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을 기다린 시므온
본문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역사책은 아닙니다. 그리고 많은 위인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지만 위인전도 아닙니다. 또한 문학적, 과학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문학 책도 과학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한 계시의 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구원 계시의 책입니다. 또한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해 가는 과정 속에 일어날 수많은 일들에 관한 예언들이 그대로 성취되어지는 예언 성취의 책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밖에도 수많은 예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십시오. 그 많은 예언들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만일 예언만 있고 성취가 없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신명기 18장 22절에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예언과 성취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두 개의 예언이 나옵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의 탄생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장 57절에 보면 세례요한의 탄생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시절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이고 중요한 예언은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고 예언했고,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5:2)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된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말씀보다 당시 메시야를 대망하며 살다가 마침내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아기 예수를 만났던 시므온에 대하여 생각하며 은혜 받고자합니다.
첫 번째로 성탄을 기다린 사람 시므온은 누구입니까
1.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시므온을 소개하면서 단순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어떤 내 놓을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를 소개하기를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우스 땅에 살던 욥을 소개하기를 “순전하고 정직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서 백부장 고넬료를 “의인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의롭다”는 말은 ‘공정하다’, '정의롭다'는 말로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라고 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시 1:6)고 했습니다. 또한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한다”고 했습니다(시 92:12).
그리고 “경건하다”는 말은 ‘독실하다','신중하다' 혹은 '두려워하다', '경계하다' 등의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세심하게 충족시키는 삶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9절에 보면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신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8절에서는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 사도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탄을 기다리던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도 있는데 의롭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웠고 높은 지위에 있는데 생활을 들여다보면 경건과는 거리가 멉니다. 허구한 날 죄만 짓고 삽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곧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았습니다.
2.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할 때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의롭고 경건한 사람에게는 그 삶의 증거가 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 증거는 바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사는 자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삽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란 누구를 말합니까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원자 메시야를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을 위로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1절에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1장 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란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 받는 위로를 가리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이러한 영적 암흑 시대에 살면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전개되는 타락과 불신의 흐름에 휩쓸려갈 것이 아니라 역사의 끝까지 투시(透視)하는 신령한 눈을 떠서 매일 매일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결단하고 인내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로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악의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을 구속하사 그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본문 38절에 보면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이스라엘의 위로나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렸다는 것은 시므온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3.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시므온 위에 계시더라는 말씀은 일상적인 임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임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특별한 임재 속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26절을 보면 성령의 지시를 받습니다.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특별한 지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지시는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성령님의 지시는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 기록계시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유일무이한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있는 곳에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성령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으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신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 보았습니다.
본문 27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란 말속에는 시므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은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합니다. 오랜 세월 성탄을 기다린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성탄의 아기 예수를 알 수 있었습니까 시므온은 성령의 계시로 성탄의 아기 예수를 알았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므온은 특별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좋은 가문의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계시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기다리던 성탄의 아기 예수를 맞이했습니다. 성탄의 기쁜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성탄의 예수가 아닌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성령의 충만을 받아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면류관 벗어들고 승리의 찬양을 부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한 계시의 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구원 계시의 책입니다. 또한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해 가는 과정 속에 일어날 수많은 일들에 관한 예언들이 그대로 성취되어지는 예언 성취의 책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밖에도 수많은 예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십시오. 그 많은 예언들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만일 예언만 있고 성취가 없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신명기 18장 22절에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예언과 성취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두 개의 예언이 나옵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의 탄생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장 57절에 보면 세례요한의 탄생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시절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이고 중요한 예언은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고 예언했고,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5:2)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된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말씀보다 당시 메시야를 대망하며 살다가 마침내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아기 예수를 만났던 시므온에 대하여 생각하며 은혜 받고자합니다.
첫 번째로 성탄을 기다린 사람 시므온은 누구입니까
1.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시므온을 소개하면서 단순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어떤 내 놓을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를 소개하기를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우스 땅에 살던 욥을 소개하기를 “순전하고 정직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서 백부장 고넬료를 “의인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의롭다”는 말은 ‘공정하다’, '정의롭다'는 말로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라고 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시 1:6)고 했습니다. 또한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한다”고 했습니다(시 92:12).
그리고 “경건하다”는 말은 ‘독실하다','신중하다' 혹은 '두려워하다', '경계하다' 등의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세심하게 충족시키는 삶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9절에 보면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신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8절에서는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 사도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탄을 기다리던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도 있는데 의롭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웠고 높은 지위에 있는데 생활을 들여다보면 경건과는 거리가 멉니다. 허구한 날 죄만 짓고 삽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곧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았습니다.
2.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할 때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의롭고 경건한 사람에게는 그 삶의 증거가 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 증거는 바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사는 자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삽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란 누구를 말합니까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원자 메시야를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을 위로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1절에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1장 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란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 받는 위로를 가리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이러한 영적 암흑 시대에 살면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전개되는 타락과 불신의 흐름에 휩쓸려갈 것이 아니라 역사의 끝까지 투시(透視)하는 신령한 눈을 떠서 매일 매일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결단하고 인내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로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악의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을 구속하사 그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본문 38절에 보면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이스라엘의 위로나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렸다는 것은 시므온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3.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시므온 위에 계시더라는 말씀은 일상적인 임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임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특별한 임재 속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26절을 보면 성령의 지시를 받습니다.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특별한 지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지시는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성령님의 지시는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 기록계시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유일무이한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있는 곳에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성령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으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신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 보았습니다.
본문 27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란 말속에는 시므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은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합니다. 오랜 세월 성탄을 기다린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성탄의 아기 예수를 알 수 있었습니까 시므온은 성령의 계시로 성탄의 아기 예수를 알았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므온은 특별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좋은 가문의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계시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기다리던 성탄의 아기 예수를 맞이했습니다. 성탄의 기쁜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성탄의 예수가 아닌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성령의 충만을 받아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면류관 벗어들고 승리의 찬양을 부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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