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 배경 이야기”
본문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오늘은 성탄절을 맞이하기에 앞서 그 성탄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성탄과 관계된 성경의 배경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왜 로마 시대에 오셔야 했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왜 한국도 미국도 또는 어떤 다른 나라도 아닌 당시의 팔레스틴 땅에만 오셔야 했는가 등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서 원래는 갈렙의 아내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은 유다지파의 땅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의 고을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즉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미가 선지자는 오래 전에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의 근본은 상고이며, 영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고란 “머나먼 과거”를 뜻하고 영원이란 먼저 성경에는 “태초”로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태초보다 더 먼 “영원”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미가는 이 메시아의 근본을 정확히 알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를 단순히 정치적인 인간 메시아로만 기대한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실제 세계사에서 일어났던 역사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 바사의 멸망과 알렉산더 대왕의 출현: 좀 더 앞에서부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바벨론 제국 이후에서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바벨론 이후 200여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제패한 바사(페르샤) 왕국이 유럽의 헬라 왕국에 의하여 멸망합니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먼저 바사왕 다리오 3세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진출을 통해 세계를 더 제패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헬라(그리스)의 피터 대제와 계속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그리스의 초창기였기 때문에 헬라가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일어나 바사 왕국을 멸망시켜 버립니다. 이때부터 헬라가 세계 정복의 역사무대에 등장합니다.
특히 이 사건은 아시아의 세력이 쇠퇴해지고 유럽이 최초로 아시아까지 진출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먼저 바사의 다리오 왕이 유럽에 야심을 보였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알렉산더는 많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지식과 무술을 겸비해 용병술이 대단하고, 위대한 리더십을 가진 역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다니엘이 환상으로 본 것처럼 마치 날개가 달린 표범처럼 육로와 해로를 통해 아시아를 급속도로 제패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아시아의 중동전체 지역과 심지어 인도까지 정복했습니다. 역사가 세워진 이래 가장 처음으로 동서양이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어 유라시아제국이란 바로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시킨 대 제국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알렉산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알렉산더가 유명하고 위대한 것은 그런 군사적, 정치적 제국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그가 최초로 헬레니즘의 문명과 사상과 철학 등을 아시아와 세계에 심어 놓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지난 날 이슬람교의 세력인 오토만(오스만) 터키가 세계를 정복할 때 칼이냐 코란이냐를 양자 중 선택하게 했던 것처럼, 알렉산더는 죽여서라도 하루빨리 야만인들을 개화시키고 계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수한 나라의 백성들을 칼로 죽이면서도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알렉산더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헬레니즘의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헬레니즘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 세상학문과 철학입니다. 오늘 우리식으로 한다면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탁월한 과학적 지식을 뜻합니다. 그는 이 사명감이 얼마나 투철했는지 그가 만약 복음을 이렇게 증거 했다면 세계의 반 이상을 점령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때 나온 것이 바로 올림픽입니다. 올림픽 사상은 사람의 육체를 강조합니다. 얼마나 높이 뛰느냐 달리느냐 드느냐 던지느냐 쏘느냐 심지어는 희랍 신화에서의 신들의 이야기와 같이 신을 사람의 단계로 끌어 내리는 사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헬레니즘은 철저한 인본주의이며, 바울이 말한 대로 초등학문이며, 반 복음적인 것의 기초가 됩니다. (헬라적 사상과 히브리적 사상의 영적전쟁)
그런데 이러한 알렉산더도 이라크 동쪽까지 정복을 하다가 그만 말라리아에 걸려 33세에 요절합니다. (20세에 시작하여 이 때 죽었지만 청년들이여 그가 한 일을 보고 도전을 받으라)
그가 죽자 헬라의 대 제국은 그 참모들에 의하여 작은 네 개의 제국으로 분열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남방의 애급과 북방의 수리아를 지배했던 왕조입니다. 이 두 제국이 지정학적으로 이스라엘, 즉 가나안을 중심에 두고 전쟁을 하니 예루살렘이 평안한 날이 없어집니다.
