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마리아와 함께 성탄을
본문
저희들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과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1부 예배와 2부 예배가 같은 찬양입니다. 들으면서 원작자는 누굴까 생각해봤더니 원작자는 이 천 년 전에 사셨던 분입니다. 아름다운 곡은 헨델이 붙였겠지만 이 모든 영광의 이야기, 찬양의 이야기는 사실 원조가 마리아라는 여자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누가복음 1장에 있는 마리아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불렀던 찬양의 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오늘 누가복음 1장 46절에서 55절까지 봉독해서 여러분 들으셨습니다.
마리아의 고백. 마리아의 작시. 마리아 찬가. 어떻게 표현하던 간에 마리아는 오늘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잉태하고 있고 이 메시아가 태어나면 세상은 뒤바꿔지고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할 메시아를 지금 몸속에 끌어안고 있습니다. 찬양의 내용은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은 장엄하십니다.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사실은 누가복음 1장에 있는 마리아 찬가는 초대교회가 생기면서부터 최고의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물론 곡이 없기 때문에 어떤 곡을 불렀는지 모르나 적어도 가사로는 예배 때마다 불렀고 중세기 때는 모든 성경이 라틴말로 번역된 성경을 썼기 때문에 라틴말을 아는 신부님이 예배를 집정하면서 그레고리 안찬트라는 곡에다 붙여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합니다. 종교개혁 때는 마틴루터도 독일말로 번역해서 이 찬송을 예배 때마다 특별찬송으로 불렀습니다. 바흐도 자가기 봉직했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작곡을 해서 아리아도 집어넣고 칸타타도 만들고 그래서 성 토마스 교회에서 불렀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불렀던 아름다운 찬가. 이 찬가를 중세 때 라틴말로 번역을 하면서 처음 나온 단어가 뭐냐 하니까, 마니피카트라는 라틴말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장대하시고 나는 찬양 드린다.
마니피카트 라틴어 번역의 첫 글자인데 이 첫 글자가 고유명사가 되면서 마리아찬가는 마니피카트다, 그러는데 영어로, 불란서어로 독일말로 오면서 발음이 좀 달라졌습니다. 마그니피카트, 메그니피카드 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발음의 문제고 라틴어 원문의 발음은 마니피카트 그렇습니다. 어떻게 발음 하던 간에 마니피카트라 이름 하는 마리아의 찬가. 보통명사입니다.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저는 오늘 라틴말로 그냥 사용하겠습니다. 고유명사 노래의 제목이 아니고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나는 찬양합니다. 이 두 마디입니다. 마리아가 찬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와 같은 비천한 여종에게 이렇게 큰 은총을 베푸시다니 마니피카트. 가장 낮고 천한 저 속에 제가 살아가는 이 땅에 그 아름답고 훌륭하신 당신이 오시다니 당신은 거룩하십니다. 당신의 자비하심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마니피카트. 당신이 이 땅에 오시면 교만한 왕들은 다 내려치고 아주 불쌍한 좌절해있는 사람은 다 들어 올리십니다. 부유하답시고 교만한 자들은 다 뺏어가고 비록 겸손하지만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가져다주시는 당신. 당신은 공평하십니다. 정의로우십니다.
마니피카트. 그리고 당신은 우리한테 선조들을 통해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곧 가겠다고. 금방 가겠노라고. 가면 평화를 전하겠노라고. 축복을 주겠다고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약속된 당신이 제 몸을 통해서 나오시다니요. 당신은 정말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군요. 오늘 마리아 찬가의 대목을 하나씩 하나씩 챙겨보았습니다. 비참한 여종을 보살펴 주신 당신, 거룩하신 당신, 자비로우신 당신 공평하시고 평화를 주시는 당신.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당신. 네 마디를 하고 소절, 소절 마다 마니피카트. 당신은 위대하시고 나는 찬양 드립니다.
이 마리아 찬가를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만 마리아의 이야기 아니고 저의 얘기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이 아니고 저의 찬양입니다. 이 천 년 전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났다고 이름 하는 메시아. 어린 아기를 태어나게 한 어머니 말의 이야기는 과거 역사 얘기가 아니고 거기서 태어나신 분이 살아나신 그리스도이시면 오늘 저의 이야기입니다. 마리아가 한 여성입니다. 성별로 그렇지요. 저는 누구입니까 나도 오늘 마리아이고 싶습니다.
