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과 연말
본문
오늘 설교 제목은 ‘성탄과 연말’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성탄과 연말. ” 왜 성탄절에 설교 제목을 성탄에 대한 얘기만 하지 아니하고, (왜) 성탄과 연말이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오늘은 2005년 12월 25일 성탄절입니다. 동시에 2005년도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가 이처럼 건강한 신앙, 건강한 몸을 가지고 성탄절을 맞이한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2005년도 마지막 주일 예배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가 있었기에 또) 뿐만 아니라, 2006년도 새해를 꿈꿀 수 있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 중에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그랬습니다. 한번 따라 해보시겠습니까 “성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 믿습니까 이것이 믿어지면, (우리가)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면, 아무리 좋은 일이 많아도 우리는 교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성탄의 제일 귀한 메시지가 무엇이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절망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절망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에게 절망이 여호와 하나님께는 시작이다. ” ‘아멘’입니까
2천 년 전 아기 예수가 직접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땅, 유대 땅 베들레헴은 로마의 속국입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고통이 많습니다. 가난합니다. 힘듭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곳을 찾아오셨다 그 말인 것입니다. 사람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은 1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랬습니다. 따라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아멘’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성탄절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위해서 지나간 일년간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에서 2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적으로 보죠. 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너무나 많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질 확률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는 것은 무엇이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은혜를 잊지 맙시다. 따라합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 ” 아멘. 이제 성탄절과 연말을 맞이하여 그 큰 은혜에 보답하는 우리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여호와 하나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감사와 감격함으로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고 (우리가) 보낼 뿐만 아니라, 또 2005년을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2006년도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아기 예수께 경배
첫째로,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성탄절에 아기 예수가 오셨습니다. 만 왕의 왕이십니다. 또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런데 이 땅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날 아기 예수님은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입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어디에도 왕으로 오신 이를 위한 빈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여관에 빈방이 없었을까요 여관에 빈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아기 예수를 모실 빈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을 오게 해서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해서 돈을 많이 낼 사람을 오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좀 편한 사람을, 돈이 많이 받을 사람을 오게 할까’ 그런 욕심으로 꽉 차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아기 예수를 모실 빈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서 임산부를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리 마음에는 아기 예수를 모실 빈방이 있는가, 나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모실 자리가 있는가, 또 내가 아기 예수께 경배를 올릴 지성소가 있는가 아기 예수님의 나심은 분명히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랬습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 모든 사람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 그 중의 첫째가 무엇입니까 구원의 소식입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하늘과 땅 가운데 이보다 더 중요한 소식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의 구세주로 오셨다는 소식, 이것보다 더 좋은 구원의 소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서 그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구원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천사들까지 (아기 예수의 찬양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찬양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3절에서 14절입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꿇어 경배합시다. 그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기 예수께서 우리를 큰 기쁨으로 충만케 하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9장 2절에서 3절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우리가) 기뻐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그런 마음과 행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만나는 날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캐롤송 부르는 날이 아닌 것입니다. 성탄절에는 아기 예수를 찬양하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이 (성탄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둘째, 어려운 사람 도와주자
두 번째입니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자. ’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자. ”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사람이 참 많아요. 물질이 없어서 어려운 사람, 몸이 아파서 어려운 사람, 몸이 불편해서 어려운 사람, 자녀가 없어서 어려운 사람, 부모가 안 계셔서 어려운 사람,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러므로 이 성탄절에 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성탄절에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 상반절입니다.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나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왕으로 오신 이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 당시에 헤롯왕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아주 가난한 사람이 사는 낮은 곳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더럽고 냄새나는 마굿간에 태어나시고 말구유에, 여물통에 누워 계셨습니다. 고급 비단이 아니라 흔한 강포 포대기에 쌓이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낮아지심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소수만을 위한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신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만이 아닙니다. 많이 배운 사람만이 아닙니다. 권세가 있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 천대받는 사람,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아기 예수를 찬양 경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우리도 아기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도 아기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한다. ” 그렇습니다. 낮아져야 됩니다.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이 땅 위에 찾아 오셨듯이, 한국 교회도, 먼저 구원받은 성도들도, 우리 모든 제직들도, 목회자들도 모두 한 마음을 가지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아기 예수가 모든 것을 주셨듯이, 우리도 나누고 베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아니하시고 다 쏟아 주셨습니다. 마지막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에게 도로 안겨 주리라” 그랬습니다. 지금 내가 낮아져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누구입니까 성탄의 기쁨은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선포되어야 합니다. 천사는 성탄의 소식을 가난한 목자들에 알려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 한밤에 양들 틈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에게, 목자들에게 천사가 제일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셨다, 기쁜 소식, 예수가 탄생하셨다. 제일 먼저 들려준 사람이 누구냐, 가난한 목동들이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우리의 도움은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불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우리의 도움을 주는 것은 아기 예수를 만나는 사랑의 다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가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아무리) 외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어려운 고통 받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낮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은혜를 받은 만큼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그런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은 것입니다. 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은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다리를 여러 길에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갈 때,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그들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어려우니까,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가서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때, 그 사람들도 ‘야, 나도 살 맛 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 나도 살 용기가 난다. ’ 여러분,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주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받은 은혜를 나누어줄 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려운 이웃과 함께 성탄절을 맞이합시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성탄 경배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것만이 예수님 탄생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찾아주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참된 진정한 성탄 경배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들도 기뻐하는 것이 참된 성탄 잔치인 것입니다.
