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길가의 성탄절
본문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우리는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로마의 역서(曆書)에 의하면 12월 25일에 성탄절을 지킨 것은 대략 336년경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로마의 동부 지역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켰습니다. 그런가 하면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래 이 날은 당시 태양신을 숭배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태양신이 태어난 날로 생각했던 날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란의 미드라이즘이란 종교에서도 이 날 자신들의 신이 태어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날을 거룩한 주님의 탄생일로 여기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언제인가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탄생일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날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도 술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신제품 술을 계속 개발합니다. 전매청에서는 신제품 담배를 계속 내놓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술 담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상관없는 것들은 아무리 태어나고 만들어져도 우리와 무관합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다릅니다. 제가 술 담배는 하지 않지만, 저도 자동차는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 때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제가 타는 자동차 모델의 최초로 만들어져 나온 날짜일까요 그 모델이 10년 전에 처음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최근에 새로 개발된 모델일수도 있습니다.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제가 그 차를 구입해서 타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 차와 내가 관계를 맺게 된 날은 정말 중요합니다. 나중에 그 차를 중고로 판매할 때도 언제부터 몇 년을 탔는가 하는 것을 따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짜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주님으로 믿게 된 날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지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12월 25일에 탄생하셨다고 칩시다. 물론 그 날 예배도 드리고 축하도 하니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을 만난 날입니다. 내가 5월 10일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나의 성탄절,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마구간에 오신 날은 5월 10일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자기만의 성탄절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성탄절의 날짜만 다른 게 아닙니다. 시기도 다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직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부터 이미 그녀의 인생에 성탄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겠습니다. 천사가 와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주던 그 날 이미 마리아의 인생에는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게 마리아의 성탄절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천사의 말을 듣던 그 순간 그의 생애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목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나시던 바로 그 밤, 천군 천사들이 노래하던 그 시간에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 수십 년이 지났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반에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는데, 베드로에게는 바로 그 날이 성탄절이었습니다. 났습니다. 베드로는 목자들보다 삼십여 년 늦게 성탄절을 맞이한 셈입니다.
또 사람마다 성탄의 사건을 경험하는 장소도 각기 다릅니다.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나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그들은 마구간에서 성탄절을 맞이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안나 여선지자와 시므온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그들의 성탄절은 성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모두의 성탄절은 사람에 따라 각기 모두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오신 날, 우리가 그 분을 구주로 모셔들인 날, 그 분이 우리 인생의 마구간에 탄생하신 그 날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성탄절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오늘 저는 한 불쌍한 여인의 뒤늦은 성탄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나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상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는 대략 삼십 세쯤 되셨을 때입니다. 만약 이 때 여인이 나이가 사십 세쯤 되었다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 탄생하셨을 때 그녀는 열 살쯤 된 볼이 발갛고 예쁘고 귀여운 소녀였을 것입니다. 우리 이런 상상을 하면서 본문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릴리 어느 마을에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열 살쯤 되던 해 그녀의 동네로부터 수 백 리 떨어진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수없이 예언된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소녀도 아버지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이며, 그 분이 오시면 이스라엘의 미래가 달라진 것이라는 말씀을 귀가 아프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예수님께서 오셨건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구간에 나시던 밤,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노래하던 그 밤, 목자들이 찾아와 경배하던 그 밤에 소녀는 엄청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임한 것도 모른 채, 하루 종일 뛰어 노느라고 피곤한 몸을 가지고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소녀는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아침을 먹었습니다. 또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젯밤에 이 세상에 얼마나 위대한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서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이 발칵 뒤집히고, 군인들이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학살할 때도,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신을 갈 때도 소녀는 아무 것도 몰랐고 그녀의 삶은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예수님께서 애굽에서 유대로 다시 돌아오셨을 때 이미 십 대 후반의 처녀로 자란 그녀는 그 때까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신지 여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오셨건만, 아직 그녀에게는 성탄절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한대로 한다면 예수님께서 열 두 살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 무렵 소녀는 스물 두 살의 처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내 하나는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똑똑한 남편을 소개받아 결혼했습니다. 여느 처녀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행복하게, 멋지게 남편과 함께 경건한 가정을 이루어 살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같은 결혼 생활이 흘러가던 어느 날 그녀는 몸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멎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병은 혈루증이었습니다. 헬라어로 하이모레오는 피를 흘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요즘 식으로 말하면 만성 자궁출혈이었을 것입니다.
