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본문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기다릴 것이 없으므로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대체로 미래 지향적인 대망에 관계합니다. 오늘 당장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일 어떻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릴 것이 있느냐, 약속이 있느냐, 즉 미래에 대한 보증이 있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속이 있기는 하나 진실한 약속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허무한 일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지적하는 용어로 말한다면 성취라고 합니다. 약속에는 성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림에는 현실로 나타나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전부가 거짓이 되고 맙니다. 성취없는 약속을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절망과 낙심을 안겨 줄 뿐입니다.
비 없는 구름 같고, 어린아이들이 무지개를 따라가는 것처럼 무한히 미래적으로 멀어 지기만 한다면 그 약속과 기대와 대망과 소망은 무효가 되고 맙니다. 오히려 더 허탈하게 되고 더 큰 낙심만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결같이 메시야를 기다려 왔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매시야에 대한 약속을 그들은 기다려 왔습니다. 그가 오신다 그가 오시면 이 나라는 축복의 나라, 자유의 나라, 해방의 나라, 힘이 있는 나라, 평화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질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 일이 이 시대에 그리고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 환경에까지 예민할 정도로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주위의 소리에 민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의 움직임에 까지 민감할 정도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의 기다림을 알기라도 했듯이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천사가 말하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호와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은사를 구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은사를 주십니다. 기쁨과 평화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넘치는 기쁨을 주십니다.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구원의 주님으로 만나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기다리지 아니하는 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쁨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저는 우리 새봄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생명의 주님으로 만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낮고 천한 자들에게 만나 주십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축하하고 경배한 목자들은 당시 사회신분상 아주 낮고 천한 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양치던 관습으로 볼때에 그들은 잘못하면 한밤중에 들에서 양떼를 지키다 맹수에게 물려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들에서 밤을 지샐때는 추운 날씨에 추위에도 떨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심하게 표현하면 그들은 양보다 하챦게 대우받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자들에게 구주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렸습니다. 곧 세상 사람들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이들을 하챦게 여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디까 부자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이 찾습니다. 건강한 사람보다도 병든자 들이 찾습니다. 어려움 없이 사는 자들보다는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을 다 맛본 사람들이 찾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 까지는 어떤 사람도 참된 행복을 맛보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행복은 돈에 있지 아니하고 건강에 있지 아니하고, 권력에 있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 참 생명을 얻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세상적인 것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얻는 것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얻게 된 것을 감사 하십시요. 좋은 직장을 얻는 것 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된것을 감사 하십시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만남이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생명이 있는 사람으로 소망이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으시겠습까
한 소녀가 서울역에서 온종일 날이면 날마다 오고 가는여객들 가운데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찾고 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묻는다.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부모형제인가 애인인가,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도 아니며 누구인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럼 왜 기다리냐고 물으면 그것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느냐고 물으면, 그럴수는 없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살 길이 없다며 대답한다. 누구인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나 나는 꼭 만나야하고 찾아야 합니다. 나는 그 만남과 기다림을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살아야하며 기다리고 찾다 죽을 숙명의 존재입니다. 그도 나를 찾고 있읍니다. 내가 그를 만나는 날 나의 인생은 뿌리째, 송두리째 신부처럼 변해 버릴 것 입니다. 예수를 향한 만남에로의 그리움을 암시한비유다.
