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의 참된 의미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18-23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시던 날 하늘의 허다한 천군과 천사가 동원되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 가서 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왜 하늘의 천군천사가 동원되고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오면 서로 축하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바로 성탄의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성탄이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런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과 20절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0절 하반절에 보면,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성령이란 거룩한 영, 주의 영,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임하니 그 성령의 임함과 함께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서 이 땅에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몸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기 전,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데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직접 나타난 곳은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복수 명사로 나타난 곳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6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우리라는 복수 명사를 쓴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큰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최초의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는 어린아이로 만들지 않고 노인으로 만들지 않고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청년, 장년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담과 하와에게서 자녀가 태어날 때는 어린아이로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났는데 모두가 부정모혈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라는 밭에 아버지의 씨가 떨어져서 자녀가 생산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제 성씨가 최씨인데 최씨를 내가 골라잡아 최씨가 된 것이 아니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김씨 할까 박씨 할까 이씨가 좋을까 정씨가 좋을까, 아니야 뭐니 뭐니해도 최씨가 제일이야. 난 최씨할래.
최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김씨 밭에 최씨 떨어져서 내가 태어나 최씨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씨, 생명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마리아의 몸에 임하므로 그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이 잉태되어서 왔기 때문에 그분을 가리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씨를 받았으면 사람의 아들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영,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태어났기에 그를 일컬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대 성인 중 하나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석가모니나 공자나 마호메트나 이런 사람들처럼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서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입니다.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마치 망망한 바다에 배가 파선되어서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그 중에 어떤 헤엄 잘치는 사람이 자기와 남을 함께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남도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긴급 전화를 받아 헬리콥터가 와서 밧줄을 내려 준다든지 해서 어떤 다른 사람이 그를 건져주어야 구원받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이 죄로 타락했기 때문에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고 죄 없는 의인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들로 이 땅에 오셔야 그 분만이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천하인간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그래서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나이다. 우리 예수님은 요 17장에서 아버지와 예수님을 동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빌 2:6절 말씀에 보면,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라고 했습니다. 히 1:2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창조주였습니다.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왔기 때문에 이 일은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두번째 성탄의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누구의 몸을 빌어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까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거처 삼고 그의 태를 빌어 이 땅에 탄생했습니다. 마리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눅 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벳이라고 하는 여인이 나이 많은 상태에서 예수님의 길잡이로 나타날 세례 요한을 잉태한지 육 개월이 되는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에서 살고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는도다. 처녀가 놀라서 이게 무슨 인사인고 할 때, 천사가 다시 말합니다. 무서워 말라. 네가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조상의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게 할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처녀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오니 어찌 이런 임신이 된다는 말입니까
사내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남녀지간에 성관계를 한 일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동정녀 마리아는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과 약혼관계에 있었지만 아직 동거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지내고 있는데 그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는 천사의 말을 들을 때 그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생각에 맞지 않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겠다고 할 때는 순종하게 되어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비록 내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부정한 사람이라고 비방을 받을지라도 나의 약혼자 요셉에게 버림을 받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을 나를 통해서 이루신다면 저는 순종하겠습니다. 믿음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다릅니다. 의로운 사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두번째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시 92:12절에 보면,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게 되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발육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약 5:16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의로운 고넬료 이야기입니다. 그는 로마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기도하는데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하는 말이 네 기도와 구제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어 기억하심 바 되었으니 너는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는 사람을 청하여 말을 들어라 하니 바로 순종합니다. 베드로가 오기 전에 자기 가족과 일가 친척, 친구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베드로가 올 때에 엎드려 절하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도 사람이오. 일어나시오. 웬일로 나를 불렀습니까 여차여차해서 불렀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할 때 그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고넬료에게 임하고 일가친척, 친구, 전 가족에게 임하매 유태인으로서 예수 믿는 베드로와 함께 그도 로마사람이지만 주안의 한 형제된 일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했으니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복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의롭게 살지를 못합니다. 세상 물결을 따라 살아갑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땅위에 사람들이 번성할 때부터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살기가 편안해지면서부터 그들의 관심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파는데 정신을 다 쏟았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게 무슨 죄인가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 목적을 거기에 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왜 사는가 먹기 위해 살고, 왜 사는가 돈 벌기 위해서 살고, 왜 사는가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산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하마르티아, 즉 목표에서 빗나가버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고 우리 인생을 지었건만 여호와 하나님 섬기지 않고 경제성장하고 살기 편해지면서 죄악의 길로 치달았습니다.