2. 애급과 수리아의 헬라 왕조
그런데 애급의 헬라 왕조 톨레미(클레오파트라)는 약 100년 동안 팔레스틴을 지배했지만 그들은 매우 유화적이고 관대한 문화적인 통치를 했습니다. 유명한 것은 이 때 톨레미 황제가 예루살렘에 히브리인들의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70명을 보내 달라고 할 정도였고 그는 마침내 이 70인역 성경을 만들어 박물관에 보관할 뿐만 아니라 헬라권의 많은 이방인들도 이 구약성경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북방의 수리아 왕조의 제국이 다시 남쪽의 이 팔레스틴을 정복 장악하면서 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들은 헬라문화로 개조시킨다는 목적으로 종교를 탄압하고 매우 포악한 통치를 했습니다. 그 황제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에게 성전출입을 금지시키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등 모든 율법책 등의 경전들을 다 불태워버립니다.
그들의 통치기간은 3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300년 이상의 피해를 준 것같이 참으로 악랄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까지 있었습니다. 성전 앞에 돼지 머리를 달아 놓고 성전에 들어가려면 거기에 절하고 입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3. 사이비 유대왕조 하스몬의 출현
이렇게 되니 자연히 유대인들의 반발과 수많은 오늘 날 테러리즘의 원조인 게릴라전, 즉 저항운동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때 유대인들의 대대적인 저항과 혁명을 마카비 운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카비란 쇠망치라는 저항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저항운동에서 승리하여 결국은 국가적인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마침 이 때 새로운 신흥제국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수리아를 정복했기에 그들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이 나라와 성전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고 하여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독립기념일과 같습니다. )
바로 이 때, 즉 이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의 하스몬 왕조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카비 저항운동을 주도했던 유다라는 사람의 조상 이름을 딴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하스몬 왕조는 무려 100년이나 지속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면서도 에스라엘 왕위를 차지한 사이비 왕조였습니다.
원래 마카비 운동은 신앙의 회복, 성전의 회복이라는 기치를 들고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 하스몬 왕조는 정치적인 왕조로 전락하게 되고 그리고 이 왕조는 서서히 헬라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앞에 원형경기장을 만들었고 당시의 제사장들도 제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경기를 관람했다고 합니다. 마치 오늘 날 야구나 축구에 미쳐서 예배를 일찍 마치고 TV를 보거나 경기장에 쫓아다니는 목사님들과 같습니다.
하스몬 왕조의 상황이 이렇게 타락하다보니까 경건한 유대인들이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후손도 아닌 사람이 왕 노릇을 한다든가, 레위의 후손도 아닌 사람들이 제사장 노릇을 하고 거기다 하는 꼴들이 가관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 반발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 반발하여 나온 세력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 즉 파리시는 반대하고 반항한다는 뜻인데 하스몬 왕조가 당시의 반발하는 세력에게 붙여 준 별명이 바로 바리새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에 스스로 경건주의 운동을 했던 이들이 바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가장 적대시 한 것은 참으로 모순 중의 모순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하스몬 왕조가 몰락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부적인 권력싸움 때문이었습니다. 이 왕조의 마지막 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누가 왕위를 물려받을 것인지 권력싸움을 하다가 나중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의 판결을 받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까지 호시탐탐 로마는 전략적으로 가장 요충지인 팔레스틴 , 즉 가나안 땅을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하스몬 왕조가 폼페이우스를 끌어 들이자 이 때 폼페이우스는 전쟁도 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하여 왕의 두 아들을 감옥에 가둬 버리고 하스몬 왕조를 쉽게 무너트렸습니다.
4. 로마시대
이때부터 사실상 로마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로마는 당시의 세계를 무려 600여 년 동안이나 지배하였습니다. 이렇게 로마가 세계를 오래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복한 현지 국가의 종교나 문화를 인정해 주고 재산을 착취하지 않으며, 지배받는 나라 스스로가 다스리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로마는 단지 총독부(가이사랴)만 본부로 삼아 그 나라를 관리 및 지배를 하였습니다.
5. 헤롯 왕의 등장
이 때 각 나라나 지역마다 자치제도, 즉 분봉왕을 두어서 그 나라나 현지인 스스로가 다스리도록 하였고 이런 배경에서 헤롯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원래 이두매, 즉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에돔은 원래 사해 밑 남쪽에 있었으나 이 혼란의 시기에는 그들이 슬금슬금 위로 올라와 살면서 에돔이 팔레스틴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가 자연히 유대의 분봉왕이 된 것입니다. (갈릴리반란을 진압함)
그러나 헤롯은 이 점이 항상 불안했습니다. 유대인도 아닌 에돔 사람이 유대에서 통치하니까 그가 왕이 되고 난 다음에는 항상 유대인들이 언젠가는 자기를 쫓아 낼 것이라는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하스몬 왕조의 딸, 공주와 결혼을 했으나 그래도 유대인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이것도 부족하여 항상 정신분열증 같은 불안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헤롯은 나중에 자기가 낳은 두 아들을 죽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의 여인들은 자녀들의 신앙과 성경교육에 철저하니까 자기 아들들에게 왕위를 빼앗길까봐 그렇게 하고 나중에는 자기 부인도 유대인이라고 죽이고, 또 어머니까지 죽입니다.