이렇게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으로 가득차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작고 천한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도 필요없다 나는 내 잘난 멋에 산다. 내힘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수 있다고 자기 자만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님은 저만치 멀리 떠나가십니다. 아니 이런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여호와 하나님도 그들에게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주님! 나는 하루도 주님이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인생의 전부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행복이요 기쁨이십니다. 오늘 나는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내 손을 잡아 주십시요 이렇게 주님을 향한 사모함과 간절함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대부분 낮은 위치에서 마음을 비우고 견손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게 만나 주신 그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와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겸손함으로 주님을 만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바로 약한 자들을 들어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는데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 "나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닌가 남보다 뛰어난 지혜와 세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나는 얼마나 능력이 많은 사람인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우리 주님이 들어 쓰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님이 들어서 능력있는 자들을 항하여 -"봐라!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대단하지 않느냐"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살감을 보고 아니 저사람은 저런 사람이 아닌데 아니 저럴수가! 할 정도로 깜짝 놀랍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겸손하고 낮아진 사람에게 찾아 주십니다. 오늘 목자는 가장 당시에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는 믿음은 누구보다도 컷습니다. 그랫더니 우리 주님이 그들에게 제일먼저 아기 예수가 탄생할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믿음을 이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실한 자들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하고 비루한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 탄생의 복된 소식을 먼저 알리신 이유는 그들이 바로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감독하는 이가 없지만 한밤중에도 열심히 자기들이 맡은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들에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성실한 사람을 요구합니다.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한숨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런 사람도 때로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조금은 부족함이 있어도 성실하게 꾸준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특별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더군다나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실력으로 하지 않습니다. 능력으로 하지 않습니다. 학력과 재력으로 하지 않습니다. 성실함으로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성실하게 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한달 기도해서 응답을 받는 다면 기도하지 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피곤해도 힘이 들어도 직장생활을 해도 집에서 쉬어도 비가와도 눈이 와도 꾸준하게 기도할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성실한 기도에 감동하십니다.
저는 얼마전 우리 교회 성도님이었던 성도님의 장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이는 운명직전에 세례를 받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섬기는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직장암으로 고생을 하시다가 운명하셨숩니다. 그런데 그이의 유언에 따라서 화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게 되었슨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명정을 모시는 그곳에 들어 갔더니 미리서 온 이상한 사람들()이 열심히 무엇가를 주문을 외우면서 굉장히 시끄러웠습니다, 마치 시골에 개구리가 우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시끄럽지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시끄러워서 예배를 제대로 인도 할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자 마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를 로 자기들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두손을 모우고 그리고 염주를 세워 가면서 암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불교 신도들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두리번 거리면서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감고 열심히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시끄러워서 비교적 간단히 그리고 어수선하게 예배를 마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약1시간 가량을 주문을 암송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죽은자가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해 달라는 기도이겠지요!.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우리가 기도할때 어느정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저들처럼 집중해서 기도하고 있는가 부끄러웠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간절함을 회복해야 할때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성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어려울때는 주님을 간절히 찾다가 좀 살만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은 성실한 자세가 아닙니다. 믿음에는 큰 차이가 있으면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를 성실하게 하면 결과가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변함없이 주님을 찾고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할때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들을 만나 주실것입니다. 목자들은 자기의 주어진 일에 성실함으로 감당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근세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인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학벌은 서울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중학교 2년을 중퇴한 것이 전부이다. 그가 어느날 이력서를 쓰며 특기를 기록하는 난에 두가지의 특기를 썼는데, 하나는 배의 노를 잘 젓는 특기였고, 다른 하나는 청소하는 것이었다. 안창호 선생은 청소하는 데는 천재였다. 한번은 어느 미국인의 저택에서 한시간에 1달러씩 받고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의 손이 닿지않는 구석까지 청소도구를 만들어서 깨끗이 청소하였다. 그 집주인이 배란다에서 내려다 보니까 마치 자기집을 청소하듯 성실히 하더라고 했다. 감동이 된 주인은 일이 끝난 후"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요" 하고 물었다. 그때 안창호 선생은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주인은처음에 약속한 것보다 50센트씩 더하여 12달러를 주었다고한다.
