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동방박사들의 경배신앙
본문
지금부터 2,000 여년 전 베들레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세상의 왕으로서는 결코 적합하지 않은 장소인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의 탄생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오신 것은 유대의 왕이나 귀족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약하고 소외된 자들과 이방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가난한 목자들은 밤새워 양들을 보호하던 중에 주의 천사로부터 구주 탄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문학과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당대의 석학들인 동방 박사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별에 의해 메시야의 탄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자들은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와 부모를 만나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렸고(눅 2:20), 동방의 박사들은 먼 길을 찾아와 어린 아이 예수께 경배하며 보배로운 선물을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익히 아는 이야기이고, 주일학교 성탄 성극 중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가 시사하고 있는 의미를 나타내는 데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동방 박사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예수님께 예배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지속적으로 부족한 점이 바로 이 예배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동방 박사들이 보여준 경배 신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귀한 신앙의 모범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1. 먼 길을 찾아 예수께 옴 (적용적 해석: 열정, 열심)
1절 “...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
여기 ‘동방’은 페르시아나 아랍, 인도 등지로 보기도 하지만 바벨론 지방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상당수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까지 수천킬로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 왔다는 것은 동방 박사들의 가슴 속에 메시야를 만나고자 하는 불타는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박사들의 신앙은 어떤 난관이라도 헤쳐 나가는 열정적인 신앙이었습니다.
‘박사’로 번역된 ‘마고스’는 바벨론에서 기원된 단어로 보이며, 주로 현자, 제사장, 의사, 점성가, 예언자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의 ‘마고스’는 특히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가의 뜻이 강한 단어입니다.
‘동방’(아나톨레)은 ‘(해나 별의) 떠오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지점을 가리키는 ‘동쪽’(the east)이라는 의미가 발생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백성들이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되어 흩어진 이후로 유대의 전통과 예언들이 그 지역의 점성가들에게 알려졌을 것입니다. 예수께 경배하러 온 박사들도 점성학적 지식과 더불어 유대 전통(민 24:17)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대 땅에 위대한 인물이 탄생한 것을 알고 먼 곳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단한 열심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이 지금같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초승달같이 생긴 먼 길에는 강도와 도적이 많이 매복해 있었기 때문에 귀한 물건들을 지니고 여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보통 열정으로는 계획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인내로써 예루살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했습니까 그것은 메시야 탄생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그만큼 간절했고 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찾고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우리의 소망은 어느 정도 입니까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우리의 심장 맥박수는 얼마나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대한 나의 열정은 섭씨 몇도나 됩니까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합니까
기억합시다. 주님은 간절히 사모하고 열심히 찾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 별의 인도를 받음 (적용적 해석: 그리스도의 별의 인도)
2절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10절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1절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동방 박사의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그들이 별의 인도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사를 결정짓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관례입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자연 현상으로서 별을 이용하셨습니다. 본문의 별은 자연계에 나타난 실제 별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별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박사들이 보았던 별은 자연계의 별이면서, 또한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언제나 별 되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가야 할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별입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절). 동방 박사들이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만나기 위해 긴 여정을 여행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그들은 무슨 의미로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았다고 말했을까요
영역성경 RSV는 2절에 기록된 이 내용을 ‘우리가 그 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we observed his star at its rising) 라고 옮겼습니다. 이는 그 별이 처음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서 곧바로 유대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무관한 이적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초대교회 교부들, 초기기독교 문서들).
실재하지 않은 심리적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Spinosa 등).
핼리 혜성이거나 초신성(超新星)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Kepler, Martin, Schubert 등).
가장 유력한 가설은 초신성입니다. 이것은 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해 밝기가 평소의 수억 배에 이르렀다가 서서히 낮아지는 현상입니다. 이 때문에 지구상에서 볼 때는 없던 별이 갑자기 생긴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한낮에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다면 동방 박사들이 이를 ‘새 왕의 탄생’ 이라는 전조로 받아들였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운행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별을 특별히 섭리하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과학적 사실입니다. 또한 동시에 단순히 별 이야기만을 위해 성경에 기록해 두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깊은 영적 의미를 포함시켜 놓으신 것임을 개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별은 영적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또한 주의 종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별이십니다. 별이 빛을 발하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식의 빛, 위로의 빛을 주십니다.