정말 권력에 미친 사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있을 때 멀리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이가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었으니 참으로 환장하고 혼비백산할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며 만나서 경배하거든 자기도 찾아 뵐 테니 보고를 하라고 했지만 그들이 오지 않자 결국 다시 유아들까지 학살하는 미치광이가 되고 맙니다.
이 때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애급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이 후에 헤롯은 계속 마음이 불안하여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40 여 년 동안 걸려 건축을 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헤롯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도 처음에는 폼페이우스가 장악을 했으나 후에 기원전 49년에 줄리어스 시저가 애급에서 폼페이우스를 암살하고 자신이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그러나 그도 애급의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정신적으로 해이해지고 공화정치가 아닌 독재체제로 나아가려고 하다가 결국은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후에 그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인 악티움 해전에서 애급이 완전히 패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해서 죽게 됩니다.
이 때 절재권력을 가진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이름을 아구스트 시저(가이사)로 바꾸고 대 로마제국의 새 황제가 됩니다. 이 때 부터는 감히 로마에 대항할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수백 년 동안 로마의 평화, 즉 Pax Romana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로마는 오늘날의 미국 이상 가는 초강대국이 된 것입니다.
이 때 천하를 통일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대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나라와 그 영토에서 세금을 얼마나 거두어들일 수 있는지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군대는 얼마나 되는지 를 알기 위해 철저한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이 때 이스라엘 사람들도 각기 고향, 즉 본적지에 가서 호적신고를 하도록 했습니다. (눅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마리아와 요셉은 이미 정혼한 사이여서 아직 동침하지는 않았어도 유대인의 혼인관습에 따라 이미 법적인 부부였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마리아가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이 인구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나귀를 타고도 일주일 이상을 여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베들레헴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이 너무 지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특히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에 모여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여관이 이미 만원이고 매진되어 말구유에서 탄생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한 것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자 그러면
6. 왜 로마시대였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왜 메시아를 로마시대, 그리고 왜 팔레스틴 땅에만 보내셨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이 당시는 세계 역사상 최초로 언어가 통일이 되었습니다. 로마도 자신들의 언어인 라틴어를 포기하고 헬라어를 공용어로 해서 전 세계에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모든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이 되고 또한 헬라어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선교를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인 것입니다. 효율적인 전도를 위해서입니다.
2)행정이 통일되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나라와 나라, 국경을 넘을 때 비자가 필요 없는 시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유럽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연합이 되어 화폐를 통일하고 비자를 철폐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3)길이 뚫렸습니다. “모든 길을 로마로”란 말이 있었듯이 로마는 당시에 세계의 모든 육로와 해로를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행정이 통일이 되니 여행이 자유롭다는 것보다는 길이 고속도로처럼 편리하게 개통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더욱 쉽게 여러 나라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기인 400년 이 침묵의 시대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수 있는 인프라를 완벽하게 준비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7. 마지막으로 왜 팔레스틴 땅이어야 했을까요
이것은 간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그 땅에서 복의 근원, 즉 그 시작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차피 우리가 그냥 넘어가야 할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왜 한국이냐 했을 때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도 어떤 나라든지 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않고는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세계 제 2대 화약고는 언제나 중동과 한반도였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보다도 회교권과 대치된 이 가나안 땅이 고대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세계정치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드시고 세계 만민을 위한 복이 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앞으로 지구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이 이 땅에서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역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중동문제는 오늘 날 종말의 시계 침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이 이 중동지역으로 유입될 경우 세계의 종말은 의외로 빨리 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와 이슬람권의 긴장관계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이렇게결론 맺겠습니다. 