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절을 맞는 자세
본문
오늘 이 시간에는 “성탄절 맞는 자세”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성탄절 맞는 자세. ”
네, 2003년 성탄절이 10일 남았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맞이할 자세가 되어있습니까 아멘 제가 국어사전을 찾아봤어요. 민중서간에서 발행하는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성탄절이 뭐냐 다른 말로 말하면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엑스마스(X-mas)는 아니다. 크리스마스다. 쓰기는 엑스처럼 쓰고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크리스마스로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월 24일부터 일주일 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함” 그랬습니다. 민중서간에서 발행하는 국어사전에 성탄절이 뭐냐 “12월 24일부터” 몇 일간 “일주일 간, 일주일 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함”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데 이 성탄절은 자그마치 몇 일간 12월 24일부터 일주일 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 그것이 성탄절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모두가 즐거운 날, 성탄절은 모두가 행복한 날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 민속명절인 추석과 설은 주부들이 싫어한데요. 특히, 며느리들이 싫어한데요. 딸들은 와서 먹고만 가고, 설거지도 하나도 안 하고 가기 때문에 며느리들이 아주 힘들데요. 또 어린이날은 참 좋은 날인데 누가 힘드냐 부모들이 힘들어하는 날이래요. 또 석가탄신일은 불교인들만 좋아한데요. 그런데 성탄절은 동양, 서양 구분하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하지 않습니다. 뭐, 기독교인이든지, 천주교인이든지, 다른 종교인이든지, 종교를 갖지 않았든지 그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성탄절은 즐거운 날, 성탄절은 기쁜 날로 다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성탄절이 즐거운 것은 뭐냐 여호와 하나님 은혜인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기독교인에게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주교인에게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온 인류에게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인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사람들에게 성탄절이 왜 좋은 날인지 일깨워 줘야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노는 날이어서 행복하다. ” 그렇지 않습니다. 그 행복은 쉽게 사라질 것입니다. “선물을 받아서 좋은 날이다. ”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성탄절은 참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참 사람으로 오신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 편에서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의 주인공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닌 것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선물 보따리가 아닌 것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시다. 아기 예수님이시다. ” 믿습니까 그렇게 아시고, 그렇게 믿으시고, 그렇게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래서 성탄절이 있는 12월 달은 첫 아기를 키운다는 부모의 심정으로 아기 예수를 사모해야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오심을 성대하게 축하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 준비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어떤 자세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고 있는가 성탄절을 어떻게, 어떠한 마음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봐야할 것입니다. 혹시 매년 있는 절기 중 하나로 예배 한 번 더 드린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혹시 성탄절은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 시간, 성탄절을 맞이하는 성경적 자세에 대해서 알아봄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과는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크게 기뻐
첫째로 “크게 기뻐하자. ” 따라하시겠습니다. “크게 기뻐하자”, “크게 기뻐하자. ” 그렇습니다. 첫 번째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서 기쁨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탄생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크게 기쁨을 회복케 해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의 나심은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를 가리키는 별만 보고도 기뻐했다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장 9절로 10절 말씀이십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키는 별이 멈춘 것을 보고, 별이 멈춘 것만 보고도 얼마나 좋았든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랬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아직 태중에 있을 때,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뻐했다고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1장 44절입니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그랬습니다. 이 말이 뭡니까 세례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에게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사촌 간이니까,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때, 엘리사벳이 한 말인 것입니다. “보라 네 문안”, 그 네가 누구입니까 마리아인 것입니다.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내가 누구입니까 엘리사벳인 것입니다. “들릴 때에 아이”, 누구입니까 엘리사벳 뱃속에 있는 세례 요한인 것입니다. “아이가 내 복중에서, 자기 엄마 태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와서 문안할 때, 그 문안을 들을 때, 그 엘리사벳의 뱃속에는 어린 생명, 그 태중의 생명, 그 세례 요한이 뱃속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기뻐 뛰며 놀았다는 것입니다.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성탄절에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기뻐하고 있는가 좋은 선물 못 사주고 못 받는다고 혹이라도 낙담하거나 불평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구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과 더불어 “임마누엘”의 은혜, “임마누엘”의 은혜까지 주셨다 그랬습니다. 임마누엘이 뭡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를 보내신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함께 하신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즐거우냐 얼마나 기쁘냐 얼마나 감사하냐 얼마나 감격하냐 우리는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를 기쁘게 맞이할 때, 나도 좋고 예수님도 좋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를 기쁨으로 맞이할 때, 나는 구원받고, 나에게 기쁨이 오고, 나에게 평화가 오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돌려진다는 것입니다. 최고로 좋은 것을 주어도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헤롯 왕과 예루살렘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장 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그들은 기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그렇습니다. 헤롯 왕과 예루살렘은 소란만 떨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성탄절 대목이라고 흥청망청 소란만 떨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탄절을 어떻게 잘 놀까 어떻게 좀 흥청망청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없어요. 아기 예수가 주는 큰 기쁨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 은혜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향해서, 성탄절을 잘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성탄절을 맞는 참된 자세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 때문에 기뻐 뛰는 성탄문화를 만들자 그 말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 때문에 불신자도 예수 믿고 구원받아 기뻐 뛰고, 아기 예수 때문에 외로운 자가 주님 만나고, 위로받고, 병든 자가 치료받고, 문제 있는 자가 해결받고, 그래서 아기 예수 때문에 모두가 기뻐하고, 모두가 즐거워하고 모두가 다 살맛 난다, 난 행복하다, 즐겁다. 그래서 이 땅에 성탄문화가 바르게 정립되는 일에 앞장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둘째, 엎드려 경배
