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큰기쁨의 좋은 소식
본문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12월이 되자마자 여러 곳에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잡고 추리를 세우고 캐럴송이 울려 퍼집니다.
크리스마스 추리는 예로부터 전나무 숲이 많았던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해마다 성탄절에는 통일이 이루어진 도시인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높이 30m의 큰 성탄목을 세워서 성탄축제의 날을 지킨다고 합니다.
성탄절을 알리는 은별과 금방울, 썰매와 산타클로스, 캐럴과 천사, 촛불, 금별등 많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휴전선의 등성이마다 성탄을 알리는 철탑을 세워 점등식을 하고 서울 시청앞 광장에는 많은 장식등을 달아 놓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사회에는 좋은 소식이 많지 않은 듯 합니다.
거듭되는 재벌 합병들로 직장을 잃어버리는 실직자들의 증가, 또다시 닥쳐올지 모른다는 제2의 IMF의 불안과 두려움, 계속되는 불경기의 악순환, 청년실업의 증가,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고통 관계의 아픔, 여러 질병들과 삶의 고난등 좋은 소식보다는 우리의 가슴을 우울하게 만드는 좋지 않은 소식이 더 많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큰 기쁨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소식은 가난한 자들에게 양식이, 병든 자들에게는 건강이, 갇힌 자들에게는 풀려나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탄절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찾아온 천사는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아침에 복된 크리스마스의 소식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가운데 성탄의 참 기쁨과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의 소식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성탄절 날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을 따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는 계속 의심을 토해 냈습니다.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 있지 난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을수가 없어요!" 남편은 의심하는 아내에게 계속 설명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에 이르러 이상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참새들이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먹이를 얻지 못해 집 문 앞에 비실비실 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른 집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져와서는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푸드득 하며 날아 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실망하여 "새들아! 난 너희들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것을 먹지 않으면 너희들은 굶어서 얼어 죽는다구…... " 새들이 사람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뜻을 어떻게 너희에게 전할 수 있겠니 내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 "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뇌리에 번쩍 무엇인가 스쳐 갔습니다. "그래!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배풀었지만 인간들은 여호와 하나님 품을 떠났던거야.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께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야.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 하셨던 거야...... "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 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은 성탄의 뜻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셨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한 아기로 오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어 사람들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시는 화해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서 인간의 세상으로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의 여호와 하나님은 친히 모든 인류를 차별 없이 어디서나 만나주시려고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누인 한 아기로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1873년 모로이카섬으로 버림받은 나환자들을 찾아갔던 벨기에의 성자 다미엔은 그의 전도와 봉사를 위해 자신이 문둥이들과 같이 되기를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소원대로 그가 문둥이가 되던 날 그는 "우리 문둥이들"이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하면서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지금 그의 동상은 하와이주 청사 뜰에 세워져 있는데 그 심하게 상한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와 같이 성탄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낮아지심으로 이 역사의 한 복판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참된 기쁨으로 이 날을 맞이하여 큰 은혜의 절기로 지켜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도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처럼 성육신의 소식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바로 우리들의 구세주이십니다.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자들마다 참 구원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평화의 소식입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의 밤에 천사들은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줄곧 전쟁을 일삼아 왔다면, 아기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우리나라도 남북정상회담을 하였음에도 155마일에 걸친 철조망의 긴장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의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의 어느 구석에도 평화의 모습은 찾아 볼 길이 없다고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한 모습들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예나 이제나 평화의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이 갈증을 해소해 줄 것입니까 어디에 참 평화가 있습니까
신곡의 작가 단테가 어느 날 저녁 남프랑스의 한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안에서 늙은 수도사가 귀찮은 듯 얼굴을 내밀며 무엇을 구걸하러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단테는 라틴어로 간단히 "파쳄(pacem)"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나는 평화를 구걸하고 있습니다"란 뜻입니다.
