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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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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는 글 중에 크리스마스에 대한 퀴즈가 있습니다. 퀴즈라기 보다는 넌센스 퀴즈에 가까운 문제들이었습니다. 재미 있는 문제이니까 여러분도 한번 맞춰 보십시오.
(1) 아기 예수께 경배 하러 온 동방박사는 몇 명일까요 1) 3명 2) 4명 3) 알 수 없다
(2) 베들레헴에서 동방박사가 예수님을 경배한 장소는 1) 마구간 2)집(마태복음 2:11)
(3)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가 1절에서 밤은 몇 번 나옵니까
(4) 산타클로스가 북한 땅에는 못 들어 간답니다. 그 이유는
(5) 세계 최초로 연주된 크리스마스 캐럴은
목자들이 들었던 이 캐럴은 이 세상의 어떤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보다 더 웅장하고 더 아름다운 합창 소리였습니다. 이 합창은 긴 합창이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는 아주 짧은 합창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의 탄생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무척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버지, 이 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나는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그 때, 하늘로부터,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할 것이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곁에 서서 이 소리를 들은 많은 사람이 천둥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에는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소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린 것이다(요한복음 12:27-30). ’” 알듯 모를 듯한 말씀이지요 그러나 이 말씀의 뜻은 분명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때가 임박한 때에 하늘에서 들린 말씀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한가지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기도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할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드리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순종, 그리고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ministry)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더 큰 영광을 예수님을 통해서 받으시겠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있는지, 그것이 나의 생의 사명이 되고 목표가 되고 있는지,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들었던 첫 번 성탄 캐럴의 후반부 가사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은 쉽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어떤 오래된 문서에 보면 “On earth peace, good will among people!” 이렇게 나와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세계 1차 대전 때에 있었던 실화 하나를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예화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버전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어느 버전에 사실인지도 확인할 수가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1914년 12월 24일. 독일 서부 전선 플뢰르베(Fleurbaix) 벌판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서로 참호를 파고 교전(交戰)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호와 참호 사이에는 수습되지 않은 시신들이 가득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영국군 병사들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100m 전방에 마주 대하고 있는 독일군 참호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들려온 것입니다. 영국군들은 “잘했다” “앙코르”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갈채를 받은 독일군 병사들이 영국군에게 이렇게 답했다. "Merry Christmas, Englishmen! We not shoot, you not shoot. " (메리 크리스마스, 영국인들! 우리는 쏘지 않겠다. 너희들도 쏘지 말라)
두 진영 참호 사이에서 쓰러진 전사자들의 장례를 치러주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동안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은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에 총을 내려놓고 휴전을 결정했습니다. 장교들의 협박과 엄청난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동네 친구들처럼 담소를 즐기고 생활필수품들을 나누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이 플뢰르베 벌판의 휴전은 서부전선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심지어 어느 전선에서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축구경기를 했다는 소문까지 났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이 끝나자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은 이후 44개월이나 더 계속되었고, 9백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의 주인공들도 상당수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는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만, 인간이 벌이는 가장 잔혹한 전쟁까지도 멈추게 할 수 있는 진정한 평화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위대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스테른(Stern)과 잡지 템포(Tempo)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미하엘 유르크스(Michael Jurgs)는 치밀한 현지 조사와 참전자 자손들과의 면담을 통해 마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크리스마스 휴전 이야기를 2005년에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라는 책으로 복원해 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영화감독 크리스티앙 까리용(Christian Carion)은 2005년에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el)라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샬롬(shalom)”입니다. 사전을 찾아 보면 “a quality of wholeness of life”라고 샬롬의 정의(定義)가 나와 있습니다. “온전한 삶의 질(質)”이라고 할까요 우리의 삶이 온전히 회복되어서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는 상태를 “샬롬”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평화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among those whom He favors(NRSV)” “to all in whom He delights(REV)” “to those with whom God is pleased(NLT)”라고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샬롬”을 선물로 주십니다.
스틸 워터(Still Water)라고 하는 한 미국 노인에게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아내를 간호하며 치료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가족들이 그만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이를 받아들여 아내를 치매전문 요양원에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요양원에 맡긴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의 매일 저녁 요양원에 아내를 찾아가 한두 시간씩 아내 곁에 앉아 같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을 찾을 때는 늘 평소에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갔습니다.
하루는 함께 간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가리키며 이분이 누구냐고 묻자 남편을 몰라보는 아내는 “아이스크림 사다 주는 좋은 아저씨”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어느 날, 남편이 자기 아내 에게 “내가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사다 주니까 좋아”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나하고 결혼하자”고 말하자 그녀는 한참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아이스크림 계속 사다 주면 결혼하지”라고 대답습니다. 남편은 요양원의 목사님을 모시고 자녀들과 요양원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탄절 오후에 조촐한 결혼식을 했습니다. 주례가 치매에 걸린 아내에게 물었다. “옆에 있는 이분을 남편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아내는 “예”하고 대답했다. 결혼식 끝에 남편이 참석한 하객들에게 인사했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결혼식에 오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제가 저의 아내와 이런 번거로운 결혼식을 다시 준비한 것은 단 한번이라도 제 아내에게 ‘사랑하는 남편’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다시 제 아내가 저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만이라도 저의 사랑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성탄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이날 저는 저의 아내를 선물로 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도 저의 아내에게 오늘 하루만이라도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결혼식이 아니라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이 사랑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오늘 성탄절에 우리 부부는 고귀한 사랑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
이 사람의 아내는 치매가 치유되지 못한 채로 약 6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기간 동안 자기 남편을 남편이라고 부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남편은 아내의 장례식에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제 아내가 요양원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에 저를 남편이라고 불러 준 것, 그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고,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저의 남은 인생을 제 아내보다 더 외롭고 아픈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가정에도, 깨어진 부부관계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샬롬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샬롬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샬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추구하는 사람들, 비록 갈등과 대립과 상처와 아픔, 실망과 절망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샬롬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샬롬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복음을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아직 여호와 하나님의 샬롬을 알지도 못하는 세계 인구의 2/3나 되는 사람들의 영혼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지워 주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07년 성탄절 메시지는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게 그 책임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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