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작은 고을의 영광
본문
선지자 미가는 선지자 이사야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활동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미가서 1장 1절에 기록된대로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남부 유다를 다스리는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주전 720년경에 활동하였던 선지자였는데,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계시를 받고 이를 예언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떡집’이란 뜻이고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이름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미가가 베들레헴의 옛이름인 에브라다를 천거한 것은 스불론의 에브라다와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 가보면 스프링필드(Springeefield)라고 하는 도시가 여러 곳이 있습니다. 즉, 일리노이주에 있는 스프링필드는 시카고 남서쪽 300㎞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 25년 동안 살았던 곳이고, 미국 동부 메사추세츠의 스프링필드는 1636년에 청교도들이 창건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미조리의 스프링필드는 미 여호와 하나님의 성회가 세운 도시라고 할 수 있고 미 여호와 하나님의 성회 본부가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유다나라에도 베들레헴이라는 도시가 북쪽 스불론이라는 곳에도 있고 남쪽 유다지방에도 있었는데, 미가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유다지방 북쪽이 아닌 남쪽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언 성취의 신비성(The mystery of accomplishment of prophesy)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이 성취되도록 희한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당시의 유대나라는 그대로 자주국가가 아니었고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미가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에게 호적령을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호적령이 내려지면 로마영토에 살고있는 모든 백성들이 각각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신고하게 되어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들의 고향인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북쪽 나사렛에서 만삭된 몸을 이끌고 고향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고,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 땅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깊고 오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시도록 로마 전 국민을 대이동하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 전 국민이 대이동을 하려면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인 큰 희생이 따릅니다. 전 국민이 이 삼일 내지는 십 여일 씩 사업을 전폐하고 상점 문을 닫고 머나먼 고향 땅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비행기, 기차, 버스가 없던 그런 시절에 도보로 혹은 나귀나 노새를 타고 수십 리에서 수백리 길을 여행하여 고향 집을 찾아갔으니 그 노고는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관 즉 여관마다 초만원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였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냐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게되었냐는 것입니다. 선지자 미가가 예언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지십니다. 결코 식언하시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공약, 즉 빌 공(空)자 공약을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번 말씀하시면 꼭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내가 명하여 보낸 일이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꼭 그 하신 말대로 이루어집니다. 결코 허공을 치는 것처럼 허무하게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사야 40장 8절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루어지리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正確無吳)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당이나 점쟁이처럼 아무렇게나 헛되게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은 정확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불변(永遠不變)하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여호와 하나님말씀만 굳게 잡고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작은 고을에 영광을 주셨습니다(God gave His glory to the small land). 당시 유대는 큰 고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나라에는 큰 도시가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여리고, 벧엘, 헤브론 등 대도시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큰 고을에 영광을 베풀어주지 아니하고 아주 작은 고을인 베들레헴에다 메시야가 탄생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왜 그리 하셨습니까 가을에 밤나무와 사과나무처럼 과일나무에 주렁주렁 열매가 맺은 것을 보면 너무나도 보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그 과일들은 어느 가지에 맺어집니까 커다란 줄기에 과일이 맺어지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작은 가지에 과일이 맺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큰 가지에 영광을 주시지 않고 작은 가지에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1절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도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 이하에 보면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했던 가버나움, 고라신, 벳세다를 황폐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겸손했던 스불론 땅, 납달리 땅으로 큰 빛을 보고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해 사로잡히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은혜를 감사하면서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을 주신다는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상(思想)은 작은 자를 사랑하시는 사상(思想)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 같이 곧 내게 행한 것이라고 하셨고, 누가복음 19장 16절에 기록된 한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도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자라야 큰 일에 충성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은 보통 안구의 지름이 25㎜ 쯤 됩니다. 조그만 것입니다. 그럼에도 작은 것은 바라보지 아니하고 큰 것만을 바라봅니다. 즉, 사람들은 작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감투도 큰 것, 직분도 큰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정녕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존귀를 더해 주십니다. 작은 고을에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작은 고을의 영광인 것입니다. 잠언 8장 22절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니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지만, 작은 고을에 나셨지만 여호와 하나님으로서는 그의 근본은 상고의 태초였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으니 작은 고을의 영광인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십니다(Jesus Christ is our peace). 본문 5절 말씀에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 평화란 샬롬인데, 이는 ‘평화, 평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샬롬의 본래 뜻은 ‘우리가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그래서 평강을 더해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목적 중 하나가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살고 있는 역사의 현장에 샬롬이 있게 마련입니다. 샬롬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평화의 도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니라 둘을 하나로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것을 폐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When you receive Jesus Christ in your heart)
1) 회복의 은혜를 받습니다(You will receive the grace of recovery).