성실하면 사람도 감동을 받지만 여호와 하나님도 감동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만나주십니까 변함없이 성실함으로 주를 찾는 자들에게 만나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서의 우리의 태도는 성실함입니다.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순종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의 지시를 받고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사실 유대인의 왕이요 인류의 구주인 그리스도께서 촌동네인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말구유에서 태어 난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목자들은 그 계시를 듣고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것을 나도 인정하는 것은 그것은 진정한 자세가 아닙니다. 특별히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고 믿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되어지기 때문에 믿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믿음이라고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믿어지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도 믿지 아니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는것! 내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아니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믿어버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로서 오신다. 그런데 그이는 저 시골 벽촌인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탄생하신다. 여러분 같으면 이 사실을 믿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오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능력의 사람으로서 오실 것인데 그분은 최소한 가장 화려하게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환경 가운데서 탄생하실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구유에서 탄생한다고 하는 것은 믿을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구유에서 탄생하실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알려준 이야기를 가서 전했을때 듣던 사람들이 그 말을 잘 믿지 아니하고
18절 말씀을 보니까! 듣는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것을 기이히 여기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상을 뒤엎는 말씀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고로 믿는 신앙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될줄로 믿고 나가 순종하는 신앙! ........ 이 신앙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것은 100% 믿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될줄로 믿고 행동에 옮기는 순종의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은 만나 주십니다. "말씀만 하십시요! 어떤 말씀이든지 아멘하고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납니다. " 교회는 오래 나와도 아냐야 저 말씀은 허무 맹랑한 말씀이야 목사가 지어서 말하는 것이겠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야!" 하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날수도 없을뿐 아니라 얼마가지 못해서 그들은 주님을 떠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어린아이와 같이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이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가르쳐준대로 따라서 행합니다. 일일히 따져 묻지 아니하고 가르쳐준대로 순종합니다, 예수를 복잡하게 믿으면 안됩니다.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들어가 있지 아니한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들려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실것이라는 말씀에 그들은 믿고 순종하여 갔습니다. 순종하는 자들에게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태어 나시리라는 것을 알았고 또 그 소식을 들었지만 소동만 일으켰을뿐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마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들은 이미 구약 미가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구유에서 탄생하실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를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섰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제쳐두고 목자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신 이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대제사장들 대신 목자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즉각 순종하는 것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즉시 순종하는 것이 참 믿음의 자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요인이 되는 것입을 알고 늘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주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가 경배한 이들은 바로 들녁에서 양떼들을 돌보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고 당시 경건한 무리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그들이 가장 먼저 보았던 것입니다. 이토록 이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은 결코 높은 자리, 높은 지위에 있는 자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힘없고 비천한 자에게 임한다고 하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무조건 약하고 비천한 자가 아니라 맡은 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고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잘알려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성탄적은 역사를 AD와BC로 나눈 가장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가 오심으로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그가 오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가 오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그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의 주님으로 평화의 주님으로 오실것입니다. 그냥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니라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는가운데 맞이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속이 있기는 하나 진실한 약속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허무한 일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지적하는 용어로 말한다면 성취라고 합니다. 약속에는 성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림에는 현실로 나타나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전부가 거짓이 되고 맙니다. 성취없는 약속을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절망과 낙심을 안겨 줄 뿐입니다.
비 없는 구름 같고, 어린아이들이 무지개를 따라가는 것처럼 무한히 미래적으로 멀어 지기만 한다면 그 약속과 기대와 대망과 소망은 무효가 되고 맙니다. 오히려 더 허탈하게 되고 더 큰 낙심만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결같이 메시야를 기다려 왔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매시야에 대한 약속을 그들은 기다려 왔습니다. 그가 오신다 그가 오시면 이 나라는 축복의 나라, 자유의 나라, 해방의 나라, 힘이 있는 나라, 평화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질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 일이 이 시대에 그리고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 환경에까지 예민할 정도로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주위의 소리에 민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의 움직임에 까지 민감할 정도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의 기다림을 알기라도 했듯이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천사가 말하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호와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은사를 구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은사를 주십니다. 기쁨과 평화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넘치는 기쁨을 주십니다.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구원의 주님으로 만나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기다리지 아니하는 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쁨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저는 우리 새봄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생명의 주님으로 만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낮고 천한 자들에게 만나 주십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축하하고 경배한 목자들은 당시 사회신분상 아주 낮고 천한 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양치던 관습으로 볼때에 그들은 잘못하면 한밤중에 들에서 양떼를 지키다 맹수에게 물려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들에서 밤을 지샐때는 추운 날씨에 추위에도 떨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심하게 표현하면 그들은 양보다 하챦게 대우받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자들에게 구주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렸습니다. 곧 세상 사람들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이들을 하챦게 여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디까 부자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이 찾습니다. 건강한 사람보다도 병든자 들이 찾습니다. 어려움 없이 사는 자들보다는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을 다 맛본 사람들이 찾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 까지는 어떤 사람도 참된 행복을 맛보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행복은 돈에 있지 아니하고 건강에 있지 아니하고, 권력에 있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 참 생명을 얻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세상적인 것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얻는 것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얻게 된 것을 감사 하십시요. 좋은 직장을 얻는 것 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된것을 감사 하십시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만남이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생명이 있는 사람으로 소망이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으시겠습까
한 소녀가 서울역에서 온종일 날이면 날마다 오고 가는여객들 가운데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찾고 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묻는다.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부모형제인가 애인인가,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도 아니며 누구인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럼 왜 기다리냐고 물으면 그것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느냐고 물으면, 그럴수는 없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살 길이 없다며 대답한다. 누구인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나 나는 꼭 만나야하고 찾아야 합니다. 나는 그 만남과 기다림을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살아야하며 기다리고 찾다 죽을 숙명의 존재입니다. 그도 나를 찾고 있읍니다. 내가 그를 만나는 날 나의 인생은 뿌리째, 송두리째 신부처럼 변해 버릴 것 입니다. 예수를 향한 만남에로의 그리움을 암시한비유다.