제가 마리아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성 중심으로 해석하든 여성 신학적으로 해석하건 너무 그건 문법적인 해석이고요 성령의 은총을 받아서 신령이 나한테 임하시면 나는 오늘 내 몸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나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한테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당신이 오셔서 낮은 곳에 계신 저한테 오셔서 잉태를 합니다. 왜 이 얘기가 성경말씀에 쓰였냐하면 우리한테 오시는 메시아는 가장 높다고 표현하는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은 누굴 구원합니까 중산층, 중간층만 구원하고 마십니까 아니지요.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부터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모든 공간과 시간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를 모든 피조물을 다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는 방식이 가장 높은 곳. 가장 낮은 곳. 마리아의 얘기입니다. 저와 같이 가장 낮은 곳에 태어나시는 가장 높으신 분. 모두를 구원하시는 분. 제가 드릴 말씀은 찬양합니다. 저와 같은 몸에서 위대한 분이 나시다니요. 저와 같이 속된 몸에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 태어나시다니요.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너무 위대합니다. 마니피카트. 그 말 말고 뭐라 할 수 있습니까 마리아의 이야기는 마리아의 얘기가 아니고 오늘 우리 얘기입니다. 마리아가 하신 말씀 중에 사랑하는 여러분 배 좀 부르다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메시아가 태어나지 못합니다. 교만 속에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너무 배고프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절망 속에서는 메시아가 못 태어납니다. 권력 좀 가졌다고 제왕이라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 속에 어떻게 메시아가 태어납니까 신분이 좀 낮고 힘이 없고 비천하다고 무력한 곳에 메시아가 태어나서 뭐하라는 겁니까 중요한 말씀은 겸손하십시오.
겸손이란 말을 메시아가 오실만큼 다 비우고 가장 꼭대기서부터 낮은 데까지 다 비우기만 하면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 일을 당신과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누구냐 하면 저 자신입니다. 마리아가 누구냐 하면 내 가정입니다. 마리아가 누구냐 하면 이 나라입니다. 이 땅입니다. 이 땅이 메시아가 태어날 만큼 겸손함과 지혜와 그리고 마음이 열리는 개방만 있으면 메시아가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수요예배 때 저희들이 정교회 신부님 모시고 우리가 강연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 분 하시는 말씀 속에 천주교나 정교회가 우리와 다른 마리아 숭배사상이 있다고 여러분 오해하시는데 우리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게 아닙니다. 메시아를 잉태한 어머니 마리아가 너무 훌륭하셔서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마리아를 가지고 인간 예수만이 아니고 사람이자 여호와 하나님이신 분. 가장 거룩하신 분. 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잉태한 사람. 그럼 거룩한 어머니 아닙니까. 그래서 그분을 성모라 이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란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잉태한 비천하지만 거룩한 분으로 추앙받는 분. 공경의 최정상에 계신 분. 저는 마리아를 숭배하란 말을 저도 하지 않고 여러분도 믿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구세주가 아닙니다.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그러나 공경의 대상이기는 합니다. 가장 훌륭하신 어머니. 진실 된 어머니. 그리고 비참하지만 거룩함을 받은 어머니. 그 어머니가 교리 화된 어머니 아니 구요 그 어머니는 지금도 경동교회 앉아계십니다.