본문 3절에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주시겠고 그 후에는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 백성들은 순수한 신앙으로 회복되어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깨끗하고 빠른 신앙으로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마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갖가지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의 종에서 해방되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은 세상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대로 주 예수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우리 주님이 온 세상을 다스릴 그 나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병든 육체에도 고침을 주셔서 건강으로 회복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회복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날 아침에도 회복의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안연히 거하며 배부름을 얻게 됩니다(You will remain safely and be satisfied).
본문 4절에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 모여서 그들을 안연히 거하게 하리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의 뜻이 무엇입니까 떡집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집의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구유는 말이 여물을 먹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들의 먹이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오는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게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날 아침에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므로 여러분의 심령 속에 풍성한 생명의 떡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안연히 거하게 하십니다. 불안에 떨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세상이 어떠하든지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기 때문에 세상에 좌우되어지지 아니하고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기 때문에 항상 어떤 여건 속에서도 평강을 누리고 삽니다. 안연히 거하게 되어집니다. 이 축복이 이 날 아침에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와 구원을 얻게 됩니다(You will raise against your enemies and be saved).
본문 5절에 ‘앗수르 사람들이 우리 땅에 들어와 우리 궁을 밟을 때에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그를 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미가 선지 당시 앗수르 군이 이스라엘 군을 침공하여 시련과 고통을 안겨 주었던 것 같이 오늘날도 사탄 마귀는 교회를 괴롭히고 해하려고 합니다. 성도들을 괴롭히고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지 않고 멀리 떠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의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건지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많은 유혹과 재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많은 주의 종들을 일으키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켜서 위험과 재난으로부터 남은 자들을 건져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앗수르를 황무케 하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을 환란에서 건져주시고 또한 위험과 재난을 제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대적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칩니다. 이날 아침에도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탄마귀를 물리쳐주시는 그 능력을 소유하므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7절에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슬과 단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으로서 신령한 은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땅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직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요새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세상나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나라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위에서 내려옵니다. 이 아침에도 은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슬과 단비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며 새 힘을 갖게 하시며 수치를 당치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23절 이하에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획도 변치 않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영원불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고을 베들레헴이 창조주 예수님을 모시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결코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겸손한 자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고을에 주시는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므로, 평강을 누리고 회복의 은혜를 받아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대적마귀를 물리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 가보면 스프링필드(Springeefield)라고 하는 도시가 여러 곳이 있습니다. 즉, 일리노이주에 있는 스프링필드는 시카고 남서쪽 300㎞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 25년 동안 살았던 곳이고, 미국 동부 메사추세츠의 스프링필드는 1636년에 청교도들이 창건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미조리의 스프링필드는 미 여호와 하나님의 성회가 세운 도시라고 할 수 있고 미 여호와 하나님의 성회 본부가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유다나라에도 베들레헴이라는 도시가 북쪽 스불론이라는 곳에도 있고 남쪽 유다지방에도 있었는데, 미가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유다지방 북쪽이 아닌 남쪽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언 성취의 신비성(The mystery of accomplishment of prophesy)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이 성취되도록 희한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당시의 유대나라는 그대로 자주국가가 아니었고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미가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에게 호적령을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호적령이 내려지면 로마영토에 살고있는 모든 백성들이 각각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신고하게 되어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들의 고향인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북쪽 나사렛에서 만삭된 몸을 이끌고 고향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고,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 땅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깊고 오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시도록 로마 전 국민을 대이동하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 전 국민이 대이동을 하려면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인 큰 희생이 따릅니다. 전 국민이 이 삼일 내지는 십 여일 씩 사업을 전폐하고 상점 문을 닫고 머나먼 고향 땅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비행기, 기차, 버스가 없던 그런 시절에 도보로 혹은 나귀나 노새를 타고 수십 리에서 수백리 길을 여행하여 고향 집을 찾아갔으니 그 노고는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관 즉 여관마다 초만원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였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냐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게되었냐는 것입니다. 선지자 미가가 예언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지십니다. 결코 식언하시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공약, 즉 빌 공(空)자 공약을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번 말씀하시면 꼭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내가 명하여 보낸 일이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꼭 그 하신 말대로 이루어집니다. 결코 허공을 치는 것처럼 허무하게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사야 40장 8절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루어지리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正確無吳)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당이나 점쟁이처럼 아무렇게나 헛되게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은 정확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불변(永遠不變)하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여호와 하나님말씀만 굳게 잡고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작은 고을에 영광을 주셨습니다(God gave His glory to the small land). 