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의 네 가지 반응
본문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성지가족 위에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인사합니다.
Merry Christmas! ‘즐거운 성탄이 되십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Christmas 라는 단어는 라는 말과 라는 말이 합성어입니다.
Christ는 히브리어로 메시야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헬라어로는 로서 우리말로는 그리스도로 음역을 했습니다.
즉 Christ 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은 왕이시오, 제사장이요, 선지자 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는 라틴어의 에서 나온 말입니다.
는 ‘경배, 예배’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흔히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미사”라는 말이 바로 에서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란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날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Christmas 대신에 X-Mas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를 헬라어의 그리스도란 단어의 첫 글자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 ‘X’세대 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반항적이고, 제멋 대로이고, 주위 눈치를 안보는 개성파들이고, 뭔가 튀는 세대’ 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X-Mas는 예수님 대신에 자신들만의 개성과 쾌락을 좇는 왜곡된 의미의 성탄을 표현하는 의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날 때마다 어린 아기들의 돌잔치가 생각납니다.
사실 돌잔치의 아기는 그 날이 더 피곤합니다.
영문도 모른 체 거추장스런 한복을 입히고, 억지로 의자에 앉혀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늘어놓고 집으라고 강요를 합니다.
사진을 찍고 나면 어른들끼리 열심히 밥먹고 즐기다가 헤어집니다.
돌잔치의 주인공은 아기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괴로움을 주는 날이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돌잔치 같은 모습은 아닌지요
성탄의 주인공은 분명 예수님인데 우리끼리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성탄의 모습은 아닌지요
우리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X-Mas가 아닌 진정한 Christmas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통해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헤롯 왕의 반응입니다.
그 당시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던 사람은 헤롯 왕입니다.
어느 날 동방에서 온 박사들로부터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듣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가 원자를 생산한 것도 아닌데 무슨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말입니까
현재 자기가 유대 지역을 통치하는 왕인데, 자기가 알지 못하는 왕이 태어났다는데 얼마나 긴장했겠습니까
당연히 반역의 음모라는 생각이 떠올랐겠죠
그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어디서 그가 태어났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동방박사들을 불러 언제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그의 속마음에는 그 아기를 죽이고자 하는 음모가 숨겨 있습니다.
오늘날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왕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 말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요 인생의 주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컨트롤 하려고 합니다.
모든 인생의 계획을 스스로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노래도 부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나 외에 다른 사람의 간섭이나 통제를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최고의 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부릅니다.
그것도 왕 중의 왕(King of Kings)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주의 주(Lord of Lords)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참다운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감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X-Mas로 표현합니다.
이것이 바로 헤롯왕이 나타낸 반응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고, 반감을 가진 반응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죽여서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탄을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되게 하려면 먼저 내가 왕이 아닌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을 둘로스(dullos), 노예로 종으로 표현했습니다.
종은 선택권도 없고, 자유권도 없습니다.
종은 재산권도 없고, 생명권도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손에 달려있는 인생입니다.
오직 주인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지만 날마다 예수님 앞에서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종은 억압받는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한 종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축복받은 종입니다.
이 권세를 누리려면 우리가 주인 삼고 있는 것들을 날마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부단한 자기 비움과 낮아짐의 훈련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며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합니다.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신뢰합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기애적 사랑과 자기 의(義)를 부둥켜안고 욕심을 부리며 삽니다.
그렇게 살면 행복하고 기쁠것 같은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힘이 듭니다.
붙잡고자 하는 행복은 신기루처럼 손에 잡힐듯 하면서 사라집니다.
여호와 하나님 없이 추구하는 인생의 모든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입니다.
먼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주권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붙잡고 발버둥치고 있는 그것들이 많을수록 인생은 힘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헤롯왕처럼 내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다면 진정한 성탄의 기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
나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며 나아갈 때 진정한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임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라는 동방의 박사들의 질문을 듣고 헤롯 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소동했다고 말씀합니다.
백성들은 갑자기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큰 소동이 났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신문에 대서특필 되고,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새로운 왕의 탄생에 대해서 집중 생방송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이상의 반응이 없습니다.
그저 한때의 소동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 어디인지 몰라서도 아니었습니다.