성별을 뛰어 넘어. 그분한테 모든 사람한테서 메시아가 태어나고 싶어 하는데 목적은 나는 구원을 베풀어야 한다. 아픈 자는 낫게 해야 한다. 근심 있는 자는 걱정을 내가 덜어주어야 한다. 불의한 곳에 와서는 정의를 심어야 한다. 부자유가 있는 곳에 와서는 자유를 심어야 한다. 폭력과 전쟁이 있는 곳에는 평화를 심어야 한다. 내가 태어나고 싶다. 길 좀 닦아다오. 사실은 마리아는 그렇게 스스로를 가장 비천한 계집종이오니 하고 고백을 하십니다. 그곳에 가장 위대한 분이 태어나서 자기 역사를 이룬다고 합니다. 마리아를 베들레헴에 묶어 두지 마시고 제가 마리아이고 싶습니다. 자격이 있습니다.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단하시면 됩니다. 그걸 신앙의 결단이라 이름 합니다. 지난 목요일 날 우리 교인 여러분과 제가 서산 앞바다에 잠깐 가서 몇 개 봉사를 못했습니다만 저하고 생각이 같으신 줄 모르겠습니다. 기름때가 와서 앞바다를 다 휩싸였고 모래사장 돌들 다 검은 걸로 칠해놨는데 제가 느낀 것은 이렇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기름덩이 얼마가 거대한 대양을 완전히 썩히는구나. 기름을 닦으면서 저는 아주 잘 생긴 돌 아름다운 돌 수석 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돌만 닦은 게 아닙니다. 닦다보니까 못난 돌, 작은 돌, 삐진 돌, 험상궂은 돌, 제가 가리지 않고 집어서 닦았습니다. 잘 생긴 돌은 그냥 닦으면 되는데 못생긴 돌은 얼마나 정성을 쏟아야 되는지 그래야 닦입니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인지상정으로 나는 기름 낀 모든 돌은 기름기를 제거해야 한다. 잘 생겼던 못 생겼던, 크던 작던, 색깔이 어떻든 저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도 다 정성스럽게 닦아야 나중에 이 땅이 오염되지 않고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가 가냘프게 느끼는 그냥 보통 사람처럼 느끼는 현장의 이야기. 그것이 인지상정이고 제 마음이고 여러분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시지요. 저는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못생긴 돌일 것이다. 그리고 험상궂게 생긴 작은 돌일 것이다.
제 구석구석에 너무 홀이 많아서 때가 끼고 기름기가 끼고 성경말씀대로 하면 죄악이 가득하여 신앙이 없다고 남들이 발로차고 버렸지만 오늘 제 때를 벗기러 오시는 그분은 저한테 태어나시는 그분은 정성스럽게 제 몸에 각 부분을 닦고 영혼도 닦고 생각도 닦고 제 인간도 닦고 제가 버려지는 역사도 닦고 가정도 닦고 다 닦으면서 물로 씻고 기름으로 때 닦아주고 다 닦아 주마. 난 신분도 초월하마. 생각도 초월하마. 국적도 초월하마. 이념도 초월하마. 나는 다 초월하여 네 때를 벗기고 싶다. 왜 너한테 베풀 구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사실 은혜 받고 왔습니다.
사람이 그럴진대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부터 낮은 곳까지 왕래하시면서 우리의 죄악을 씻고 잘못을 씻고 허물을 씻고 새로운 생명과 자유와 축복 주시겠다는 분은 누구도 구별하지 않고 차별도 하지 않고 다 응해주십니다. 그런 분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태어나고 싶다. 호텔방에 태어나고도 싶고 여관방에 태어나고도 싶고 아니 방이 없으면 말들이 자는 말구유 구석에서도 태어나고 싶다. 나는 그 태어나는 곳 가리지 않겠다. 신분도 가리지 않겠다. 인종도 가리지 않겠다. 어디든지 나를 환영만 하는 곳이면 태어나고 싶다. 말구유가 어딥니까 제가 말구유입니다. 베들레헴 그 뜻은 여호와 하나님의 집.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 어디 있습니까 유대 땅 도시 중에서 가장 못난 도시 가장 작은 도시 베들레헴. 그곳에서 세계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태어난답니다.
여관방도 아니고 온기도 없는 방이 있고 그냥 말들이 자는 돼지우리 같은 속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목적은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저는 이 메시아 오심이 마리아가 노래한 것처럼 굉장히 중요한데 마리아 얘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저한테 주시는 마리아의 호소입니다. 너도 마리아일 수 있다. 여러분 오늘 마리아가 되십시오. 중요한 것은 메시아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마리아일 수 있다고 확신하면 그 다음에 저는 메시아를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가 하는 얘기입니다. 당신이 우리 민족에게 우리 백성에게 오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우리 읽은 이사야 말씀입니다.