당시 유대는 큰 고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나라에는 큰 도시가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여리고, 벧엘, 헤브론 등 대도시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큰 고을에 영광을 베풀어주지 아니하고 아주 작은 고을인 베들레헴에다 메시야가 탄생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왜 그리 하셨습니까 가을에 밤나무와 사과나무처럼 과일나무에 주렁주렁 열매가 맺은 것을 보면 너무나도 보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그 과일들은 어느 가지에 맺어집니까 커다란 줄기에 과일이 맺어지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작은 가지에 과일이 맺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큰 가지에 영광을 주시지 않고 작은 가지에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1절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도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 이하에 보면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했던 가버나움, 고라신, 벳세다를 황폐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겸손했던 스불론 땅, 납달리 땅으로 큰 빛을 보고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해 사로잡히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은혜를 감사하면서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을 주신다는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상(思想)은 작은 자를 사랑하시는 사상(思想)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 같이 곧 내게 행한 것이라고 하셨고, 누가복음 19장 16절에 기록된 한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도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자라야 큰 일에 충성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은 보통 안구의 지름이 25㎜ 쯤 됩니다. 조그만 것입니다. 그럼에도 작은 것은 바라보지 아니하고 큰 것만을 바라봅니다. 즉, 사람들은 작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감투도 큰 것, 직분도 큰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정녕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존귀를 더해 주십니다. 작은 고을에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작은 고을의 영광인 것입니다. 잠언 8장 22절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니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지만, 작은 고을에 나셨지만 여호와 하나님으로서는 그의 근본은 상고의 태초였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으니 작은 고을의 영광인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십니다(Jesus Christ is our peace). 본문 5절 말씀에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 평화란 샬롬인데, 이는 ‘평화, 평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샬롬의 본래 뜻은 ‘우리가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그래서 평강을 더해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목적 중 하나가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살고 있는 역사의 현장에 샬롬이 있게 마련입니다. 샬롬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평화의 도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니라 둘을 하나로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것을 폐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When you receive Jesus Christ in your heart)
1) 회복의 은혜를 받습니다(You will receive the grace of recovery).
본문 3절에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주시겠고 그 후에는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 백성들은 순수한 신앙으로 회복되어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깨끗하고 빠른 신앙으로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마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갖가지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의 종에서 해방되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은 세상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대로 주 예수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우리 주님이 온 세상을 다스릴 그 나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병든 육체에도 고침을 주셔서 건강으로 회복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회복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날 아침에도 회복의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안연히 거하며 배부름을 얻게 됩니다(You will remain safely and be satisfied).
본문 4절에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 모여서 그들을 안연히 거하게 하리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의 뜻이 무엇입니까 떡집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집의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구유는 말이 여물을 먹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들의 먹이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오는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게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날 아침에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므로 여러분의 심령 속에 풍성한 생명의 떡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안연히 거하게 하십니다. 불안에 떨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세상이 어떠하든지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기 때문에 세상에 좌우되어지지 아니하고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기 때문에 항상 어떤 여건 속에서도 평강을 누리고 삽니다. 안연히 거하게 되어집니다. 이 축복이 이 날 아침에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와 구원을 얻게 됩니다(You will raise against your enemies and be saved).
본문 5절에 ‘앗수르 사람들이 우리 땅에 들어와 우리 궁을 밟을 때에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그를 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미가 선지 당시 앗수르 군이 이스라엘 군을 침공하여 시련과 고통을 안겨 주었던 것 같이 오늘날도 사탄 마귀는 교회를 괴롭히고 해하려고 합니다. 성도들을 괴롭히고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지 않고 멀리 떠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의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건지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많은 유혹과 재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많은 주의 종들을 일으키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켜서 위험과 재난으로부터 남은 자들을 건져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앗수르를 황무케 하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을 환란에서 건져주시고 또한 위험과 재난을 제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대적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칩니다. 이날 아침에도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탄마귀를 물리쳐주시는 그 능력을 소유하므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7절에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슬과 단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으로서 신령한 은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땅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직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요새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세상나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나라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위에서 내려옵니다. 이 아침에도 은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슬과 단비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며 새 힘을 갖게 하시며 수치를 당치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23절 이하에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획도 변치 않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영원불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고을 베들레헴이 창조주 예수님을 모시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결코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겸손한 자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고을에 주시는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므로, 평강을 누리고 회복의 은혜를 받아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대적마귀를 물리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