메시아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 문제를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회복을 위하여 오셨다는 본질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질이 건강하면 비본질적인 것들은 항상 잘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탄생을 다시 축하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성탄절을 맞이하기에 앞서 그 성탄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성탄과 관계된 성경의 배경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왜 로마 시대에 오셔야 했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왜 한국도 미국도 또는 어떤 다른 나라도 아닌 당시의 팔레스틴 땅에만 오셔야 했는가 등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서 원래는 갈렙의 아내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은 유다지파의 땅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의 고을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즉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미가 선지자는 오래 전에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의 근본은 상고이며, 영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고란 “머나먼 과거”를 뜻하고 영원이란 먼저 성경에는 “태초”로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태초보다 더 먼 “영원”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미가는 이 메시아의 근본을 정확히 알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를 단순히 정치적인 인간 메시아로만 기대한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실제 세계사에서 일어났던 역사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 바사의 멸망과 알렉산더 대왕의 출현: 좀 더 앞에서부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바벨론 제국 이후에서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바벨론 이후 200여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제패한 바사(페르샤) 왕국이 유럽의 헬라 왕국에 의하여 멸망합니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먼저 바사왕 다리오 3세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진출을 통해 세계를 더 제패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헬라(그리스)의 피터 대제와 계속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그리스의 초창기였기 때문에 헬라가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일어나 바사 왕국을 멸망시켜 버립니다. 이때부터 헬라가 세계 정복의 역사무대에 등장합니다.
특히 이 사건은 아시아의 세력이 쇠퇴해지고 유럽이 최초로 아시아까지 진출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먼저 바사의 다리오 왕이 유럽에 야심을 보였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알렉산더는 많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지식과 무술을 겸비해 용병술이 대단하고, 위대한 리더십을 가진 역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다니엘이 환상으로 본 것처럼 마치 날개가 달린 표범처럼 육로와 해로를 통해 아시아를 급속도로 제패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아시아의 중동전체 지역과 심지어 인도까지 정복했습니다. 역사가 세워진 이래 가장 처음으로 동서양이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어 유라시아제국이란 바로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시킨 대 제국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알렉산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알렉산더가 유명하고 위대한 것은 그런 군사적, 정치적 제국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그가 최초로 헬레니즘의 문명과 사상과 철학 등을 아시아와 세계에 심어 놓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지난 날 이슬람교의 세력인 오토만(오스만) 터키가 세계를 정복할 때 칼이냐 코란이냐를 양자 중 선택하게 했던 것처럼, 알렉산더는 죽여서라도 하루빨리 야만인들을 개화시키고 계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수한 나라의 백성들을 칼로 죽이면서도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알렉산더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헬레니즘의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헬레니즘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 세상학문과 철학입니다. 오늘 우리식으로 한다면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탁월한 과학적 지식을 뜻합니다. 그는 이 사명감이 얼마나 투철했는지 그가 만약 복음을 이렇게 증거 했다면 세계의 반 이상을 점령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때 나온 것이 바로 올림픽입니다. 올림픽 사상은 사람의 육체를 강조합니다. 얼마나 높이 뛰느냐 달리느냐 드느냐 던지느냐 쏘느냐 심지어는 희랍 신화에서의 신들의 이야기와 같이 신을 사람의 단계로 끌어 내리는 사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헬레니즘은 철저한 인본주의이며, 바울이 말한 대로 초등학문이며, 반 복음적인 것의 기초가 됩니다. (헬라적 사상과 히브리적 사상의 영적전쟁)
그런데 이러한 알렉산더도 이라크 동쪽까지 정복을 하다가 그만 말라리아에 걸려 33세에 요절합니다. (20세에 시작하여 이 때 죽었지만 청년들이여 그가 한 일을 보고 도전을 받으라)
그가 죽자 헬라의 대 제국은 그 참모들에 의하여 작은 네 개의 제국으로 분열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남방의 애급과 북방의 수리아를 지배했던 왕조입니다. 이 두 제국이 지정학적으로 이스라엘, 즉 가나안을 중심에 두고 전쟁을 하니 예루살렘이 평안한 날이 없어집니다.