아마 마리아는 이 찬송을 부르면서 이런 얘기를 회상하고 있었을 겁니다. 구약의 말씀입니다.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 전하려고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쳐라. 복된 소식을 전한다고 외쳐라. 구원이 임박했다고 외쳐라. 그렇게 외치는 발길이 너무 좋아서 이사야서 선지자는 저 발을 좀 보아라. 깨고 있지 않느냐. 그걸 마리아는 기억합니다. 자기 뱃속에서 발길질 하는 메시아를 보고 아마 뛰는 음성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 희소식을 전하려고 뛰는 내 메시아여 어서 오십시오. 가장 비천한 처녀의 몸에서 낫다고 무슨 비난이 있든 말든 여호와 하나님이 오신다는 약속을 제가 받겠으니 여기서 태어나시옵소서. 가장 작은 동네 베들레헴. 가장 험난한 곳 말구유. 가장 비천한 사람 마리아. 어디든지 오십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태어나셔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소서. 마니피카트. 역설적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오늘 우리 예배가 복됩니다. 성탄이 복되고 주님 오신 날이 복된 날입니다.
대통령 선거도 이제 막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 시대를 시작했는데 제가 누구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선거는 이런 것 같습니다. 우리 인심 속에 모든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우리 머리가 다 아프고 마음이 나빴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사람에게 투표 했다기보다도 우리는 과거에 투표하기보다 미래에 투표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진실 여부에 투표하기보다 미래의 희망에 투표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네거티브보다는 포지티브에 투표하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는 아직 안 왔습니다. 미래의 희망은 만들어 가야합니다. 교만한 마음가지고는 미래가 잘 만들어지지가 않을 겁니다. 오늘 말씀대로 겸손하게. 좌절로도 못 만들 겁니다. 자신 있게. 모두가 합하여 민심이 득이 됐으면 오늘 천심도 과거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하늘 뜻에 따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책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책임에 투표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모두 겸손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기쁜 메시아의 축복이 뭔지를 각 영역별로 새로 찾으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호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너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 그렇게 작지 않다. 비록 작아도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사랑하는 작은 사람들아 작다고 힘들다고 비참하다고 좌절하지 마라. 가장 큰 자, 힘센 자 나 여호와가 오늘 메시아란 이름으로 내가 태어나고자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받으시려면 받으시고 지켜가려면 지켜 가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의지대로 오신답니다. 그냥 인사하고 가시든지 맞아들이시든지 그건 여러분의 신앙 결단입니다. 맞으시려면 아멘하고 맞으십시오. 맞으시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당신 내 안에 태어나십시오. 내가 비참합니다. 가장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십시오. 당신은 내일을 행하십니다. 오늘 가시면서 메시아가 태어나겠다고 하니 여러분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 마니피카트 할 수 있으면 메시아가 태어납니다. 그 찬송 못하시면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 내일의 축복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결정해 주실 텐데 그냥 아멘.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마니피카트. 마리아 한번 돼보십시다.
마리아의 고백. 마리아의 작시. 마리아 찬가. 어떻게 표현하던 간에 마리아는 오늘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잉태하고 있고 이 메시아가 태어나면 세상은 뒤바꿔지고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할 메시아를 지금 몸속에 끌어안고 있습니다. 찬양의 내용은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은 장엄하십니다.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사실은 누가복음 1장에 있는 마리아 찬가는 초대교회가 생기면서부터 최고의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물론 곡이 없기 때문에 어떤 곡을 불렀는지 모르나 적어도 가사로는 예배 때마다 불렀고 중세기 때는 모든 성경이 라틴말로 번역된 성경을 썼기 때문에 라틴말을 아는 신부님이 예배를 집정하면서 그레고리 안찬트라는 곡에다 붙여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합니다. 종교개혁 때는 마틴루터도 독일말로 번역해서 이 찬송을 예배 때마다 특별찬송으로 불렀습니다. 바흐도 자가기 봉직했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작곡을 해서 아리아도 집어넣고 칸타타도 만들고 그래서 성 토마스 교회에서 불렀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불렀던 아름다운 찬가. 이 찬가를 중세 때 라틴말로 번역을 하면서 처음 나온 단어가 뭐냐 하니까, 마니피카트라는 라틴말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장대하시고 나는 찬양 드린다.