두 번째입니다. “엎드려 경배하자. ” 따라하시겠습니다. “엎드려 경배하자”, “엎드려 경배하자. ”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동방박사뿐이 아닙니다. 헤롯 왕도 있었습니다. 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복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 엎드려 경배한 사람들, 엎드려 경배한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 11절 상반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누가 동방박사들이. 그렇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참 여호와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신 것을 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만났습니다. 이 특권은 모세도 갖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도 갖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갖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들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제일 먼저 만나는 은총과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복이 있다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지금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무엇인지 듣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구처럼 동방박사들처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마태복음 2장 11절 하반절입니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올 때, 빈손으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먼 곳에서부터 구세주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그들은 그냥 오지 않았습니다.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황금, 유향, 몰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미가 뭐냐 황금은 예수님이 왕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향은 뭡니까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몰약은 뭡니까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 첫 번째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류가 다 죽고 멸망받았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사람을 위해서, 죄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은 죽으신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다. 십자가를 지신다. 그런 의미를 가진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성탄절을 그저 아기 예수의 그냥 탄생, 그냥 생일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구세주의 탄생에 관해 많이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알았어요. 실천했어요. 그래서 복을 받았어요.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 축하 자세이다.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 축하 자세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진정한 경배다 그 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역대상 16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그랬습니다. 혹시 설교 들으시면서 “참 부담되네. 뭐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가래. 뭐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가지고 그 분께 경배하래. 이거 참 부담되네” 그럴지 몰라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주신 것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시 읽어 드립니다. 역대상 16장 29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그랬습니다.
먹고 마시고 선물 사는 데는 풍성하면서 예수님께는 얼마나 드리고 있는지, 혹이라도 예수님께 너무 인색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전부 주셨습니다.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아니하고 몽땅 쏟아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인간 가까이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 예수님께 드리는 삶으로 살아갈 때, 주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더 있게 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져와서 드린 것처럼 성탄절이 정말로 건강한 성탄절이 되어지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정말로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탄절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은혜받고, 더 사랑받고, 더 축복받는 성탄절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엎드려 경배하는 예물을 드리는 우리가 되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가족이나 친구나 거래선에게 선물하는 것만큼의 금액을 성탄절 예물로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안 기뻐하실까 자기 마음에 은혜가 될까 은혜가 안 될까 은혜가 되고 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오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함께 찬양
세 번째입니다. “함께 찬양하자. ”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함께 찬양하자”, “함께 찬양하자. ”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가까이 되면 캐롤송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됩니다. 건전한 캐롤도 있지만, 요즘 캐롤은 대체로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 그런 노래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탄절은 사람을 위한 날이 아닌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날인 것입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선포되었기에 우리는 모두가 다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기 예수를 찬양합니다. 함께 찬양하는 것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다 아기 예수 탄생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에 보니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도 찬양합니다.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이번에 대학 입시생들이 많습니다. 다 합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손자가, 아니면 아들이, 아니면 손녀가, 아니면 딸이 대학입시하면 그것은 본인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엄마, 아빠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좋고, 할머니도 좋고, 그것뿐이 아닙니다. 외할아버지도 좋고, 외할머니도 좋고, 고모도 좋고, 모두가 다, 모두가 다 좋아합니다. 모두가 다 기뻐합니다. 그래, 기뻐하세요.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도 그렇게 모두가 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이 소식이 얼마나 좋은지, 천군 천사까지 함께 찬양했습니다. 보세요. 