여러분, 동성연애 사건이 창세기 6장에서부터 등장합니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음행의 죄를 범하는 일, 온통 세상 사람들이 죄악으로 타락해 가는데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딸들을 보고, 자기 좋아하는 사람마다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타락했습니다. 음행의 죄악이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들을 홍수로 심판할 것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저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데 의로운 노아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명령을 내립니다. 앞으로 1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할 터이니 너는 너희 가족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잣나무로 배를 지어라. 여호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배가 완성되었습니다. 가족이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에 40주야,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땅에서 창수가 솟아나면서 천지는 개벽하고 모든 사람이 홍수 심판으로 죽게 되었을 때, 의로운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섞어 살고 있지만 불의한 자와 의로운 자를 똑같이 대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경외하지 않는 자를 분별할 날을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는가
의로운 사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마리아가 의로운 사람이었고,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요셉이었다면 어떤 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약혼녀가 임신을 했다. 누구의 아이일까 궁금합니다. 부정한 여자라면 더 이상 상관하지 말아야지. 고민하고 있을 때 천사가 요셉이 잠자고 있을 때 꿈에 나타나 하는 말이, 요셉아, 네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 아들을 낳을 것이라.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일러줍니다.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마 1:19절에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불의한 사람 같으면 남의 죄를 들추어 공개적으로 크게 떠들고 다니면서 그 여자 나쁜 여자, 나하고 약혼관계에 있었는데 부정한 여자, 하고 떠들어댔을 텐데,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끊고자 했다. 내 가슴이 쓰리고 아프지만 없는 것으로 하겠다 하고 정리하려 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부정한 일이나 잘못한 일이 드러났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나쁜 사람이라고 정죄하고 다니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가려주고 덮어주고 감싸주고, 그리고 자기가 대신 짐을 지는, 내가 비록 수치를 당하고 고난을 당해도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이게 바로 의로운 요셉의 마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을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고, 감싸려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큰 일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마리아와 의로운 요셉을 통해서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여기 보면 24-25절에서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젊은 요셉, 그의 아내 마리아가 자기 아들을 갖기 전에 누군가 다른 분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서는 그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는 절제를 보이면서 의로움을 끝까지 지킨 요셉이었습니다.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 믿음의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되고, 자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수치와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혜 받았다 자랑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없이 십자가 지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치와 고난은 십자가의 내용인데 이런 십자가를 달게 지려는 요셉을 여호와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누군가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니 수치와 고난을 각오한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데 예수님이 탄생하고 난 이후에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육남매 이상의 자녀가 생산됩니다. 예수님의 친동생 사형제가 있었고, 그 누이들이라고 복수를 쓴 걸 보면 두 명 이상의 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친동생 가운데 야고보는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를 쓰는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 땅에 탄생케 했던 마리아는 훗날 모든 사람들이 저를 복된 여인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버림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큰 회사에서 유능한 일꾼을 들어 쓰고 상당한 보수를 사례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고 외면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쓰임 받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평생 살면서 의로운 요셉처럼 의로운 마리아처럼 바르게 사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번째, 성탄의 참된 의미는 선지자로 하신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22-23절 말씀에 보면,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의 탄생은 갑작스럽게 되어진 일이 아니고 예수님의 탄생 600년 전 이사야라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사 7:14절 말씀에 보면,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처녀가 바로 마리아입니다.
미가서 5:2절에 그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탄생할 것이다 하고 예언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나타날 것이라. 천하만민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암 3: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을 일컬어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모세의 글은 율법이요 선지자는 모두 예언자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모두 예언의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였습니다.
복 받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이고, 말씀을 듣는 사람이고, 들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지키라. 여호와의 평강이 너희를 주장할 것이라. 사 58:1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줄 것이라. 말 3:10절의 말씀입니다.
