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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성탄을 준비하신 성령님

본문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는 성경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홀로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 구약 성경에서 신약 성경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가지고 늘 성부, 성자, 성령 삼위를 가지신 삼위 일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일하셨음을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 일관성 있게 나타나 있습니다.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가운데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성경을 꼽는 다면 물론 두 말할 것도 없이 사도행전일 것입니다.
(행 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령은 사도행전 때부터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 사건 때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역을 하셨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창조사역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 단독적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도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창조사역에 동역하셨음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 1:1)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은 성령님을 가리키는 말이고 운행하셨다는 말은 어미 닭이 알을 품는 것처럼, 어미가 새끼를 위해서 계속 날개를 치는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암튼 성령님께서 창조 사역에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한 인간을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성탄을 준비하셨다면 성령님께서는 그 중대한 일을 이루시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셨을까요
오늘 성경 본문은 바로 그 성령께서 성탄을 준비하시는 일을 외면하시거나 소극적으로 방관하신 것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역사하셨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셨는지를 통해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성탄 마지를 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난 성탄 예언
세상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인터넷이나 신문이나 정해진 뉴스 시간에 앵커들을 통해서 듣게 되는데 그것이 어떤 뉴스이든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듣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좋은 소식이요, 또 하나는 듣는 이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뉴스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뉴스보다는 오히려 불안과 우울과 분노를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소식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뉴스를 알려주는 앵커맨들이었습니다.
물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는 영적인 뉴스 역시 듣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좋은 소식과 정반대로 두려움을 갖게 하는 부정적인 소식도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준 소식 가운데 좋은 소식은 억압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소식이라면, 나쁜 소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에 대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오늘 성경에 들려 준 소식은 긍정적인 좋은 소식일까요 아니면 부정적인 나쁜 소식일까요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기서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말은 마치 장미꽃이 만발한 것과 같이 즐거운 소식을 널리 전파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인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자유를 잃어버리고 이역만리에서 고난을 겪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자유와 해방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아름다운 소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물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마치 그 역사의 현장을 스케치 해 놓은 것처럼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 61: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물론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은 그 후 200여년 후에나 일어날 사건을 미리 예언한 말씀으로 예언의 때가 차게 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예언의 말씀대로
고레스 왕을 통해 바벨론의 포로로 되었던 유다 백성들이 느헤미야와 학개와 에스라의 지도를 받아 일차 이차 삼차에 걸쳐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봉헌한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느 6: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느 6: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 말씀은 단순히 그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만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성경 본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치적인 회복만을 예언하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기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한다는 말씀이 바로 죄와 질병과 고통과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생이 구원을 얻게 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과연 세상에서 누가 그와 같은 구원을 베풀 사람이 있습니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은 다 죄인이며 죽음을 전제로 하고 살아가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여호와의 신이 임하신 분은 그와 같은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도 성령이 임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성령의 임재를 상징하는 기름을 부어 그 직분을 성별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떤 사람도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처럼 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고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으며, 갇힌 자가 놓임을 얻은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갔을 때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이전과 다름없이 다시 해이해지고 만 것을 보면 오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하는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 본문에서 주 여호와의 신이 임하신 자는 과연 어느 누구이며 오늘 성경에서 자유와 해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2.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령)이 임하신 분
오늘 성경에서 ‘주 여호와의 신’이라 임하신 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다른 곳에 예언한 ‘여호와의 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를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또 다른 곳에 여호와의 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보게 되면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서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하는 것은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임을 볼 때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성탄을 준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구세주를 약속하신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여기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는 말은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구세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예언을 따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물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 아브라함의 자손과 다윗의 자손들이 많이 있는 가운데 과연 누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리스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 오늘 성경에서 바로 성령님께서 그 일을 준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물론 여기서 ‘여호와의 신’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의 신인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시 말해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 가운데서 지혜와 총명의 신인 성령이 임재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다 더 구체화시킨 예언이 바로 그 유명한 사 7:14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서 임마누엘은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는 거룩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시기 전까지는 세상에는 남편과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아들을 낳은 적이 없고 또한 낳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렇게 해서 탄생하는 다윗의 자손이 있다면 그 분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에 예언된 말씀처럼 여호와의 신이 임하신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기로 예언된 성탄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도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데 과연 어떻게 처녀가 아들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가능하다면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성탄을 성령님께 맡기신 것입니다. 성령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대로 이새의 아들 다윗의 자손 중에서 태어나게 하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물론 예수님 오실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믿고 메시아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으나 설마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약속대로 오신 메시아인 줄은 까맣게 모른채 지금까지 메시아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공항에서 예약된 손님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사람이 이미 손님이 공항에 도착해서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도 마중 나온 사람은 아직도 기다리는 손님이 도착하지 않은 줄 알고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신 이유가 바로 오늘 성경 본문 이사야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사람들에게 증거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눈과 귀가 어두워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에게 이사야서를 직접 읽어 주시면서 이사야의 예언이 당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기까지 한 것입니다.