셋째,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세 번째입니다.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 한번 따라하세요.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 그렇습니다. 잘 들으세요. 한국 교회가 요 근래 와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신학은 복지’란 말을 많이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에게 최고의 신세를 졌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누구에게 신세를 졌습니까 부모님께. 스승에게. 모든 많은 이웃들에게 우리는 분명히 신세를 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혼자 힘으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한문의 사람 ‘인’(人) 자를 보면, 받쳐줘야 됩니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나 여러분이 여기까지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두말 할 것도 없고, 누군가 여러분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을 아실 것입니다. 누구나 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삽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나도 너도 모두 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삽니다. ”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삽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꼭 기억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예수 믿었습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 아들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 은혜만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람의 은혜로도 삽니다. 사람의 은혜가 있습니다. 앞에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스승의 은혜가 있습니다. 교회의 은혜가 있습니다. 친구의 은혜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여러분이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누군가가 복음을 전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목회자와 성도가 있었기에 성장한 것입니다. 목회자만 있어도 안 됩니다. 성도가 있으니깐 목회자 신앙도 성장하고 성도의 신앙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도끼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가 있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있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목회자와, 성도와 성도끼리, 목회자와 목회자끼리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우리의 신앙이 성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고, 도움을 줄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27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우리는 신세진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연말을 맞이해서, (내가) 나에게 신세를 베푼 분이 누구인가, 내가 누구에게 신세를 졌는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해야 합니다. 한 해를 결산함에 있어서 사람에게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이제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개구리가 되었다고 올챙이 적 잊으면 안 됩니다. 반대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위인들은 신세진 사람들에게 항상 보답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을 아시죠 다윗은 요나단에게 입은 은혜를 보답했습니다.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사울 왕의 아들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은 친구입니다. 수도 없는 죽을 고비를 요나단 때문에 살아납니다. 그런데 다윗은 요나단에게 입은 은혜를 그 아들에게 보답합니다. 요나단의 아들을 극진히 보살펴줍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사무엘하 9장 7절입니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 왕이 한 말입니다. 멋지잖아요. 그뿐이 아닙니다. 엘리사도 수넴 여인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 신세진 것을 보답하겠다는 것입니다. ) 수넴 여인은 자원해서 엘리사를 섬겼습니다. 엘리사가 지나갈 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물을 떠다 주었습니다. 밥을 주었습니다. 잠을 자게 해주었습니다. 무료로 제공해주었습니다. 숙식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엘리사가 신세를 졌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헌신과 봉사에 보답을 했습니다. 수넴 여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봉사 잘하는, 여호와 하나님 사람을 잘 섬기는 데, 그 수넴 여인이 아들이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축복합니다. 너는 아들을 낳을 것이다. 신세를 갚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 수넴 여인의 환경이 자신이 볼 때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하 4장 16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 수넴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우리 신앙은 직접 나에게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하면, 베풀어주는 일을 하면, 그것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가 됩시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사람의 은혜에 보답하자, 신세진 사람을 기억하자,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중요합니다.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넷째, 가족도 사랑하자
네 번째입니다. ‘가족도 사랑하자. ’ 따라하시겠습니다. “가족도 사랑하자. ”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해서 (성탄절을 맞이해서) 제일 먼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아기 예수를 찬양하고 경배하자’ 그랬습니다. 두 번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 그랬습니다. 세 번째, ‘신제진 것을 보답하자’ 그랬습니다. 네 번째가 무엇이냐 ‘가족도 사랑하자. ’ 여러분 아기 예수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사람 많아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된다. ” 지금 복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합니다. “도와주자, 도와주자” 합니다. 또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그럽니다.