마니피카트 라틴어 번역의 첫 글자인데 이 첫 글자가 고유명사가 되면서 마리아찬가는 마니피카트다, 그러는데 영어로, 불란서어로 독일말로 오면서 발음이 좀 달라졌습니다. 마그니피카트, 메그니피카드 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발음의 문제고 라틴어 원문의 발음은 마니피카트 그렇습니다. 어떻게 발음 하던 간에 마니피카트라 이름 하는 마리아의 찬가. 보통명사입니다.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저는 오늘 라틴말로 그냥 사용하겠습니다. 고유명사 노래의 제목이 아니고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나는 찬양합니다. 이 두 마디입니다. 마리아가 찬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와 같은 비천한 여종에게 이렇게 큰 은총을 베푸시다니 마니피카트. 가장 낮고 천한 저 속에 제가 살아가는 이 땅에 그 아름답고 훌륭하신 당신이 오시다니 당신은 거룩하십니다. 당신의 자비하심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마니피카트. 당신이 이 땅에 오시면 교만한 왕들은 다 내려치고 아주 불쌍한 좌절해있는 사람은 다 들어 올리십니다. 부유하답시고 교만한 자들은 다 뺏어가고 비록 겸손하지만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가져다주시는 당신. 당신은 공평하십니다. 정의로우십니다.
마니피카트. 그리고 당신은 우리한테 선조들을 통해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곧 가겠다고. 금방 가겠노라고. 가면 평화를 전하겠노라고. 축복을 주겠다고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약속된 당신이 제 몸을 통해서 나오시다니요. 당신은 정말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군요. 오늘 마리아 찬가의 대목을 하나씩 하나씩 챙겨보았습니다. 비참한 여종을 보살펴 주신 당신, 거룩하신 당신, 자비로우신 당신 공평하시고 평화를 주시는 당신.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당신. 네 마디를 하고 소절, 소절 마다 마니피카트. 당신은 위대하시고 나는 찬양 드립니다.
이 마리아 찬가를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만 마리아의 이야기 아니고 저의 얘기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이 아니고 저의 찬양입니다. 이 천 년 전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났다고 이름 하는 메시아. 어린 아기를 태어나게 한 어머니 말의 이야기는 과거 역사 얘기가 아니고 거기서 태어나신 분이 살아나신 그리스도이시면 오늘 저의 이야기입니다. 마리아가 한 여성입니다. 성별로 그렇지요. 저는 누구입니까 나도 오늘 마리아이고 싶습니다.
제가 마리아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성 중심으로 해석하든 여성 신학적으로 해석하건 너무 그건 문법적인 해석이고요 성령의 은총을 받아서 신령이 나한테 임하시면 나는 오늘 내 몸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나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한테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당신이 오셔서 낮은 곳에 계신 저한테 오셔서 잉태를 합니다. 왜 이 얘기가 성경말씀에 쓰였냐하면 우리한테 오시는 메시아는 가장 높다고 표현하는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은 누굴 구원합니까 중산층, 중간층만 구원하고 마십니까 아니지요.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부터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모든 공간과 시간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를 모든 피조물을 다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는 방식이 가장 높은 곳. 가장 낮은 곳. 마리아의 얘기입니다. 저와 같이 가장 낮은 곳에 태어나시는 가장 높으신 분. 모두를 구원하시는 분. 제가 드릴 말씀은 찬양합니다. 저와 같은 몸에서 위대한 분이 나시다니요. 저와 같이 속된 몸에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 태어나시다니요.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너무 위대합니다. 마니피카트. 그 말 말고 뭐라 할 수 있습니까 마리아의 이야기는 마리아의 얘기가 아니고 오늘 우리 얘기입니다. 마리아가 하신 말씀 중에 사랑하는 여러분 배 좀 부르다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메시아가 태어나지 못합니다. 교만 속에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너무 배고프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절망 속에서는 메시아가 못 태어납니다. 권력 좀 가졌다고 제왕이라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 속에 어떻게 메시아가 태어납니까 신분이 좀 낮고 힘이 없고 비천하다고 무력한 곳에 메시아가 태어나서 뭐하라는 겁니까 중요한 말씀은 겸손하십시오.