주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엡 6:1절 이하의 약속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받으리라.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리니 그리고 너희가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지 아니하고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좋으신 너희 천부께서 밤낮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기도하면 응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말고 들은 말씀을 실천에 옮겨보십시오. 주의 성령이 함께 할 것이고 복이 임할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선지자고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면 자기도 함께 아프게 되어 있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면 자기도 함께 즐겁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너그러운 마음과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냥 자기만 알고 그렇게 살면 평안이 없고 결국은 왕따가 되는 것입니다. 버림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인생을 살아야 나를 돕는 사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어떤 공동묘지 관리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수년동안 매주마다 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부인으로부터 5달러의 돈이 오고, 편지의 내용은 우리 아들의 무덤에 신선한 꽃다발을 갖다 놓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 관리인이 몇년동안 그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공동묘지에 한 부인이 병약한 몸으로 차안에 앉아 있다가 기사의 부축을 받고 겨우 바깥으로 나오는데 몸이 아주 연약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슴에는 꽃다발이 크게 안겨 있었습니다. 그 관리인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제가 몇 해 동안 계속해서 편지와 함께 우편환으로 5달러씩을 보낸 아담스부인입니다. 제가 오늘 직접 오게 된 것은 나의 담당 의사가 하는 말이 몇 주를 못 넘길 것 같다고 해서 세상 떠나기 전에 내 사랑하는 아들의 무덤에 내가 손수 꽃다발을 갖다 놓고 싶어서 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관리인이, 저는 매주 부인이 보내준 돈을 가지고 꽃을 사서 무덤 앞에 갖다 놓을 때마다 부인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해왔습니다. 부인이 깜짝 놀라며 뭐가 유감이었습니까 하고 묻자, 관리인이 말합니다. 꽃은 불과 몇 시간도 안돼서 다 시들어버리고 다음날이면 썩어 냄새가 나는데 이 공동묘지에 누구 한 사람도 그 꽃을 가까이 하고 향기 맡는 사람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냄새를 맡습니까 좋아합니까 그것은 부인의 생각일 뿐이고 죽은 사람은 꽃 냄새 못 맡습니다. 저는 교회 나가는 신자인데 전 가끔씩 공립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가운데 소외된 사람들에게 꽃을 사다 준 일이 있습니다. 제가 꽃을 그들에게 갖다주면 환하게 웃고, 냄새맡고, 기뻐하는 모습을 봅니다. 부인께서도 매주마다 이제는 공동묘지에 꽃을 가져오지 말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한번 갖다 줘보십시오.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삼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부인이 직접 운전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동묘지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당신이 한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갖다 주었더니 그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더군요. 좋아하는 그들의 얼굴표정을 바라볼 때 내 마음도 기뻤습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성 질환도 떠나고 몸이 이렇게 건강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남을 기쁘게 했더니 자기 마음이 기뻐졌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더니 자기도 웃음이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병이 떠나고 몇 주일을 넘길 수 없다던 의사의 말은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성경말씀대로 살았더니 복이 임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남을 좀 대접할 줄 아십시오. 누가 여러분을 무시했습니까 당신이 누군가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귀하게 여깁니까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주라. 좀 주라.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고, 도와주고, 구제도 좀 해주고, 봉사해 주고, 수고도 좀 해 주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도와줄텐데. 내가 너를 도와줄 때는 누르고 되어 흔들어서 안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왜 호화스러운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셨겠습니까 호화로운 호텔에서 중상모략하고 음란한 죄짓는 곳에 주님은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차가운 마굿간이지만 그곳엔 권모술수가 없고 거기에 순수함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된다고 하는 순수한 헌신의 마음이 있는 그곳에 주님은 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어디에 임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누구에게 임합니까 순수한 마음, 깨끗한 마음, 겸손한 마음, 그리고 성경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곳에 주의 평강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네번째, 성탄의 참된 의미는 임마누엘에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누려야할 최고의 복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그 예수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영원한 생명, 평강의 왕, 전능자, 그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 예수님이 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만 계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머리로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2000년 전 베들레헴에 오셨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으며, 사십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그것만 압니다. 예수님을 머리 속에 담지 말고 마음속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지적으로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고, 경험적으로 알아야 되는 것이며,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내 마음속에 성전 삼고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멀리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 임마누엘입니다.
