곧 스스로가 죄값을 치르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공로를 믿는 믿음만 가지면 영원히 죽지 않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안식을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29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네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안식은 우리들에게 더 풍부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또한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돈이 있어도 평안이 없는 집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서울대학을 나오고 연세대학을 나오고 고려대학을 나오고 하바드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그 가정에 파란 우여곡절이 많은 가정들이 있습니다. 또한 생명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영생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10-12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유는 여러분과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참다운 행복은 물건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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