겸손이란 말을 메시아가 오실만큼 다 비우고 가장 꼭대기서부터 낮은 데까지 다 비우기만 하면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 일을 당신과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누구냐 하면 저 자신입니다. 마리아가 누구냐 하면 내 가정입니다. 마리아가 누구냐 하면 이 나라입니다. 이 땅입니다. 이 땅이 메시아가 태어날 만큼 겸손함과 지혜와 그리고 마음이 열리는 개방만 있으면 메시아가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수요예배 때 저희들이 정교회 신부님 모시고 우리가 강연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 분 하시는 말씀 속에 천주교나 정교회가 우리와 다른 마리아 숭배사상이 있다고 여러분 오해하시는데 우리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게 아닙니다. 메시아를 잉태한 어머니 마리아가 너무 훌륭하셔서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마리아를 가지고 인간 예수만이 아니고 사람이자 여호와 하나님이신 분. 가장 거룩하신 분. 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잉태한 사람. 그럼 거룩한 어머니 아닙니까. 그래서 그분을 성모라 이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란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잉태한 비천하지만 거룩한 분으로 추앙받는 분. 공경의 최정상에 계신 분. 저는 마리아를 숭배하란 말을 저도 하지 않고 여러분도 믿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구세주가 아닙니다.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그러나 공경의 대상이기는 합니다. 가장 훌륭하신 어머니. 진실 된 어머니. 그리고 비참하지만 거룩함을 받은 어머니. 그 어머니가 교리 화된 어머니 아니 구요 그 어머니는 지금도 경동교회 앉아계십니다.
성별을 뛰어 넘어. 그분한테 모든 사람한테서 메시아가 태어나고 싶어 하는데 목적은 나는 구원을 베풀어야 한다. 아픈 자는 낫게 해야 한다. 근심 있는 자는 걱정을 내가 덜어주어야 한다. 불의한 곳에 와서는 정의를 심어야 한다. 부자유가 있는 곳에 와서는 자유를 심어야 한다. 폭력과 전쟁이 있는 곳에는 평화를 심어야 한다. 내가 태어나고 싶다. 길 좀 닦아다오. 사실은 마리아는 그렇게 스스로를 가장 비천한 계집종이오니 하고 고백을 하십니다. 그곳에 가장 위대한 분이 태어나서 자기 역사를 이룬다고 합니다. 마리아를 베들레헴에 묶어 두지 마시고 제가 마리아이고 싶습니다. 자격이 있습니다.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단하시면 됩니다. 그걸 신앙의 결단이라 이름 합니다. 지난 목요일 날 우리 교인 여러분과 제가 서산 앞바다에 잠깐 가서 몇 개 봉사를 못했습니다만 저하고 생각이 같으신 줄 모르겠습니다. 기름때가 와서 앞바다를 다 휩싸였고 모래사장 돌들 다 검은 걸로 칠해놨는데 제가 느낀 것은 이렇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기름덩이 얼마가 거대한 대양을 완전히 썩히는구나. 기름을 닦으면서 저는 아주 잘 생긴 돌 아름다운 돌 수석 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돌만 닦은 게 아닙니다. 닦다보니까 못난 돌, 작은 돌, 삐진 돌, 험상궂은 돌, 제가 가리지 않고 집어서 닦았습니다. 잘 생긴 돌은 그냥 닦으면 되는데 못생긴 돌은 얼마나 정성을 쏟아야 되는지 그래야 닦입니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인지상정으로 나는 기름 낀 모든 돌은 기름기를 제거해야 한다. 잘 생겼던 못 생겼던, 크던 작던, 색깔이 어떻든 저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도 다 정성스럽게 닦아야 나중에 이 땅이 오염되지 않고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가 가냘프게 느끼는 그냥 보통 사람처럼 느끼는 현장의 이야기. 그것이 인지상정이고 제 마음이고 여러분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시지요. 저는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못생긴 돌일 것이다. 그리고 험상궂게 생긴 작은 돌일 것이다.
제 구석구석에 너무 홀이 많아서 때가 끼고 기름기가 끼고 성경말씀대로 하면 죄악이 가득하여 신앙이 없다고 남들이 발로차고 버렸지만 오늘 제 때를 벗기러 오시는 그분은 저한테 태어나시는 그분은 정성스럽게 제 몸에 각 부분을 닦고 영혼도 닦고 생각도 닦고 제 인간도 닦고 제가 버려지는 역사도 닦고 가정도 닦고 다 닦으면서 물로 씻고 기름으로 때 닦아주고 다 닦아 주마. 난 신분도 초월하마. 생각도 초월하마. 국적도 초월하마. 이념도 초월하마. 나는 다 초월하여 네 때를 벗기고 싶다. 왜 너한테 베풀 구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사실 은혜 받고 왔습니다.
