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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성탄을 준비하신 하나님

본문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진리는 십자와 부활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탄생하시지 않았다면 지난 한 해가 흘러간 만큼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그 만큼 단축된 것이며, 우리의 영혼은 이미 허물과 죄로 사망선고가 나버린 존재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을 신학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뜻을 담아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는 말씀처럼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성탄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구원과 천국과 영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크게 감사하면서도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는 고작 성탄절 하루의 축제로만 그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치 한 알의 밀이 땅에 심겨졌기 때문에 싹이 나서 결실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성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면 예수님의 성탄도 십자가 사건처럼 믿음으로 준비하여 맞이해야 할 큰 명절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게 되면 성탄은 우연이나 급조된 것이 아니라 우리 보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부터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신 중대한 사건임을 나타내 보여준다면 오늘 우리는 더더욱 준비된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1. 창조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신구약 66권에 기록된 총 31,073 구절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한 성경구절이 어떤 성경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 3:16을 꼽을 것입니다.
(요 3: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지만 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확증해 주는 사건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성육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요일 4:9)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그러나 알고 보면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가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출발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사건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 인간도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간만 독특하게 창조하신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지대하셨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창 1:26)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가) 여기서 ‘모양’이라는 말은 그림자라는 뜻으로 그림자는 실물의 형상인 것처럼 인간형상의 실물이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사가 크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나) 여기서 ‘만들고’라는 말은 누구를 시키지 않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친히 직접 지으신 최고의 걸 작품 이라는 것입니다.
다) 여기서 ‘다스리게’ 라는 말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하신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 만큼 인간을 신뢰하셨음을 뜻합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목적이 인간을 배려하시고 사랑하심 때문이었음을 엿새 동안 매일매일 보시기에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상을 몽땅 다 인간에게 거저 주신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지대하신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창 1:28)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가) 여기서 ‘복을 주시며’라는 말씀은 인간관계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값비싼 것도 거저 선물을 하는 것처럼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슨 복 받을 만한 행실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신 복입니다.
나) 여기서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 유일하게 단일종이요, 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생명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 여기서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발로 밟는다는 뜻으로 이는 인간이 자신의 발로 밟는 모든 땅을 인간을 위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밟기만 하면 다 인간의 것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은 역시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뜻하는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이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특별히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지상 낙원 에덴동산을 특별히 만드셔서 인간에게 값없이 다 주신 것은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가) 지상 낙원 에덴동산이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그 어느 곳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까닭은 그 곳에만 인간이 따먹고 영생할 수 있는 열매가 달리는 생명나무와 그것을 따먹지 않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입증할 수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으신 것만 보아도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나)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그곳에 정금과 보석이 자갈처럼 흔하게 하심으로 인간이 그것을 보고 기쁘고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엿보게 합니다.
(창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창 2: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다) 그와 같은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통치자가 되고 주인노릇을 하게 하신 것만도 감사한데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살피셔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아시고 돕는 배필인 하와를 지어 짝지어 주심으로 인간이 더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신 것은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인 것입니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역
인간관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인간관계는 세 종류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는 나에게 유익도 해로움도 전혀 끼치지 않는 무관한 관계입니다. 다음은 나에게 남다른 관심과 배려와 나눔을 통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또 하나는 사랑을 베풀어 준 나에게 도리어 배신을 하고 손해와 상처를 입히는 적대적인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이미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처럼 사랑하시고 배려와 축복을 아끼시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사랑을 받은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께 어떤 반응을 보여야만 할까요
1)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만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에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타락 전 단계가 바로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상태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에게 좋은 것을 다 주셨다고 그것을 생색내시며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은 기대를 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롬 1:21)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또한 그 감사하는 마음을 예물에 담아드리는 자가 될 때 동일한 은혜와 축복을 받았을지라도 감사하는 자가 더욱 보람과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2)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선을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상 낙원에서 생명과일을 먹으면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 때부터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시고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정반대로 자기들에게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오히려 불신과 불순종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동산에 살게 하신 것은 지상 낙원이라고 일컫는 에덴동산에서 영생하는 생명과일을 마음껏 따먹으면서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조상 아담은 그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고 여호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는 죄를 범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조상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된 근본적인 의도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결코 먹을 것이 없고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배려에 대해 감사치는 못할망정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여호와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말을 믿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배은망덕한 인간의 배신행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면서도 이 같이 하찮은 미물 뱀의 말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하고 뱀이 시키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의 죄는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닌 것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이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면서까지 스스로 자처한 죄악의 열매인 것입니다.