별이 변함이 없듯이 목자되신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언제나 동일한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이 별은 인도하는 별입니다. 밤중에 고기 잡는 어부들이 별을 보고 방향을 잡듯이, 예수님은 지치고 고단한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고 새 힘을 얻고 인도받는 별이 되십니다.
계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신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동방 박사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새벽별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벧후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았듯이 우리 또한 샛별 되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많은 것으로 상징이 됩니다. 예수님이 너무 귀하기에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우리 예수님 한 분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의 재림이 실감나지 않으십니까 어두움의 끝자락에 새로운 아침을 몰고 나타나는 새벽별을 보십시오. 그리고 역사의 새벽별로 임하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만이 우리 영혼의 새벽별이요 참 목자이십니다.
3. 아기 예수께 경배함 (적용적 해석: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동방 박사들은 별빛의 인도를 받아 마침내 베들레헴의 요셉 가족이 거주하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모친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여기 ‘경배하다’(프로스퀴네오)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참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그 앞에 예배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들 이방인들이 예수님만이 참 경배의 대상임을 알고 그 앞에 경배드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집 안에는 모친 마리아가 있었고, 요셉도 있었을 것입니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참 경배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마리아에게 절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절한 것도 아닙니다. 아기 예수께 엎드려 절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성모 숭배 사상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그릇된 생각입니다. 성경적인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우상 숭배적인 가르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만 신적인 경배, 즉 예배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단 한 사람도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들의 목자들이 예수님 누워 있는 구유를 찾았다는 누가복음 2장의 기사에도 목자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박사들은 멀리에서부터 와서 경배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참 경배의 대상에게 예배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당시의 박사들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기대했던 유대인의 왕은 별 볼일 없는 허름한 집에 누워 있습니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예수님 탄생 후 상당한 시일이 흐른 후였고, 이 때는 요셉이 베들레헴의 어느 집으로 거주지를 정한 때였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외국의 유명한 사신도 없고 유대의 왕족이나 귀족들도 없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입니다.
우리 같으면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별의 인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아기 앞에 엎드려 예배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값비싼 예물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바로 여기에 믿음의 본질이 있고 믿음의 시금석이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늘의 별과 눈앞의 현실에 차이가 있을 때, 그리고 눈 앞의 파도와 파도 너머에 주님이 계실 때, 참 믿음은 하늘의 별을 보며 파도 너머에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눈 앞의 현실에 매이는 자가 되지 말고 그 너머에 계시는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4.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림 (적용적해석: 매우 귀한 예물)
11절 “...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은 엎드려 경배했을 뿐 아니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당시 왕이나 귀족 등과 같이 높은 지위에 있는 자에게 나아갈 때 예물을 드리는 관례에 따른 것입니다. 이 세가지는 동방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매우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이처럼 귀한 것을 에수께 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자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께 최상의 예를 갖추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박사들의 예물 드림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예배하러 나오는 성도들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박사들이 바친 세가지 예물은 매우 귀한 것들일 뿐 아니라 상징성을 갖는 예물입니다.
황금은 동서 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입니다. 이것은 메시야 왕권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 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고, 이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동방 박사들은 가장 귀한 예물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미 6:6-7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우리에게도 선지자 미가처럼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예배하러 나올 때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것을 가지고 나아옵니까 우리는 어떤 보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도 주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동방 박사들같이 가장 귀한 것을 믿음으로 준비하여 나아오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은 성도의 심령에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안겨주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참 경배의 대상을 찾아 전심으로 경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 신앙은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모범적인 신앙입니다.