그런데 앞의 세 가지를 다 했다 하더라도,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합시다. “가족도 사랑하자. ” ‘아멘’입니까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만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처럼,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만큼, 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자기 가족을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입니다. 성탄절과 연말이 되면 가족이 소외되기 쉽습니다. 가족보다는 친구나 각종 모임이 우선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성탄절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 꼭 기억할 것이 무엇이냐면, 그동안 사업이 바쁘고, 직장이 바쁘고, 친구랑 바쁘고, 사회 모임이 바빠서 (그동안) 소홀했다면, 성탄절만이라도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이 회복되는 기회로 삼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을 잊는 것은 성탄절의 정신을 잊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첫 번째 성탄절은 아기 예수로 인해,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인해 ‘가정’이 ‘가족’된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도) 아기 예수님으로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그동안 더 가까이 하나가 되는 함께하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6절입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이 서로 기뻐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이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가족이 함께 기뻐한 날. 그것뿐 아니라, 가족이 서로를 지켜준 날, 예수님이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가족이 서로를 지켜준 날입니다.
마태복음 2장 13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 성탄절은 가족들이 서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누가복음 2장 17절에서 19절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가족을 더 사랑합시다. 여러분의 가족 사랑이 회복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탄 선물입니다. 가족이 성탄 선물입니다. 가족은 새해를 함께 열어갈 힘입니다. ‘이제 2005년도 너무 고생해서 그럭저럭 죽지 않고 살았어. 그런데 2006년은 어떻게 살지 들려오는 소식을 들어 보니까 경제가 다시 회복된다는 소식도 없다는데,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라고 말합니다. 해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가족끼리 사랑하면, 2006년도를 살아갈 힘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가족 사랑이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썬파워입니다. (배터리 이름이 썬파워가 아니라,) 가족 사랑이 세상을 이기는 큰 힘이 됩니다. 가족과 함께 한 해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가족과 함께 새해를 계획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새해를 열어가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출발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할 때, 더 나은 내일이 열리게 됩니다.
2005년 12월 25일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05년이 이제 저물어 가고, 오늘 성탄절입니다. 모든 슬픔과 아픔과 고난은 다 잊어버립시다. 새날을 바라보며 새 희망을, 새 꿈을 꿉시다. 새로운 비전을 가집시다.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혜 중에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그랬습니다. 한번 따라 해보시겠습니까 “성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 믿습니까 이것이 믿어지면, (우리가)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면, 아무리 좋은 일이 많아도 우리는 교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성탄의 제일 귀한 메시지가 무엇이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절망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절망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에게 절망이 여호와 하나님께는 시작이다. ” ‘아멘’입니까
2천 년 전 아기 예수가 직접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땅, 유대 땅 베들레헴은 로마의 속국입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고통이 많습니다. 가난합니다. 힘듭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곳을 찾아오셨다 그 말인 것입니다. 사람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은 1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랬습니다. 따라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아멘’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성탄절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위해서 지나간 일년간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에서 2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적으로 보죠. 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너무나 많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질 확률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는 것은 무엇이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은혜를 잊지 맙시다. 따라합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 ” 아멘. 이제 성탄절과 연말을 맞이하여 그 큰 은혜에 보답하는 우리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여호와 하나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감사와 감격함으로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고 (우리가) 보낼 뿐만 아니라, 또 2005년을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2006년도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아기 예수께 경배
첫째로,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성탄절에 아기 예수가 오셨습니다. 만 왕의 왕이십니다. 또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런데 이 땅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날 아기 예수님은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입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어디에도 왕으로 오신 이를 위한 빈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여관에 빈방이 없었을까요 여관에 빈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아기 예수를 모실 빈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을 오게 해서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해서 돈을 많이 낼 사람을 오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좀 편한 사람을, 돈이 많이 받을 사람을 오게 할까’ 그런 욕심으로 꽉 차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아기 예수를 모실 빈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서 임산부를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리 마음에는 아기 예수를 모실 빈방이 있는가, 나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모실 자리가 있는가, 또 내가 아기 예수께 경배를 올릴 지성소가 있는가 아기 예수님의 나심은 분명히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랬습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 모든 사람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 그 중의 첫째가 무엇입니까 구원의 소식입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하늘과 땅 가운데 이보다 더 중요한 소식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의 구세주로 오셨다는 소식, 이것보다 더 좋은 구원의 소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서 그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구원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천사들까지 (아기 예수의 찬양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찬양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3절에서 14절입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꿇어 경배합시다. 그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기 예수께서 우리를 큰 기쁨으로 충만케 하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9장 2절에서 3절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우리가) 기뻐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그런 마음과 행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만나는 날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캐롤송 부르는 날이 아닌 것입니다. 성탄절에는 아기 예수를 찬양하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이 (성탄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둘째, 어려운 사람 도와주자