3) 사랑은 마치 종합 비타민처럼 여러 가지 좋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사랑은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이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실수와 잘못까지도 용서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와 같이 용서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조상 아담이 설령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배은망덕한 죄를 범하였지만 뒤늦게 라도 그 잘못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그 정답은 용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을 돌아볼 충분한 시간적인 기회를 부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회개의 기회로 삼지 않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창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오히려 자신의 잘못된 죄악을 숨기고 자기가 범한 배은망덕한 죄를 합리화하며 변명하고 심지어 자기가 가장 사랑해야 할 아내에게 책임전가를 할 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창 3:12) 아담이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알면서도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로 인해 죽게 되었고 또한 살아있는 동안 저주와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물론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 같으나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예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사단의 말을 더 신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아담이 스스로 자청한 것이기 때문에 일말의 동정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죄 값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이요, 형벌이요, 죽음이었습니다.
3. 변함이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만일 인간관계에서 그처럼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처럼 배신하였다면 범죄한 현장에서 당장 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설령 살려 둔다고 할지라도 미운 마음에 굶어 죽으라고 경작지조차 다 몰수하고 맨몸으로 황량한 광야로 내어 쫓거나 흔히 쓰는 방법처럼 깊은 감옥에 가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으면 끝까지 변함이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비록 당신을 배신하고 배은망덕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시는 것이 공의로우신 처사이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노 중에서라도 자비를 잊지 않으시고 죄의 형벌에 따르는 고통을 감소시키는 자비로운 손길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창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 경고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현장에서 피를 토하며 즉사한 것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930세까지 장수하게 하셨습니다.
(창 5: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 5:5)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 아담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는 복을 거두지 않으셨으며,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빼앗지 아니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가게 하심으로 아담이 죽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류가 땅위에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창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3) 아담의 범죄로 여호와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이어가게 하시기 위해 양을 잡아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어 수치를 가리게 하시고, 그 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어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그와 같은 제사 제도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죄와 고통이 해결될 수 없음을 아시고 인간이 범죄한 그 현장에서 인간을 범죄 하도록 유혹한 뱀을 저주하시고 인간에게는 그 뱀의 머리를 일격에 까부실 구세주를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세상에 오시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를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족보는 남자가 남자를 낳은 가부장 중심의 족보였습니다.
(마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물론 중간에 간혹 여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그것도 여성이 남성을 통해 자손을 낳았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그와 같은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직전까지 남성 중심으로 일관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에서만은 유일하게 남성이 배제된 여성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기사를 의심하지 않고 사실로 받아드릴 수 있는 근거는 그 일이 무에서 유를 만드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신 일이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우연히 발생되거나 인간이 조작한 가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변함없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 본문에서 배신자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이 바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짐이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때가 되매 아기 예수의 탄생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예언의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오래 동안 인류를 짓눌렀던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급소를 공격하심으로 아담의 자손인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 다름 아닌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현장에서 선포되었으며, 그 후에도 인간의 범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중단되지 않고 때가 됨에 마침내 아기 예수께서 세상에 탄생하신 날이 바로 성탄절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탄절이 임박했는데도 성탄의 주님을 맞이할 마음에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처럼 오래 전부터 성탄을 준비해 오신 것은 인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배려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탄절이 있는 12 월 첫 주 오늘 부터라도 성탄을 마지하지 위한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준비가 바로 우리의 조상 아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불순종하며 살았던 죄,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배은망덕한 죄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고 마음 깊이 회개하는 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성탄 준비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았는가를 깨닫게 되고 그 잘못을 한 달 동안 회개하고 새해를 맞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성탄 준비인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배은망덕한 아담을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담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 같은 죄인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배려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마음에 가득히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감격은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나의 갈 길을 깨닫게 하여 주며,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여 주며, 내가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비록 한해가 덧없이 흘러갔지만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은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하고 한 해를 마무리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새해에는 이전에 받아 보지 못한 놀라운 은혜와 새로운 일을 예비해 놓으시고 기다리실 것입니다.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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