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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성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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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하루 앞둔 오늘, 다른 해 같으면 크리스마스이브의 분위기를 준비하느라고 분주하게 지낼 날인데, 올해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마침 주일인지라 더욱 더 성탄절을 준비하는데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딘 것이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입니까
이 날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 예수님 생일입니다.
그리고 이 생일은 우리들의 생일과 같은 탄생의 의미 보다는 "오심"의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냥 사람이 하나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사건이기에 '성탄절'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이 말씀 속에 성탄, 임마누엘로 오심의 핵심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작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시고, 이 땅위에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증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내용, 즉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소위 과학을 말하는 자들이 '상식에 어긋나고 자연번식의 법칙을 무시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주장할 때, 우리 믿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니까 믿는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남들이 될 일이면 굳이 믿음을 동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기로 하셨는데 특별한 방법으로 오시는 게 당연하지요. 일반 자연생식 방법으로 오셔야 하겠습니까'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오실 때 남자와 여자가 잠자리를 같이 학 사랑을 나누어 그 결과로 태어나는 식으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를 알지도 못하는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기독교는 처음부터 기적의 종교입니다.
기적을 믿지 않고, 기적을 외면한다면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는 동정녀 탄생이라는 '성탄'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부활의 가정'을 믿습니다.
처음부터 끝에서 가정 아닌 것이 없는 종교가 기독교인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묵상해 보십시오.
"믿사오며, 믿사오니, 믿사오며, 믿사옵니다. 아멘"으로 이루어진 것이 우린의 신앙고백입니다.
거기는 무얼 주로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까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것과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다는 고백이 신앙고백의 두 기둥입니다.
이 신앙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바라봐야 그 사람이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내가 받아들이는 순간, 나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건 보다 더 기가 막힌 가정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런 기적의 주인공인데, 예수님이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한 일이 무엇이 큰 기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크리스마스는 자기 인생이 기적으로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 동정녀 탄생의 기적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의미를 찾게 되는 계절입니다.
이 기적의 사건을 붙들지 못한다면 결국 '낭만의 크리스마스' '쾌락의 크리스마스' '물질주의 세속주의의 크리스마스'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통하여 우리는 '기적을 믿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크리스마스를 통하여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발견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많은 영국군 포로들이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썩은 빵조각을 얻어먹으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수용소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영국군 포로들 가운데 기술이 좋은 사람이 이것저것 주워 모으고 부품을 구하여서 '라디오'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밤마다 그 라디오를 아주 작게 듣는데 그가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자기 동료포로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는 연합군이 노르방디 상륙작전에 성공하여서 지금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오고 있다. " 이 소식은 순식간에 수용소 내 포로들에게 전파됩니다.
어느새 포로들은 얼굴이 환하여 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먹을 것이 형편없고 여전히 고난과 고통이 그들에게 있었지만 이제 곧 우리를 이 지긋지긋한 포로수용소에서 해방시킬 아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그들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얼굴에 생기가 돌고 마음이 들뜨고 삶에 소망을 갖게 되는 날입니다.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병들고 여전히 힘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이제 메시야이신그분이 오셨으니 구원의날, 해방의 날이 곧 도래하게 될 것이다'
하는 소망을 갖는 날이 성탄의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분이 초자연적 방법으로 인간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찾아오셨다는 이 소식이 우리에겐 더 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속에는 인류에게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달되게 하기까지 두 사람의 "믿음의 헌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사람은 "마리아"자신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여호와 하나님은 마리아를 그의 몸을 사용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마리아의 순종과 헌신이 필요하였습니다.
마리아의 경우에는 특별한 "내려놓음" ' 자기포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상식과 자기의 지식과 자기 염려까지 다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다 포기하여야 '아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마리아의 반문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른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일이 있으리이까"
'난 남자를 경험한 적 없는 처녀인데 제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까'
이에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말씀하시는데, 이때 마리아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자니 자기 상식을 극복하여야만 했다는 얘기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우리가 놓쳐선 안 될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서 부터 모든 것이 상식적인 얘기냐 과학적인 얘기냐 하면서 물고 늘어질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오히려 마리아의 순종, 마리아의 내려놓음, 마리아의 자기포기, 마리아의 헌신을 기억하여야 하는 계절이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구현하시고자 하신 이 구속의 섭리는 기적으로 시작되어 기적으로 끝나는 일이기에 여기는 '나의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며 성탄의 의미를 놓치고 마는 결과를 낳습니다.
저의 책상머리에는 두 가지 글귀가 붙어있습니다. "상식이 신앙이 되면 안된다. 신앙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상식을 믿는 자에게는 상식적인 일만 나타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는 기적적인 일만 나타난다. "
여러분!
자기 상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시길 축원합니다. 자기가 경험하고 아는 것만 믿는 사람은 자기 한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사람은 진정한 내려놓음, 자기포기, 순종이 가능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본문 37절, 3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는 말씀을 듣고 '주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에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의 사람은 또 하나 있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약혹자인 요셉 입니다. 이 두 사람은 정혼관계 이었습니다.
정혼은 약혼과 결혼사이의 단계 입니다. 약혼은 본인들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들끼리 정한 것이고 정혼은 본인들이 이 약혼사실을 승낙하고 이제 결혼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부터 법적 구속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호적수속도 정혼상태에서 하기도 하였습니다. 정혼기간은 1년 정도 입니다.
이 기간에 요셉은 자기 약혼녀가 임심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분명 이것은 자신과 상관없이 임신이니결론은 마리아가 다른 사내와 부적절한 관례를 맺었다는 얘기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천사로부터 들은 말을 전합니다. 문제는 이제 요셉이 이 말을 믿어주느냐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못 믿겠다. '하면 마리아는 간음한 여인이 되고 이 결혼은 여기서 깨어지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마리아는 율법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여기에도 '내려놓음', '자기포기'가 필요 하였습니다. 요셉의 엄청난 결단이 있었다는 얘기 입니다.
지금 이 현실을 믿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큰 헌신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완전히 맡겨 버리는 순간 입니다.
대단한 순종, 대단한 믿음입니다. 성탄절은 이런 계절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높고 높은 보좌를 포기하시고 맞고 천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커다란 자기포기 입니다. 마리아도 요셉도 자기상식, 자기체면 다 내려놓고 말씀에 순복합니다.
커다란 자기포기 입니다. 나를 말씀 앞에 바치는 순간, 성탄의 감격이 우리 가슴속에 찰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나 자신은 죽어지고 오직 내안에 생명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낮아짐이고 겸손이고, 섬김이고, 순종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계명을 중행 하는 일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주고 바든 계절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한해를 마감하며 인사말을 나누는 계절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주시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신 날입니다.
그 섬김과 사랑과 자기 포기를 몸으로 실천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 교만이 겸손으로, 낮아짐으로, 자기희생으로 바뀌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기적을 체험하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닫혔던 마음이 열려지고,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지고, 섭섭했던 마음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상처받았던 마음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여러분 개개인에게 심령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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