평화의 소식은 토정비결의 운수나 일곱 자리 숫자로 찍힌 당첨복권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평화의 소식은 누구에게 전해집니까 오늘 본문은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평화의 원수가 되어 분쟁을 일삼거나 파당을 지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성탄절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이제 여러분은 평화의 소식을 들으시고 그 평화를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금번 성탄절에 오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임마누엘의 소식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베들레헴의 어린아기로 오신 예수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라헬의 무덤이 있고 다윗의 생가가 자리했던 바로 그 동네에 그리스도는 오셨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임마누엘의 축복을 골고루 우리에게 내려주시고 계십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병든 자에게는 위로와 건강을 죽은 자에게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런 은혜가 바로 크리스마스가 가져온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3년 동안 말씀하셨으나 히랍의 3대 성인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를 이어서 130년을 가르친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날드 다빈치의 화가들은 예수에게서 그림의 뛰어난 소재를 찾았습니다.
단테, 밀턴의 작가들과 수많은 시인들이 예수에게서 놀라운 영감을 받았습니다.
바하, 하이든, 헨델, 베토벤, 멘델스존이 위대한 작곡의 힘을 예수에게서 얻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예수가 철학과 문학, 미술과 음악이 해 낼수 없는 인류구원의 큰 일을 이루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오시는 예수님은 영원한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절은 예수를 회상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영원한 현재이며 임마누엘의 끝없는 축복의 소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의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들이 사는 낮은 데를 찾아 오셨습니다. 비천한 구유에 누인 한 아기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 헬라인에게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성소와 갈릴리의 해변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함께 계십니다. 아니 세상 끝날 까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성탄절에 임마누엘의 소식을 기뻐하며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는 캐럴을 몇 곡 부른다고 해서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캐럴은 '즐거운 노래'란 뜻이지만, 아무리 루돌프 사슴 코를 신명나게 부른다고 해도 성탄절의 바른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카드를 수없이 보내고 받았다해도 성탄절의 참된 소식을 알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예수님 승천이후 2천 번이나 찾아 왔는데도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정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진 자들의 과소비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아동기구인 유니세프의 통계에 의하면 날마다 4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고 집 없이 거리를 헤매는 거지아이들의 숫자가 1억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계가 어려운 영세민들이 35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성탄절에 유명한 교부였던 안셀름이 "여호와 하나님은 왜 사람으로 나셔야만 했던 가를 알 필요가 있다"란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성육신의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영원한 모습으로 오신 성탄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올해에도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금번 성탄절에 내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에게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12월이 되자마자 여러 곳에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잡고 추리를 세우고 캐럴송이 울려 퍼집니다.
크리스마스 추리는 예로부터 전나무 숲이 많았던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해마다 성탄절에는 통일이 이루어진 도시인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높이 30m의 큰 성탄목을 세워서 성탄축제의 날을 지킨다고 합니다.
성탄절을 알리는 은별과 금방울, 썰매와 산타클로스, 캐럴과 천사, 촛불, 금별등 많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휴전선의 등성이마다 성탄을 알리는 철탑을 세워 점등식을 하고 서울 시청앞 광장에는 많은 장식등을 달아 놓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사회에는 좋은 소식이 많지 않은 듯 합니다.
거듭되는 재벌 합병들로 직장을 잃어버리는 실직자들의 증가, 또다시 닥쳐올지 모른다는 제2의 IMF의 불안과 두려움, 계속되는 불경기의 악순환, 청년실업의 증가,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고통 관계의 아픔, 여러 질병들과 삶의 고난등 좋은 소식보다는 우리의 가슴을 우울하게 만드는 좋지 않은 소식이 더 많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큰 기쁨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소식은 가난한 자들에게 양식이, 병든 자들에게는 건강이, 갇힌 자들에게는 풀려나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탄절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찾아온 천사는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아침에 복된 크리스마스의 소식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가운데 성탄의 참 기쁨과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의 소식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성탄절 날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을 따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는 계속 의심을 토해 냈습니다.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 있지 난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을수가 없어요!" 남편은 의심하는 아내에게 계속 설명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에 이르러 이상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참새들이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먹이를 얻지 못해 집 문 앞에 비실비실 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른 집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져와서는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푸드득 하며 날아 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실망하여 "새들아! 난 너희들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것을 먹지 않으면 너희들은 굶어서 얼어 죽는다구…... " 새들이 사람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뜻을 어떻게 너희에게 전할 수 있겠니 내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 "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뇌리에 번쩍 무엇인가 스쳐 갔습니다. "그래!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배풀었지만 인간들은 여호와 하나님 품을 떠났던거야.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께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야.