나의 마음에 성전 삼고 주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한 수치와 고난과 죽음이 객관적 사건이 아니고 나의 주관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때, 구원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에 나의 죄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의 저주받음이 나의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으며, 그의 희생으로, 그가 흘린 피로 나의 죄는 이미 사해졌으니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인데 그 구원이 언제 이루어지는가 머리 속에 있는 예수님이 아니고 내 마음에 구원의 주님으로, 왕으로 모실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주님은 내 안에 있을 때 정죄함이 없고 바로 그 곳에 주님의 다스림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입니다. 우리 집 거실에 작은 수족관이 하나 있는데, 수족관 안에는 수초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수초들이 전부 햇빛이 있는 창을 향해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식물도 햇빛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햇빛이 있는 곳에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라는 말씀이 시 84:11절에 나옵니다. 말라기 4:2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는 치료하는 광선이라고 나와있고, 요 1:9절에는 예수님이 참된 생명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내 마음과 정성을 쏟고 나아가면 그 빛이 우리에게 비쳐지고 그 빛은 생명의 빛이요 치료의 광선이요,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가 되고, 밝음이 되는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해 같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내 마음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까 해가 없으니까 어두운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이 없으니까 어둡지, 빛을 발하는 해가 내 속에 있는데 내가 어둡다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어둡다는 것은 내 마음에 예수님이 없고, 문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모셔들이면 그 마음이 밝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십시오. 영접하십시오. 모시고 사십시오.
예수님은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마굿간처럼, 겸손하고 순진하고 정직하고, 화려한 모습은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복종하겠다는 믿음이 있는 곳에 주님은 그 곳에 탄생한 것처럼 그런 자의 마음속에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가 무엇입니까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들어서 일하십니다. 말 잘하는 사람 통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 통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수치를 다하고 고난이 와도 그 길가겠다. 요셉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의로운 사람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의 의미, 반드시 예언은 이루어진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 충만 주시고, 말씀대로 살면 들어와도 나가도 복 받게 하겠다는 그 약속은 영원히 유예합니다. 그리고 성탄의 의미,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 믿지 말고, 너희와 함께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라.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겁날 것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셋방에서 살아도 천국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호화판에 살아도 지옥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더불어 사십시오. 마음의 천국을 이루십시오. 그래야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시던 날 하늘의 허다한 천군과 천사가 동원되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 가서 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왜 하늘의 천군천사가 동원되고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오면 서로 축하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바로 성탄의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성탄이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런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과 20절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0절 하반절에 보면,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성령이란 거룩한 영, 주의 영,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임하니 그 성령의 임함과 함께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서 이 땅에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몸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기 전,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데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직접 나타난 곳은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복수 명사로 나타난 곳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6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우리라는 복수 명사를 쓴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큰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최초의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는 어린아이로 만들지 않고 노인으로 만들지 않고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청년, 장년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담과 하와에게서 자녀가 태어날 때는 어린아이로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났는데 모두가 부정모혈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라는 밭에 아버지의 씨가 떨어져서 자녀가 생산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제 성씨가 최씨인데 최씨를 내가 골라잡아 최씨가 된 것이 아니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김씨 할까 박씨 할까 이씨가 좋을까 정씨가 좋을까, 아니야 뭐니 뭐니해도 최씨가 제일이야. 난 최씨할래.