두 번째입니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자. ’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자. ”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사람이 참 많아요. 물질이 없어서 어려운 사람, 몸이 아파서 어려운 사람, 몸이 불편해서 어려운 사람, 자녀가 없어서 어려운 사람, 부모가 안 계셔서 어려운 사람,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러므로 이 성탄절에 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성탄절에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 상반절입니다.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나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왕으로 오신 이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 당시에 헤롯왕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아주 가난한 사람이 사는 낮은 곳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더럽고 냄새나는 마굿간에 태어나시고 말구유에, 여물통에 누워 계셨습니다. 고급 비단이 아니라 흔한 강포 포대기에 쌓이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낮아지심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소수만을 위한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신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만이 아닙니다. 많이 배운 사람만이 아닙니다. 권세가 있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 천대받는 사람,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아기 예수를 찬양 경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우리도 아기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도 아기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한다. ” 그렇습니다. 낮아져야 됩니다.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이 땅 위에 찾아 오셨듯이, 한국 교회도, 먼저 구원받은 성도들도, 우리 모든 제직들도, 목회자들도 모두 한 마음을 가지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아기 예수가 모든 것을 주셨듯이, 우리도 나누고 베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아니하시고 다 쏟아 주셨습니다. 마지막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에게 도로 안겨 주리라” 그랬습니다. 지금 내가 낮아져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누구입니까 성탄의 기쁨은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선포되어야 합니다. 천사는 성탄의 소식을 가난한 목자들에 알려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 한밤에 양들 틈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에게, 목자들에게 천사가 제일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셨다, 기쁜 소식, 예수가 탄생하셨다. 제일 먼저 들려준 사람이 누구냐, 가난한 목동들이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우리의 도움은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불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우리의 도움을 주는 것은 아기 예수를 만나는 사랑의 다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가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아무리) 외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어려운 고통 받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낮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은혜를 받은 만큼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그런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은 것입니다. 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은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다리를 여러 길에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갈 때,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그들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어려우니까,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가서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때, 그 사람들도 ‘야, 나도 살 맛 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 나도 살 용기가 난다. ’ 여러분,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주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받은 은혜를 나누어줄 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려운 이웃과 함께 성탄절을 맞이합시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성탄 경배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것만이 예수님 탄생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찾아주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참된 진정한 성탄 경배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들도 기뻐하는 것이 참된 성탄 잔치인 것입니다.
셋째,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세 번째입니다.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 한번 따라하세요.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 그렇습니다. 잘 들으세요. 한국 교회가 요 근래 와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신학은 복지’란 말을 많이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에게 최고의 신세를 졌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누구에게 신세를 졌습니까 부모님께. 스승에게. 모든 많은 이웃들에게 우리는 분명히 신세를 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혼자 힘으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한문의 사람 ‘인’(人) 자를 보면, 받쳐줘야 됩니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나 여러분이 여기까지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두말 할 것도 없고, 누군가 여러분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을 아실 것입니다. 누구나 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삽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나도 너도 모두 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삽니다. ”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삽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꼭 기억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예수 믿었습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 아들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은혜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 은혜만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람의 은혜로도 삽니다. 사람의 은혜가 있습니다. 앞에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스승의 은혜가 있습니다. 