2. 애급과 수리아의 헬라 왕조
그런데 애급의 헬라 왕조 톨레미(클레오파트라)는 약 100년 동안 팔레스틴을 지배했지만 그들은 매우 유화적이고 관대한 문화적인 통치를 했습니다. 유명한 것은 이 때 톨레미 황제가 예루살렘에 히브리인들의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70명을 보내 달라고 할 정도였고 그는 마침내 이 70인역 성경을 만들어 박물관에 보관할 뿐만 아니라 헬라권의 많은 이방인들도 이 구약성경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북방의 수리아 왕조의 제국이 다시 남쪽의 이 팔레스틴을 정복 장악하면서 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들은 헬라문화로 개조시킨다는 목적으로 종교를 탄압하고 매우 포악한 통치를 했습니다. 그 황제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에게 성전출입을 금지시키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등 모든 율법책 등의 경전들을 다 불태워버립니다.
그들의 통치기간은 3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300년 이상의 피해를 준 것같이 참으로 악랄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까지 있었습니다. 성전 앞에 돼지 머리를 달아 놓고 성전에 들어가려면 거기에 절하고 입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3. 사이비 유대왕조 하스몬의 출현
이렇게 되니 자연히 유대인들의 반발과 수많은 오늘 날 테러리즘의 원조인 게릴라전, 즉 저항운동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때 유대인들의 대대적인 저항과 혁명을 마카비 운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카비란 쇠망치라는 저항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저항운동에서 승리하여 결국은 국가적인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마침 이 때 새로운 신흥제국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수리아를 정복했기에 그들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이 나라와 성전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고 하여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독립기념일과 같습니다. )
바로 이 때, 즉 이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의 하스몬 왕조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카비 저항운동을 주도했던 유다라는 사람의 조상 이름을 딴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하스몬 왕조는 무려 100년이나 지속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면서도 에스라엘 왕위를 차지한 사이비 왕조였습니다.
원래 마카비 운동은 신앙의 회복, 성전의 회복이라는 기치를 들고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 하스몬 왕조는 정치적인 왕조로 전락하게 되고 그리고 이 왕조는 서서히 헬라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앞에 원형경기장을 만들었고 당시의 제사장들도 제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경기를 관람했다고 합니다. 마치 오늘 날 야구나 축구에 미쳐서 예배를 일찍 마치고 TV를 보거나 경기장에 쫓아다니는 목사님들과 같습니다.
하스몬 왕조의 상황이 이렇게 타락하다보니까 경건한 유대인들이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후손도 아닌 사람이 왕 노릇을 한다든가, 레위의 후손도 아닌 사람들이 제사장 노릇을 하고 거기다 하는 꼴들이 가관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 반발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 반발하여 나온 세력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 즉 파리시는 반대하고 반항한다는 뜻인데 하스몬 왕조가 당시의 반발하는 세력에게 붙여 준 별명이 바로 바리새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에 스스로 경건주의 운동을 했던 이들이 바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가장 적대시 한 것은 참으로 모순 중의 모순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하스몬 왕조가 몰락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부적인 권력싸움 때문이었습니다. 이 왕조의 마지막 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누가 왕위를 물려받을 것인지 권력싸움을 하다가 나중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의 판결을 받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까지 호시탐탐 로마는 전략적으로 가장 요충지인 팔레스틴 , 즉 가나안 땅을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하스몬 왕조가 폼페이우스를 끌어 들이자 이 때 폼페이우스는 전쟁도 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하여 왕의 두 아들을 감옥에 가둬 버리고 하스몬 왕조를 쉽게 무너트렸습니다.
4. 로마시대
이때부터 사실상 로마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로마는 당시의 세계를 무려 600여 년 동안이나 지배하였습니다. 이렇게 로마가 세계를 오래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복한 현지 국가의 종교나 문화를 인정해 주고 재산을 착취하지 않으며, 지배받는 나라 스스로가 다스리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로마는 단지 총독부(가이사랴)만 본부로 삼아 그 나라를 관리 및 지배를 하였습니다.
5. 헤롯 왕의 등장
이 때 각 나라나 지역마다 자치제도, 즉 분봉왕을 두어서 그 나라나 현지인 스스로가 다스리도록 하였고 이런 배경에서 헤롯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원래 이두매, 즉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에돔은 원래 사해 밑 남쪽에 있었으나 이 혼란의 시기에는 그들이 슬금슬금 위로 올라와 살면서 에돔이 팔레스틴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가 자연히 유대의 분봉왕이 된 것입니다. (갈릴리반란을 진압함)
그러나 헤롯은 이 점이 항상 불안했습니다. 유대인도 아닌 에돔 사람이 유대에서 통치하니까 그가 왕이 되고 난 다음에는 항상 유대인들이 언젠가는 자기를 쫓아 낼 것이라는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하스몬 왕조의 딸, 공주와 결혼을 했으나 그래도 유대인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이것도 부족하여 항상 정신분열증 같은 불안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헤롯은 나중에 자기가 낳은 두 아들을 죽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의 여인들은 자녀들의 신앙과 성경교육에 철저하니까 자기 아들들에게 왕위를 빼앗길까봐 그렇게 하고 나중에는 자기 부인도 유대인이라고 죽이고, 또 어머니까지 죽입니다.