이렇게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으로 가득차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작고 천한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도 필요없다 나는 내 잘난 멋에 산다. 내힘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수 있다고 자기 자만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님은 저만치 멀리 떠나가십니다. 아니 이런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여호와 하나님도 그들에게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주님! 나는 하루도 주님이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인생의 전부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행복이요 기쁨이십니다. 오늘 나는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내 손을 잡아 주십시요 이렇게 주님을 향한 사모함과 간절함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대부분 낮은 위치에서 마음을 비우고 견손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게 만나 주신 그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와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겸손함으로 주님을 만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바로 약한 자들을 들어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는데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 "나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닌가 남보다 뛰어난 지혜와 세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나는 얼마나 능력이 많은 사람인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우리 주님이 들어 쓰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님이 들어서 능력있는 자들을 항하여 -"봐라!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대단하지 않느냐"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살감을 보고 아니 저사람은 저런 사람이 아닌데 아니 저럴수가! 할 정도로 깜짝 놀랍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겸손하고 낮아진 사람에게 찾아 주십니다. 오늘 목자는 가장 당시에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는 믿음은 누구보다도 컷습니다. 그랫더니 우리 주님이 그들에게 제일먼저 아기 예수가 탄생할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믿음을 이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실한 자들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하고 비루한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 탄생의 복된 소식을 먼저 알리신 이유는 그들이 바로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감독하는 이가 없지만 한밤중에도 열심히 자기들이 맡은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들에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성실한 사람을 요구합니다.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한숨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런 사람도 때로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조금은 부족함이 있어도 성실하게 꾸준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특별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더군다나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실력으로 하지 않습니다. 능력으로 하지 않습니다. 학력과 재력으로 하지 않습니다. 성실함으로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성실하게 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한달 기도해서 응답을 받는 다면 기도하지 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피곤해도 힘이 들어도 직장생활을 해도 집에서 쉬어도 비가와도 눈이 와도 꾸준하게 기도할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성실한 기도에 감동하십니다.