그 병이 쉽게 나을 병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도, 그녀 자신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파국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서먹서먹해졌습니다. 결국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진 돈은 모두 치료비로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딱한 형편에 대한 성경의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누가복음 8장 43절에서는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 이하에서는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했습니다. 돈은 다 없어졌고, 병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성전에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피를 흘리는 유출 증상은 불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증세가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없었습니다. 레위기 15장 25절을 보면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이라고 했는데, 부정한 동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무려 열 두 해나 앓고 있었으므로, 열 두 해 동안 성전에 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인데, 위로와 자비의 여호와 하나님께도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그녀를 밑바닥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라도 통곡하고 몸부림치면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살아 있지만 사는 게 아닌 하루 하루가 지나던 어느 날, 드디어 그녀의 생애에 성탄절이 찾아왔습니다. 절망 중에 가버나움을 지나던 그녀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 선생님께서 오셨대! 들었어 얼마 전에 그 분이 한센씨병 환자를 깨끗하게 고치셨다는구먼! 아, 그 뿐인가 그 왜 우리 동네에 주둔하는 로마군 백부장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아무개를 아는가 그가 왜 몇 달 전부터 중풍으로 쓰러진 것 알지 그런데 백부장이 예수님께 청을 했더니 그 분은 환자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말씀만 하셨는데도 깨끗하게 나았대. 그게 다가 아니야! 시몬의 장모도 열병으로 누웠는데 나았어. 한 두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니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소식은 정말 놀랍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던 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드디어 여인도 성탄절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인생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는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녀는 길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심장이 멎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저 만치서 그 분이 오고 계셨습니다. 그 분 옆에 회당장 야이로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위중하여 죽어가고 있었기에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많은 가버나움 주민들이 함께 오고 있었습니다. 길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녀 앞에 예수님만 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달려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뒤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확신이 그녀에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굳이 저 분에게 말씀드릴 필요가 없어. 그저 그 분의 옷자락만 살짝 건드리는 거야! 그래도 난 나을 거야!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실 줄 믿나이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그녀의 손길이 스치는 그 순간, 그녀는 대뜸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나간 길고 긴 열 두 해 동안 그녀의 인생을 멍들게 한 악몽 같은 그 병이 뿌리째 뽑힌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그 사랑이 자신의 생애 속으로 뚫고 들어온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그녀의 영혼과 육신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게 한 불쌍한 여인의 성탄절이었습니다.
여인의 성탄절은 목자들의 성탄절보다 삼십 년 이상 늦었습니다. 또 그녀는 시끄러운 소리로 거리가 덮이고, 사람들이 밀고 댕기는 복잡한 가버나움의 길거리에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탄절은 목자들의 성탄절 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목자들도, 박사들도 들을 수 없었던 주님의 자상한 음성을 듣는 성탄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손길이 옷자락을 스치는 순간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면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비록 남들보다 늦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나 은총을 입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시끄러운 길거리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길거리가 그녀에게는 성전의 그 어떤 조용한 뜰보다도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한 여인의 길거리 성탄절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이야기로 돌아옵시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위대한 소식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우리 가정에 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으셨습니까 아직 성탄절을 맞지 못하셨습니까
성탄절은 모든 사람에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인이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던 그 순간, 그 길에는 여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로 밟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자신들의 인생으로 예수님을 모신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성탄절을 구경만 하는 사람일뿐, 성탄절을 맞이한 사람은 아닙니다.
오늘날도 성탄절을 구경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피곤하고 지친 인생 길에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오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 안에 오셔야 합니다. 가버나움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 밖에서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인생의 내면, 부끄러운 안방, 삶의 더러운 내부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밖에서 보았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만으로는 성탄절이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자동차 회사가 많은 차를 만들어 팔아도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차를 사서 타고 다닐 때 비로소 나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객관적 사건을 이제는 우리 개개인의 주관적 사건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개된 이야기를 이제는 내 비밀스런 이야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과 나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절을 구경하지 말고 우리의 전 삶으로 맞이하길 기원합니다. 손을 내미십시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십시오. 그리고 절규하십시오. 예수님, 당신을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를 치유해 주옵소서. 제 인생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제발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제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저를 가버나움 길거리의 구경꾼으로 전락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제게 사건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사방에 나가 말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건들을 제 인생에 일으켜 주옵소서!
지금이라도 믿음의 손을 내밀어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전 생애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늦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는 죽음의 순간에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목자와 박사는 태어나신 예수님을 보는 성탄절을 맞이했고, 강도는 우리를 위해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성탄절을 경험했습니다.