정말 권력에 미친 사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있을 때 멀리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이가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었으니 참으로 환장하고 혼비백산할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며 만나서 경배하거든 자기도 찾아 뵐 테니 보고를 하라고 했지만 그들이 오지 않자 결국 다시 유아들까지 학살하는 미치광이가 되고 맙니다.
이 때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애급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이 후에 헤롯은 계속 마음이 불안하여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40 여 년 동안 걸려 건축을 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헤롯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도 처음에는 폼페이우스가 장악을 했으나 후에 기원전 49년에 줄리어스 시저가 애급에서 폼페이우스를 암살하고 자신이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그러나 그도 애급의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정신적으로 해이해지고 공화정치가 아닌 독재체제로 나아가려고 하다가 결국은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후에 그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인 악티움 해전에서 애급이 완전히 패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해서 죽게 됩니다.
이 때 절재권력을 가진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이름을 아구스트 시저(가이사)로 바꾸고 대 로마제국의 새 황제가 됩니다. 이 때 부터는 감히 로마에 대항할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수백 년 동안 로마의 평화, 즉 Pax Romana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로마는 오늘날의 미국 이상 가는 초강대국이 된 것입니다.
이 때 천하를 통일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대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나라와 그 영토에서 세금을 얼마나 거두어들일 수 있는지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군대는 얼마나 되는지 를 알기 위해 철저한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이 때 이스라엘 사람들도 각기 고향, 즉 본적지에 가서 호적신고를 하도록 했습니다. (눅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마리아와 요셉은 이미 정혼한 사이여서 아직 동침하지는 않았어도 유대인의 혼인관습에 따라 이미 법적인 부부였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마리아가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이 인구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나귀를 타고도 일주일 이상을 여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베들레헴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이 너무 지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특히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에 모여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여관이 이미 만원이고 매진되어 말구유에서 탄생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한 것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자 그러면
6. 왜 로마시대였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왜 메시아를 로마시대, 그리고 왜 팔레스틴 땅에만 보내셨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이 당시는 세계 역사상 최초로 언어가 통일이 되었습니다. 로마도 자신들의 언어인 라틴어를 포기하고 헬라어를 공용어로 해서 전 세계에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모든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이 되고 또한 헬라어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선교를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인 것입니다. 효율적인 전도를 위해서입니다.
2)행정이 통일되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나라와 나라, 국경을 넘을 때 비자가 필요 없는 시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유럽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연합이 되어 화폐를 통일하고 비자를 철폐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3)길이 뚫렸습니다. “모든 길을 로마로”란 말이 있었듯이 로마는 당시에 세계의 모든 육로와 해로를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행정이 통일이 되니 여행이 자유롭다는 것보다는 길이 고속도로처럼 편리하게 개통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더욱 쉽게 여러 나라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기인 400년 이 침묵의 시대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수 있는 인프라를 완벽하게 준비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7. 마지막으로 왜 팔레스틴 땅이어야 했을까요
이것은 간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그 땅에서 복의 근원, 즉 그 시작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차피 우리가 그냥 넘어가야 할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왜 한국이냐 했을 때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도 어떤 나라든지 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않고는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세계 제 2대 화약고는 언제나 중동과 한반도였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보다도 회교권과 대치된 이 가나안 땅이 고대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세계정치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드시고 세계 만민을 위한 복이 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앞으로 지구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이 이 땅에서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역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중동문제는 오늘 날 종말의 시계 침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이 이 중동지역으로 유입될 경우 세계의 종말은 의외로 빨리 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와 이슬람권의 긴장관계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이렇게결론 맺겠습니다. 메시아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 문제를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회복을 위하여 오셨다는 본질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질이 건강하면 비본질적인 것들은 항상 잘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탄생을 다시 축하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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