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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베들레헴에 예언된 그리스도

본문

신학적인 측면에서 성탄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중에 한분이신 성자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신비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이 땅에 평화의 사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가 시골의 작은 마을에 오셨으나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로 오신 것이요, 만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자로 오셨으며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대속물로 오신 것입니다. (막 10:45)
그러나 그는 시골땅 가난한 가정의 목수아들로 태어나서 그는 주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에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도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노라. 오늘에 이 본문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년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 기록한 것같이 예수님의 출생과정이나 성장과정을 말한 것입니다. 왕족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요, 유명한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의 가정에 태어난 것도 아니요, 명문가정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방에서도 태어나지 못하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예언된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
모든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으로 써서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한 것같이(딤후 3:16~17) 미가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갈릴리와 스블론 근처에 있는 베들레헴이라 하지 아니하고 유대땅 베들레헴에 오신다고 예언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정확성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정황으로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갈릴리와 스블론 근처에 있는 베들레헴에 오시는 것이 마땅하고 쉬운 일인데 저 멀리 유다 땅에 있는 베들레헴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천지가 변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마 5:18) 더욱 새롭고 머리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이란 말은 떡집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에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 (요 6:51) 떡집에 떡이 있어야 하듯이 예수님은 영생케 하는 생명의 떡입니다. 벳세다 광야에 장정만도 5,000명인데 그중에 먹을 것은 한사람이 먹을 도시락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축사하신 후에 떼어서 나누어 주라 하심으로 나누어 주었더니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바구니에 거두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며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심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떡집에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2.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오신 예수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심같이(요 14:6) 예수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시오, 또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5~6)고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요, 구원자입니다. 열두제자 중에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도 말하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행 4:1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오신 것입니다(마 20:28).
예수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감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담대함과 당당하게 나가게 되었으며(엡 3:12)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먼데 있는 사람과 가까운데 있는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엡 2:14~1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아기로 태어나셨으나 그의 근본은 상고의 태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로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사 9:6~7). 그 이름이 다양한 것은 그분의 사명이 막중하고 사역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냐고 헤롯의 왕궁에서 찾은 것은 그가 왕중에 왕으로 오셨기 때문이요(마 2:1~3), 히브리기자는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으로 보았으며(히 7:26~28)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무리들은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했습니다(마 21:11). 예수님은 왕도 되시고 대제사장도 되시며 선지자도 되십니다.
3. 목자로 오신 예수님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해치느니라(요 10:11). 예수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로 오셨습니다. 그는 양떼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신 참 목자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양을 칠 때에 사자가 양을 물어 가면 사자와 싸워서 그 양을 빼앗고 곰이 물고 가면 곰과 싸워서 양을 빼앗았다고 하였습니다(삼상 17:34~36).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목자를 삼으시고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다윗은 양치면서 자기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양떼를 지키는 것같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으로 나를 인도하시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모든 양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요, 더 풍성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요 10:10). 그는 생명만 주시는 분이 아니요,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보다 여유가 있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잃어버린 양을 찾고 이웃과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목자가 되시고 목자장이 되셔서 양을 잘 돌아보고 살피며 양무리의 본이 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벧전 5:1~4). 게네사렛호수가에서 고기 잡은 시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이나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결 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연히 오신 것이 아니요,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것입니다. 떡집에 생명의 떡, 영생의 떡으로 오신 것이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오셨으며 선한 목자로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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