5-6절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동안 뜨겁게 반응했지만 그 이상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백성들의 모습이 오늘날 이 사회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얼마나 세상이 요란합니까
크리스마스 캐럴에, 카드에, 선물에 야단법석입니다.
소란스럽기만 하지 아기 예수님께는 아무런 주목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들끼리 즐기고, 분위기를 낼 뿐입니다.
진정한 성탄이 되려면 가장 먼저 아기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탄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을 때 진정한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반응입니다.
동방박사의 방문에 당황한 헤롯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메시아가 어디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되었는지 묻습니다.
4-6절을 볼까요 “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헤롯 왕의 질문에 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통해 유대 땅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대제사장이라면 당시의 유대교 종교 지도자입니다.
서기관들은 일종의 성경학자들입니다.
모두다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적으로는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이상은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사실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다면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지식으로만 알았지 삶 속에서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해박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이 바로 그러한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골든벨 퀴즈에 나오면 분명 골든벨을 울릴 수 있는 성경지식과 실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골든벨을 울리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머리로 아는 지식에서 머물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골든벨의 주인공이 되려면 아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해야 합니다.
머리에 머무는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 가운데 임마누엘 하시는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30Cm가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라고 합니다.
머리에 있는 성경지식이 가슴에 사랑의 불로 점화되어 손과 발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날 때 진정한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입술로만, 머리로만이 아닌 손과 발로 주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나누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임마누엘의 은혜를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방박사들의 반응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별을 연구하는 점성술가들입니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별을 보고 유대 땅에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별을 따라 머나먼 길을 걸어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정성껏 바치고, 경배합니다.
황금은 왕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대제사장으로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몰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동방박사들은 온전히 아기 예수님께만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왕인 헤롯의 말을 듣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나아올 때에도 별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순종하여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의 반응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이 땅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최고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날입니다.
성탄절에는 다시한번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마음과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처럼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안에 헤롯 왕처럼 아직도 스스로 왕이 되어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다면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백성들처럼 소란만 피우고 있다면 다시한번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머리로만 아는 지식에 머물고 있다면 주님과 동행하는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리며,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로다(눅2:14)”라는 천사의 음성이 우리 모두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성탄의 아침, 우리 모두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위로와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평화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성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인사합니다.
Merry Christmas! ‘즐거운 성탄이 되십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Christmas 라는 단어는 라는 말과 라는 말이 합성어입니다.
Christ는 히브리어로 메시야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헬라어로는 로서 우리말로는 그리스도로 음역을 했습니다.
즉 Christ 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은 왕이시오, 제사장이요, 선지자 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는 라틴어의 에서 나온 말입니다.
는 ‘경배, 예배’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흔히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미사”라는 말이 바로 에서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란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날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Christmas 대신에 X-Mas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를 헬라어의 그리스도란 단어의 첫 글자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 ‘X’세대 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반항적이고, 제멋 대로이고, 주위 눈치를 안보는 개성파들이고, 뭔가 튀는 세대’ 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X-Mas는 예수님 대신에 자신들만의 개성과 쾌락을 좇는 왜곡된 의미의 성탄을 표현하는 의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날 때마다 어린 아기들의 돌잔치가 생각납니다.
사실 돌잔치의 아기는 그 날이 더 피곤합니다.
영문도 모른 체 거추장스런 한복을 입히고, 억지로 의자에 앉혀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늘어놓고 집으라고 강요를 합니다.
사진을 찍고 나면 어른들끼리 열심히 밥먹고 즐기다가 헤어집니다.
돌잔치의 주인공은 아기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괴로움을 주는 날이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돌잔치 같은 모습은 아닌지요
성탄의 주인공은 분명 예수님인데 우리끼리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성탄의 모습은 아닌지요
우리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X-Mas가 아닌 진정한 Christmas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통해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헤롯 왕의 반응입니다.
그 당시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던 사람은 헤롯 왕입니다.
어느 날 동방에서 온 박사들로부터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듣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가 원자를 생산한 것도 아닌데 무슨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말입니까
현재 자기가 유대 지역을 통치하는 왕인데, 자기가 알지 못하는 왕이 태어났다는데 얼마나 긴장했겠습니까
당연히 반역의 음모라는 생각이 떠올랐겠죠
그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어디서 그가 태어났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동방박사들을 불러 언제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그의 속마음에는 그 아기를 죽이고자 하는 음모가 숨겨 있습니다.