최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김씨 밭에 최씨 떨어져서 내가 태어나 최씨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씨, 생명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마리아의 몸에 임하므로 그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이 잉태되어서 왔기 때문에 그분을 가리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씨를 받았으면 사람의 아들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영,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태어났기에 그를 일컬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대 성인 중 하나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석가모니나 공자나 마호메트나 이런 사람들처럼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서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입니다.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마치 망망한 바다에 배가 파선되어서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그 중에 어떤 헤엄 잘치는 사람이 자기와 남을 함께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남도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긴급 전화를 받아 헬리콥터가 와서 밧줄을 내려 준다든지 해서 어떤 다른 사람이 그를 건져주어야 구원받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이 죄로 타락했기 때문에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고 죄 없는 의인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들로 이 땅에 오셔야 그 분만이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천하인간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그래서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나이다. 우리 예수님은 요 17장에서 아버지와 예수님을 동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빌 2:6절 말씀에 보면,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라고 했습니다. 히 1:2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창조주였습니다. 성자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왔기 때문에 이 일은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두번째 성탄의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누구의 몸을 빌어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까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거처 삼고 그의 태를 빌어 이 땅에 탄생했습니다. 마리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눅 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벳이라고 하는 여인이 나이 많은 상태에서 예수님의 길잡이로 나타날 세례 요한을 잉태한지 육 개월이 되는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에서 살고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는도다. 처녀가 놀라서 이게 무슨 인사인고 할 때, 천사가 다시 말합니다. 무서워 말라. 네가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조상의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게 할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처녀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오니 어찌 이런 임신이 된다는 말입니까
사내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남녀지간에 성관계를 한 일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동정녀 마리아는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과 약혼관계에 있었지만 아직 동거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지내고 있는데 그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는 천사의 말을 들을 때 그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생각에 맞지 않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겠다고 할 때는 순종하게 되어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비록 내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부정한 사람이라고 비방을 받을지라도 나의 약혼자 요셉에게 버림을 받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을 나를 통해서 이루신다면 저는 순종하겠습니다. 믿음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다릅니다. 의로운 사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두번째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시 92:12절에 보면,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게 되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발육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약 5:16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의로운 고넬료 이야기입니다. 그는 로마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기도하는데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하는 말이 네 기도와 구제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어 기억하심 바 되었으니 너는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는 사람을 청하여 말을 들어라 하니 바로 순종합니다. 베드로가 오기 전에 자기 가족과 일가 친척, 친구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베드로가 올 때에 엎드려 절하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도 사람이오. 일어나시오. 웬일로 나를 불렀습니까 여차여차해서 불렀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할 때 그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고넬료에게 임하고 일가친척, 친구, 전 가족에게 임하매 유태인으로서 예수 믿는 베드로와 함께 그도 로마사람이지만 주안의 한 형제된 일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했으니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복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의롭게 살지를 못합니다. 세상 물결을 따라 살아갑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땅위에 사람들이 번성할 때부터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살기가 편안해지면서부터 그들의 관심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파는데 정신을 다 쏟았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게 무슨 죄인가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 목적을 거기에 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왜 사는가 먹기 위해 살고, 왜 사는가 돈 벌기 위해서 살고, 왜 사는가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산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하마르티아, 즉 목표에서 빗나가버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고 우리 인생을 지었건만 여호와 하나님 섬기지 않고 경제성장하고 살기 편해지면서 죄악의 길로 치달았습니다.
여러분, 동성연애 사건이 창세기 6장에서부터 등장합니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음행의 죄를 범하는 일, 온통 세상 사람들이 죄악으로 타락해 가는데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딸들을 보고, 자기 좋아하는 사람마다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타락했습니다. 음행의 죄악이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들을 홍수로 심판할 것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저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데 의로운 노아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명령을 내립니다. 앞으로 1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할 터이니 너는 너희 가족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잣나무로 배를 지어라. 여호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배가 완성되었습니다. 가족이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에 40주야,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땅에서 창수가 솟아나면서 천지는 개벽하고 모든 사람이 홍수 심판으로 죽게 되었을 때, 의로운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섞어 살고 있지만 불의한 자와 의로운 자를 똑같이 대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경외하지 않는 자를 분별할 날을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는가