사람이 그럴진대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부터 낮은 곳까지 왕래하시면서 우리의 죄악을 씻고 잘못을 씻고 허물을 씻고 새로운 생명과 자유와 축복 주시겠다는 분은 누구도 구별하지 않고 차별도 하지 않고 다 응해주십니다. 그런 분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태어나고 싶다. 호텔방에 태어나고도 싶고 여관방에 태어나고도 싶고 아니 방이 없으면 말들이 자는 말구유 구석에서도 태어나고 싶다. 나는 그 태어나는 곳 가리지 않겠다. 신분도 가리지 않겠다. 인종도 가리지 않겠다. 어디든지 나를 환영만 하는 곳이면 태어나고 싶다. 말구유가 어딥니까 제가 말구유입니다. 베들레헴 그 뜻은 여호와 하나님의 집.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 어디 있습니까 유대 땅 도시 중에서 가장 못난 도시 가장 작은 도시 베들레헴. 그곳에서 세계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태어난답니다.
여관방도 아니고 온기도 없는 방이 있고 그냥 말들이 자는 돼지우리 같은 속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목적은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저는 이 메시아 오심이 마리아가 노래한 것처럼 굉장히 중요한데 마리아 얘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저한테 주시는 마리아의 호소입니다. 너도 마리아일 수 있다. 여러분 오늘 마리아가 되십시오. 중요한 것은 메시아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마리아일 수 있다고 확신하면 그 다음에 저는 메시아를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가 하는 얘기입니다. 당신이 우리 민족에게 우리 백성에게 오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우리 읽은 이사야 말씀입니다.
아마 마리아는 이 찬송을 부르면서 이런 얘기를 회상하고 있었을 겁니다. 구약의 말씀입니다.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 전하려고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쳐라. 복된 소식을 전한다고 외쳐라. 구원이 임박했다고 외쳐라. 그렇게 외치는 발길이 너무 좋아서 이사야서 선지자는 저 발을 좀 보아라. 깨고 있지 않느냐. 그걸 마리아는 기억합니다. 자기 뱃속에서 발길질 하는 메시아를 보고 아마 뛰는 음성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 희소식을 전하려고 뛰는 내 메시아여 어서 오십시오. 가장 비천한 처녀의 몸에서 낫다고 무슨 비난이 있든 말든 여호와 하나님이 오신다는 약속을 제가 받겠으니 여기서 태어나시옵소서. 가장 작은 동네 베들레헴. 가장 험난한 곳 말구유. 가장 비천한 사람 마리아. 어디든지 오십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태어나셔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소서. 마니피카트. 역설적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오늘 우리 예배가 복됩니다. 성탄이 복되고 주님 오신 날이 복된 날입니다.
대통령 선거도 이제 막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 시대를 시작했는데 제가 누구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선거는 이런 것 같습니다. 우리 인심 속에 모든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우리 머리가 다 아프고 마음이 나빴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사람에게 투표 했다기보다도 우리는 과거에 투표하기보다 미래에 투표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진실 여부에 투표하기보다 미래의 희망에 투표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네거티브보다는 포지티브에 투표하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는 아직 안 왔습니다. 미래의 희망은 만들어 가야합니다. 교만한 마음가지고는 미래가 잘 만들어지지가 않을 겁니다. 오늘 말씀대로 겸손하게. 좌절로도 못 만들 겁니다. 자신 있게. 모두가 합하여 민심이 득이 됐으면 오늘 천심도 과거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하늘 뜻에 따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책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책임에 투표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모두 겸손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기쁜 메시아의 축복이 뭔지를 각 영역별로 새로 찾으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호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너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 그렇게 작지 않다. 비록 작아도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사랑하는 작은 사람들아 작다고 힘들다고 비참하다고 좌절하지 마라. 가장 큰 자, 힘센 자 나 여호와가 오늘 메시아란 이름으로 내가 태어나고자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받으시려면 받으시고 지켜가려면 지켜 가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의지대로 오신답니다. 그냥 인사하고 가시든지 맞아들이시든지 그건 여러분의 신앙 결단입니다. 맞으시려면 아멘하고 맞으십시오. 맞으시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당신 내 안에 태어나십시오. 내가 비참합니다. 가장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십시오. 당신은 내일을 행하십니다. 오늘 가시면서 메시아가 태어나겠다고 하니 여러분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 마니피카트 할 수 있으면 메시아가 태어납니다. 그 찬송 못하시면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 내일의 축복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결정해 주실 텐데 그냥 아멘.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마니피카트. 마리아 한번 돼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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