누가복음 2장 13절로 14절 말씀이십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기 예수를 높이는 찬양을 해야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사랑을 널리 널리 전파하고 전하는 찬양을 해야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소리 높여 찬양할 때, 이 땅위에 아기 예수의 평화가 더 많은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또 예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불신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구원받은 자가 더 많이 함께 찬양함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치료받고,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막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로 말미암아 정말로 함께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일에 소외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찬양했습니다. 엘리사벳도 찬양했습니다. 성전의 나이 많은 시므온도 찬양했습니다. 안나도 찬양했습니다. 남녀 구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세대를 구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분을 구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높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낮은 사람, 임금들도, 왕들도,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모두가 다 함께 어우러져서 찬양하기를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얼굴색깔이 희든지, 검든지, 노랗든지,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아요. 모두 오라. 함께 찬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노래도, 솔로도 좋지만 합창은 더 좋은 것입니다. 연합하여 한마음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더 기뻐하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도, 목동들도 아기 예수 탄생을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했다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손에 손잡고, 손에 손잡고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성탄절이 되게 하십시다. 남자 여자 구분하지 말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구분하지 말고, 연령 구분하지 말고, 세대 구분하지 말고, 계층 구분하지 말고, 모두가 다 손에 손잡고, 손에 손잡고 함께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뿐이 아닙니다. 모든 지역, 모든 계층, 모든 세대가 함께 아기 예수의 오심을 찬양할 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이 땅에 임하므로 말미암아, 모두에게 평화가 올 것입니다. 전쟁 없는 평화가 올 것입니다. 가난 없는 부요가 오게 될 것입니다. 슬픔 없는 기쁨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탄절 문화를 만들 때, 온 나라와 민족이 함께 아기 예수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 “힘으로 안되고 능으로 안 되데, 여호와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예수님의 영, 성령으로 되느니라. 우리가 성령세례받고 성령충만하면,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엎드려 경배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하면 모두 함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경배하고 함께 찬양해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성탄절을 축하한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들도 보배합을 가지고 엎드려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직 아기 예수만이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는 건강한 성탄절,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성탄절, 그래서 은혜와 치료와 축복을 우리가 받는 성탄절이 되게 하고, 우리 함께 잘 살 수 있는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2003년도 성탄절이 되게 합시다.
네, 2003년 성탄절이 10일 남았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맞이할 자세가 되어있습니까 아멘 제가 국어사전을 찾아봤어요. 민중서간에서 발행하는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성탄절이 뭐냐 다른 말로 말하면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엑스마스(X-mas)는 아니다. 크리스마스다. 쓰기는 엑스처럼 쓰고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크리스마스로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월 24일부터 일주일 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함” 그랬습니다. 민중서간에서 발행하는 국어사전에 성탄절이 뭐냐 “12월 24일부터” 몇 일간 “일주일 간, 일주일 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함”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데 이 성탄절은 자그마치 몇 일간 12월 24일부터 일주일 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 그것이 성탄절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모두가 즐거운 날, 성탄절은 모두가 행복한 날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 민속명절인 추석과 설은 주부들이 싫어한데요. 특히, 며느리들이 싫어한데요. 딸들은 와서 먹고만 가고, 설거지도 하나도 안 하고 가기 때문에 며느리들이 아주 힘들데요. 또 어린이날은 참 좋은 날인데 누가 힘드냐 부모들이 힘들어하는 날이래요. 또 석가탄신일은 불교인들만 좋아한데요. 그런데 성탄절은 동양, 서양 구분하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하지 않습니다. 뭐, 기독교인이든지, 천주교인이든지, 다른 종교인이든지, 종교를 갖지 않았든지 그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성탄절은 즐거운 날, 성탄절은 기쁜 날로 다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성탄절이 즐거운 것은 뭐냐 여호와 하나님 은혜인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기독교인에게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주교인에게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온 인류에게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인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사람들에게 성탄절이 왜 좋은 날인지 일깨워 줘야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노는 날이어서 행복하다. ” 그렇지 않습니다. 그 행복은 쉽게 사라질 것입니다. “선물을 받아서 좋은 날이다. ”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성탄절은 참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참 사람으로 오신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 편에서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의 주인공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닌 것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선물 보따리가 아닌 것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시다. 아기 예수님이시다. ” 믿습니까 그렇게 아시고, 그렇게 믿으시고, 그렇게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래서 성탄절이 있는 12월 달은 첫 아기를 키운다는 부모의 심정으로 아기 예수를 사모해야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오심을 성대하게 축하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 준비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어떤 자세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고 있는가 성탄절을 어떻게, 어떠한 마음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봐야할 것입니다. 혹시 매년 있는 절기 중 하나로 예배 한 번 더 드린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혹시 성탄절은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 시간, 성탄절을 맞이하는 성경적 자세에 대해서 알아봄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과는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크게 기뻐