저는 얼마전 우리 교회 성도님이었던 성도님의 장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이는 운명직전에 세례를 받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섬기는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직장암으로 고생을 하시다가 운명하셨숩니다. 그런데 그이의 유언에 따라서 화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게 되었슨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명정을 모시는 그곳에 들어 갔더니 미리서 온 이상한 사람들()이 열심히 무엇가를 주문을 외우면서 굉장히 시끄러웠습니다, 마치 시골에 개구리가 우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시끄럽지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시끄러워서 예배를 제대로 인도 할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자 마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를 로 자기들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두손을 모우고 그리고 염주를 세워 가면서 암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불교 신도들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두리번 거리면서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감고 열심히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시끄러워서 비교적 간단히 그리고 어수선하게 예배를 마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약1시간 가량을 주문을 암송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죽은자가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해 달라는 기도이겠지요!.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우리가 기도할때 어느정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저들처럼 집중해서 기도하고 있는가 부끄러웠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간절함을 회복해야 할때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성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어려울때는 주님을 간절히 찾다가 좀 살만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은 성실한 자세가 아닙니다. 믿음에는 큰 차이가 있으면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를 성실하게 하면 결과가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변함없이 주님을 찾고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할때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들을 만나 주실것입니다. 목자들은 자기의 주어진 일에 성실함으로 감당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근세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인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학벌은 서울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중학교 2년을 중퇴한 것이 전부이다. 그가 어느날 이력서를 쓰며 특기를 기록하는 난에 두가지의 특기를 썼는데, 하나는 배의 노를 잘 젓는 특기였고, 다른 하나는 청소하는 것이었다. 안창호 선생은 청소하는 데는 천재였다. 한번은 어느 미국인의 저택에서 한시간에 1달러씩 받고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의 손이 닿지않는 구석까지 청소도구를 만들어서 깨끗이 청소하였다. 그 집주인이 배란다에서 내려다 보니까 마치 자기집을 청소하듯 성실히 하더라고 했다. 감동이 된 주인은 일이 끝난 후"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요" 하고 물었다. 그때 안창호 선생은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주인은처음에 약속한 것보다 50센트씩 더하여 12달러를 주었다고한다.
성실하면 사람도 감동을 받지만 여호와 하나님도 감동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만나주십니까 변함없이 성실함으로 주를 찾는 자들에게 만나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서의 우리의 태도는 성실함입니다.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순종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의 지시를 받고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사실 유대인의 왕이요 인류의 구주인 그리스도께서 촌동네인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말구유에서 태어 난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목자들은 그 계시를 듣고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것을 나도 인정하는 것은 그것은 진정한 자세가 아닙니다. 특별히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고 믿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되어지기 때문에 믿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믿음이라고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믿어지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도 믿지 아니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는것! 내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아니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믿어버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로서 오신다. 그런데 그이는 저 시골 벽촌인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탄생하신다. 여러분 같으면 이 사실을 믿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오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능력의 사람으로서 오실 것인데 그분은 최소한 가장 화려하게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환경 가운데서 탄생하실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구유에서 탄생한다고 하는 것은 믿을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구유에서 탄생하실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알려준 이야기를 가서 전했을때 듣던 사람들이 그 말을 잘 믿지 아니하고
18절 말씀을 보니까! 듣는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것을 기이히 여기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상을 뒤엎는 말씀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고로 믿는 신앙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될줄로 믿고 나가 순종하는 신앙! ........ 이 신앙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것은 100% 믿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될줄로 믿고 행동에 옮기는 순종의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은 만나 주십니다. "말씀만 하십시요! 어떤 말씀이든지 아멘하고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납니다. " 교회는 오래 나와도 아냐야 저 말씀은 허무 맹랑한 말씀이야 목사가 지어서 말하는 것이겠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야!" 하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날수도 없을뿐 아니라 얼마가지 못해서 그들은 주님을 떠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어린아이와 같이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이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가르쳐준대로 따라서 행합니다. 일일히 따져 묻지 아니하고 가르쳐준대로 순종합니다, 예수를 복잡하게 믿으면 안됩니다.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들어가 있지 아니한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들려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실것이라는 말씀에 그들은 믿고 순종하여 갔습니다. 순종하는 자들에게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태어 나시리라는 것을 알았고 또 그 소식을 들었지만 소동만 일으켰을뿐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마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들은 이미 구약 미가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구유에서 탄생하실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를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섰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제쳐두고 목자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신 이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대제사장들 대신 목자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즉각 순종하는 것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즉시 순종하는 것이 참 믿음의 자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요인이 되는 것입을 알고 늘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주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가 경배한 이들은 바로 들녁에서 양떼들을 돌보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고 당시 경건한 무리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그들이 가장 먼저 보았던 것입니다. 이토록 이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은 결코 높은 자리, 높은 지위에 있는 자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힘없고 비천한 자에게 임한다고 하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무조건 약하고 비천한 자가 아니라 맡은 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고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잘알려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성탄적은 역사를 AD와BC로 나눈 가장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가 오심으로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그가 오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가 오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그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의 주님으로 평화의 주님으로 오실것입니다. 그냥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니라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는가운데 맞이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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