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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날마다 죽노라

본문

성례식에 합당한 말인 줄 압니다. 성례란 말은 세례와 성찬을 행하는 예식이란 뜻입니다. 세례란 말은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을 믿고 난 후 그 표로 받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목사가 주님을 대신하여 주는 것입니다. 성찬이란 주께서 잡히시던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예식입니다.
「떡을 떼고 잔을 나눔으로 나의 찢긴 살과 흘린 피를 내가 올 때까지 기념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찬에 참예할 사람은 죄사함 받은 확신이 있는 사람,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 예수가 나의 구주이신 것을 믿는 사람만으로 제한됩니다. 즉 세례받은 사람만 떡을 떼고 잔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엄숙한 주님의 성찬상 앞에 서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참예해야 되겠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대로 인생은 확실히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겠습니다.

1. 우리는 어느 주인을 섬길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롬 6:17에 우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예수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린 어느 쪽엔가 속해야 하고 누군가를 믿어야 하고 누군가를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주인으로 섬기고 죄의 종이 되느냐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의의 종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마 6:24에 주님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의 노예는 굴욕과 고통과 파멸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의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구원과 소망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느냐? 죄의 종이 되느냐? 그 결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면 생명을 얻고 죄의 종이 되면 멸망을 얻게 됩니다. 노예란 쇠고랑을 차고 채찍에 두들겨 맞고 노예 명부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노예도 있습니다.
현대인은 기계의 노예, 전쟁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기계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믿지 못해도 기계의 대답은 믿어야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가 땀 흘려 벌어놓은 돈의 노예가 되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는 돈벌어 들이는 도구로 전락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즉 자신은 주님의 것, 그의 소유, 예수님의 포도라는 것입니다.

2.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을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열매를 맺습니다. 마 7:17에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하시고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갈 5:22에 보면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반대로 막 7:21 - 27에는 음란, 도적질, 살인, 교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해방, 광패 등의 나쁜 열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열매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가라지는 불에 던집니다. 심판날에 알곡과 가라지는 나뉘어집니다.

3. 날마다 죽으므로 날마다 사는 길이 있고 날마다 살므로 날마다 죽는 길이 있습니다
 역설적 진리입니다.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고, 찾으면 잃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기 때문에 다시 찾았고 모든 인간의 생명도 다시 찾으셨습니다. 바울은 그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죽으면 날마다 삽니다.
롬 6:8에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 6:12에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 나의 주가 되십니다. 내가 날마다 살면 내가 나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그리스도가 나의 주, 나의 왕이 됩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1) 극기를 의미하고(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킵니다.
2) 날마다 하는 고백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생명이라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죽는 생활로 날마다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4. 날마다 죽는 생활은 복음전파 하기 위해 매사를 참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선교사 중 가장 큰 일을 했던 분은 마포 삼열 박사입니다. 1890년 1월 28일 26세의 청년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 해 여름에 황해도 황주에 물이 많아진 강을 건너가다가 익사하여 죽을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강변에 올라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된 줄 믿고 이렇게 예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시련은 내 마음이 해이해질까 봐서 주께서 저를 일깨워 주신 것으로 압니다. 선교사로 한국에서 보내는 이 길을 어찌 주님께서 걸어가신 가시밭 길에다 비길 수 있겠습니까? 주여 바라기는 이 종이 주의 고난에 참예하여 몸바쳐 일할 수 있도록 지켜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1892년 평양에서 불교의 선도를 닦는다는 장사 김종섭은 서양 귀신을 잡는다고 마포 삼열 목사를 대동강에 바쳤습니다. 그러나 마포 삼열 목사는 그런 김종섭을 감화시켜 예수를 믿게 하여 한국에서 첫 세례의 결실을 거두었으며 장대재 교회의 첫 장로로 그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김종섭 장로님은 길선주를 전도하여 마포삼열에게 이끌어 예수를 믿게 하였으니 길선주는 한국에서 첫 목사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최대의 불량자 이기풍이는 김종섭 장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분하여 길에서 숨어 있다가 마포 삼열 목사가 지나갈 때 주먹만한 날카로운 돌을 들어 그의 턱을 쳐서 쓰러지게 했으나 그는 마목사님의 무저항의 사랑에 감화 받아 그도 회개하여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여 길선주 목사와 함께 졸업하여 한국 첫 목사가 되었습니다. 졸업식에서 마포삼열 목사에게 졸업장을 탈 때 이기풍은 목사님 턱에 난 상처를 가리키면서 "이 놈이 그 상처를 내고 지금은 그 분에게 졸업장을 탑니다"하고 고백하여 졸업식이 큰 은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 죽어야 합니다. 자신이 주 안에서 온전히 죽어질 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밀알이 되는 역사와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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