본래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은 냄새나고 더러운 짐승들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자 그 곳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곳으로 변했습니다. 아름다운 경배가 이루어지고 만왕의 왕을 알현하는 궁궐로 바뀌었습니다. 지체 높은 동방의 박사들이 머무는 곳이 되었습니다. 마구간의 썩은 지푸라기 위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놓여졌습니다. 추한 곳이 거룩하게, 냄새나는 곳이 향기 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여인의 인생은 마구간과 같았습니다. 무질서했고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오셨을 때, 그녀의 인생은 빛나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2006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삶이 거룩해지고 변화되는 진정한 성탄의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길 기원합니다. 마구간이 궁궐로 바뀌는 은혜가 있길 기원합니다. 이 시간 여인이 손 내밀던 그 심정으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저희에게 오시옵소서. 참 성탄 사건이 저희 삶에서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이런 논쟁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언제인가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탄생일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날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도 술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신제품 술을 계속 개발합니다. 전매청에서는 신제품 담배를 계속 내놓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술 담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상관없는 것들은 아무리 태어나고 만들어져도 우리와 무관합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다릅니다. 제가 술 담배는 하지 않지만, 저도 자동차는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 때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제가 타는 자동차 모델의 최초로 만들어져 나온 날짜일까요 그 모델이 10년 전에 처음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최근에 새로 개발된 모델일수도 있습니다.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제가 그 차를 구입해서 타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 차와 내가 관계를 맺게 된 날은 정말 중요합니다. 나중에 그 차를 중고로 판매할 때도 언제부터 몇 년을 탔는가 하는 것을 따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짜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주님으로 믿게 된 날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지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12월 25일에 탄생하셨다고 칩시다. 물론 그 날 예배도 드리고 축하도 하니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을 만난 날입니다. 내가 5월 10일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나의 성탄절,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마구간에 오신 날은 5월 10일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자기만의 성탄절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성탄절의 날짜만 다른 게 아닙니다. 시기도 다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직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부터 이미 그녀의 인생에 성탄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겠습니다. 천사가 와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주던 그 날 이미 마리아의 인생에는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게 마리아의 성탄절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천사의 말을 듣던 그 순간 그의 생애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목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나시던 바로 그 밤, 천군 천사들이 노래하던 그 시간에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 수십 년이 지났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반에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는데, 베드로에게는 바로 그 날이 성탄절이었습니다. 났습니다. 베드로는 목자들보다 삼십여 년 늦게 성탄절을 맞이한 셈입니다.
또 사람마다 성탄의 사건을 경험하는 장소도 각기 다릅니다.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나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그들은 마구간에서 성탄절을 맞이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안나 여선지자와 시므온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그들의 성탄절은 성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모두의 성탄절은 사람에 따라 각기 모두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오신 날, 우리가 그 분을 구주로 모셔들인 날, 그 분이 우리 인생의 마구간에 탄생하신 그 날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성탄절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오늘 저는 한 불쌍한 여인의 뒤늦은 성탄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나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상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는 대략 삼십 세쯤 되셨을 때입니다. 만약 이 때 여인이 나이가 사십 세쯤 되었다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 탄생하셨을 때 그녀는 열 살쯤 된 볼이 발갛고 예쁘고 귀여운 소녀였을 것입니다. 우리 이런 상상을 하면서 본문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릴리 어느 마을에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열 살쯤 되던 해 그녀의 동네로부터 수 백 리 떨어진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수없이 예언된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소녀도 아버지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이며, 그 분이 오시면 이스라엘의 미래가 달라진 것이라는 말씀을 귀가 아프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예수님께서 오셨건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구간에 나시던 밤,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노래하던 그 밤, 목자들이 찾아와 경배하던 그 밤에 소녀는 엄청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임한 것도 모른 채, 하루 종일 뛰어 노느라고 피곤한 몸을 가지고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소녀는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아침을 먹었습니다. 또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젯밤에 이 세상에 얼마나 위대한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서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이 발칵 뒤집히고, 군인들이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학살할 때도,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신을 갈 때도 소녀는 아무 것도 몰랐고 그녀의 삶은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예수님께서 애굽에서 유대로 다시 돌아오셨을 때 이미 십 대 후반의 처녀로 자란 그녀는 그 때까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신지 여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오셨건만, 아직 그녀에게는 성탄절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한대로 한다면 예수님께서 열 두 살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 무렵 소녀는 스물 두 살의 처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내 하나는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똑똑한 남편을 소개받아 결혼했습니다. 여느 처녀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행복하게, 멋지게 남편과 함께 경건한 가정을 이루어 살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같은 결혼 생활이 흘러가던 어느 날 그녀는 몸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멎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병은 혈루증이었습니다. 헬라어로 하이모레오는 피를 흘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요즘 식으로 말하면 만성 자궁출혈이었을 것입니다.