의로운 사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마리아가 의로운 사람이었고,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요셉이었다면 어떤 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약혼녀가 임신을 했다. 누구의 아이일까 궁금합니다. 부정한 여자라면 더 이상 상관하지 말아야지. 고민하고 있을 때 천사가 요셉이 잠자고 있을 때 꿈에 나타나 하는 말이, 요셉아, 네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 아들을 낳을 것이라.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일러줍니다.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마 1:19절에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불의한 사람 같으면 남의 죄를 들추어 공개적으로 크게 떠들고 다니면서 그 여자 나쁜 여자, 나하고 약혼관계에 있었는데 부정한 여자, 하고 떠들어댔을 텐데,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끊고자 했다. 내 가슴이 쓰리고 아프지만 없는 것으로 하겠다 하고 정리하려 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부정한 일이나 잘못한 일이 드러났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나쁜 사람이라고 정죄하고 다니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가려주고 덮어주고 감싸주고, 그리고 자기가 대신 짐을 지는, 내가 비록 수치를 당하고 고난을 당해도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이게 바로 의로운 요셉의 마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을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고, 감싸려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큰 일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마리아와 의로운 요셉을 통해서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여기 보면 24-25절에서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젊은 요셉, 그의 아내 마리아가 자기 아들을 갖기 전에 누군가 다른 분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서는 그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는 절제를 보이면서 의로움을 끝까지 지킨 요셉이었습니다.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 믿음의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되고, 자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수치와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혜 받았다 자랑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없이 십자가 지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치와 고난은 십자가의 내용인데 이런 십자가를 달게 지려는 요셉을 여호와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누군가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니 수치와 고난을 각오한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데 예수님이 탄생하고 난 이후에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육남매 이상의 자녀가 생산됩니다. 예수님의 친동생 사형제가 있었고, 그 누이들이라고 복수를 쓴 걸 보면 두 명 이상의 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친동생 가운데 야고보는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를 쓰는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 땅에 탄생케 했던 마리아는 훗날 모든 사람들이 저를 복된 여인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버림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큰 회사에서 유능한 일꾼을 들어 쓰고 상당한 보수를 사례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고 외면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쓰임 받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평생 살면서 의로운 요셉처럼 의로운 마리아처럼 바르게 사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번째, 성탄의 참된 의미는 선지자로 하신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22-23절 말씀에 보면,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의 탄생은 갑작스럽게 되어진 일이 아니고 예수님의 탄생 600년 전 이사야라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사 7:14절 말씀에 보면,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처녀가 바로 마리아입니다.
미가서 5:2절에 그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탄생할 것이다 하고 예언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나타날 것이라. 천하만민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암 3: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을 일컬어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모세의 글은 율법이요 선지자는 모두 예언자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모두 예언의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였습니다.
복 받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이고, 말씀을 듣는 사람이고, 들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지키라. 여호와의 평강이 너희를 주장할 것이라. 사 58:1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줄 것이라. 말 3:10절의 말씀입니다.
주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엡 6:1절 이하의 약속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받으리라.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리니 그리고 너희가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지 아니하고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좋으신 너희 천부께서 밤낮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기도하면 응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말고 들은 말씀을 실천에 옮겨보십시오. 주의 성령이 함께 할 것이고 복이 임할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선지자고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면 자기도 함께 아프게 되어 있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면 자기도 함께 즐겁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너그러운 마음과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냥 자기만 알고 그렇게 살면 평안이 없고 결국은 왕따가 되는 것입니다. 버림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인생을 살아야 나를 돕는 사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어떤 공동묘지 관리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수년동안 매주마다 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부인으로부터 5달러의 돈이 오고, 편지의 내용은 우리 아들의 무덤에 신선한 꽃다발을 갖다 놓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 관리인이 몇년동안 그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공동묘지에 한 부인이 병약한 몸으로 차안에 앉아 있다가 기사의 부축을 받고 겨우 바깥으로 나오는데 몸이 아주 연약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슴에는 꽃다발이 크게 안겨 있었습니다. 그 관리인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제가 몇 해 동안 계속해서 편지와 함께 우편환으로 5달러씩을 보낸 아담스부인입니다. 제가 오늘 직접 오게 된 것은 나의 담당 의사가 하는 말이 몇 주를 못 넘길 것 같다고 해서 세상 떠나기 전에 내 사랑하는 아들의 무덤에 내가 손수 꽃다발을 갖다 놓고 싶어서 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관리인이, 저는 매주 부인이 보내준 돈을 가지고 꽃을 사서 무덤 앞에 갖다 놓을 때마다 부인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해왔습니다. 부인이 깜짝 놀라며 뭐가 유감이었습니까 하고 묻자, 관리인이 말합니다. 