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성탄절]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을 사람들

본문

오늘은 우리 주님이 육신을 입고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오늘
성탄절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들 위에 우리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성탄절은 “임마누엘의 여호와 하나님”,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옛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
님이 구체적으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His Story” 라고 하여, “그 분의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을 B. C. 라고 하여 영문으로 Before Christ 하여 주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 주후라는 말을 합니다. 라틴어로 A. D. 라고 하여 Anno Domini라고 합니다. 여기 “도미니”라는 말은 주님이라는 말이요, “아노”라는 말은 이후를
말합니다.
오늘은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간
에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기다립니다. 전화가 걸려오거나, 편지를 받을 때에, 휴대폰의 문자메시지가 뜰 때에도 긴장하게 됩니다. 저는 교
인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고,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 장가들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결혼하고, 목사님이 주례해주세요. ”
“예, 축하드립니다. ” 그런 소식은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목사님”,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
“아니 장로님이 돌아가시다니요. 그렇게 건강하셨는데요” 이런 소식은 가슴 아픈 소식입니다. “목사님, 우리 딸이 서울대학에 합격
했어요. 예, 축하해요. 서울대학에 가다니 정말 축하합니다. 그런데요 서울에 있는 대학이어요. 그래도 축하드립니다. ” “목사님, 저
의 남편이 이제는 암에서 벗어났어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잘 먹고 운동만 잘 하면 오래 산대요. ” 참으로 듣기 좋은 소식입니다. 세상에
진급하고, 승진하고, 합격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것 모두 다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 모두 좋은 소식을 들으면 감사하고, 기분도 좋고, 소망이 넘치고 활력이 솟아나고
능률도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날에, 그 베들레헴 근처에는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귀하고 천한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양떼를 지키는 것은 그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한 밤이었습니다. 주의 천
사가 나타나 주의 영광의 빛을 비추었습니다.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고 밝은 빛이 비추이면 무서워할 것이 당연합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워하기에, 천사는 우선 “무서워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
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표적이라는 말은 “그 증거”, “그 표”라는 말인데, 베들레헴에 있는 여러 아이가 아니라, 포대기에 싸여 여물통에 뉘어 있는 그 아기가
바로 천사가 말하는 내용을 증명하는 표식이라는 말입니다. 구유란 여물통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지만, 마구간에 태어나거나 여물통에 뉘어 있는 아이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낮아지고, 낮아지기를 더 이상 낮아질 것이 없이 낮아지신 것을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 천한 자, 약자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은 구원의 소식입니다. 생명의 소식입니다. 치료의 소식입니
다. 평화요, 축복이요, 은혜의 소식입니다. 그야말로 수지 맡고 복 받는 소식입니다. 세상의 어떤 소식과도 비교되지 않는 소식입니다.
우리 주님의 나심은 복된 소식이요, 그래서 구원의 진리를 복음이라고 합니다. 한 두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
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나심으로 온 인류는 구원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고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영원한 진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늘가는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병든 자였습니다. 소외된 자요, 이방인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 천사는 사라지면서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므로 제대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평강이 되셨습니다. 평안을
주셨습니다. 천사들을 베들레헴 상공을 떠나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지금 목자들은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자기들에게 나타난 천사들, 찬송하던 천사들이 이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목자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이제 베들레헴에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빨리 달렸습니다. 그리고는 마구간을 찾아다니다가 한 마구간의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천
사가 말해준 대로 정확하였습니다.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였습니다. 듣는 자들이 다 놀랐습니다. 예
전 성경에는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상히 여겼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목자들의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다만
놀랍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귀한 말씀을 듣고도 소동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
서 나실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런 엄청난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기뻐하지도 않고, 이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여 소동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우 리 주님의 나심의 가장 기쁘고 복되고,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을 들었으면 좋은 소식에 걸맞게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의 나심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이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평화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를전해주어야 합니다.
신곡의 작가인 단테가 어느 날 저녁 때에 남부 프랑스의 한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수도원 안에서 한
늙은 수도사가 귀찮은 듯이 얼굴을 내밀려 “무엇을 구걸하러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단테는 라틴어로 간단히 “파쳄(PACEM)”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파쳄이란 말은 “평화”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온 백성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의 사신들이 되
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온 누리에 전해주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