박사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자 만난을 무릅쓰고 불원천리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열심이고 열정입니다.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까지 와서 마침내 메시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새벽별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까지 이르는 대장정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아기의 부모나 소박한 주위 환경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께 가장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영원하신 주님, 만왕의 왕이신 주님, 이제 곧 구름을 타고 오실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귀한 것으로 예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 각자의 보배합을 열어 회개의 예물, 순종과 믿음의 예물, 사랑의 아름다운 예물을 드림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의 탄생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오신 것은 유대의 왕이나 귀족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약하고 소외된 자들과 이방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가난한 목자들은 밤새워 양들을 보호하던 중에 주의 천사로부터 구주 탄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문학과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당대의 석학들인 동방 박사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별에 의해 메시야의 탄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자들은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와 부모를 만나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렸고(눅 2:20), 동방의 박사들은 먼 길을 찾아와 어린 아이 예수께 경배하며 보배로운 선물을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익히 아는 이야기이고, 주일학교 성탄 성극 중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가 시사하고 있는 의미를 나타내는 데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동방 박사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예수님께 예배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지속적으로 부족한 점이 바로 이 예배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동방 박사들이 보여준 경배 신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귀한 신앙의 모범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1. 먼 길을 찾아 예수께 옴 (적용적 해석: 열정, 열심)
1절 “...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
여기 ‘동방’은 페르시아나 아랍, 인도 등지로 보기도 하지만 바벨론 지방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상당수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까지 수천킬로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 왔다는 것은 동방 박사들의 가슴 속에 메시야를 만나고자 하는 불타는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박사들의 신앙은 어떤 난관이라도 헤쳐 나가는 열정적인 신앙이었습니다.
‘박사’로 번역된 ‘마고스’는 바벨론에서 기원된 단어로 보이며, 주로 현자, 제사장, 의사, 점성가, 예언자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의 ‘마고스’는 특히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가의 뜻이 강한 단어입니다.
‘동방’(아나톨레)은 ‘(해나 별의) 떠오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지점을 가리키는 ‘동쪽’(the east)이라는 의미가 발생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백성들이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되어 흩어진 이후로 유대의 전통과 예언들이 그 지역의 점성가들에게 알려졌을 것입니다. 예수께 경배하러 온 박사들도 점성학적 지식과 더불어 유대 전통(민 24:17)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대 땅에 위대한 인물이 탄생한 것을 알고 먼 곳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단한 열심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이 지금같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초승달같이 생긴 먼 길에는 강도와 도적이 많이 매복해 있었기 때문에 귀한 물건들을 지니고 여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보통 열정으로는 계획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인내로써 예루살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했습니까 그것은 메시야 탄생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그만큼 간절했고 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찾고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우리의 소망은 어느 정도 입니까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우리의 심장 맥박수는 얼마나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대한 나의 열정은 섭씨 몇도나 됩니까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합니까
기억합시다. 주님은 간절히 사모하고 열심히 찾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 별의 인도를 받음 (적용적 해석: 그리스도의 별의 인도)
2절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10절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1절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동방 박사의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그들이 별의 인도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사를 결정짓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관례입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자연 현상으로서 별을 이용하셨습니다. 본문의 별은 자연계에 나타난 실제 별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별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박사들이 보았던 별은 자연계의 별이면서, 또한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언제나 별 되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가야 할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별입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절). 동방 박사들이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만나기 위해 긴 여정을 여행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그들은 무슨 의미로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았다고 말했을까요
영역성경 RSV는 2절에 기록된 이 내용을 ‘우리가 그 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we observed his star at its rising) 라고 옮겼습니다. 이는 그 별이 처음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서 곧바로 유대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무관한 이적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초대교회 교부들, 초기기독교 문서들).
실재하지 않은 심리적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Spinosa 등).
핼리 혜성이거나 초신성(超新星)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Kepler, Martin, Schubert 등).
가장 유력한 가설은 초신성입니다. 이것은 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해 밝기가 평소의 수억 배에 이르렀다가 서서히 낮아지는 현상입니다. 이 때문에 지구상에서 볼 때는 없던 별이 갑자기 생긴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한낮에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다면 동방 박사들이 이를 ‘새 왕의 탄생’ 이라는 전조로 받아들였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운행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별을 특별히 섭리하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과학적 사실입니다. 또한 동시에 단순히 별 이야기만을 위해 성경에 기록해 두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깊은 영적 의미를 포함시켜 놓으신 것임을 개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별은 영적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또한 주의 종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별이십니다. 별이 빛을 발하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식의 빛, 위로의 빛을 주십니다.