꽃은 불과 몇 시간도 안돼서 다 시들어버리고 다음날이면 썩어 냄새가 나는데 이 공동묘지에 누구 한 사람도 그 꽃을 가까이 하고 향기 맡는 사람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냄새를 맡습니까 좋아합니까 그것은 부인의 생각일 뿐이고 죽은 사람은 꽃 냄새 못 맡습니다. 저는 교회 나가는 신자인데 전 가끔씩 공립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가운데 소외된 사람들에게 꽃을 사다 준 일이 있습니다. 제가 꽃을 그들에게 갖다주면 환하게 웃고, 냄새맡고, 기뻐하는 모습을 봅니다. 부인께서도 매주마다 이제는 공동묘지에 꽃을 가져오지 말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한번 갖다 줘보십시오.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삼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부인이 직접 운전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동묘지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당신이 한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갖다 주었더니 그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더군요. 좋아하는 그들의 얼굴표정을 바라볼 때 내 마음도 기뻤습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성 질환도 떠나고 몸이 이렇게 건강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남을 기쁘게 했더니 자기 마음이 기뻐졌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더니 자기도 웃음이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병이 떠나고 몇 주일을 넘길 수 없다던 의사의 말은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성경말씀대로 살았더니 복이 임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남을 좀 대접할 줄 아십시오. 누가 여러분을 무시했습니까 당신이 누군가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귀하게 여깁니까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주라. 좀 주라.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고, 도와주고, 구제도 좀 해주고, 봉사해 주고, 수고도 좀 해 주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도와줄텐데. 내가 너를 도와줄 때는 누르고 되어 흔들어서 안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왜 호화스러운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셨겠습니까 호화로운 호텔에서 중상모략하고 음란한 죄짓는 곳에 주님은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차가운 마굿간이지만 그곳엔 권모술수가 없고 거기에 순수함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된다고 하는 순수한 헌신의 마음이 있는 그곳에 주님은 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어디에 임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누구에게 임합니까 순수한 마음, 깨끗한 마음, 겸손한 마음, 그리고 성경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곳에 주의 평강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네번째, 성탄의 참된 의미는 임마누엘에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누려야할 최고의 복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그 예수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영원한 생명, 평강의 왕, 전능자, 그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 예수님이 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만 계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머리로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2000년 전 베들레헴에 오셨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으며, 사십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그것만 압니다. 예수님을 머리 속에 담지 말고 마음속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지적으로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고, 경험적으로 알아야 되는 것이며,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내 마음속에 성전 삼고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멀리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 임마누엘입니다.
나의 마음에 성전 삼고 주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한 수치와 고난과 죽음이 객관적 사건이 아니고 나의 주관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때, 구원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에 나의 죄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의 저주받음이 나의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으며, 그의 희생으로, 그가 흘린 피로 나의 죄는 이미 사해졌으니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인데 그 구원이 언제 이루어지는가 머리 속에 있는 예수님이 아니고 내 마음에 구원의 주님으로, 왕으로 모실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주님은 내 안에 있을 때 정죄함이 없고 바로 그 곳에 주님의 다스림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입니다. 우리 집 거실에 작은 수족관이 하나 있는데, 수족관 안에는 수초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수초들이 전부 햇빛이 있는 창을 향해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식물도 햇빛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햇빛이 있는 곳에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라는 말씀이 시 84:11절에 나옵니다. 말라기 4:2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는 치료하는 광선이라고 나와있고, 요 1:9절에는 예수님이 참된 생명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내 마음과 정성을 쏟고 나아가면 그 빛이 우리에게 비쳐지고 그 빛은 생명의 빛이요 치료의 광선이요,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가 되고, 밝음이 되는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해 같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내 마음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까 해가 없으니까 어두운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이 없으니까 어둡지, 빛을 발하는 해가 내 속에 있는데 내가 어둡다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어둡다는 것은 내 마음에 예수님이 없고, 문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모셔들이면 그 마음이 밝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십시오. 영접하십시오. 모시고 사십시오.
예수님은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마굿간처럼, 겸손하고 순진하고 정직하고, 화려한 모습은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복종하겠다는 믿음이 있는 곳에 주님은 그 곳에 탄생한 것처럼 그런 자의 마음속에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가 무엇입니까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들어서 일하십니다. 말 잘하는 사람 통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 통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수치를 다하고 고난이 와도 그 길가겠다. 요셉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의로운 사람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의 의미, 반드시 예언은 이루어진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 충만 주시고, 말씀대로 살면 들어와도 나가도 복 받게 하겠다는 그 약속은 영원히 유예합니다. 그리고 성탄의 의미,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 믿지 말고, 너희와 함께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라.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겁날 것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셋방에서 살아도 천국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호화판에 살아도 지옥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더불어 사십시오. 마음의 천국을 이루십시오. 그래야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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