(눅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것은 예수께서 당신 자랑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외에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귀신을 쫓아내고 불치의 병자들을 고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한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와 같은 사역을 보면서 영적인 눈을 크게 뜨고 바로 예수님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주의 성령이 임하신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어야만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3. 성령의 사람들과 성탄의 소식
예수님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주 여호와의 신인 성령이 임하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성령님은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과 더불어 성탄을 준비하셨음을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성령의 그와 같은 역사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당연히 예수님 오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최 적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도, 서기관도, 율법사도, 바리새인도, 사두개인도 모두 다 한 결 같이 성령에 대해서는 무지한 영적인 소경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잘 알고 있었으나 성경에서 성령님의 존재와 역사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안다고 자랑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았고 성령의 역사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외모로는 그와 같은 종교적인 지위나 지식이 없을지라도 정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아와 전능하신 성령의 역사를 믿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과 더불어 영광스럽고 거룩한 성탄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첫 성탄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마리아와 요셉도 처음에는 오늘 우리와 다름없이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사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가) 요셉
다윗의 자손인 마리아와 약혼을 한 나사렛 목수 요셉도 처음에는 자기와 상관이 없이 잉태한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부정을 저질러서 잉태한 줄 오해하고 파혼을 생각할 정도로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믿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요셉에게 당신의 사자를 보내어 그의 약혼녀 마리아가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성령께서 잉태된 것임을 가르쳐 주었을 때 요셉은 그대로 순종하여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 온 후에 아기를 낳아 예수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요셉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믿었다는 뜻입니다.
(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 1: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마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나) 마리아
마리아 역시 처음에는 자신이 약혼자 요셉과 상관없이 사내아이를 잉태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한 마리아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가 사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아이를 잉태하는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능하신 성령이 역사임을 깨우쳐 주었을 때 그대로 믿고 순종한 것은 역시 마리아도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믿었다는 말입니다.
(눅 1:37) 대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 결과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게 되었고 가고 오는 역사 속에 예수님의 모친이라는 영광스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3) 시므온
아기 예수가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때가 되매 베들레헴 말구유위에서 태어나심으로 오래 동안 약속되었던 메시아가 마침내 태어나신 것이 첫 번째 성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어두워진 세상 사람들은 그와 같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고 기뻐하며 영접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가운데 예루살렘에 사는 나이 많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아기 예수를 알아보고 크게 기뻐하며 환영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비단 요셉이나 마리아나 시므온만이 아닙니다. 성탄을 준비하신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영적으로 우매한 우리도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신 사실도,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도,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심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탄하신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요셉과 마리아와 시므온에게 함께 하셨던 성령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께서는 그처럼 오래 전부터 성탄을 준비해 오셨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죄 없는 몸으로 잉태하게 하셨고,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열어 성탄의 주님을 알아보게 하셨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심으로 뭍사람들에게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후로 성령님은 계속해서 예수님과 함께 하셔서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오늘 성경 본문에 예언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세상에는 참으로 슬픔과 근심에 억눌린 자들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만히 앉아서 그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친히 성전으로 회당으로 촌으로 마을로 도시로 들판으로 바닷가로 친히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화관을 씌워 주시고, 희락의 기름을 부으시고, 찬송의 옷을 입히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물론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셨으나 우리와 달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신성을 입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와 같은 역사를 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 배후에는 항상 성령의 강력한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 10:38)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잔칫집에 가면 풍성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손님들은 맛있다면서 금방 먹어 치웁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인집 식구들은 여러 날 수고 하고 밤을 새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은 이제 인종과 종파를 초월하여 세계 만민이 기뻐하는 축제의 잔치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 오래전부터 준비하셨으며, 성령님께서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셨는지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 두 번째 주일 오늘 성령님께서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셨으며,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성탄의 소식이 증거 되었는지를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오늘 우리도 마리아와 요셉처럼 성령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탄의 주님이 믿어지는 것이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성령님이심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슥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2) 오늘 우리도 성탄을 준비하시고 성탄의 주님을 증거 하게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심으로 남은 생애 성탄의 주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3) 오늘 우리도 주의 신이신 성령이 임하신 예수님처럼 성탄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슬픈 자에게 위로와, 가난한 자에게 배품과, 죽은 자에게 영생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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