별이 변함이 없듯이 목자되신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언제나 동일한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이 별은 인도하는 별입니다. 밤중에 고기 잡는 어부들이 별을 보고 방향을 잡듯이, 예수님은 지치고 고단한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고 새 힘을 얻고 인도받는 별이 되십니다.
계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신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동방 박사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새벽별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벧후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았듯이 우리 또한 샛별 되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많은 것으로 상징이 됩니다. 예수님이 너무 귀하기에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우리 예수님 한 분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의 재림이 실감나지 않으십니까 어두움의 끝자락에 새로운 아침을 몰고 나타나는 새벽별을 보십시오. 그리고 역사의 새벽별로 임하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만이 우리 영혼의 새벽별이요 참 목자이십니다.
3. 아기 예수께 경배함 (적용적 해석: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동방 박사들은 별빛의 인도를 받아 마침내 베들레헴의 요셉 가족이 거주하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모친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여기 ‘경배하다’(프로스퀴네오)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참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그 앞에 예배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들 이방인들이 예수님만이 참 경배의 대상임을 알고 그 앞에 경배드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집 안에는 모친 마리아가 있었고, 요셉도 있었을 것입니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참 경배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마리아에게 절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절한 것도 아닙니다. 아기 예수께 엎드려 절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성모 숭배 사상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그릇된 생각입니다. 성경적인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우상 숭배적인 가르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만 신적인 경배, 즉 예배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단 한 사람도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들의 목자들이 예수님 누워 있는 구유를 찾았다는 누가복음 2장의 기사에도 목자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박사들은 멀리에서부터 와서 경배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참 경배의 대상에게 예배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당시의 박사들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기대했던 유대인의 왕은 별 볼일 없는 허름한 집에 누워 있습니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예수님 탄생 후 상당한 시일이 흐른 후였고, 이 때는 요셉이 베들레헴의 어느 집으로 거주지를 정한 때였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외국의 유명한 사신도 없고 유대의 왕족이나 귀족들도 없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입니다.
우리 같으면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별의 인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아기 앞에 엎드려 예배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값비싼 예물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바로 여기에 믿음의 본질이 있고 믿음의 시금석이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늘의 별과 눈앞의 현실에 차이가 있을 때, 그리고 눈 앞의 파도와 파도 너머에 주님이 계실 때, 참 믿음은 하늘의 별을 보며 파도 너머에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눈 앞의 현실에 매이는 자가 되지 말고 그 너머에 계시는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4.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림 (적용적해석: 매우 귀한 예물)
11절 “...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은 엎드려 경배했을 뿐 아니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당시 왕이나 귀족 등과 같이 높은 지위에 있는 자에게 나아갈 때 예물을 드리는 관례에 따른 것입니다. 이 세가지는 동방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매우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이처럼 귀한 것을 에수께 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자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께 최상의 예를 갖추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박사들의 예물 드림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예배하러 나오는 성도들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박사들이 바친 세가지 예물은 매우 귀한 것들일 뿐 아니라 상징성을 갖는 예물입니다.
황금은 동서 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입니다. 이것은 메시야 왕권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 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고, 이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동방 박사들은 가장 귀한 예물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미 6:6-7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우리에게도 선지자 미가처럼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예배하러 나올 때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것을 가지고 나아옵니까 우리는 어떤 보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도 주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동방 박사들같이 가장 귀한 것을 믿음으로 준비하여 나아오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은 성도의 심령에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안겨주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참 경배의 대상을 찾아 전심으로 경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 신앙은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모범적인 신앙입니다.
박사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자 만난을 무릅쓰고 불원천리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열심이고 열정입니다.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까지 와서 마침내 메시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새벽별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까지 이르는 대장정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아기의 부모나 소박한 주위 환경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께 가장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영원하신 주님, 만왕의 왕이신 주님, 이제 곧 구름을 타고 오실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귀한 것으로 예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 각자의 보배합을 열어 회개의 예물, 순종과 믿음의 예물, 사랑의 아름다운 예물을 드림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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