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 하셨던 거야...... "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 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은 성탄의 뜻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셨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한 아기로 오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어 사람들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시는 화해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서 인간의 세상으로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의 여호와 하나님은 친히 모든 인류를 차별 없이 어디서나 만나주시려고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누인 한 아기로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1873년 모로이카섬으로 버림받은 나환자들을 찾아갔던 벨기에의 성자 다미엔은 그의 전도와 봉사를 위해 자신이 문둥이들과 같이 되기를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소원대로 그가 문둥이가 되던 날 그는 "우리 문둥이들"이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하면서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지금 그의 동상은 하와이주 청사 뜰에 세워져 있는데 그 심하게 상한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와 같이 성탄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낮아지심으로 이 역사의 한 복판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참된 기쁨으로 이 날을 맞이하여 큰 은혜의 절기로 지켜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도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처럼 성육신의 소식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바로 우리들의 구세주이십니다.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자들마다 참 구원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평화의 소식입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의 밤에 천사들은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줄곧 전쟁을 일삼아 왔다면, 아기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우리나라도 남북정상회담을 하였음에도 155마일에 걸친 철조망의 긴장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의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의 어느 구석에도 평화의 모습은 찾아 볼 길이 없다고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한 모습들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예나 이제나 평화의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이 갈증을 해소해 줄 것입니까 어디에 참 평화가 있습니까
신곡의 작가 단테가 어느 날 저녁 남프랑스의 한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안에서 늙은 수도사가 귀찮은 듯 얼굴을 내밀며 무엇을 구걸하러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단테는 라틴어로 간단히 "파쳄(pacem)"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나는 평화를 구걸하고 있습니다"란 뜻입니다.
평화의 소식은 토정비결의 운수나 일곱 자리 숫자로 찍힌 당첨복권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평화의 소식은 누구에게 전해집니까 오늘 본문은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평화의 원수가 되어 분쟁을 일삼거나 파당을 지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성탄절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이제 여러분은 평화의 소식을 들으시고 그 평화를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금번 성탄절에 오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임마누엘의 소식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베들레헴의 어린아기로 오신 예수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라헬의 무덤이 있고 다윗의 생가가 자리했던 바로 그 동네에 그리스도는 오셨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임마누엘의 축복을 골고루 우리에게 내려주시고 계십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병든 자에게는 위로와 건강을 죽은 자에게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런 은혜가 바로 크리스마스가 가져온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3년 동안 말씀하셨으나 히랍의 3대 성인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를 이어서 130년을 가르친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날드 다빈치의 화가들은 예수에게서 그림의 뛰어난 소재를 찾았습니다.
단테, 밀턴의 작가들과 수많은 시인들이 예수에게서 놀라운 영감을 받았습니다.
바하, 하이든, 헨델, 베토벤, 멘델스존이 위대한 작곡의 힘을 예수에게서 얻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예수가 철학과 문학, 미술과 음악이 해 낼수 없는 인류구원의 큰 일을 이루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오시는 예수님은 영원한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절은 예수를 회상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영원한 현재이며 임마누엘의 끝없는 축복의 소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의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들이 사는 낮은 데를 찾아 오셨습니다. 비천한 구유에 누인 한 아기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 헬라인에게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성소와 갈릴리의 해변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함께 계십니다. 아니 세상 끝날 까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성탄절에 임마누엘의 소식을 기뻐하며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는 캐럴을 몇 곡 부른다고 해서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캐럴은 '즐거운 노래'란 뜻이지만, 아무리 루돌프 사슴 코를 신명나게 부른다고 해도 성탄절의 바른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카드를 수없이 보내고 받았다해도 성탄절의 참된 소식을 알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예수님 승천이후 2천 번이나 찾아 왔는데도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정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진 자들의 과소비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아동기구인 유니세프의 통계에 의하면 날마다 4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고 집 없이 거리를 헤매는 거지아이들의 숫자가 1억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계가 어려운 영세민들이 35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성탄절에 유명한 교부였던 안셀름이 "여호와 하나님은 왜 사람으로 나셔야만 했던 가를 알 필요가 있다"란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성육신의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영원한 모습으로 오신 성탄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올해에도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금번 성탄절에 내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에게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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