오늘날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왕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 말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요 인생의 주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컨트롤 하려고 합니다.
모든 인생의 계획을 스스로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노래도 부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나 외에 다른 사람의 간섭이나 통제를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최고의 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부릅니다.
그것도 왕 중의 왕(King of Kings)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주의 주(Lord of Lords)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참다운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감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X-Mas로 표현합니다.
이것이 바로 헤롯왕이 나타낸 반응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고, 반감을 가진 반응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죽여서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탄을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되게 하려면 먼저 내가 왕이 아닌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을 둘로스(dullos), 노예로 종으로 표현했습니다.
종은 선택권도 없고, 자유권도 없습니다.
종은 재산권도 없고, 생명권도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손에 달려있는 인생입니다.
오직 주인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지만 날마다 예수님 앞에서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종은 억압받는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한 종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축복받은 종입니다.
이 권세를 누리려면 우리가 주인 삼고 있는 것들을 날마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부단한 자기 비움과 낮아짐의 훈련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며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합니다.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신뢰합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기애적 사랑과 자기 의(義)를 부둥켜안고 욕심을 부리며 삽니다.
그렇게 살면 행복하고 기쁠것 같은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힘이 듭니다.
붙잡고자 하는 행복은 신기루처럼 손에 잡힐듯 하면서 사라집니다.
여호와 하나님 없이 추구하는 인생의 모든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입니다.
먼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주권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붙잡고 발버둥치고 있는 그것들이 많을수록 인생은 힘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헤롯왕처럼 내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다면 진정한 성탄의 기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
나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며 나아갈 때 진정한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임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라는 동방의 박사들의 질문을 듣고 헤롯 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소동했다고 말씀합니다.
백성들은 갑자기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큰 소동이 났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신문에 대서특필 되고,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새로운 왕의 탄생에 대해서 집중 생방송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이상의 반응이 없습니다.
그저 한때의 소동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 어디인지 몰라서도 아니었습니다.
5-6절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동안 뜨겁게 반응했지만 그 이상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백성들의 모습이 오늘날 이 사회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얼마나 세상이 요란합니까
크리스마스 캐럴에, 카드에, 선물에 야단법석입니다.
소란스럽기만 하지 아기 예수님께는 아무런 주목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들끼리 즐기고, 분위기를 낼 뿐입니다.
진정한 성탄이 되려면 가장 먼저 아기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탄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을 때 진정한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반응입니다.
동방박사의 방문에 당황한 헤롯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메시아가 어디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되었는지 묻습니다.
4-6절을 볼까요 “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헤롯 왕의 질문에 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통해 유대 땅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대제사장이라면 당시의 유대교 종교 지도자입니다.
서기관들은 일종의 성경학자들입니다.
모두다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적으로는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이상은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사실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다면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지식으로만 알았지 삶 속에서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해박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이 바로 그러한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골든벨 퀴즈에 나오면 분명 골든벨을 울릴 수 있는 성경지식과 실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골든벨을 울리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머리로 아는 지식에서 머물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골든벨의 주인공이 되려면 아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해야 합니다.
머리에 머무는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 가운데 임마누엘 하시는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30Cm가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라고 합니다.
머리에 있는 성경지식이 가슴에 사랑의 불로 점화되어 손과 발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날 때 진정한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입술로만, 머리로만이 아닌 손과 발로 주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나누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임마누엘의 은혜를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방박사들의 반응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별을 연구하는 점성술가들입니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별을 보고 유대 땅에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별을 따라 머나먼 길을 걸어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정성껏 바치고, 경배합니다.
황금은 왕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대제사장으로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몰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동방박사들은 온전히 아기 예수님께만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왕인 헤롯의 말을 듣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나아올 때에도 별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순종하여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의 반응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이 땅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최고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날입니다.
성탄절에는 다시한번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마음과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처럼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안에 헤롯 왕처럼 아직도 스스로 왕이 되어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다면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백성들처럼 소란만 피우고 있다면 다시한번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머리로만 아는 지식에 머물고 있다면 주님과 동행하는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리며,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로다(눅2:14)”라는 천사의 음성이 우리 모두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성탄의 아침, 우리 모두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위로와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평화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성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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