첫째로 “크게 기뻐하자. ” 따라하시겠습니다. “크게 기뻐하자”, “크게 기뻐하자. ” 그렇습니다. 첫 번째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서 기쁨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탄생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크게 기쁨을 회복케 해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의 나심은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를 가리키는 별만 보고도 기뻐했다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장 9절로 10절 말씀이십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키는 별이 멈춘 것을 보고, 별이 멈춘 것만 보고도 얼마나 좋았든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랬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아직 태중에 있을 때,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뻐했다고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1장 44절입니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그랬습니다. 이 말이 뭡니까 세례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에게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사촌 간이니까,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때, 엘리사벳이 한 말인 것입니다. “보라 네 문안”, 그 네가 누구입니까 마리아인 것입니다.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내가 누구입니까 엘리사벳인 것입니다. “들릴 때에 아이”, 누구입니까 엘리사벳 뱃속에 있는 세례 요한인 것입니다. “아이가 내 복중에서, 자기 엄마 태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와서 문안할 때, 그 문안을 들을 때, 그 엘리사벳의 뱃속에는 어린 생명, 그 태중의 생명, 그 세례 요한이 뱃속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기뻐 뛰며 놀았다는 것입니다.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성탄절에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기뻐하고 있는가 좋은 선물 못 사주고 못 받는다고 혹이라도 낙담하거나 불평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구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과 더불어 “임마누엘”의 은혜, “임마누엘”의 은혜까지 주셨다 그랬습니다. 임마누엘이 뭡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를 보내신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함께 하신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즐거우냐 얼마나 기쁘냐 얼마나 감사하냐 얼마나 감격하냐 우리는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를 기쁘게 맞이할 때, 나도 좋고 예수님도 좋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를 기쁨으로 맞이할 때, 나는 구원받고, 나에게 기쁨이 오고, 나에게 평화가 오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돌려진다는 것입니다. 최고로 좋은 것을 주어도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헤롯 왕과 예루살렘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장 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그들은 기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그렇습니다. 헤롯 왕과 예루살렘은 소란만 떨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성탄절 대목이라고 흥청망청 소란만 떨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탄절을 어떻게 잘 놀까 어떻게 좀 흥청망청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없어요. 아기 예수가 주는 큰 기쁨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 은혜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향해서, 성탄절을 잘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성탄절을 맞는 참된 자세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 때문에 기뻐 뛰는 성탄문화를 만들자 그 말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 때문에 불신자도 예수 믿고 구원받아 기뻐 뛰고, 아기 예수 때문에 외로운 자가 주님 만나고, 위로받고, 병든 자가 치료받고, 문제 있는 자가 해결받고, 그래서 아기 예수 때문에 모두가 기뻐하고, 모두가 즐거워하고 모두가 다 살맛 난다, 난 행복하다, 즐겁다. 그래서 이 땅에 성탄문화가 바르게 정립되는 일에 앞장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둘째, 엎드려 경배
두 번째입니다. “엎드려 경배하자. ” 따라하시겠습니다. “엎드려 경배하자”, “엎드려 경배하자. ”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동방박사뿐이 아닙니다. 헤롯 왕도 있었습니다. 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복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 엎드려 경배한 사람들, 엎드려 경배한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 11절 상반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누가 동방박사들이. 그렇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참 여호와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신 것을 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만났습니다. 이 특권은 모세도 갖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도 갖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갖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들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제일 먼저 만나는 은총과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복이 있다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지금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무엇인지 듣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구처럼 동방박사들처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마태복음 2장 11절 하반절입니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올 때, 빈손으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먼 곳에서부터 구세주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그들은 그냥 오지 않았습니다.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황금, 유향, 몰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미가 뭐냐 황금은 예수님이 왕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향은 뭡니까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몰약은 뭡니까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 첫 번째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류가 다 죽고 멸망받았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사람을 위해서, 죄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은 죽으신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다. 십자가를 지신다. 그런 의미를 가진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성탄절을 그저 아기 예수의 그냥 탄생, 그냥 생일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구세주의 탄생에 관해 많이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알았어요. 실천했어요. 그래서 복을 받았어요.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 축하 자세이다.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 축하 자세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진정한 경배다 그 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역대상 16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그랬습니다. 혹시 설교 들으시면서 “참 부담되네. 뭐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가래. 뭐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가지고 그 분께 경배하래. 이거 참 부담되네” 그럴지 몰라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주신 것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시 읽어 드립니다. 역대상 16장 29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그랬습니다.