그 병이 쉽게 나을 병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도, 그녀 자신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파국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서먹서먹해졌습니다. 결국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진 돈은 모두 치료비로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딱한 형편에 대한 성경의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누가복음 8장 43절에서는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 이하에서는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했습니다. 돈은 다 없어졌고, 병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성전에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피를 흘리는 유출 증상은 불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증세가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없었습니다. 레위기 15장 25절을 보면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이라고 했는데, 부정한 동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무려 열 두 해나 앓고 있었으므로, 열 두 해 동안 성전에 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인데, 위로와 자비의 여호와 하나님께도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그녀를 밑바닥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라도 통곡하고 몸부림치면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살아 있지만 사는 게 아닌 하루 하루가 지나던 어느 날, 드디어 그녀의 생애에 성탄절이 찾아왔습니다. 절망 중에 가버나움을 지나던 그녀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 선생님께서 오셨대! 들었어 얼마 전에 그 분이 한센씨병 환자를 깨끗하게 고치셨다는구먼! 아, 그 뿐인가 그 왜 우리 동네에 주둔하는 로마군 백부장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아무개를 아는가 그가 왜 몇 달 전부터 중풍으로 쓰러진 것 알지 그런데 백부장이 예수님께 청을 했더니 그 분은 환자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말씀만 하셨는데도 깨끗하게 나았대. 그게 다가 아니야! 시몬의 장모도 열병으로 누웠는데 나았어. 한 두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니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소식은 정말 놀랍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던 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드디어 여인도 성탄절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인생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는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녀는 길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심장이 멎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저 만치서 그 분이 오고 계셨습니다. 그 분 옆에 회당장 야이로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위중하여 죽어가고 있었기에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많은 가버나움 주민들이 함께 오고 있었습니다. 길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녀 앞에 예수님만 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달려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뒤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확신이 그녀에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굳이 저 분에게 말씀드릴 필요가 없어. 그저 그 분의 옷자락만 살짝 건드리는 거야! 그래도 난 나을 거야!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실 줄 믿나이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그녀의 손길이 스치는 그 순간, 그녀는 대뜸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나간 길고 긴 열 두 해 동안 그녀의 인생을 멍들게 한 악몽 같은 그 병이 뿌리째 뽑힌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그 사랑이 자신의 생애 속으로 뚫고 들어온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그녀의 영혼과 육신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게 한 불쌍한 여인의 성탄절이었습니다.
여인의 성탄절은 목자들의 성탄절보다 삼십 년 이상 늦었습니다. 또 그녀는 시끄러운 소리로 거리가 덮이고, 사람들이 밀고 댕기는 복잡한 가버나움의 길거리에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탄절은 목자들의 성탄절 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목자들도, 박사들도 들을 수 없었던 주님의 자상한 음성을 듣는 성탄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손길이 옷자락을 스치는 순간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면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비록 남들보다 늦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나 은총을 입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시끄러운 길거리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길거리가 그녀에게는 성전의 그 어떤 조용한 뜰보다도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한 여인의 길거리 성탄절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이야기로 돌아옵시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위대한 소식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우리 가정에 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으셨습니까 아직 성탄절을 맞지 못하셨습니까
성탄절은 모든 사람에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인이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던 그 순간, 그 길에는 여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로 밟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자신들의 인생으로 예수님을 모신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성탄절을 구경만 하는 사람일뿐, 성탄절을 맞이한 사람은 아닙니다.
오늘날도 성탄절을 구경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피곤하고 지친 인생 길에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오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 안에 오셔야 합니다. 가버나움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 밖에서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인생의 내면, 부끄러운 안방, 삶의 더러운 내부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밖에서 보았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만으로는 성탄절이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자동차 회사가 많은 차를 만들어 팔아도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차를 사서 타고 다닐 때 비로소 나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객관적 사건을 이제는 우리 개개인의 주관적 사건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개된 이야기를 이제는 내 비밀스런 이야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과 나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절을 구경하지 말고 우리의 전 삶으로 맞이하길 기원합니다. 손을 내미십시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십시오. 그리고 절규하십시오. 예수님, 당신을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를 치유해 주옵소서. 제 인생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제발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제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저를 가버나움 길거리의 구경꾼으로 전락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제게 사건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사방에 나가 말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건들을 제 인생에 일으켜 주옵소서!
지금이라도 믿음의 손을 내밀어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전 생애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늦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는 죽음의 순간에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목자와 박사는 태어나신 예수님을 보는 성탄절을 맞이했고, 강도는 우리를 위해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성탄절을 경험했습니다.
본래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은 냄새나고 더러운 짐승들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자 그 곳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곳으로 변했습니다. 아름다운 경배가 이루어지고 만왕의 왕을 알현하는 궁궐로 바뀌었습니다. 지체 높은 동방의 박사들이 머무는 곳이 되었습니다. 마구간의 썩은 지푸라기 위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놓여졌습니다. 추한 곳이 거룩하게, 냄새나는 곳이 향기 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여인의 인생은 마구간과 같았습니다. 무질서했고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오셨을 때, 그녀의 인생은 빛나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2006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삶이 거룩해지고 변화되는 진정한 성탄의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길 기원합니다. 마구간이 궁궐로 바뀌는 은혜가 있길 기원합니다. 이 시간 여인이 손 내밀던 그 심정으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저희에게 오시옵소서. 참 성탄 사건이 저희 삶에서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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