교회의 은혜가 있습니다. 친구의 은혜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여러분이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누군가가 복음을 전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목회자와 성도가 있었기에 성장한 것입니다. 목회자만 있어도 안 됩니다. 성도가 있으니깐 목회자 신앙도 성장하고 성도의 신앙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도끼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가 있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있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목회자와, 성도와 성도끼리, 목회자와 목회자끼리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우리의 신앙이 성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고, 도움을 줄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27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우리는 신세진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연말을 맞이해서, (내가) 나에게 신세를 베푼 분이 누구인가, 내가 누구에게 신세를 졌는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해야 합니다. 한 해를 결산함에 있어서 사람에게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이제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개구리가 되었다고 올챙이 적 잊으면 안 됩니다. 반대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위인들은 신세진 사람들에게 항상 보답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을 아시죠 다윗은 요나단에게 입은 은혜를 보답했습니다.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사울 왕의 아들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은 친구입니다. 수도 없는 죽을 고비를 요나단 때문에 살아납니다. 그런데 다윗은 요나단에게 입은 은혜를 그 아들에게 보답합니다. 요나단의 아들을 극진히 보살펴줍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사무엘하 9장 7절입니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 왕이 한 말입니다. 멋지잖아요. 그뿐이 아닙니다. 엘리사도 수넴 여인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 신세진 것을 보답하겠다는 것입니다. ) 수넴 여인은 자원해서 엘리사를 섬겼습니다. 엘리사가 지나갈 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물을 떠다 주었습니다. 밥을 주었습니다. 잠을 자게 해주었습니다. 무료로 제공해주었습니다. 숙식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엘리사가 신세를 졌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헌신과 봉사에 보답을 했습니다. 수넴 여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봉사 잘하는, 여호와 하나님 사람을 잘 섬기는 데, 그 수넴 여인이 아들이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축복합니다. 너는 아들을 낳을 것이다. 신세를 갚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 수넴 여인의 환경이 자신이 볼 때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하 4장 16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 수넴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우리 신앙은 직접 나에게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하면, 베풀어주는 일을 하면, 그것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가 됩시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사람의 은혜에 보답하자, 신세진 사람을 기억하자,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중요합니다.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넷째, 가족도 사랑하자
네 번째입니다. ‘가족도 사랑하자. ’ 따라하시겠습니다. “가족도 사랑하자. ”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해서 (성탄절을 맞이해서) 제일 먼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아기 예수를 찬양하고 경배하자’ 그랬습니다. 두 번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 그랬습니다. 세 번째, ‘신제진 것을 보답하자’ 그랬습니다. 네 번째가 무엇이냐 ‘가족도 사랑하자. ’ 여러분 아기 예수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사람 많아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된다. ” 지금 복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합니다. “도와주자, 도와주자” 합니다. 또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자” 그럽니다.
그런데 앞의 세 가지를 다 했다 하더라도,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합시다. “가족도 사랑하자. ” ‘아멘’입니까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만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처럼, 신세진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만큼, 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자기 가족을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입니다. 성탄절과 연말이 되면 가족이 소외되기 쉽습니다. 가족보다는 친구나 각종 모임이 우선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성탄절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 꼭 기억할 것이 무엇이냐면, 그동안 사업이 바쁘고, 직장이 바쁘고, 친구랑 바쁘고, 사회 모임이 바빠서 (그동안) 소홀했다면, 성탄절만이라도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이 회복되는 기회로 삼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을 잊는 것은 성탄절의 정신을 잊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첫 번째 성탄절은 아기 예수로 인해,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인해 ‘가정’이 ‘가족’된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도) 아기 예수님으로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그동안 더 가까이 하나가 되는 함께하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6절입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이 서로 기뻐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이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가족이 함께 기뻐한 날. 그것뿐 아니라, 가족이 서로를 지켜준 날, 예수님이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가족이 서로를 지켜준 날입니다.
마태복음 2장 13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 성탄절은 가족들이 서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누가복음 2장 17절에서 19절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가족을 더 사랑합시다. 여러분의 가족 사랑이 회복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탄 선물입니다. 가족이 성탄 선물입니다. 가족은 새해를 함께 열어갈 힘입니다. ‘이제 2005년도 너무 고생해서 그럭저럭 죽지 않고 살았어. 그런데 2006년은 어떻게 살지 들려오는 소식을 들어 보니까 경제가 다시 회복된다는 소식도 없다는데,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라고 말합니다. 해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가족끼리 사랑하면, 2006년도를 살아갈 힘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가족 사랑이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썬파워입니다. (배터리 이름이 썬파워가 아니라,) 가족 사랑이 세상을 이기는 큰 힘이 됩니다. 가족과 함께 한 해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가족과 함께 새해를 계획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새해를 열어가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출발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할 때, 더 나은 내일이 열리게 됩니다.
2005년 12월 25일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05년이 이제 저물어 가고, 오늘 성탄절입니다. 모든 슬픔과 아픔과 고난은 다 잊어버립시다. 새날을 바라보며 새 희망을, 새 꿈을 꿉시다. 새로운 비전을 가집시다.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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