먹고 마시고 선물 사는 데는 풍성하면서 예수님께는 얼마나 드리고 있는지, 혹이라도 예수님께 너무 인색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전부 주셨습니다.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아니하고 몽땅 쏟아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인간 가까이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 예수님께 드리는 삶으로 살아갈 때, 주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더 있게 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져와서 드린 것처럼 성탄절이 정말로 건강한 성탄절이 되어지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정말로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탄절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은혜받고, 더 사랑받고, 더 축복받는 성탄절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엎드려 경배하는 예물을 드리는 우리가 되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가족이나 친구나 거래선에게 선물하는 것만큼의 금액을 성탄절 예물로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안 기뻐하실까 자기 마음에 은혜가 될까 은혜가 안 될까 은혜가 되고 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오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함께 찬양
세 번째입니다. “함께 찬양하자. ”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함께 찬양하자”, “함께 찬양하자. ”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가까이 되면 캐롤송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됩니다. 건전한 캐롤도 있지만, 요즘 캐롤은 대체로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 그런 노래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탄절은 사람을 위한 날이 아닌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날인 것입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선포되었기에 우리는 모두가 다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기 예수를 찬양합니다. 함께 찬양하는 것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다 아기 예수 탄생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에 보니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도 찬양합니다.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이번에 대학 입시생들이 많습니다. 다 합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손자가, 아니면 아들이, 아니면 손녀가, 아니면 딸이 대학입시하면 그것은 본인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엄마, 아빠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좋고, 할머니도 좋고, 그것뿐이 아닙니다. 외할아버지도 좋고, 외할머니도 좋고, 고모도 좋고, 모두가 다, 모두가 다 좋아합니다. 모두가 다 기뻐합니다. 그래, 기뻐하세요.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도 그렇게 모두가 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이 소식이 얼마나 좋은지, 천군 천사까지 함께 찬양했습니다. 보세요. 누가복음 2장 13절로 14절 말씀이십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기 예수를 높이는 찬양을 해야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사랑을 널리 널리 전파하고 전하는 찬양을 해야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소리 높여 찬양할 때, 이 땅위에 아기 예수의 평화가 더 많은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또 예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불신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구원받은 자가 더 많이 함께 찬양함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치료받고,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막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로 말미암아 정말로 함께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일에 소외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찬양했습니다. 엘리사벳도 찬양했습니다. 성전의 나이 많은 시므온도 찬양했습니다. 안나도 찬양했습니다. 남녀 구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세대를 구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분을 구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높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낮은 사람, 임금들도, 왕들도,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모두가 다 함께 어우러져서 찬양하기를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얼굴색깔이 희든지, 검든지, 노랗든지,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아요. 모두 오라. 함께 찬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노래도, 솔로도 좋지만 합창은 더 좋은 것입니다. 연합하여 한마음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더 기뻐하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도, 목동들도 아기 예수 탄생을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했다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손에 손잡고, 손에 손잡고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성탄절이 되게 하십시다. 남자 여자 구분하지 말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구분하지 말고, 연령 구분하지 말고, 세대 구분하지 말고, 계층 구분하지 말고, 모두가 다 손에 손잡고, 손에 손잡고 함께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뿐이 아닙니다. 모든 지역, 모든 계층, 모든 세대가 함께 아기 예수의 오심을 찬양할 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이 땅에 임하므로 말미암아, 모두에게 평화가 올 것입니다. 전쟁 없는 평화가 올 것입니다. 가난 없는 부요가 오게 될 것입니다. 슬픔 없는 기쁨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탄절 문화를 만들 때, 온 나라와 민족이 함께 아기 예수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 “힘으로 안되고 능으로 안 되데, 여호와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예수님의 영, 성령으로 되느니라. 우리가 성령세례받고 성령충만하면,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엎드려 경배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하면 모두 함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경배하고 함께 찬양해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성탄절을 축하한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들도 보배합을 가지고 엎드려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직 아기 예수만이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는 건강한 성탄절,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성탄절, 그래서 은혜와 치료와 축복을 우리가 받는 성탄절이 되게 하고, 우리 함께 잘 살 수 있는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2003년도 성탄절이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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